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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문빡 출입을 삼가라(글/정진영)

여자와 쪽박은 내돌리면 깨진다?

흔히들 하는 말 가운데 "여자와 쪽박은 내돌리면 깨어진다"고 한다. 내돌린다는 것은 문밖으로 나가 돌아다니게 하는, 말하자면 이런저런 사회적인 활동을 허락하는 것이다. 그리고 깨어진다는 것은 여자들이 정조를 잃게 됨을 의미할 것이다. 쪽박이 깨어지면 다시 붙여서 쓸 수가 없듯이, 여자들도 정조를 잃으면 더 이상 여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 여자들은 절대로 문밖으로 나가 돌아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문밖으로 나가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남자들이다. 남자들은 내돌려져도 깨어질 일도 없을 뿐 아니라 혹시나 누군가를 깨어버리더라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남자로서 있을 수 있는 일이지 결코 수치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무튼 사회적 활동은 남자의 몫이자, 의무이고, 권리이다. 그래서 아내를 지칭하는 말로 흔히 쓰는 집사람이니 안사람이라는 표현도 아마 여기에서 연유한 것일 것이다.

남자와 여자에 대한 이 같은 극단적인 관계, 곧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비록 전부는 아니더라도, 늘 당연하게 치부되어 왔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우리의 오랜 전통으로 이해되고 있다. 전통이란 극단적으로 거부되고 청산되어야 될 대상이거나 아니면 그 자체로써 무조건 정당화되고 합리화되는 도구로 이용된다. 이것은 전통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같은 편견과 오해는 우리의 전통사회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를 올바로 이해하는데 큰 장애가 된다.

뒷간과 처갓집은 멀수록 좋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어떤 이는 수렵과 농경생활에서 남자들의 육체적인 힘이 보다 유용하게 쓰이기 시작하던 원시사회에서부터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힘의 우열에 따른 차이일 뿐 아직은 사회적 차별은 아니었다. 우리는 역사가 발전한다는 생각에 늘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원시사회에서 고대사회로, 다시 중세와 근대 사회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은 어떻게 발전되었는가. 그것은 점차 육체적인 힘의 우열에 따른 차이만이 아니라 이제는 능력의 차등과 사회적 차별로 정당화되고 제도화되어 갔다. 이것이 바로 발전이라는 것이었고, 그 발전의 주체는 당연히 남성이었다. 따라서 여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억압과 차별 그 자체의 발전이고, 역사의 퇴보일 뿐이었다. 이것은 역사가 남성들의 세상에서 만들어진 남성의 소유물이었음을 의미한다.

아무튼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과 차별이 보다 구체화되고 제도화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오래지 않다는 말은 반만년의 역사에 비교에 볼 때 그러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대체로 조선 초·중반기인 15, 16세기부터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의 가정적 또는 사회적 지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한 요소는 결혼 후의 거주형태일 것이다. 부모와 동거하는가 아니면 별거하는가가 아니라, 여자가 시집을 가느냐 아니면 남자가 장가를 가는가 하는 문제이다. 여자가 시집을 가는 것과 남자가 장가를 가는 것은 결혼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지만, 결혼한 여성이 가정 또는 사회적으로 가지는 지위는 현격히 달라진다. 남자가 장가를 간다는 것은 곧 처가살이를 의미한다. 처가살이에 대한 입장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오늘날 흔히 말해지는 "뒷간과 처갓집은 멀수록 좋다"거나,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적어도 조선시대 그것도 중반(16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그러나 고려의 귀족사회에서는 물론이고 조선왕조의 15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재산의 있고 없음에 관계없이 처가살이란 당연한 것이었고, 또한 보편화된 것이었다.

시집살이, 처가살이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 중에 "고초 당초 맵다해도 시집살이만 못하다"거나, "시집살이 삼 년, 벙어리 삼 년"이라는 말도 있다. 이것은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비롯한 시댁식구들의 구박과 남편의 무관심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만 했던 며느리들의 처지를 잘 말해준다. 어디 그 뿐인가! 남편의 무관심은 차라리 다행인지 모른다. 외도하는 것도 모자라 버젓이 첩까지 들인다. 시어머니는 여기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며느리 탓으로 돌린다. 그렇다고 역정을 낼 수도, 누구를 원망할 수도,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 여기에 아들이라도 낳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칠거지악(七去之惡)이 들먹여지고 마침내는 소박까지 당하게 되면 이제 명주수건에 목매 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모든 여성들의 운명이 다 이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누구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다.

그러면 남자들의 처가살이 하에서 아내의 위치는 어떨까?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가에서 일반화되어 있던 첩 때문에 속앓이를 했을까? 시부모에게 불순하다고, 투기한다고, 질병이 있다고, 그래서 칠거지악(七去之惡)이 이렇다고 들먹여졌을까? 이런저런 이유로 구박을 받거나, 아니면 벙어리나 귀머거리로 그렇게 살았을까? 그것은 처가살이 형태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오늘날에도 문제가 되고 있는 아들에 대한 극단적인 관심은 어떠했을까? 처가살이의 경우에 아들은 결혼과 더불어 외형상 출가외인이 된다. 딸을 둔 부모는 사위 봄을 아들을 얻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니 딸이면 충분하였고, 아들에 연연해 할 필요는 없었다. 남자들의 처가살이가 일반화된 고려사회에서는 부모의 재산이 당연히 아들과 딸에게 똑같이 상속되었고, 따라서 부모 사후(死後)의 봉제사(奉祭祀)도 자녀간에 윤행(輪行)되었다. 더욱이 아들도 딸도 없는 경우라도 양자는 거의 행해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고려시대 명문귀족 가문의 경우에도 무후(無後)가 허다하였다. 조상과 제사에 대한 관념이 조선시대 유교적인 생각과는 달랐으니 굳이 양자를 들여 사후의 봉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여성들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청상과부는 어떠할까? 남편이 일찍 죽었다면 그 아내는 어떻게 했을까? 고려시대에는 당연히 재가를 했다. 그것은 자식이 있거나 없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자식이 있는 여성이 재가를 하면 전남편 소생의 자녀와 새 남편과는 의자(義子)라는 관계가 성립된다. 의자란 형식적인 것이 아니어서 의부(義父)의 사회적 정치적 특권까지도 승계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의자관계의 형성과 제도화는 여성의 재혼이 일반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심지어는 전남편의 자식이 있는 여성이 국왕과 재혼함으로써 그 자식들이 모두 왕자와 공주의 예우를 받기도 하였다.

이제 더 이상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적어도 고려 또는 조선 초기까지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듯이 여성에 대한 일방적인 억압과 차별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유교와 여성차별

조선은 유교를 국교로 한 사회였다. 그것은 유교적인 윤리와 질서가 정치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삶 전부를 규제하고 통제하는 사회라는 것을 의미한다. 유교는 이전의 전통사회와는 달리 철저히 남성 중심의 가치관과 질서를 강조하고 있다. 이것을 집약적으로 체계화한 것이 바로 종법(宗法)이다. 종법이란 말하자면 아버지와 맏아들을 중심으로 가계를 계승하며 제사를 지내도록 한 것이다. 가부장적 가족질서는 이것이 구체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종법에 기초한 가부장적 가족질서는 조선의 유학자들이 반드시 실현해야 할 성현의 법도였다. 그런데 이 같은 가족질서의 확립은 앞에서 언급하였던 남자가 장가를 가는 우리 고유의 혼인풍습과는 정면에서 배치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이 같은 결혼제도를 바꾸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태종대의 한 관료는 "중국의 예의는 바로 혼인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음이 양을 쫓아 여자가 남자의 집으로 가서 아들과 손자를 낳아 내가(內家)에서 자라게 하니 본종(本宗)의 중함을 알게되는데, 우리는 옛 습속을 따라 양이 음을 좇아 남자가 여자 집으로 가서 아들과 손자를 낳고 외가에서 자라게 하니 본종이 중한지를 알지 못하게 됩니다."고 하면서 남자가 장가를 가는 남귀여가혼(男歸女家婚)을 금지하고 여자를 맞아들이는 친영례(親迎禮)를 행할 것을 주장하였다. 여기서 내가니 본종이니 하는 것은 바로 아버지 혈연의 가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부계혈통의 확립을 위해서 세종(1435년)은 몸소 왕실에서 처음으로 친영례를 거행하는 모범을 보이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공주를 시집보냈던 것이다. 왕이 모범을 보였다고 고유의 오랜 풍습이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친영례의 정착은 쉽지 않았지만 16세기 이후에는 점차적으로 일반화되어 갔다. 이것은 부계혈통 곧 남권의 강화요, 여권의 약화를 의미한다. 여권의 약화는 곧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 그리고 이것의 정당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조선초기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의 강화와 정당화는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그 하나는 이제까지 자유롭게 재혼을 하고 있었던 여성들에게 수절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장황하지만 조선초기 유학자들의 주장을 보기로 하자.

"중국의 장횡거라는 사람이 말하기를 남자가 절개를 잃은 여자를 배우자로 삼으면 남자 역시 절의(節義)를 잃는 것이다고 하였따. 한 번 남편과 결혼하였으면, 종신토록 고치지 않는 것이 부인의 도리이다. 만일 딴 남편을 섬긴다면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지금 세속(世俗)에서는 절의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다시 시집을 가는데, 국가에서도 금하는 법령이 없어 절개를 잃은 자의 자손에게도 깨끗한 벼슬자리와 높은 관직을 주고 있다. 이것이 습관이 되어 절의를 버리는 것을 예사로 알고, 비록 중매자가 없더라도 자진하여 남편을 구하는 자가 있으니, 만일 이를 금하지 않는다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이제부터는 다시 시집가는 것을 모두 금지시키고 만일 금령을 어겨 개가(改嫁)하는 자가 있으면 실행(失行)한 죄로 다스리며 그의 자손 역시 벼슬하지 못하게 하여 절의를 장려하는 것이 좋겠다."

말하자면 여성의 재혼에 대한 인식이 이전과는 현저히 달라지고 있다. 개가하는 여성은 짐승이나 마찬가지니 실행한 죄로 다스리자는 것이다. 이것은 주장이 아니라 곧 법이 되었다. 여성에 대한 수절의 강요는 재가녀 자손에 대한 억압과 차별 즉, 서얼 차대법과 재가녀 자손의 금고 등으로 보다 강화되어 갔다.

여자들은 문밖출입을 삼가라!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은 다른 한편에서는 그들의 활동공간을 집안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문밖 출입을 삼가게 하는 것을 말한다. 세종 년간(1431)에 논의된 내용을 보자.

"예(禮)에 부인은 낮에 뜰에 거닐어도 안되고 까닭없이 중문(中門)을 나가서도 안 된다고 하였으니, 성인이 부녀자들이 지켜야 할 법도를 엄히 함이 이와 같은데도, 우리나라의 부녀자들은 고려왕조의 잘못된 풍속을 그대로 좇아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다투어 거리로 나오거나 난간에 기대어 거리낌없이 구경하니 차마 입에 담기조차 부끄럽습니다. 이는 부녀자들이 지켜야 할 도리에 어긋나는 것일 뿐 아니라, 중국 사신이 올 때 그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이제부터는 부녀자들이 구경하는 것을 일체 금하고 잘못된 풍속을 개혁하여 부녀자들이 지켜야 할 법도를 바로 잡으시길 바랍니다."

고려 또는 조선초기까지만 하더라도 부녀자들이 구경거리를 좇아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중국 또는 유교의 법도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중국사신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조선의 관료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주인으로서의 우리 주체성은 온데 간데 없고 오직 이웃 강대국들의 눈만을 항상 의식해왔던 셈이다. 사대란 총칼의 힘에 굴복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우리의 의식세계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후 여자들의 활동공간을 집안으로서만 한정하자 하였지만, 문밖 출입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게 마련이었다. 이 불가피한 경우를 위해 등장한 것이 지붕있는 가마였다. 조선초기의 사대부가 부녀자들은 요즘 흔히 생각하듯이 사방이 막힌 가마를 타고 다녔던 것은 아니다. 말을 타거나 평교자(平轎子)를 타고 다녔다. 평교자란 쉽게 말해 벽과 지붕이 없는 가마이다. 그러니 사방을 둘러보기 좋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누군가와 옷깃도 스칠 수 있고 정담도 나눌 수 있다. 바로 이점 때문에 평교자는 더 이상 여성들이 이용할 수 없게 되었고, 벽과 지붕이 있는 가마로 대신하게 하였다. 이것은 불가피한 경우라 하더라도 가능한 한 여성을 남자로부터 또는 사회로부터 엄히 격리시키고자 한 것이다. 가마를 탈 수 없었던 여성들이 외출시에 장옷이나 쓰개치마, 너울 등으로 얼굴을 가렸던 것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조선후기에 이르러 더욱 강화되었고, 또 부분적으로는 오늘날에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고수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남녀간에 있어서 비록 정치적 평등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가정에서의 평등은 실현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또한 전통이었음에 틀림없다. 전통이란 무엇인가? 고수하는 것만이 능사도 아니지만, 무조건 배척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때로는 복원되기도 하고, 때로는 새롭게 창조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 새 천년의 시대, 단절되었던 우리의 진정한 전통을 복원하고 재창조할 수 있다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더 이상 우리 시대의 화두(話頭)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