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표 말표신발 유행하던 시절, 부종대신발(글/이향미).jpg)
예전에 신발가게에서는 발치수를 지금처럼 '미리'로가 아니라 '문'(文)으로 나타냈다.
신발을 구매하는 성향도 요즘에는 외국브랜드가 붙은 신발이 인기이지만 6,70년대에는 왕자표(국제고무), 기차표(동양고무), 다이아표(보생고무), 말표(태화고무)같은 우리 메이커들이 유행했다.
사람들에게 '방향치', '길치'란 소리를 많이 듣는다. 이상하게도 처음 가는 길은 잘 찾으면서도 돌아오는 길은 못 찾는다. 내가 방향치인 첫 번째 이유는 일단 골목에 들어서면, 좌우방향 감각이 마비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만약 골목을 들어설 때, 왼쪽에서 들어왔다면 나갈 때도 왼쪽으로 나가버려 온 길을 다시가곤 한다. 결국 헤매다가 동네수퍼에 들러 길을 묻거나, 좀전에 만났던 사람을 귀찮게 하기 일쑤다. 방향치 주인 때문에 무엇보다 고생스러운 건 신발이다.
오늘도 어딘가를 향해 발길을 옮긴다. 언젠가 TV에서 '발 건강'에 대해 의사가 얘기하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사람들은 매일 32톤의 하중을 견뎌가며 평생동안 지구의 네바퀴 반이나 되는 거리를 걸어다닌다'고 한다. 그렇다면 난, 그 두배의 걸음은 더 걸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굽이 높고 뾰족한 신발은 꺼린다. 그걸 신고 나갔다가 고생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신발에 얽힌 사연은 누구에게나 있을 듯하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면, 그 사연을 찬찬히 곱씹어보며 오늘 우리가 찾아가는 '신발가게'에 주목해주기 바란다.
*부종대신발의 연원
이 길도 분명히 처음 가는 길은 아닌데 이 골목인지, 저 골목인지를 몰라 한참을 찾았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당도한 곳은 서부동에 위치한 부종대 신발가게다. 부종대 신발가게는 구시장 아가방 맞은편에 있다. 가게입구에는 장화, 고무신, 슬리퍼 등이 비닐포장지에 쌓여 처마밑을 차지하고 있다. 현대식 가게들 사이에서 예전의 모습을 유지해오고 있는 고집스러움이 단번에 들어오는 곳이다. 가게문을 들어서자 가게 안은 한산하고 가게에 딸린 방안에서 인기척 소리가 났다. 부종대 신발가게 사장 안벽환(65세)씨가 문을 열고 나왔다.
몇마디 인사를 건네고 부종대라는 상호의 연원부터 여쭸다. 옛날에도 구시장 입구는 모두 장터였다고 한다. 장터안에 큰 철탑이 있었는데, 여기에 사이렌이 달려있었다. 불이 나거나 긴급사항이 생기면 울렸다고 하는데 이 철탑을 부르기 쉽도록 부종대라 했다고 한다. 이 철탑이 철거된지는 한 30년 정도 된다고 한다.
"안동서 부종대 그러면 모르는 사람이 없이 다 알거든, 그 밑에 신발가게가 있다고 해서 부종대 신발가게지요."라며 당연하다는 듯 말을 꺼낸다.
"부종대를 둘러싸고 요근처에 신발가게가 빼곡히 있었어요. 신발가게가 늘어나자, 가게 주인들이 경쟁이 붙었는기라. 백고무신 한 켤레에 500원 할적에 이문이 20원, 30원, 어떨때는 원가대로 해서 서로 싸게 팔라고 그랬지, 점원도 둘, 서이씩 두면서 손님들 끌어모으고… 이랬는데 그중에서도 안동 부종대가게 신발이 싸다는 소문이 인근으로 쫙 퍼졌지요."
부종대 가게가 유명세를 탄 건 부종대라는 철탑의 영향도 컸지만, 동종업계의 판매경쟁이 치열한 틈을 타 틈새시장을 잘 공략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당시 부종대 가게는 이미 고인이 된 이유득씨가 사장이었다. 그 이후로 안벽환씨가 부종대신발이라는 간판을 달고 신발을 해왔고 옛날 그 부종대 가게 덕을 지금까지도 보고 있는 셈이다.
* 신발인생 서른 다섯해
안벽환씨는 35년전부터 안동에서 신발가게를 시작했다. 그가 거쳐온 신발가게만 해도 네 군데다. 군 제대후 스물 다섯 살에 취직한 곳이 신발가게였다. 외삼촌이 경영하던 신시장 삼우상회에서 일을 배워 독립해나와 태화동에 있는 지금의 안동금고 앞에서 태화고무대리점을 독자적으로 운영했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 남부동에서 대리점을 몇 년 운영하다 현재 부종대 가게를 한지는 20년째다. 부인 권영랑씨 또한 남편과 결혼하고부터는 이 세월을 같이 했으니 신발가게로 이골이 난 사람이다.
"첫째가 서른여섯, 막내가 올해 서른이에요. 중간에 셋이 연년생이라 고생많이 했어요. 참말로, 나는 시내 있어도, 우동 한 그릇 내맘대로 못 사먹고 전문대라도 이 신발 팔아서 대학은 다 시켰어요."하며 자식들 잘된 덕에, 자신의 고생은 씻은 듯 사라진다.
* 유행한 신발
안동에 유명메이커 신발대리점이 생긴지는 한 13년전 쯤이다.
"그때는 메이커 가게들은 신발을 하나도 못팔아서 치우는 점방도 많았어요. 여기 신이 5천원 가면 메이커 집은 8천원 가고 그랬지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판도가 바뀌었지요. 학생들 인식이 마구 메이커만 신을라 그라니까, 엄마, 아부지들 고추 열근 팔아도 메이커 못 사신잖아요."
아디다스, 필라와 같은 유명한 외국 운동선수들의 이름을 딴 브랜드는 어느덧 우리 귀에 익숙한 신발상표가 돼버렸다. 이런 기업들은 대부분 제3세계에 신발 가공공장을 두고, 현지에 있는 어린 아이들을 고용해 신발을 만들게 한다.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무조건 이름있는 외국 브랜드를 선호할 게 아니라 제 나이보다 더 어린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신발을 만든다는 사실, 제대로된 임금도 받지 못하는 현실을 한번쯤 생각해줬으면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초국적 기업에 맞서 꿋꿋이 이름을 지켜오는 신발은 몇 되지 않는다. 신발산업이 막 뜨기 시작한 6,70년대를 떠올려보면, 왕자표(국제고무), 기차표(동양고무), 다이아표(보생고무), 말표(태화고무)라는 이름의 신발기업이 있었다. 다이아표, 말표 신발은 없어졌고, 기차표와 왕자표는 몇 안되는 우리나라 신발산업의 맥을 잇고 있다.
안벽환씨가 처음 소매상을 할 때, 왕자표와 말표에서 나오는 고무신을 부산 도매상에서 떼와 팔았다고 한다. 흰고무신이 나오다 그 다음에 다이아표 검정고무신이 나오고, 운동화가 생산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운동화는 학생들이 즐겨 신었는데,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즐겨신던 신발은 "콤비"다. 형태가 단순하고 밋밋한, 끈을 매는 신발이다.
한참 장사가 잘 될 때는 이 가게를 인수하고 소매업을 시작할 때다. 그때는 학생 손님이 주였다. 콤비(여학생용 운동화), 비비화(농구화), 네오카드(정구화) 같은 신발들이 주로 팔렸다고 한다. 한 켤레에 5천원 받으면, 이득이 150원 남아도, 족수가 많이 나가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나 이제는 신발가격은 비싼 반면에 그만큼 숫자가 안나간다고 한다. 메이커신발이 대거 등장하면서 이젠 부종대신발가게는 장화, 고무신, 슬리퍼가 주로 팔린다. 그리고 TV광고에 등장하는 포켓몬스터, 태양의 기사, 구슬동자 같은 만화캐릭터가 찍힌 아이들 신발이다. 그것도 장난감을 끼워서 파는 제품이 잘 나간다.
*몇문 신지요
우리가 찾아간지 한참이 돼서야 한 아주머니 손님이 찾아왔다. 권영랑씨는 "어서오세요. 무슨 신발 찾아요? 몇문 신지요?"라며 아주머니에게 신발 한 켤레씩을 권하기 시작한다.
안벽환씨는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났다는 듯이, "예전에 신발크기는 문(文)수가 통용됐다"며 주로 남자는 10문 이상대를, 여자는 9문대를 신었고, 아이들은 원래 발크기보다 좀 크게 신겼다고 전했다.
십수년간 사람들에게 신발가게를 운영해온 그에게 좋은 신발은 어떤건지 물어보았다.
"자기 발에 잘 맞는 신발이어야지요. 일단 신어서 편해야 하고, 요즘처럼 굽높은 신발은 피했으면 싶고, 동양사람과 서양사람 발모양이 다르게 생겼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신발을 신어야 발건강에도 좋지요."라며 편안한 신발보다 디자인이 독특하거나 유행하는 신발, 무조건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의 신발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꼬집었다.
발 건강은 신체의 건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 몸 전체의 반응점이 발바닥에 모두 모여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발로 평생동안 지구의 네바퀴 반이나 되는 거리를 걸어다니고 있다. 자신의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어 발을 엄청나게 혹사시키면서 말이다.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의 4명중 1명이 평소에 발이 아파 고생하고 있으며, 3명중 1명은 엄지발가락이 새끼발가락 쪽으로 휘어져 있는 이른바 버선발 기형을 앓고 있다고 한다.
부종대 신발가게를 나오면서 오랫동안 정든 내 신발을 보니, 안도현의 {관계} 라는 책에 나오는 구두를 이해하는 법이란 글이 문득 떠올랐다. 처음 구두를 사면 며칠간 구두는 발뒤꿈치를 물어뜯는다. 사람들은 제 발에 구두를 맞추기 위해 뒤축을 꺾어신기도 하고, 지저분한 구둣솔로 윤나는 새 구두를 더럽히기도 한다. 그러나 구두 역시도 제 몸을 깎으며, 주인의 발에 맞추기 위해 인고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사람들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작가의 말은, 십수년간 신발가게를 운영하며 살아온 안벽환씨가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