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에 울고, 분필에 울고, 눈물에 울고(글/노영옥)

'울고 세 번에, 크게 하하'. 이 영화에 대한 나의 감흥을 한 줄로 줄이면 이렇다. 전에 비하면 한 편의 영화에 대한 감동의 유효기간이 턱없이 짧아졌지만 책상서랍을 열어보고는 그래도 모처럼의 따스한 감동을 얻었기에, 이렇다 저렇다 영화에 대해 평할 주제는 못되는 줄 알면서도 다만 106분간의 선한 매료에 대한 예의로서 몇 줄 글이라도 남겨두고픈 충동에 이렇게 두서없는 글길로 나섰다.


흑판에 그어지는 질나쁜 분필의 소름돋는 삑사리 마저도 리얼하게 완벽한(?) 깡촌 학교. 그 시골학교의 유일한 교사 가오선생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 달 간 학교를 비우게 되면서 이 공백을 메꾸기 위해 아이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이제 막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무지와 가난의 소녀 웨이(웨이민치)가 부임해 온다. 웨이는 정작 가르치는 일보다도 가오와 약속한-가오가 돌아올 때까지 아이들이 하나라도 안 떠나고 모두 있게 되면 받기로 한 50전의 급여를 고스란히 받기 위해 떠나는 아이들을 붙잡기에 더 열심이고, 그런 웨이를 통해 '열 세 살 소녀 선생의 독특한 제자사랑'은 시작된다. 달리기에 소질을 보인 학생 하나가 도시의 학교로 스카웃돼 가고, 이어 장휘거란 지독한 개구장이가 '절대빈곤'의 가정 형편 탓에 도시로 돈을 벌러 떠난 뒤 그를 찾아오기로 결정하면서 본격적인 '선생수업'은 흥미로움을 더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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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유일한 수단이 한 권의 교과서와 하루에 한 개씩 소요되는 분필뿐인 찌든 가난 속에서 벌써 몇 개월째 급여도 받지 못한채로, 가난한 시골학교 아이들의 희망을 위해 전에 받은 월급 전부를 털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필을 사는 데 쓰는 가오. 투박하기 그지없지만, 가진 것 없는 아이들을 대하는 애정 하나만큼은 확실한, 그래서 지긋한 연륜을 만나는 소박한 즐거움 앞에 나는 잠시 숙연해졌다.
가오는 가고 웨이는 남았다. 장휘거를 찾아오고자 도시로 갈 차비를 마련키 위해 벽돌공장에서 전체 학생이 노동을 한 대가로 무대포가 상책인양 도시로 상경하는 웨이선생. 몰래 올라 탄 버스에서 쫓겨나 한 나절을 걸어서 도시에 이르고, 며칠을 전전하다 역의 노숙자로부터 방송국을 찾아가보란 말에 최후의 수단, 오로지 만만디 근성을 무기로 내리 사흘째 방송국 문앞에서 지나가는 이를 붙잡고 "당신이 국장님이신가요?". 그 가상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드디어 국장의 도움으로 '웨이선생의 제자찾기'는 중앙방송을 타게 된다. 생소한 환경에 주저거리는 웨이에게 착해보이는 아나운서는 TV 카메라를 장휘거라 생각하고 말해보라 한다. 마침내 웨이선생의 얼었던 입은 열리고, "휘거야, 어딨니? 보고 싶다. 이제 같이 시골학교로 가자.… 너무, 힘들어, 힘들다,…" 그리고 맑은 눈에 굵은 눈물 두 줄기-이 영화에서 울음으로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그다지도 독했던 만만디 근성이 눈물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순간이다(웨이의 인생에 있어 가장 짠 눈물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이는 이런 근성을 두고 '강하고 강하되 딱딱한 강함이 아니라, 끈질긴 강함'이란 말로 대신하기도 했다. 공감한다. 가난 앞에 절실할 수밖에 없는 사랑이란 어떤 모습일까. '도저히 긍정적일 수 없는 상황에서 긍정을 발휘하는 것',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방송 덕분에 드디어 시골학교로 금의환양하는 차 안에서의 짧은 인터뷰, 도시에서 있었던 일 중에서 무엇이 제일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에 대한 장휘거의 답변은 또 한 번 나를 울린다. "밥 구경하던 거…, 잊지 못할 거예요"(미어지는 가슴을 어찌하리오, 한 잔 하고 싶어 죽겠는 마음에 주머닐 까뒤집으니 캬, 수중에 단 돈 백 냥이 없다. 자판기 앞에서 그저 아는 사람 지나기만을 기다리는 한 고학생이었던 나의 기약없는 서성거림을 연상한 탓도 있다). 지독한 가난은 불편함이 아니다. 그야말로 힘겨움이다. 눈물이다.
도시로부터 온 구호물품들 중 색색가지의 분필을 보게 되었을 때, 그들이 딱 한 번씩만 칠판에 써 보는 글자들. 그리고 휘거가 쓴 '장웨이 선생'이란 글씨. 기뻐하는 그들의 모습. 땟국물이 찔찔 흐르는 전쟁 뒤의 구호물자로 받은 옷들을 걸치고서도 정겹기 그지없는 촌스러운 아이들. 누가 이 아이들을 두고 선택된 배우들이라 하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잘나가는 헐리우드 스타들보다도 훨씬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줬다. 마음을 보여준 까닭이다.
여러분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함박 웃음이 우리의 기쁨으로 확대되는 계기는 바로 이런 것이다. 어디의 누군가를 향한 것이든 "사랑은 감정이나 느낌이 아닌 의지(김수환 추기경)"란 말. 그렇다, 사랑은 철저한 의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난으로 점철된 내 아버지의 모진 한 생을 이야기했을 때 진심으로  존경하는 한 은사님께서 "그들은 숨쉬기도 힘겨운 시대를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변명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냐, 니 아버지도 그런 사람들중의 한 분이 아니겠나."라고 하신 말씀을 나는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임을 안다. 힘겨운 시대를 산 것만으로도 그들은 자기 할 몫을 다한 것이다. 살아보니 그렇다, 사는것 보다 힘든 일이 없다. 이 영화를 두고 한없는 긍정이고 싶은 필자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겠는지.
자, 그럼 이렇게 울고도 끝내 필자가 웃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믿음에 대한 실망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를 두고 부산 국제 영화제 폐막작이었느니, 99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느니 하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아픔으로써 웃음을 이야기하는데 참으로 탁월한 영화였기에 나는 박수를 보낸다.
난 영화이론이나 비판적 보기 쪽으로는 잘 모른다. 나대로 느낄뿐이고 아낄뿐인 그저 금전적 형편이 닿는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성실한 문화수혜자일 따름이다. 다만 장예모란 이름을 들으면 공리라는 여배우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소설 {홍고량}을 개작한 [붉은 수수밭](Red Sorghum, 1987)이란 영화로써 그가 데뷔와 출세를 겸했다는 사실과, 그의 영화에 있어서는 강렬한 테마 음악이 압권이라는 정도-[책상서랍…]에서도 담담한 서술 속에 간간이 들려오는 사운드 트렉은 감동의 깊이를 고조시키는데 한 몫을 한다.-다. 그의 영화는 "작품을 만드는 것은 결국 그 사회 전체의 일반적인 호흡이고 포용 능력이다"는 말에 주목하게 해 주기에 이 영화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가 느껴졌고, 더불어 나의 감성에 의지한 선택에 대해 탁월한 자부심을 갖게 해 주었다는데 나는 감사할 따름이다.
누구는 장예모 감독의 이번 영화를 두고 '장예모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강한섭' 또 누구는 '갱년기의 장예모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동화-박평식'라고도 했다. 이 모두는 그 역시 그 감독답다는 장예모의 역량을 표현한 말일 것이다.
 추워진다. 마음까지 시려지는 이들이 적지 않으리라. 아끼는 사람이랑 가슴 따뜻해지는 영화 한 편 보고 영화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것도 좋겠지. 어디가나 문제는 사람이다. 사람이 없다는 거. 서로를 이해해줄 줄 아는 배려의 자세가 갖추어진 사람이 없다는 거. 영화는 말한다. 초롱한 눈망울에 어린 천진난만함밖에 없는 절대빈곤 속에서도 인간이 인간다웁게 살아가기 위한 성실한 노력을 보여주는 사람에 대해서.<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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