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과 물이 만나 꽃으로 피어난 땅, 하회(河回)(글/이완규)
음양(陰陽)을 넘어 태극(太極)으로
하회는 태극 모양의 땅이며 태극의 땅이다. 태극은 우리나라 국기에 나오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에게 친숙한 개념이다. 하지만 태극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태극은 몹시 거대한 것에서부터 아주 미세한 것에 이르기까지 적용되는 폭넓은 개념이다. 개념이란 개개의 사물들에서 공통적인 속성을 추출하여 추상화한 것이므로 폭넓지 않은 개념은 없을 것이다. 엄밀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 개념이지만 이를 정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서로 의사를 소통할 수가 없다. 인간의 지식은 구분과 통합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구분하지 않으면 대상의 차이를 이해할 수 없으며 통합 하지 못하면 지리멸렬하여 체계를 세울 수가 없다. 지식의 대부분은 개념으로 이루어지며 개념은 구분과 통합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암호다. 우리가 하는 일체의 공부는 바로 이 개념을 해독하고 창조하는 것이다. 태극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이미지의 바다에 푹 잠기게 된다. 태극의 상징(象徵, Symbol)은 한마디로 경이롭다. 태극은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 중에서도 가히 백미(白眉)라고 이를 만하다. 그것은 하늘과 땅이며 우리가 보는 일체만물을 압축하여 형상화한 기호이자 동시에 의미다. 태극은 세상을 두 개로 구분하여 이해한 것이며 그런 방법을 이분법이라 한다. 마치 흑과 백의 두 가지 색으로만 세상을 그리는 방법과 같다. 아주 손쉽고, 세계를 간단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세상은 엄청나게 복잡하지만 두 개로 구분하여 이해해도 별 무리가 없다. 낮과 밤, 밝음과 어두움, 하늘과 땅, 남자와 여자, 선과 악 등등. 이렇게 세계를 이해하는 것을 '음양'이라 부른다. 음양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이며 완전한 하나의 인식 패턴이다. 음양의 의미를 기호로 상징한 것이 ◐다. 그러나 원은 음양을 함께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그리기도 힘들고 또 음양을 분리해서 표현할 수 없는 약점이 있다. 그래서 만든 다른 기호 - - (陰儀) ━ (陽儀)으로 음양을 표시했다. 이 둘을 합하여 양의(兩儀)라고 한다. 이 기호를 또 효(爻)라고도 하는데 효를 중첩하여 음양의 조화를 나타내고 나아가 천지만물의 상태와 변화를 표현한 것이 역(易)의 괘상(卦象)이다. 만물은 구분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허나 두 가지로만 구분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하여 복잡한 사물의 변화와 상태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꾸만 가지를 치게 된다. 그 첫 번째 가지가 두 개의 효를 아래위로 붙여서 만든 4가지 형상, 즉 사상(四象; 태양, 태음, 소양, 소음)이며 이것은 두 개로 변화할 수 있는 최대치다. 거기에 다시 한 개의 효를 더하여 세 개로 표현한 것이 소성괘(小成卦 )인데 여기서 팔괘(八卦; 건, 태, 리, 진, 손, 감, 간, 곤괘)가 이루어진다. 태극기에는 팔괘 중 네 개가 있는데 그것들은 각기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팔괘에서 더 나아가 팔괘를 중첩한 6개의 효, 즉 대성괘(大成卦)로 세계와 인간사를 이해하고 또 그 변화의 추이를 미리 알고자 노력한 것이 {주역}이다. 가지를 쳐서 복잡하게 되면 사물을 자세히 설명하는 이점은 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포용성과 함축성은 떨어지게 되어 근본에서 벗어나기 십상이다. {주역}의 64개 괘상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변화가 너무 많아 그 의미를 해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주역}은 그 속에 세상의 모든 진리가 담겨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지나치게 신비화되어 온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역의 가르침은 간단하다. 그것은 천지(天地)의 진실한 모습은 변화 속의 조화(調和)라는 도가의 자연철학을 바탕으로 하여 천지의 성실함을 인간이 본받아야 할 궁극적 목표로 삼은 유가의 윤리사상이 결합된 것이다. 역의 원래 뜻을 살리면서 난해함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 태극이다. 태극의 형상[]은 이분법을 초월한 이분법이며, 간단한 형상에 역의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은 불멸의 창작이다. 자연의 모습에 비록 서로 대립되고 모순되는 것이 섞여 있다 하더라도 그 섞임은 상대를 침해하거나 상대와 투쟁하는 것이 아니다. 물과 불은 서로 대립하여 투쟁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관계가 아니다.[水火不相射] 조화로운 전체를 구성하는 일부분이며 전부이다. 조화는 항상 그러하며 또한 동시에 그러하다. 역은 그 대대(待對)의 조화를 가르친다. 음양은 분리되지 않으며 언제 어느 곳에서나 동시에 작동되는 역동적 움직임일 뿐이다. 역은, 천지의 한 부분이면서도 서로 반목하는 인간에게 역동적 조화의 삶을 가르친다. 군자는 조화로운 천지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변화의 중간을 잡아 지키고[時中, 允執厥中], 천지가 만물을 낳아 기르는 바른 자리에 서야한다[得正, 立天下之正位]는 '중정의 길[中正之道]'을 가르친다. 태극은 그 가르침을 형상화한 것이다. 대립적으로만 보이는 음양[◐]의 양끝을 당기고 밀어서 음양이 함께 하여 떨어지지 않음을 보이고, 자리에 따라 음양의 크기가 달라지게 함으로써 음양소장(陰陽消長)의 변화와 추이(推移)가 절묘하게 드러나게 하였다. 태극은 음양의 단순 명료함에서 역의 복잡한 변화를 수용하고 음양의 평이함 속에 천지의 조화를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보면 볼수록 신묘하기 짝이 없다. 우리 민족은 이 천지의 형상에 사람을 추가하여 삼재(三才), 즉 '삼태극'의 형상과 의미를 완성했다. 더할 수 없이 노련하신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음을 지고 양을 안아 혼연(渾然)히 아우른 기운으로 조화를 이룬다.[萬物負陰而抱陽, 氣以爲和]" -{노자} [42장]-
선사(禪師)들께서도 누누이 말씀하셨다. "이제 산이 곧 산[山是山]임을 알았으니, 다시 저자에 들어 두 손 드리우네.[入廛垂手]"
하회의 별칭:산태극수태극(山太極水太極) <하회지도>에서 뚜렷이 보이듯이 하회(河回)는 글자 그대로 '물이 도는 땅'이며 산과 물이 태극의 모양을 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하회를 아는 사람들은 '산태극수태극'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태극이 주는 좋은 이미지가 땅을 보는 데 투영된 것으로 이런 방식을 물형론 또는 형국론이라고 누누이 얘기했다. 하회 땅을 형용하는 여러 가지 형국 용어 중에서 먼저 '산수태극'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의미를 살펴보자. 태극은 하늘과 땅이다. 태극은 거대우주론, 즉 매크로코스몰로지다. 이 거대한 패턴은 미세한 것으로 수렴되며 미세한 패턴은 다시 거대한 것으로 발산된다. 그러므로 매크로한 곳에 미크로함이 있고 동시에 미크로함 속에 매크로함이 있어서 이 둘은 분리되거나 모순되지 않는 변화와 조화(調和)의 두 축이다. 그 축은 또한 어두움[달]과 밝음[해]이다. 이러한 천지일월이 가지는 조화(造化)의 실체는 무엇인가? 하늘과 땅이 가지고 있는 무수한 공능(功能)과 효용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창조의 힘'이다. 천지는 끊임없이 생생(生生)한다. 만물을 낳아 기르는 것이다. 해와 달의 조화는 궁극적으로 만물을 낳아 기르는 것에서 성취된다. 또한 만물은 각기 '천지가 만물을 낳아 기르는 마음[天地生物之心]'을 본받고 있다. 그러므로 만물 속에는 천지가 담겨있으며 천지는 만물 그 자체다. 하나는 곧 전부이며 전부는 곧 하나[一卽一切, 一切卽一]다. 이것이 태극의 원리다. 태극은 음양이다. 산은 음이고 물은 양이다. 산은 움직이지 않아 정(靜)하므로 음이며 물은 동(動)하므로 양이다. 음과 양이 만나지 않으면 생성[창조]의 덕을 이룰 수 없다. 산과 물이 만나지 못하는 곳에는 생기(生氣)가 없으니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다. 그렇지만 산과 물이 만나기만 하면 저절로 좋은 생기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정답게 만나야 한다. 아주 정답게 만나는 것이 산수유정(山水有情)이다. 산과 물이 정답게 만나서 만물을 건강하게 낳고 기르는 곳, 그곳이 이른바 명당이다. 옛 사람들이 생기가 충만한 땅을 찾고, 그렇지 못한 땅을 고치려고 한 노력이 모여서 이루어진 생활의 지혜가 풍수다. 태극은 남자와 여자다. 남자는 하늘[乾]이고 여자는 땅[坤]이니 남자는 씩씩하여 강(剛)하며 여자는 부드러워 유(柔)하다는 {역}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유사 이래로 남자였다. 그들은 엉덩이의 뿔이나 키운 못돼먹은 무리이며, {역}이 성립되기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역}을 잘못된 지배폭력구조의 이데올로기로 비틀어서 자신들을 합리화한 곤란한 존재다. 그들에 의해 남성과 여성의 관계와 삶의 양태는 심각하게 비뚤어졌다. 인간이 만든 사회의 결정적인 문제점의 대부분은 그 심각한 잘못을 깨닫지 못한 남자가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파시스트들은 아직까지도 자신이 바로 그 "매크로/미크로 파시스트"라는 분명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모름지기 이 땅의 남자는 진중권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땅의 가르침으로 각골명심하여 깊이 반성할 것이며, 여자는 반드시 그를 하늘의 계시로 영접하고 경배하여 더러운 파시스트들을 소리 높여 꾸짖을지어다! {역}을 보고 나는 말한다. "남자인 하늘이 위에 있고 여자인 땅이 아래에 있는 모습의 비괘(否卦)를 뽑으면 하늘과 땅이 만나지 못하여 만물을 낳고 기르는 길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형상으로 네가 사는 세상이 참으로 어지러움을 나타내니 모름지기 정신차려서 하려고 계획한 일을 중지할 것이며, 여자가 위에 있고 남자가 아래에 있는 모습의 태괘(泰卦)를 만나면 만사가 네 뜻대로 되리라." 땅이 자신의 기운을 하늘로 올리고[雲行] 하늘이 자신의 기운을 땅으로 내려서[雨施] 천지가 서로 자리를 바꾸어[天地交] 만날 때[泰] 생명을 낳으니[品物流行] 남녀가 그러하고 만물도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말한다. "불같은 남자가 위에 있고 물 같은 여자가 위에 있는 괘[未濟]를 뽑았다면 네 일은 볼장 다 본 것이며, 물이 위에 있고 불이 아래에 있는 괘[旣濟]를 뽑았다면 너는 초생달처럼 희망차리라." 태극은 음양[남녀]이 조화롭게 어울려 새로운 생명을 낳고 기르는 모습[天地交泰, 雲雨之情]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땅과 물이 태극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곳에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기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회처럼 산과 물이 휘감아 도는 곳을 명당이라 여기고, 더 나아가 많이 감아 돌면 돌수록 더욱 좋은 땅일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물이 감아 돌아서 태극의 형상을 하고 있는 땅들은 대부분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못된다. 하회처럼 물이 감아 돌아 길지가 되는 곳은 드물다. 하회는 특별한 땅이므로 우선 넓은 관점에서 하회를 조망해 보고 하회의 독특한 물길은 뒤에 살펴보기로 하자.
인걸지령(人傑地靈) 당나라 태원 사람 왕발(王勃, 650∼679)은 초당사걸(初唐四傑)의 하나로 이름이 높다. 왕발이 홍주(洪州)의 태수(太守) 염백서(閻伯嶼)가 등왕각( 王閣)을 중수한 뒤에 자기 사위의 문재(文才)를 자랑하기 위하여 짜고 치는 고스톱 판에 스무 살 어린 나이로 철딱서니 없이(?) 뛰어들어 읊은 시가 절창(絶唱) {등왕각시}이며 그 [서문]에 '인걸지령'이 있다. "정채(精彩)로운 홍주는 하늘의 보배이니 그 옛날 용천검광(龍泉劍光)이 견우와 북두성 사이를 가른 곳이며, 인물은 걸출하고 대지는 신령하여 태수 진번이 특별한 자리로 서유를 맞이하던 곳이다[物華天寶 龍光射牛斗之墟, '人傑地靈' 徐孺下陳蕃之榻]."
약관의 왕발이 읊은 이 노래는 '진짜보배[眞寶]'가 되어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쟁쟁하다. 홍주의 걸출한 인물들은 그 땅의 신령스러운 정기를 받아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인걸지령사상'은 오늘날까지 광범위한 사람들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다. 자기가 사는 땅이 신령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무런 해도 없는 좋은 생각이며 정신 건강에도 아주 좋다. 훌륭한 인물은 뛰어난 땅의 정기를 받아서 태어난다는 생각은 인류의 보편적이고 오리지널한 사유 가운데 하나다. 이 때의 땅은 대개 산을 의미한다. {시경}도 그 사실을 노래하고 있다. 崧高維嶽 駿極于天 높고 높은 저 산이여! 하늘까지 닿았도다. 維嶽降神 生甫及申 저 산이 신령함을 내리시어 보와 신을 낳으시도다. - [大雅·蕩] '숭고(崧高)' 1章 四句.
멀리 갈 것 없다. {춘향가} 중 한 대목 [산세를 들을게 네 들어라]를 들어보자.
"경상도 산세는 산이 웅장하기로 사람이 나면 정직허고 전라도 산세는 산이 촉허기로 사람이 나면 재주 있고 충청도 산세는 산이 순순허기로 사람이 나면 인정 있고……" 산은 기(氣)의 생산지이자 공급처다. 산소는 산에 있는 나무가 만들어내는 것이고 물은 산이 갈무리하고 정화하여 필요에 따라 흘려보내는 것이다. 산의 원기(元氣)는 맥을 따라 퍼져나가 대지의 구석구석을 적시어 만물을 낳고 기른다. 도대체 산이 없으면 사람이 어디에 기대고 산단 말인가? 그러므로 산의 신령스러움을 인식하고 산의 기운과 사랑을 받고자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고도 자연적인 현상이다. 우리 나라 원기의 공급처이자 우리에게 신령함을 내리는 산은 어느 산인가? 우리는 누구나 저절로 알고 있다. 그 산이 바로 '백두산'임을!
백두대간(白頭大幹) 백두산은 자신의 신령한 기를 한반도 삼천리 금수강산에 골고루 공급한다. 그 공급로의 가장 큰 줄기[山經]가 대간이며 작은 줄기가 정맥(正脈)이다. 한반도의 지세는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서 끝나는 백두대간을 척추로 하여 장백정간(長白正幹) 하나와 13개 정맥의 흐름에 따라서 결정된다. 이 1대간, 1정간, 13정맥이 한반도의 뼈대다. 백두산(白頭山, 2,744m)에서 시작되는 대간은 동해를 바라보고 달리다가 삼수·갑산으로 유명한 함경남도 갑산군의 두류산(頭流山, 2,309m)에서 방향을 틀고 동해안을 따라 마치 국토의 척추처럼 힘차게 뻗어 내린다. 이어서 금강산(金剛山, 1,638m)을 뒤로하고 태백산(太白山, 1,567m)에 다다라 반도의 깊숙한 내륙으로 몸을 돌린다. 대간이 기를 모아서 몸을 트는 태백산 부근에는 1,000m가 넘는 산들이 우람하게 서 있다. 일제 강점 35년이 남긴 피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우리 땅에 대한 심각한 왜곡도 그 중 하나다. 일제는 우리 조상들이 우리 땅을 이해하고 파악하던 산줄기와 물의 흐름을 완전히 왜곡해 놓았다. 지금까지도 그 잘못을 시정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니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고 있다. 지금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산맥'은 땅속의 지질을 근거로 분류한 것이지만 그도 대부분 엉터리일 뿐이며 실제로 우리가 보는 산의 흐름과는 무관하다. 실제 우리나라 산의 흐름은 {산경표(山經表)}에 있다. 의사이자 전문 산악인인 조석필은 93년 {산경표를 위하여}를 발간하고 이어서 97년 {태백산맥은 없다}를 출간하여 그 사실을 정확하게 밝혔으니 읽어보기를 권한다. 앞의 <산경도>는 '고산자 김정호의 환생'이라고 일컬어지는 {대동여지도} 연구가 이우형(李祐炯)이 처음으로 제작했다. <산경도>와 아직도 학교 지리 시간에 배우는 엉터리 <산맥도>를 비교해 보면, 잘못된 사실이 한 번 자리를 잡아 기득권 세력의 밥그릇이 될 때 그 폐해가 얼마나 깊고 오래 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지형이 산맥도와 같다면 우리 나라 강들은 땅속을 흘러 용출한 뒤 다시 본류와 합류하거나 산을 넘어 흐르는 희한한 물이 되어야 한다. 산맥개념은 한 마디로 가소롭기 짝이 없는 것이다. 내륙으로 몸을 돌린 대간은 소백산(小白山, 1,421m)을 거쳐 죽령(竹嶺, 689m), 주흘산(主屹山, 1,106m), 이화령(梨花嶺, 548m)을 지나 속리산(俗離山, 1,508m)으로 뻗어내려 한강과 낙동강을 남북으로 분수(分水)한다. 백두대간의 절묘함은 이렇듯이 꿈틀거리며 나아가는 데에 있다. 살아있는 용은 힘차게 요동하는 법이다. 산행을 즐기는 사람이라도 대간의 기본 구도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자기가 오르는 산의 계보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올라가기만 할 뿐이다. 백두대간의 흐름을 눈으로 직접 보기는 쉽지 않다. 안동에서 5번 국도를 따라 영주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북쪽 하늘에 솟은 소백연봉을 볼 수 있다. 영주 시내를 통과하여 순흥(順興)으로 가는 915번 지방도의 몇 곳과 단산(丹山), 그리고 봉화 못 미쳐 부석사로 가는 999번 지방도에서 하늘에 닿을듯이 흐르는 백두대간의 위용을 조금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곳에서 언뜻 보이는 대간의 장대한 기상을 일찌기 우리 선인들은 '창천수성(漲天水星)'이라 불렀다. 속리산에서 다시 남쪽으로 머리를 돌린 대간은 추풍령(秋風嶺, 221m), 황학산(黃鶴山, 1,111m), 삼도봉(三道峰, 1,177m)을 지나 덕유산(德裕山, 1,614m)을 일으킨 뒤, 육십령(六十嶺, 734m), 영취산(靈鷲山, 510m)까지 금강의 동쪽 분수산맥을 형성하고 끝으로 섬진강의 동쪽 분수령인 지리산(智異山, 1,915m) 영봉의 천왕(天王)이 되어 이 나라를 수호한다. 우리 나라의 모든 산줄기는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며 어떤 산이든 전부 백두산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하면 우리 나라의 모든 산들은 백두산의 정기를 받고 있다. 이것은 희망 사항이 아니다. 실제 상황이 그렇다. 백두산과 백두대간으로 우리 땅을 이해하던 조상의 슬기가 바로 우리의 지리학인 풍수다. 내 비록 견문이 부족하지만 세계의 그 어떤 나라도 우리 땅처럼 신묘하지 않다고 확신한다. 풍수에 눈을 뜬 뒤 보이는 산과 물은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풍수는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가없는 사랑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진정한 풍수사(風水師) 최창조는 언제나 땅을 '어머니'라 부른다. <산경도> 1번부터 13번까지의 정맥 이름은 청북, 청남, 해서, 임진북예성남, 한북, 한남, 금북, 한남금북, 금남, 호남, 금남호남, 낙남, 낙동정맥이다.
낙동강 백두대간은 우리 나라의 울타리다. 강의 울타리이며 생활과 문화의 울타리다. 대간과 정맥이 강의 분수계(分水界)가 되고 그 안쪽이 유역면적이 되며 그 사이에 우리나라의 10대강이 다 흐르고 있다. 우리나라 강 중 유역면적이나 길이로 보더라도 가장 큰 강은 압록강(鴨綠江, 790km)이다. 낙동강(洛東江, 525km)은 두 번째로 긴 강이다. 유역면적은 한강에 비해 조금 적지만 남한의 ¼, 영남의 ¾에 해당되는 큰 강이다. 낙동강을 이루는 울타리는 대간과 낙동정맥 및 낙남정맥이다. <산경도>의 점선이 강이므로 유역과 흐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 지형을 백두대간으로 이해하는데서 오는 장점이자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옳다는 증거가 된다. 백두대간이 태백산에서 내륙으로 몸을 틀면서 동해를 따라 새로운 산줄기를 만든다. 이 산줄기가 낙동정맥(洛東正脈)으로 태백산 줄기인 구봉산(九峰山)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태백시의 백병산(白屛山, 1,259 m), 청송의 주왕산(周王山, 907m), 경주의 단석산(斷石山, 829m), 언양의 가지산(加智山, 1,240m), 울산의 취서산(鷲棲山, 1,059m), 부산의 금정산(金井山, 802m)을 거쳐 송도해수욕장 옆, 다대포의 몰운대(沒雲臺)에서 끝나는데 그 길이는 약 370km다. 낙남정맥(洛南正脈)은 지리산의 영신봉(靈神峰, 1,652m)에서 시작하여 하동의 옥녀산(玉女山, 614m), 함안의 여항산(餘航山, 744m), 창원의 구룡산(九龍山, 434m), 불모산(佛母山, 694m)을 지나서 김해시의 분성산(盆城山, 360m)에서 끝나는 약 200km의 산줄기다. '낙동강 칠백리'라고 할 때, 그것은 안동에서 부산까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안동에서 발원지인 황지(黃池)까지가 육백리이므로 낙동강의 총 길이는 천삼백리가 된다. 낙동강의 특징 중 눈여겨 볼 것은 강의 경사도가 극히 완만하여 급류나 폭포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하구인 부산과 상류인 안동의 하상고도(河床高度)가 비슷하여 과거에는 안동까지 배가 올라올 수 있어 영남내륙수로교통의 동맥이 되었다. 유로(流路)의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에 강의 흐름이 느리고 굴곡이 심하여 뱀이 가는 것 같은 사행천(蛇行川)이 되었으며 강의 전지역에서 하회와 비슷한 태극 모양의 땅이 많이 생겼다.
화산(花山)과 부용대(芙蓉臺) 99년초 민음사에서 발간한 서수용의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서}는 하회에 관한 종합보고서라 부를 만하다. 그러나 [마을의 내력]으로 시작하는 책의 첫머리에 "동쪽으로는 태백산맥인 해발 271m의 화산이 평지에서 솟아있고 남쪽에는 일월산맥인 남산(南山)과 서쪽으로는 화산 너머로 역시 일월산맥의 지맥인 원지산(遠志山)이 나지막하게 솟아 있으며 그 뒤로는 마늘봉[蒜峰]이 드리워져 있다."라고 서술한 것에는 오류가 있다. 하회의 주산인 화산(花山, 321m)은 흔히 소백산(小白山, 1,439m)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그러나 {대동여지도}를 보면 그렇지 않다. {대동여지도}는 가로가 4m, 세로가 8m에 이르는 거대한 지도다. {대동여지도}와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 1804∼1866)에 대해서는 {태백산맥은 없다}에 자세한 안내가 있다. 현재 우리가 쓰는 일반적인 지도의 산맥은 엉터리다. 우리나라의 산줄기에 대하여는 {산경표}와 {대동여지도}가 정확하다. 그러므로 나는 {산경표}와 {대동여지도}에 근거하여 화산의 내룡을 서술하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산경표}와 {대동여지도}에 있는 산 이름이 지금과는 많이 다른데 현재 부르는 산명으로 일일이 옮기기에는 필자의 역량이 부족하다. 따라서 아는 산은 현재의 이름으로 적고 모르는 산은 그냥 {산경표}의 표기를 따르겠다. 우선 하회의 주산인 화산은 백두대간의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 있는 문수산(文殊山, 1,206m)에서 시작되는데 문수산에는 유명한 취서사(鷲棲寺)가 있다. 사람들은 이 절을 축서사라고도 부른다. 문수산 줄기는 봉화의 동쪽을 지나서 도산의 태자산(太子山)으로 이어진 뒤 안동의 조골산(照骨山, 870m)에 이르는데 이 산이 학가산(鶴駕山)이다. 다시 보문산(普門山, 643m)과 검무산(劍舞山, 331m)을 거쳐 풍산들에서 모습을 감춘 뒤 불끈 마지막 힘을 모아 솟구쳐 놓은 것이 화산이다. 내룡의 이어짐과 상태를 살피는 것을 '간룡법(看龍法)'이라 한다. 간룡은 풍수의 알파요 오메가다. 산줄기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혹 끊어지지는 않았는지를 판별하는 기준은 물길이다. 물길을 보는 것을 '득수법(得水法)'이라 한다. 문수산에서 출발한 하회의 주룡은 풍산들에서 모습을 감추는데 이런 상태의 용을 '은룡(隱龍)'이라 한다. 은룡은 용맥(龍脈)이 끊어졌다고 판단하기 쉽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대다수의 안동 사람들이 화천 너머로 화산을 둘러싸고 있는 남산, 원지산, 부용대를 영양의 일월산(日月山, 1,219m) 줄기라고 이해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일월산은 영양 수비에 있는 낙동정맥의 검마산(劍磨山)에서 갈라져 청량산(淸凉山)과 예안 동쪽의 장갈산(長葛山)을 지나 무협(巫峽)에서 끝나는 산줄기로 낙강의 동쪽과 반변천의 북쪽을 흐른다. 무협은 바로 안동 시내 법흥동에 있는 임청각 맞은편의 절벽이며 낙강과 반변천의 합수(合水) 지역이다. 산은 물을 만나야 그 흐름을 멈추며 당연히 물을 건너지 않는다. 그러므로 낙동강을 마주하고 있는 산들은 그 계보가 완전히 다른 산들이다. 부용대는 영천에 있는 낙동정맥의 모자산(母子山), 즉 지금의 보현산(普賢山, 1,124m)에서 북쪽으로 치달려온 산줄기의 끝이다. 보현산은 동남쪽 청하(淸河) 방면으로 응봉(鷹峰), 남쪽 영천 방면으로 기룡산(騎龍山), 서쪽으로 방립산(放立山)을 갈래하는데 방립산 줄기가 황산(黃山)과 의성을 지나 안동 일직면의 용각산(龍角山)으로 이어진 뒤 하회의 부용대에 이르게 된다. 풍수에서는 산을 용이라 부른다. 우리 조상들이 땅의 신령함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신령한 사람이 그러하듯이 하회와 같이 밝은 터전, 즉 '명기(明基)'는 저 혼자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호위하는 용들이 따라와 혈장(穴場)을 위호(衛護)하게 된다. 주룡인 화산과 함께 하회 혈장을 위호하는 사방의 산들을 보면서 나는 항상 '용행천리지척상봉(龍行千里咫尺相逢)'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화천을 사이에 두고 서로 힘껏 포옹하면서 이마를 맞비비고 있는 하회를 부용대에서 내려다보다가 어떤 때는 주체하기 힘든 질투를 느낀다. 아, 이놈들은 이리도 다정하거늘! {대동여지전도}는 가로 76.4cm, 세로 115.2cm의 지도로 고산자가 {대동여지도}를 판각한 1861년에 완성했다. {대동여지도}를 완성한 뒤 내용을 간략히 하고 크기를 줄인 것인지, 아니면 먼저 {대동여지전도}를 완성한 뒤 내용을 추가하여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대동여지도}의 낙동강 부분을 축소하여 하회의 내룡을 제시하고자 하여도 작게 줄이면 판독이 불가능하다. {대동여지전도}가 비록 소략하다고는 하나 낙동강과 산줄기의 흐름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회의 물길 부용대 위에 앉아서 오랫동안 하회를 내려다보면 여러가지를 알 수 있다. 하회의 유적과 집의 위치, 그 땅에 어린 전설과 인물의 행적을 많이 알면 알수록 부용대에서 하회를 조망하는 맛은 더욱 각별하다. 휘영청 보름달이 뜨는 밤이나 눈발 속으로 잦아드는 하회를 부용대에서 보는 느낌은 무어라 형용할 수가 없다. <하회지도>를 참고삼아 하회를 감아 흐르는 '화천(花川)'의 특별한 물길을 살펴보자. 물이 흐르는 곳은 물의 공격을 받는 공격사면[浸蝕斜面]과 공격사면의 반대쪽에 물이 운반해온 것들이 쌓이는 퇴적사면(堆積斜面)을 가지게 된다. 공격을 받는 곳이 약할 경우에 물은 그 쪽으로 흐르게 되며 반대로 암반처럼 강하다면 침식이 되어 절벽을 이루면서 물길은 반대편을 향하게 된다. 풍수에서는 물이 공격하는 것을 가리켜 '충(衝, )'이라고 표현한다. 물이 충하는 곳은 사람이 거처할 곳이 아니다. 그런 곳은 잠시 머물며 구경하는 자리일 뿐이다. 현장이나 지도에서 물길을 보는 것은 조금도 어려울 것이 없다. 유심히 보지도 않고 깊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스쳐볼 뿐이다. 하회지도의 A, B, C, D, E, F, G, I 부분은 조밀한 등고선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처럼 침식사면의 절벽이다. A는 화산의 등이며 B, C가 병풍을 친 듯이 수직으로 깎인 병산(屛山)의 절벽으로 C의 맞은편에 병산서원이 있다. E가 남산 밑의 절벽인 팔선대(八仙臺)고 F가 유문충공이 자신의 아호로 삼은 서애(西厓)며 G가 부용대다. 하회 물길의 절묘함은 E, F, G, H 부분에서 확연히 드러나며 그 하이라이트는 G와 H 부분이다. 이 부분의 물길이 특별하다고 하는 이유는 마을을 감아 도는 물이 혈장의 중심부인 마을쪽으로 흐르지 않고 멀리 바깥을 향해서 흐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마을쪽은 물의 공격을 전혀 받지 않는다. 이렇게 물이 혈의 바깥을 향하면서 둥글게 흐르는 것을 풍수에서는 시위를 당긴 활과 같다 하여 '궁수(弓水)'라 부르며 궁수가 흐르는 안쪽은 음택으로든 양택으로든 명당이 된다. 그러나 궁수가 흐른다 하여 그 안쪽이 모두 명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궁수는 혈의 생성을 암시하는 하나의 증거일 뿐 궁수 그 자체가 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회 궁수의 백미는 부용대의 위치 및 그 크기와 높이에 있다. 지도를 보면서 부용대의 위치를 그 지점이 아닌 곳에 이동시키면서 물의 흐름을 상상해보면 부용대의 가치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부용대가 F쪽으로 치우치면 물은 마을을 휩쓸면서 진행할 것이 분명하다. 또한 H 방향으로 길게 나와 있다면 하회는 상습적 수해 지역이 되었을 것이다. 부용대 위에서 화천의 물길을 관찰하면서 보면 볼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부용대의 절묘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땅은 신령할 따름이다. 남산과 서애를 치고 나오는 물은 부용대 아래의 깊은 소(沼)에 이르러 그 기세를 꺾는다. 부용대가 그 만한 크기와 힘과 높이를 가지지 않았다면 벌써 침식되어 하회 땅과 함께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또한 그 쪽은 북쪽이라 그 만한 크기와 높이가 아니라면 차가운 북풍이 몰아쳐 하회는 추운 곳이 되었을 뿐더러 연화부수의 아름다운 돌혈을 형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하회명당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천리를 날아와 하회를 호위하는 청룡도 물을 만나 승천하는 기세를 잃고 한 마리 물뱀에 그치고 말았으리니 어찌 부용대가 한낱 바위 덩어리일 뿐이겠는가! 부용대 아래에서 기세를 꺾은 물이 마을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려면 물이 빠져나가는 곳이 넓어야 한다. 더구나 낙동강은 하상고도의 차가 적어서 물의 흐름이 느리므로 빠른 유속으로 배수할 수는 없고 오직 넓어야 한다. H 부분의 광활함이 어떻게 하회를 보호하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낙동강은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사행천이기 때문에 하회처럼 물이 감아 도는 곳이 많다. 그러나 이곳처럼 마을이 물가에 바짝 붙어 있는 곳은 아주 드물다. 더욱이 태극의 중심점인 황극(皇極, 有極)이 뚜렷이 형성된 곳은 거의 없다. 하회지도를 보면 부용대 근처를 중심으로 감아도는 '산수태극' 형상에 황극점이 선명하다.
만송정(萬松亭)과 파구(破口) 부용대에서 하회를 볼 때, 바로 눈 아래로 보이는 소나무 숲이 만송정이다. 이 숲은 겸암공이 조성했다고 전해지며 한 때 '만송정'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있었다. 하회가 퇴적지형은 아니지만 만송정 솔밭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그곳은 분명 모래땅이었을 것이다. 계곡이 아닌 강가에 더구나 모래사장에 소나무를 가꾸는 것은 엄청난 관심과 노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소나무는 빨리 크는 나무도 아니므로 숲을 이루기까지의 정성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왜 거기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숲을 만들었을까?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화천의 물길을 보면 된다. 홍수 때 범람을 막고 또한 겨울의 북서풍까지 막아내는 역할을 겸했으리라. 허나, 그 뿐일까? 여기에도 풍수적 의미가 더 있다. 사람의 삶에 있어서 물은 땅 이상으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러므로 물의 상태와 물길을 보는 것은 풍수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다. "들어오는 물은 보여야 하고 나가는 물은 안 보여야 한다." 이것이 물길에 관한 풍수격언의 첫 번째다. 물이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미리 방비를 할 수 있다. 물론 쏘는 듯이 들어오는 물은 나쁘다. 정이 있어야 한다. 들어오는 물과 달리 나가는 물은 오래, 자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허전해지고 정처가 없어 정신을 가누기가 어려워진다. 수구(水口)는 내명당이나 외명당의 물이 만나는 곳으로 합수처(合水處), 합수머리, 두물모지 등으로도 불린다. 합수하거나 그렇지 않거나간에 명당의 바깥으로 물이 빠져나가는 것이 보이는 마지막 지점을 파(破) 또는 파구(破口)라 한다. 수구나 파구가 허할 때 인위적으로 보충하는 것을 '수구막이'라 부르는데 비보(裨補)의 대표격이다. 비보 중 가장 흔한 것이 동수(洞藪)와 수구를 막는 '수구막이'이다. 봉정사 조탑은 수구막이이다. 만송정 솔숲도 파구의 허함을 막은 수구막이 비보 숲이다. 임하면 천전리(川前里) 서쪽 반변천가, 지금의 임하댐역조정지댐 안에 있는 개호송(開湖松)과 그 기능이 같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