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장가를 가다(글/정진영)
남자는 장가를 가는가
흔히들 남자들의 결혼을 '장가간다'고 하고, 여자들의 결혼을 '시집간다'고 한다. 그런데 시집간다는 말은 여자가 결혼을 해서 남편의 집으로 가는 것인데, 장가간다는 말은 이러한 논법에 들어맞지 않는다. 남자가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간다는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아마 이곳에서 저곳으로의 이동을 의미할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여자가 남자의 집으로 시집을 가듯이,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장가를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에서 이러한 경우를 거의 볼 수가 없다. 그런데도 장가간다는 말은 남자들의 결혼을 지칭하는 말로 아주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면 장가간다는 말은 실상과는 무관한 말인가? 현재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결혼풍속에는 정말로 남자가 장가를 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바뀌어서 여자가 시집을 가는 세상이 되었다. 여기에 딸 가진 일부의 성급한 부모들은 귀찮은 물건 치우듯이 딸들을 치워버리기조차 한다. 아무튼 오늘날에는 남자들이 장가가던 그 실제의 행위는 사라지고 말만이 남은 셈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남자가 장가를 가는 것과 여자가 시집을 가는 것이 동일한 것으로 이해되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다른 것이다. 그 차이는 사회의 구
조를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것과 같다. 이제 이같은
문제를 포함해서 결혼의 역사적 변화와 사회적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결혼, 언제 하는가
조선시대의 결혼적령기는 몇 살이었을까? 흔히들 조혼(早婚)을 했을 것이라고 한다. 조혼의 기준은 모호하지만 대체로 10대의 나이에 결혼을 하는 경우를 말한다.
1888년 박영효는 국정 개혁안을 제시하면서 유년기(10여세) 아이들의 결혼을 금지할 것을 주장했고, 1894년 갑오개혁에서는 남자는 20세, 여자는 16이상이 되어야 결혼할 수 있도록 법제화했다. 이로 본다면 우리 역사상에는 10대의 유아기에 결혼이 이루어지는 조혼의 풍습이 있었고, 전해지는 이야기와 같이 10대 전반의 꼬마신랑과 10대 중반의 누님같은 신부가 환상의 커플로 인식되었음직하다. 이같은 현실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또는 빛바랜 사진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그러면 조선시대에는 어떠했을까? 우리는 지금이 이러하니 옛날에는 더욱 그러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모든 것을 일직선상에 놓고 쉽게 발전을 운위한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도 그러했거나 아니면 더욱 심했을 것이라고 간단하게 단정한다.
조선시대 18세기 초반의 평균적인 혼인연령은 대체로 남자는 26세, 여자는 21세 정도였다고 한다. 이것은 현존하는 여러 자료들을 통해서 확인된 것이다. 반면에 일제하 여성의 평균 초혼연령은 1925년에 16.7세, 1930년 17세, 1940년 17.5세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조혼은 19세기 이후, 또는 일제시기에 있었던 현상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있었다면 그것은 손자보기에 급급했던 양반가문의 조급증이거나, 가난한 농민들이 입 한술 덜기 위해 어린 딸을 치워버리던 일부의 현상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 비해 오늘날(1990년)에는 남자 28.6세, 여자 25.5세로 만혼이라고 할만 하다. 만혼의 원인은 남녀모두 교육기간이 길어졌고, 직장생활을 통한 자아실현이나 자립 등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자들의 경우에는 군복무라는 문제도 고려되어야 한다.
누구와 결혼하나
우리는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제약이 많다. 우선 동성동본의 경우가 그렇고, 성과 본을 달리하더라도 특정 성씨 상호간에는 결혼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조상이 같기 때문이고, 이것은 또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으로서의 오랜 전통이라고 한다. 여기서 동성동본의 혼인 문제를 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동성동본은 모두가 같은 조상의 후손이고, 또 동성동본간의 금혼(禁婚)이 우리의 오랜 전통이었는가 하는 점만을 문제삼고 싶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동성간의 혼인이 조선시대 전반기인 16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심심찮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고려말 조선조의 대표적인 명문가문이었던,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인 안동권씨의 <성화보>(成化譜,1467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서 권씨와 권씨간의 혼인을 낯설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어떤 가문의 경우에는 혹자가 동성간의 혼인을 지적하자 이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풍습임을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조선전기에 있어서는 동성동본의 혼인이 오늘날과 같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관습상 거부당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도리어 옛 우리의 풍속에는 동성동본간의 혼인뿐만이 아니라 근친혼까지도 행해지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조선시대 이전의 사정이다. 즉, 고려왕실에서는 사촌·팔촌이, 심지어는 배다른 형제간의 혼인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함에도 이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이같은 근친혼이 이전 신라왕실 또는 고려의 귀족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용납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사실 오늘날의 동성동본이란 주로 조선후기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역사적 산물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혈연관계를 달리하는 동성들이 하나의 본관으로 묶여지기도 하였고, 심지어는 성과 본을 바꾸거나, 또는 성이 없던 많은 사람들이 투탁함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거대한 동성동본이라는 족단(族團)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동성동본의 상당수는 사실상 같은 조상의 후손도 아니고, 상호 혈연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도 아닌 셈이다.
다시말해 오늘날의 동성동본이란 꼭히 같은 조상의 후손이라고 할 수 없으며, 또한 이들간의 혼인이 역사적으로 항상 금지되었던 것만도 아니었다.
남자들, 장가를 가다
앞에서 이미 이야기했듯이 장가를 간다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여자들이 시집을 가듯이 남자들도 정말로 장가를 갔다. 장가를 간다는 것은 남자들이 결혼을 해서 처가에서 아들 딸 낳아 기르면서 처의 부모를 모시고 사는, 말하자면 '처가살이'를 의미한다. 이같은 결혼풍속을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이라고 하고, 여자들이 시집을 가는 오늘날과 같은 혼속(婚俗)을 친영례(親迎禮)라 한다. 전자가 우리 고유의 풍속이라면, 후자는 중국의 풍속이었다. 여자가 시집을 가는 중국의 풍속은 조선초기까지만 하더라도 거의 행해지지 않았다.
"우리나라 풍속은 중국과 달라 친영례를 행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모두 처가를 자기 집이라고 하고, 처의 부모를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면서 자기 친부모같이 섬긴다. 이것 또한 강상(綱常)이다"고 하는 기록을 조선초기 세종, 성종년간의 실록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강상이란 윤리 도덕적으로 떳떳하다는 말이다. 이것은 남자가 장가를 가는 것이 조선초기의 양반 사대부가문에서 당연시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대성리학자인 퇴계 이황 가문의 아들 손자뿐만 아니라 종손까지도 처가에 거주하기도 하였다.
남자가 장가를 가는 상황에서는 특정한 마을에 아버지와 아들 손자로 이어지는 부계(父系) 혈통의 자손들이 폐쇄적인 혈연사회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아들이 없다고 하여 조선후기와 같이 반드시 양자를 들일 필요도 없었다. 이러한 사정에서 오늘날 동성마을의 역사가 16세기 이전까지 소급될 수 없으며, 반대로 이 시기에 외손봉사는 흔한 일이었다. 실제로 조선 명종대에 영의정을 역임하였던 박순(1523-1589)의 선대는 호서 회덕에서 광주로, 다시 나주로 옮겨다녔는데, 이것은 처가를 따라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또한 아들이 없어 외손에 의해 봉사(奉祀)되고 있었다. 남자가 장가를 가던 시절에는 적어도 가정적으로는 아들딸의 차별이 없었고, 또 아들에 집착할 이유도 없었다.
유교사회인 조선사회에서 남자들이 장가를 가는 것이 문제가 없을 수만은 없었다. 유교가 정치이념으로서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까지 점차 그 영향력을 확대해가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유교는 철저히 아들, 그것도 맏아들 중심의 가족질서의 확립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가 장가를 가는 것이 우리 고유의 풍속이라는 조선초기 실록의 기록은 현상에 대한 단순한 지적이 아니라 이제는 그같은 풍속을 청산하고 중국의 친영례를 행해야 한다는 것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친영례는 조선초기 왕실 또는 유학자들 사이에서 일부 행해지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일부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16,17세기를 거치면서 하나의 대세를 이루어 마침내는 전통이 되어 버렸다.
오늘날 남자들이 장가를 간다면
우리는 한 때 처가살이하는 남자를 '팔푼이'라고 빈정거린 적이 있다. 뭔가 모자라서 처가에 얹혀 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팔푼이'들이 흔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당당하지도 못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미 남자 중심의 견고한 사회체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남자 중심의 사회체제는 가정적으로는 아들에 대한 극단적인 집착과 사회적으로는 혈연, 지연, 학연을 만들어냈다. 또 이것이 오늘날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병폐임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한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민주사회의 건설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면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기득권을 누리는 상당수의 모리배들은 도리어 정치, 경제, 사회적 이해득실을 따지거나 아니면 아전인수격으로 이용하기에 급급하다. 이곳저곳에서 내놓는 이런 저런 방안들도 일회용 행사이거나 관념적이어서 실현 불가능한 환상에 불과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최선의 방책이라고도 한다. 그러면 진정 방법이 없는 것일까?
글쓴이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남자들 다수가 팔푼이가 되어 처가살이를 한다면, 아니 남자가 정말로 장가를 간다면, 그러면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남자들이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서 장가를 간다면, 굳이 아들에 집착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혈연은 물론이고 지연과 학연도 더 이상 확대되거나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방안도 그 사회에서 용납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역사적 전통과 사회적 정서와 괴리되기 때문이다. 남자가 장가를 가는 것은 우리 고유의 전통이었다는 점에서, 또한 오늘날 젊은 부부들에게 이미 용납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실현 가능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여자들이 시집을 가는 한 부부평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회적 약자인 여자가 강자인 남편의 가족, 친족들의 소굴로, 그것도 혈혈단신으로 들어가 새로운 인간관계를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리 쉬운 것만도 아니고, 경우에 따라서는 '시집살이'의 매운맛과 어려움을 불가피하게 감내해야만 한다. 물론 오늘날의 '시집살이'는 옛날과 크게 다르다. 결혼관과 삶의 형태가 옛날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의 부부들 대부분은 부모와 함께 살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집살이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고부간과 시집과의 갈등은 다만 은폐되어 있을 뿐이고, 도리어 연로한 부모들이 자식들로부터 소외되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 시키고 말았다. 말하자면 오늘날과 같은 여자들의 어중간한 '시집살이'는 시집과의 갈등이나 부모봉양이라는 문제 어느 것도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그러면 남자들이 장가를 간다면 어떻게 될까? '처가살이'는 남자들을 팔푼이로 만들지는 몰라도 적어도 고부간의 갈등이나 남자들로 하여금 남편과 아들 사이에서 고민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부모봉양의 문제도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부부간에 있어서도 사회적 강자인 남자와 가족과 친족의 든든한 배경을 가진 여자의 힘이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문제되랴! 이것은 국적 불명의 수입품도 아니다. 우리 전통의 복원에 불과하다. 새천년의 보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도 아들에 대한 집착과 혈연, 지연, 학연은 이제 극복되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정말로 남자들이 장가를 가야할 때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