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비 제막에 즈음하여(글/서동석)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 이젠 지겹기조차한 영국여왕의 안동 방문을 계기로 안동은 단박에 세계적 이목이 집중되는 도시가 되고 말았다. 어쨌든 이 사건(?)은 지역에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영국여왕의 안동방문에 대한 많은 추측들이 있었다. 왜, 하필 여왕이 안동을 방문했나 하는 것이었다. 많은 추측들 가운데 안동이 가장 한국적인 것을 잘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럼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의문이 생긴다. 사람들은 안동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 중의 하나를 유교적 전통이라고 말했다. 조선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사림의 본고장이 바로 안동이요, 그 사림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퇴계 이황의 고향이 바로 안동이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후 지역에서는 유교문화의 유지·보존이라는 문제가 이전보다 뚜렷하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각종 유학 또는 유교 관련 학술대회가 개최되었고, 국가적 관광산업화 정책에 발맞추어 유교 자원을 어떻게 하면 관광자원화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들이 논의되고 있다. 더구나 11월에 접어들면서 문화관광부 선정 이달의 문화인물에 정부인 안동장씨(1598∼1689)가 선정됨으로써 유교적 가치관은 더욱 부각되었다. 11월의 문화인물에 정부인 안동장씨가 선정됨에 따라 영양문화원에서는 11월 1일에서 5일까지 유품전시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회고강연회가 11월 10일에서 11일까지 있었고, 추모백일장과 사생대회가 11일에 열렸다. 안동에서는 11월 4일에 정부인의 효행과 덕행을 기리는 충효비 제막식이 안동댐 야외 민속박물관에서 있었다. 이어서 11월 7일에는 정부인을 기리는 전국 여성휘호대회가 열렸다. 뿐만 아니라 11월 17일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추모 학술대회가 있었다.
이처럼 정부인 안동장씨가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가 열렸는데 안동충효비 건립도 같은 취지로 준비되었다. 충효비 건립을 계획한 안동청년유도회에서는 '정부인안동장씨추모여성휘호대회'를 매년 개최해 오고 있다. 그러던 중 장씨부인의 문화인물 선정을 계기로 정부인을 우리나라 여성의 표상으로 널리 알릴 수 있는 의미있는 사업을 모색하던 중 충효비 건립으로 의견이 모아지게 되었다. 더불어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일송 김동삼 선생의 어록비도 같이 세우면 좋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어 많은 어려움 속에서 장씨부인의 시비와 김동삼 선생의 어록비를 함께 세워 안동충효비 건립을 보게 된 것이다.
11월 4일, 제막식과 함께 박석무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과 고려대학교에서 근대사를 전공하는 강만길 교수의 정부인 안동장씨와 일송 김동삼 선생에 대한 학술강연이 있었다.
정부인 안동장씨는 여성으로서는 사임당 신씨에 이어 두 번째로 문화인물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안동출신 인물로는 퇴계 이황, 서애 류성룡, 육사 이원록 다음으로 선정되었다. 부인은 퇴계의 학통을 이은 경당 장흥효의 외동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재주가 있어 아버지로부터 틈틈이 한문과 서예를 배웠다. 19세에 영남의 명문인 재령이씨 가문의 석계 이시명에게 두 번째 부인으로 시집을 가면서 자신의 재능을 감추고 부덕을 닦고 가문을 일으켜 세우는데 열중하였다고 한다. 부인은 전처 소생의 자식과 자신이 낳은 자식들은 훌륭하게 길러내어 가문을 빛냈다. 아들인 갈암 이현일, 손자인 밀암 이재, 외현손인 대산 이상정으로 이어지는 퇴계학맥은 부인의 노력으로 뿌리내리게 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몇편의 시와 그림, 자수, 요리책인 규곤시의방 등이 지금 남아있는 부인의 흔적들이다. 많지 않은 자료로 부인의 진면목을 살필 수는 없겠으나, 부인이 학문과 예술, 그리고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충실한 태도를 유지했음을 알 수 있다.
일송 김동삼(1878∼1937) 선생도 어지러운 세상에 태어나 한평생을 조국을 위해 헌신하다가 생을 마치신 분이다. 유인식과 더불어 천전에 근대식 학교라고 할 수 있는 협동학교를 세워 구국계몽운동의 시초를 마련하였고, 일제에 나라를 강탈당하자 이상룡과 서간도로 망명하여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였다. 1911년부터 20년 동안 만주에서 전개된 선생의 활동은 여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선생은 무장항쟁을 통해 몸소 독립운동을 이끌었으며, 국민대표회의·정의부·혁신회의 등을 대표하면서 독립운동의 통합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1931년 하얼빈에서 체포되어 1937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다면 무덤도 필요없다고 말씀하시고, 죽어서라도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보리라고 옥중에서 유언을 남겼다.
충과 효는 유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이다. 대개는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충(忠)은 글자를 풀어 보면 중심이라는 말이다.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을 충이라고 한다. 효(孝)는 자식이 노인(부모)을 등에 업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충과 효는 글자대로 본다면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덕목들인 것이다. 정부인 안동장씨와 일송 김동삼 선생은 말 그대로 중심이 잡힌 흔들림없는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다가신 분들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가치관이 흔들리고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요구되는 현재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때 안동충효비 건립은 마땅히 변하지 않아야 할 인간의 본연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양반의 고장, 충절의 고장 아닌 곳이 없는데, 유독 안동에서만 2천500여년 전 중국에서 발생한 사상의 한 갈래를 왜 굳이 붙잡고자 하는지 모르겠다. 현재는 정보화, 과학화의 깃발 아래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것이 발견·발명되고 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떻게 변화할지도 모르는 미래를 가늠하려고 애쓰는 지금에 하필이면 모두들 고루하게(?) 생각하는 유교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교는 그동안 심하게 탄압을 받았다던가 아니면 중도에 맥이 끊겼다던가 하는 일도 없었다. 현대적 삶의 양식에 유교라는 것이 부조화를 일으키는 면이 없지 않음을 인정하여 불평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유교적 가치관 아래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안다. 그것이 다양한 가치관의 공존이라는 면에서 이루어지는 유교의 긍정적인 가치 존중이라면 충분히 수긍할 것이나, 다른 것들을 누르고 유교만이 대접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충분히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다양성과 변화라는 가치관은 미래사회를 주도할 것이다. 예전의 안동은 이런 다양성과 변화를 직접 이룩해내는 곳이었다. 조선시대의 사림들이 그러했고, 한말 안동 출신의 유림이 그랬다. 충효비 제막의 의의를 깍아 내리자는 것이 아니다. 하나로 고착되지 않고 다른 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안동, 진정 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안동이 되어야만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본질을 끝까지 유지,보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