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사이버 공간에서도 ′안동′지를 만나고 싶다(글/김익동)1999년 12월 31일은 월말에다 또 연말이며 그것도 모자라 세기말이고 천년의 마지막까지 보태는 날이다.
따지고 보면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일 뿐인, 그저 시간의 연속에 불과하지만 의미를 갖다 붙여 한바탕 큰 잔치를 연다. 하긴 잔치를 할만도 하다. 돌이켜 보면 지난 1년, 아니 100년, 1000년간 개인도 국가도 또 세계사적으로도 용케 살아 남았으니 말이다.
기왕지사 의미를 붙인 김에 한발 나아가 앞으로 새로운 천년동안 살아날 묘안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혹여 어쩌다 운이 좋아 오늘, 새 천년을 맞고 있다고 평가절하 할 수 도 있지만 분명 우리가 오늘을 맞고 있는데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계량화되지 않는 저력이 있다.
나는 그 저력을 문화라고 말하고 싶다. 문화라는 게 별건가. 나는 문화란 주어진 공간에서 한 시대를 같이 사는 생명체들의 생각, 느낌, 행동을 모두 합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는 문화의 경쟁력에 따라 국가간, 생명체간에 지배, 피지배구조가 결판난다고들 하니 나라마다 문화개방에 따른 손익을 따지는 게 당연지사이며 나라 안의 지역간에도 문화경쟁력 선점 싸움이 치열한 형편이다.
안동사람들은 "문화 하면 안동 아니냐"며 태평한 웃음을 내 보이는데 이는 알고 보면 허풍에 지나지 않는다. 안동에는 문화재만 있고 문화는 없다는 혹평이 어쩌면 더 맞을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문화의 경쟁력이니,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니" 하는 껍데기 구호보다는 우리 문화를 청정하게 유지하는 최소한의 자위自衛)행위를 하는 순수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문화모임 사랑방 사람들과 그들의 정성과 땀방울인 {안동}지이다. 자본의 윤택함과 세련으로 포장된 외래문화에 길들여질 미래의 안동사람들을 걱정하는 사람. 그동안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주변에 넘쳐나는 외래문화를 못본체 등을 돌린 시간이 너무 길었다고 반성하는 사람. 그리고 그 반성에는 우리 문화의 주체성과 잠재력을 과소평가 했을 수도 있다고 반성까지 하는 사람. 그들은 새 천년의 길목에서 거칠지만 힘이 분출하는, 그만큼 역동적인 우리의 문화능력을 되새기는 안동문화의 문지기역을 자청하고 있다.
사랑방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은 세련된 포장이 없음이 그 첫 번째이고 상업성이 없는 순수함이 그 두 번째이다. 그리고 {안동}지가 고마운 것은 오늘 안동에 살고 있는 내 이웃의 치열한 삶을 이야기하고 있어서가 그 첫 번째이고 어려운 살림에도 나와주는 것이 두 번째이다.
지금도 내가 신기해하는 {안동}지는 과거시점과 현재시점을 병행하면서도 구태하지도 삭막하지도 않은 편집의 묘를 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부탁하건데 개혁이랍시고, 변화랍시고 깡그리 뜯어 고치지 말고 새 천년에도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길 빈다.
내친김에 문화인프라를 보강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20세기의 주제는 감동이 있지만 20세기의 테크놀러지는 감각이 없다는 것이다. 한정된 부수를 극복하는 차원에서도 21세기의 테크놀러지를 도입해 줄 것을 건의하고 싶다. 2000년에는 사이버 공간에서도 안동의 자랑 사랑방 {안동}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옛날의 사랑방이 동네 어른, 아이, 부녀자, 그리고 뜨네기들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문화교실이요, 문화마당이었듯이 21세기의 사이버 사랑방에서도 어른, 아이, 부녀자, 그리고 뜨네기들을 만나고 싶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