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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때묻히며 가꾸는 안동문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는 가운데 2000년 '안동'지에서는 지역사회공동체에 기여하고 행동하는 단체를 NGO로 규정하고, 이들의 활동과 성과들을 짚어본다. 특히 이들 NGO중 안동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들을 우선적으로 소개한다.

새천년이 밝았다. 올해는 여느해와 달리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해이자 마침 용의 해이다. 12지 가운데 유일한 상상의 동물로 천변만화(千變萬化)의 능력을 지닌 용. 혹자는 지난 천년이 잠룡의 시대였다면 용띠해로 시작되는 21세기는 비룡의 시대라고 하던데, 용과 함께 시작한 새천년은 우리에게 희망찬 미래가 열릴 것 같은 예감을 준다.

*젊은 사람들의 문화재지키기

안동문화지킴이단의 김호태 총무지킴이를 만난 것은 그 새천년을 맞은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어느 하루, 소한 이튿날이었다. 대한보다 소한이 춥고, 소한보다 입시한파가 춥다고 했던가. 논술시험일이었던 그날, 하물며 소우지 안동의 매운 날씨가 어땠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 날씨에 김호태 총무지킴이는 하회마을의 나무사진을 찍으러 간다고 했다. 그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취재를 겸하느라 흔쾌히 동행했던 하회에서 낭패감에 젖었던 것은 순전히 날씨탓이었다.

하회마을을 가면서 보니 곳곳이 희끗희끗하다. 길가의 산기슭이며 밭이랑 사이의 잔설은 최근에 내린 눈을 말해주었지만 우리는 언제 눈이 내린 것인지 알지 못했다. 김호태 지킴이는 지킴이단에서 펴내는 {사람과 문화} 1월호에 실을 안동의 나무 사진과 이야기를 구하고자 하회행을 감행(?)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그의 활동적인 성격을 잘 드러내주었다. 그런 적극적인 활동력과 실무지킴이 중 최고령이라는 이유도 한몫하여 그를 문화지킴이단의 재정과 사무를 총괄해서 맡아보는 총무지킴이로 있게 했을 터였다.

마을에 들어가서 동신을 모시는 삼신당과 만송정을 먼저 둘러보았다. 그 후, 화산 중턱에 자리한 서낭당과 산 아래 있는 국신당을 다 돌아보고서야 겨우 그와 마주앉을 수 있었다. 시간이 만만치 않게 걸렸던지라 이미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안동문화지킴이단은 매월 마지막 토요일마다 지역의 문화재를 돌며 청소해오고 있다. 안동사람으로 안동의 문화를 이해하고 보존해나간다는 취지에 맞게 청소에 그치지 않고 문화재를 배우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같이 해오고 있기도 하다. 소식지로 시작한 {사람과 문화}도 그런 작업에 다름아니다. 취재에 앞서 그에게 안동의 전통문화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안동은 최고의 문화유산집적지입니다. 대표적인 전통문화의 현장이지요. 그러나 실제로 안동사람들은 안동의 문화적 역량과 가치를 모르고 안동에는 지역문화의 계승에 대한 기반도 갖춰져있지 않습니다. 안동의 문화는 50대 이상의 어른들만 지키는 박제화된 문화인 셈이지요."

안동문화지킴이단은 이런 현실을 고민한 안동 젊은이들의 모임이다. 안동의 문화적 역량을 결집시켜 자발적으로 모인 젊은이들 안동문화지킴이단. 영국여왕 방문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안동의 이미지에 단순히 편승하자는 것이 아니라 좀더 내실있게 돌보고자 생겨난 단체이다.

안동문화지킴이단 사람들은 젊다. 김호태 총무지킴이는 마흔줄에 접어들었지만 다른 실무지킴이들은 이십대 초반부터 서른 초반까지 젊은층이다. 안동문화지킴이단은 어른들만 지켜온 안동의 문화를 이제 젊은세대들이 알고 찾고 가꾸어나가고자 하는 움직임인 것이다.

임재해 교수를 대표지킴이로 김호태 총무지킴이와 10명의 실무지킴이, 가족지킴이와 시민지킴이, 청소년 지킴이, 후원지킴이로 이루어져 활동해오고 있다. 한달에 한번 청소활동에 참여하는 가족지킴이와 시민지킴이, 청소년지킴이들의 인원은 지킴이단활동이 강요형이 아니라 참여유도형인 까닭에 정확하지 않으나 명단에 올라있는 인원은 총 98명에 여섯가족이며 회원별 참여가 유동적인 가운데 매달 40여명이 꾸준히 참여해오고 있다. 활동과 상관없이 지킴이단 활동에 동의하고 재정적인 도움을 주는 후원지킴이는 10월 9곳에서 15곳으로 늘었다.

"지킴이단은 밑에서부터 파고들어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뿐 세의 확장을 꾀하지는 않습니다. 지속적인 생명력을 가지기 위해 언론플레이를 통해서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지도 않고 있지요. 시민들이나 청소년들이 나도 한 번 참여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실무지킴이 정영준씨의 말이다.

*문화지킴이에서 펴내는 {사람과 문화}

관리가 부족한 지역의 문화재를 찾아 청소하는 일부터 하겠다는 것이 지킴이단이 택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지난해 6월대식을 가졌던 태사묘에서부터 마루를 닦고 마당의 잡초를 뽑아내는 것으로 시작, 7월 임청각, 8월 고산서원, 9월 예안향교, 10월 선성현 객사, 11월 삼구정, 12월 내앞까지 활동을 이어왔다. 이제까지는 한달 한달 활동을 마치면 그 다음달 활동할 곳을 물색했다고 하는데 새천년에는 계획성있는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1년 계획을 잡았다. 계절적인 특성을 고려하고 장소의 중복성을 피하려는 노력에서다.

김호태 총무지킴이와 하회마을을 동행취재 하게 한 {사람과 문화}도 처음의 단순한 소식지나 자료수준을 넘어 어엿한 문화잡지의 구색을 갖추었다. 지킴이단은 태사묘에서 발대식을 할 때부터 활동지의 역사적 배경과 건축상의 특성, 지킴이들의 참여소감 등을 다룬 {사람과 문화}를 답사자료로, 활동의 길잡이로 삼아왔다. 그래온 것이 청소작업처럼 거르지않고 7호까지 발행을 거듭하면서 논단과 문화재여행, 안동의 음식문화, 놀이문화, 활동보고 등의 꼭지마다 문화관련 내용들을 알차게 담아내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지킴이단은 민간단체보조금 2백만원과 지킴이들의 회비로 충당해왔다. 실제로 지킴이활동 전체예산의 20%에 그치는 민간단체보조금은 소식지 {사람과 문화} 발행비의 5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올해는 문예진흥기금을 신청해놓았지만 열악한 재정상황이 얼마나 나아질지는 알 수 없다.

재정이 열악한 탓에 상주하는 실무자도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제몫을 다하는 실무지킴이들이 중심에서 일해나갈 뿐이다. 새해가 되면서 신입실무지킴이들이 보강되고, 이제 섭외부, 편집부, 자료관리부, 재정부, 현장활동부의 부서체계도 자리잡히고 있다.

*손때 묻히며 우리 문화 보살피고 가꾸는 일에 앞장서

지킴이단은 현재 활동범위를 넓혀가는 일보다는 지금 하는 활동이라도 제대로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장차 회원들도 더 많이 생기고 재정적으로도 뒷받침이 되면 상주직원을 두고 본격적인 모임을 가지면서 활동을 넓혀나갈 예정이다. 가령 소식지에도 실리는 안동의 음식문화에 나온 안동식혜를 강사를 초빙해 요리법을 강연하거나, 겨울철에 썰매타기 같은 안동의 놀이문화를 체험해볼 수도 있다는 의견을 실무지킴이들을 가지고 있다. 안동의 문화재를 돌며 청소하는 것으로 유적들을 가꾸는 것과 더불어 음식·놀이문화를 비롯한 안동문화의 근간이 되는 문화도 지켜가겠다는 것이다.

"여왕방문이후 안동이 부각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현재의 분위기가 문화관광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지 여왕때문이 아니죠. 문화관광을 위해 전통문화의 가치인식과 상품화가 필요하듯 문화운동이 필요하다고 지킴이단은 판단했습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우리들은 이전보다는 수준높은 문화생활을 영위해오고 있다. 지방자치가 활성화되면서는 문화의 고장이니 문화권연계개발이니 하며 지자체들도 문화산업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그러나 풍요한 문화의 시대를 살면서도 진정한 우리의 문화를 보살피고, 찾아 가꾸는 일에는 별관심이 없었다. 말로만 하는 문화의 보존을 넘어 누구하나 앞장서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 실질적인 작업의 물꼬를 지킴이단에서 텄다고 하면 과장일까?

(새천년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말이 많다.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은 환경이 부각되는 시대라고도 하고 정보산업이 한층 발달된다고도 한다. 그 두가지 축, 산업과 환경 위에 이루어 온 문화의 중요성도 그에 못지 않다. 그래서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도 명명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문화재는 우리 민족의 상징이자 역사속에 살아숨쉬는 조상의 얼이다. 그러기에 우리 문화 유산의 보존과 이해없이 우리의 정체성이란 없다. 문화재를 돌보지 않고 우리의 문화를 말할 수 없다. 안동문화지킴이단의 활동 또한 문화재에 대한 국민교육체제 확립이자 나아가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 찾기가 아닐까.

"고기를 그냥 삼키면 맛을 알 수 없지요. 씹어보아야 맛을 알 듯 지킴이단 활동도 그런 것입니다. 그냥 가서 보고오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가서 닦아본 마루, 풀을 뽑아본 마당이 더 기억에 남게 됩니다."

김호태 총무지킴이의 말은 그러나 여전히 소박할 뿐이다. 청소를 하면서 참여한 시민들이나 청소년, 가족들 개개인마다의 기억으로 남는 것에 만족한다. 그러나 총무지킴이도 필자도 지킴이들도 모두 알고 있다. 그 기억들이 우리문화에 대한 우리의 정체성이 될 것임을.

젊은이들이 모여 시작한만큼 이제 활동기간이 8개월째에 접어든 젊은 NGO 안동문화지킴이단. 안동문화지킴이단은 거창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다. 커다란 세력확장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소박한 꿈처럼 안개가 스며들듯하는 잔잔한 파문을 이야기할 뿐이다. 그러나 안동시민의 주체성과 가능성을 보여준 지킴이단. 그곳에서 퍼뜨리는 잔잔한 파문이 앞으로 더 큰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갈 것을 믿는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