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안동국악의 새로운 지평을 연어간다(글/임종교)
일출을 볼 수 없을거라는 예보를 듣고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무작정 겨울 새벽산을 찾았다. 깜깜한 어둠에도 후래쉬를 든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었다. 세시간여의 긴 어둠을 빠져나올때쯤 뜸을 들이는 것인지 막상 해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 다음은 기다림이다. 한참의 기다림 끝에 모습을 보인 건 겨우 동전만하게 떠오른 해였다. 그러나 그 모습도 잠시, 이내 사라진다. 잠을 설쳐가며 새벽산을 오른 해돋이의 장관은 겨우 동전만했다. 그야말로 조촐했다. 그러나 그 조촐함에도 산사람들은 감사하고 기뻐했다. 탄성을 지르고 애국가를 부르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도 불러댔다. 뭔일이 일어날 것 같던 2000년은 생각보다 호들갑스럽지 않았다. 동전만한 것에도 감사하는 이런 첫마음이 지금 우리에게 마촘한 것인지 모른다. 새천년 첫 번째로 소개할 안동의 예술인은 아직은 이런 첫마음을 가진 떼거리다. 아니, 떼로 새천년을 열었던 사람들이다. 지난 1999년 12월 31일 밤 안동시에서 주최한 새천년 밀레니엄 행사가 시청 마당에서 펼쳐졌다. 이곳에서 시민들과 같이 새천년을 맞았던 이제 겨우 세살박이 안동국악단. 개인적으로 눈여겨보았던 팀이기도 하다. 98년 안동시민회관에서 창단공연을 하더니 어느덧 햇수로 세해째 접어든 국악팀이다.
젊고 건강한 여성의 손으로
안동국악단은 98년 6월에 창단하여 10월 제2회 국제탈춤페스티벌 출연, 12월 창단 정기연주회를 가졌고, 99년에는 6월 하계연주회, 8월 봉산재산 수박축제 출연, 9월 안동예술제 출연, 10월 3회 국제탈춤페스티벌 국악한마당 주관, 11월 제2회 정기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리고 2000년 밀레니엄행사로 첫테잎을 끊으면서 숨가쁘게 자신들의 활동영역을 넓혀왔다. 이 외에도 빠진것들이 많다는 걸 보면 신생팀으로서는 다부지게 활동해온 셈이다. 공연자들이 관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건 최선을 다해 연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지역 예술인들이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하지 않은 현실이 가로놓여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연주역량이나 공연의 내용보다 그 외부의 것들에 더 소모전을 벌여야 한다. 게다가 회원 모두가 전문적인 전공인이 아닌 까닭에 자칫 잘못하면 반짝했다가 제풀에 지쳐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걸 염두에 두면 좀 이른감은 있지만 3년을 끌고 온 그들이 대견한 것이다.
안동국악단은 풍물마당과 전미경 가야금연구소 두단체가 하나로 묶여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대표도 금동영씨(31)와 전미경씨(27) 두사람이다. 그들의 활동력이 조금씩 잦아지고 넓어지면서 좋은 평가들을 받고 있지만 무엇보다 기분좋은 일은 젊고 건강한 두 여성의 손으로 꾸려나간다는 사실이다. 안동지에서도 열심히 하고 있는 문화예술인으로, 21세기에 국악판을 열고나갈 사람으로 각각 소개한 바 있다. 이때만 해도 그들은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을 때였다. 안동국악단 타악기 연주팀인 풍물마당은 이미 4-5년 활동한 경력이 보태어져 자리를 잡고 있었고, 또 관현악팀은 안동국악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갈 신인으로 등장하면서 말이다.
혼자보다 둘이서
그런 그들이 안동국악단으로 98년 6월에 다시 태어났다.
"처음에 자체발표회를 양쪽팀이 모여서 하게 됐는데 서로가 봐도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일반시민들에게도 이렇게 다양한 걸 보여주면 좋겠다 싶었지요. 그리고 공연 한번 해보자고 했고, 그 자리에서 하기로 결정을 냈지요."
금동영씨의 말이다. 이렇게 모인 안동국악단은 현재 학생들과 교사들, 주부들, 직장인들로 전공자가 아닌 아마츄어 일반시민 4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타악기팀은 풍물마당이 책임지고, 가야금은 전미경가야금연구소에서 맡는다. 그리고 나머지 대금, 단소, 피리반은 각기 외부에서 강사를 초빙해 전미경가야금연구소 공간에서 운영해오고 있다. 타악기팀은 중,고급반으로 경력이 주로 4-5년이상 된 회원들이다. 자신의 주위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강습할 정도이고, 전문적으로 강습을 나가는 회원도 있다. 안동국악단의 정기연주회를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츄어라는 말이 그리 쉽게 나오지 않는다. 준프로라고 해야할까? 그냥 일반시민들이라고 하기엔 공연때마다 보이는 열정과 흥이 만만치 않다. 관현악팀도 예사롭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아마츄어들이 아마츄어임을 너무 자신있게 드러내는 것도 관객들이 보기에 그 이상 힘든 게 없지만 이들은 그런 티를 내지 않는다.
이들이 한번 정기연주회를 올리는 데 드는 연습시간만 봐도 짐작이 가는데 자그만치 1년이다. 1년동안 그들은 정기연주회를 위해 연습을 하는 것이다. 어설프게 하지 않겠다는 말이기도 하고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하겠다는 그들의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안동국악단은 각자 상대 단체의 활동을 인정하면서 안동국악단의 정기공연과 여러 공연의뢰를 담당한다. 사무실도 풍물마당은 시청 맞은편 지하에 있고, 전미경가야금연구소는 풍물마당 건너편 이층에 자리하고 있다.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에 있으니 서로 의견교환하기도 쉽고, 덕분에 취재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각자의 활동을 인정한다지만 개인적인 활동을 할 때도 안동국악단의 이름으로 나가고 있다. 각기 그들에게 당장 돌아가는 실이익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럼으로써 그들이 몸담고 있는 안동국악단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고 덤으로 홍보효과도 얻는 것이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죠. 타악쪽에서는 관현악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계기도 되고 이해의 폭도 더 넓어지고 관현악쪽에서도 마찬가지지요. 국악에 대한 이해가 많아지고 자긍심도 높아진 것 같아요."
전미경씨의 말이다.
안동 최초의 국악관현악단
그들이 자신들의 알짜배기를 볼 수 있는 건 정기공연을 통해서다. 그리고 안동국악단은 이제 두 번의 정기공연을 마쳤고 이미 계획된 3회 정기연주회를 준비하고 있다. 차근차근 준비해서 공연 올리기 3개월 전부터 본격적인 호흡맞추기에 들어간다고 한다.
"처음 창단공연은 기대이상으로 폭발적일 정도의 반응과 찬사를 받았지요. 신선하다는 분도 많았고 정말 감사했었어요. 2회 연주회를 하면서도 좋게 생각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지만 자체적인 평가에서는 좀더 전문적인 기능을 보여줘야 한다는 데 모두들 동의했습니다."
안동국악단의 창단공연을 본 사람들은 안동에서는 처음으로 국악관현악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풍물활동은 활발히 있어 왔지만 국악관현악 활동은 체계적으로 전공한 사람이 없었고, 풍물마당에서 대금이나 단소 선생님을 외부에서 초빙해 반을 운영하는 정도였다. 배우려는 수강생들도 많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타산이 맞지 않아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차에 전미경가야금연구소가 생겼고 풍물마당과 찰떡궁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처음에 올때는 안동하면 고전적인 이미지가 강하니까 이런 국악관현악쪽으로 많이 발달해있는 줄 알았어요. 부속초등학교 강사로 나갔는데 배우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더라고요. 요즘은 국악교육이 활성화되고 있으니까 학교 선생님들도 많이 배우고 있지요."
전미경씨가 안동에 처음와서 놀란 것이 국악단 하나 없다는 사실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서양관현악단보다 국악관현악단이 안동에 더 잘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도 한 모양이다. 지역에 국악을 전공할 데도 없고, 사람도 없는 곳에서 전미경씨가 하나씩 길을 닦아야 하는 것이 힘들었겠지만 학교에서 제대로 국악을 전공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인 희소성으로 인해 받은 혜택도 얼마간은 있었으리라. 그래서 그는 안동국악단에 그치지 않고 지난 99년 11월에 청소년국악관현악단을 만들었다. 아직 짧은 시간이라 뚜렷한 활동은 대외적으로 선보인바 없지만 아이들에게 국악을 바로 가르쳐주고 싶기도 했고, 장기적으로 전공으로 할 수 있고 안동을 이끌어갈 국악인을 배출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에 애착이 가는 모양이다.
"연주가 있을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는데, 하고는 흩어지고 하니 그냥 방치하는 것 같더라고요. 체계적으로 이끌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역내 초,중학교 청소년들을 모았어요. 우리 악기도 가르치고 전래동요도 가르치고 해서 우리 음악이 결코 지루한 것이 아니라 재미난 것이라는 걸 어릴때부터 느끼게 해주고 싶기도 했었고요"
국악기반 개설 늘어
그들에 의해 조금씩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은 이런 것이다. 정기공연을 끝내고날 때마다 하나씩 국악기반이 개설되었다. 1회때는 관현악쪽으로는 대금반, 가야금반, 단소반만 안동국악단원들이었는데 공연을 마치고 피리를 보고 관심있어 찾아오는 이들이 생기면서 피리반이 개설되어 2회 연주회때는 피리부분에 대해서는 외부초청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렇게 하나둘씩 채워가는 것이다. 내용적으로도 첫회때는 전통음악 위주였다면, 두 번째는 규모가 많이 커졌고 지휘자 선생님을 모셔 서양오케스트라처럼 국악관현악도 선보였다. 이제 그들은 공연을 보러오는 관객들에게 어떻게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래서 두가지 계획을 세웠다. 제3회 정기연주회에서는 영화음악이나 서양관현악에 국악이 가미된 작품들로 좀더 친숙한 음악을 선택했다. 그와 더불어 단순히 우물안 개구리가 아니라 준전문가라 할 수 있을 만큼 고기능을 선보이겠다고 한다.
앞으로도 안동국악단은 판소리부와 민요부, 외부초청에 의지하고 있는 아쟁과 해금반까지 꾸릴 욕심을 가지고 있다. 이제 그들의 출현으로 안동국악판은 좀더 풍성해질 것이라 믿어본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시민들이 국악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 많은 공연을 보여줄 것이다.
"안동사람들이 모든걸 직접 연주하면 좋잖아요. 외부에서 불러와서 하는 일회성 공연이 시민들이나 우리가 원하는 건 아니거든요."
아직은 하나씩 쌓아가고 배워가고 있는 안동국악단, 순탄하게 이어져 온 것만은 아니다. 안동국악단으로 하나가 되면서 회원들과 이리저리 앞서서 다리품을 팔았을 두 대표들의 노고도 만만치 않았을 것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어떤이들은 공연한 자격지심이다 하겠지만 특히 둘 다 젊은 여성이라는 점이 안동의 문화판에서 그리 장점이 되지는 않았을 터이다. 아무런 지원비없이 회원들의 회비로 공연준비를 해야 하고, 스폰서를 구하러 다녀야 하고, 아직까지 나이와 성별로 실력을 가늠해버리는 선입견과도 싸워야한다. 그래서인지 차라리 나이가 많아 보이는 게 일하기엔 더 낫다고 털어놓는 그 말이 끝끝내 짠하게 남는다.
그 외에도 회원 40여명이 다 모이려면 시간을 정하는것도 만만치 않고, 연습할 장소도 없어서 예총의 도움을 받아 문천초등학교를 활용하기도 했다. 이젠 해결되었지만 회원들간에 말못할 트러블도 있었던 모양이다.
"관현악단이 하나 있었으면 하고 시작했는데 이젠 너무 커져버려서 힘든면이 많죠. 사람들은 사람만 있으면 되는 줄 아는데 관현악은 소품도 많이 필요하고, 서로의 악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까 악기구입에도 뭐가 필요하냐고 그러기도 하고, 내실은 없는데 소문만 많이 나가지고…거의가 아마츄어들이니까 그만두는 회원들도 있을테고, 걱정이 되는 부분이 많지요. 그런데도 꾸준히 나오는 걸 보면 한번 하면 끝까지 하는 그런 근성들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지만 책임감이 그럴 수 없게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들을 이제 안동국악단안에서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관객들로부터 받았던 성원을 그들은 잊지 않고 있다. 아니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안동에서 최초의 국악관현악단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신들의 어깨에 놓인 책임감을 안다. 그들에게 그것이 행운이 될른지, 짐이 될른지, 그건 이제부터 그들의 몫이다. 그러나 어느덧 최고에 도전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건 순전히 나와 우리의 행운이 아닐까.<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