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창단으로 새로운 연극판 만들터 극단 광장 김상욱씨(글/임종교)문화예술인들을 얼마간 취재하다보니 내가 가진 예술적 식견이란게 보잘 것 없으면서도 이미 다 알아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많다. 그들 스스로 어느 한계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그리고 나 스스로도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체념하고 말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산다는 일에 전전긍긍하면서도 한편의 시를 만들어내고, 그림을 만들어내고, 공연을 만들어내는 지역예술인들을 아주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들의 시가 혹은 그림이, 노래가 지역 사람들의 술판에라도 올려져 곱씹힐 수 있다면 예술이랍시고, 문화랍시고 떠들며 예술가스럽지도 문화가스럽지도 않은 인물(?)들보다는 더 인간적이고 예술적이지 않은가.
극단 광장 새롭게 태어나다
고정관념이란 무서운 것이다.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 서먹함보다 오히려 지난 잘못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안간힘을 써야하는 쪽이 더 힘들게 마련이다. 소소하게 지나간 불미스런 일들을 다시 꺼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앞으로 안동에서 만들어갈 극단 광장의 모습을 김상욱씨(43)에게 듣기도 바쁘기 때문이다. 그또한 그러기를 원했다. 그러나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일, 직접 만나본 김상욱씨와 극단 광장은 더 많은 고생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다시 시작해야하므로.
극단 광장에 대해 아직 낯이 선 독자들도 있겠지만 단원을 모집한다는 현수막은 한번쯤 보았을 것이다. 그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면서 안동에서 연극단원을 모집한다니 얼마나 모일까에 의구심을 앞세웠었던 기억이 있다.
구름떼처럼 몰려들기를 바라던 그의 욕심(?)이 여지없이 무너지긴 했지만 기존의 관객 단원들을 흡수하고 새로운 단원들을 뽑아 98년 2월 광장이란 이름으로 도에 등록하면서 행정적 절차를 끝냈다.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각오로 재창단을 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김상욱씨는 극단 광장의 단장을 맡고 있다. 현재 연예협회 지부장인 김종호씨가 행정적인 실무를 보고 있고, 극단 광장의 공연활동은 김상욱씨를 중심으로 15명 정도의 회원들이 끌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마땅한 연습장 없는 떠돌이 신세지만
극단 광장으로 새롭게 탄생하면서 작년 12월 문화회관에서 창단 공연을 올렸다. 70년대 고도성장기의 모순을 그린 영화로도 유명한 칠수와 만수라는 작품이었는데 이 공연에서 대사도 상당히 재미있고 극도 괜찮았다는 평을 얻기도 했다. 그외에도 올해 여름 안동예술제에서 마임이스트 고재경 초청공연을 했고, 현재는 올 12월 12일 정기공연으로 천호동 구사거리란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연습중에 있다.
해가 많이 짧아져서인지 금방 어두워진 날씨탓에 더 쌀쌀하게 느껴지는 저녁, 분위기도 익히고 어떻게들 꾸려가고 있는지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연습실로 찾아갔다. 연습장은 강 건너 신진택시 2층 공간을 저녁시간 동안 빌려쓰고 있었다. 마땅한 연습공간이 없어 하회별신굿탈놀이 사무실도 이용하고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신진택시 사장이 연습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한 덕분에 감지덕지로 연습공간이라도 마련된 것이다. 택시회사 직원들의 회의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그곳에는 수십 개의 의자들이 놓여있고 그 한 귀퉁이 공간에서 네명의 단원들이 대사연습을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아직은 리딩단계라며 보여주기를 주저해했던 김상욱씨가 해설을 하고 주연을 맡은 김종호씨와 칠수와 만수에서도 만수역할을 했고 연극영화과를 지망하고 있는 백승필씨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대사연습을 하고 있었다. 아직은 대사가 많은 역부터 연습을 하고 다른 회원들은 좀 더 있다가 합류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참을 그렇게 그들이 하는 연습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모습 그대로 한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제목을 언뜻 달아보자면 아웃사이더. 한갓 외진 이곳 물건너 연습장 바깥 창문을 통해 보이는 시내의 불빛은 유난히 밝았다. 그를 배경으로 썰렁한 연습장에서의 그들의 대사들이 오버랩되면서 이런 작은 몸짓이 저쪽 세상에서 얼마나 받아들여질지 극단 광장의 관객인 나로서는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변히 연습장이나 사무실 하나 없이 시작하면서 단원들을 아우르며 책임을 져야하는 지부장 김종호씨와 김상욱씨의 어깨는 더없이 무거울 것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힘든점이 많지만 일단은 안동의 보수적인 정서하고 공연예술 카는기 연결되기가 참 어렵거든요. 사무실도 없이 떠돌고 있고 어깨가 상당히 무겁죠. 때로는 회의도 일고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고 내가 안동 연극의 틀을 세워놓으면 앞으로 후배들이 활동할 공간이 마련될 것이고 이런 마음으로 힘들지만 하고 있지요."
연출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김상욱씨는 의성 다인이 고향으로 현재 경덕중학교 국어교사로 있다. 학교갈 시기를 놓쳐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늦게 들어간 바람에 연극에 관심도 많았지만 막상 마음을 내지 못하다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비로서 발을 들여놓게 된 셈이다. 게다가 영문고등학교에서 연극반을 지도하고 있던 김종호씨가 그를 부축인 게 큰 몫을 했다.
"국어교사를 하니까 학기마다 희곡이 실리는데 직접 배역을 아이들에게 맡겨서 하려고 보니까 전문적으로 아는게 없어 안되겠다 싶어서 발을 들여놓게 됐지요."
이렇게 첫발을 내딛은 그의 연극인생은 94년 이혼의 조건이라는 작품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이후로도 서툰사람들, 페츄니아를 짓밟은 사람들등에 출연하면서 지금까지 활동해오고 있다. 그러면서 전문적인 것을 익히기 위해 개인적으로 계속 연수를 다녔다. 96년에는 국립극단 전상철씨한테 연출지도를 받았고 맹진사댁 경사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98년에는 구미연수원에서, 그리고 올해는 대경대학교 장두이 교수한테 개인지도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관심있는 것은 무엇보다 연출이다. 그동안 연출쪽은 고문으로 있는 이용사씨의 역할이 컸지만 90년도에 들어오면서부터 실질적으로 그가 연출한 작품도 여럿된다. 그리고 연출공부를 따로 하고 있기도 하다.
"연기보다는 연출쪽에 상당히 관심이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같은 대본이어도 연극이 달라지거든요."
그는 이번 천호동 사거리에서도 연출을 맡았다. 일부 돈 많은 사람들로 천호동 사거리가 선점되고 결국 부부가 갈라서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번 연극은 실제로 연습기간도 빠듯하고 모두들 직업을 가진 단원들이다보니 연습참여도 힘들어서 소품이나 배역문제에 등을 고려해서 작품을 선정했다. 그런 탓에 단막극이라 굴곡이 많지 않고 여러가지 준비되는 상황도 미흡해선지 그리 자신이 서지 않는 모양이다.
"작년에 구조대장으로 나오는 걸 했는데 그때는 119에서 구급대원들 옷을 빌려서 입었고, 파출소 같은데서 경찰복 빌려서 입고 이런 실정이지요. 통상하면 도지원금은 팜플렛, 현수막, 포스터를 만드는데 소비하고 단원들 자장면 먹는 거 그 정도지요. 그 돈도 늦게 나오면 외상으로 달아놓는다든가 어렵고 빠듯합니다."
그들이 외지의 좋은 공연팀을 초청해 보여주지 못하는 것도 이런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불러오고 싶은 공연팀이나 오겠다는 팀도 있지만 초청비와 체류비를 충당할 정도로 표를 사서 들어올 관객들을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섭섭하지만 소중한 관객들
경제적으로도 그렇지만 단원들이 모두 생업에 바쁘고 아마추어이다보니 그의 맘처럼 충족되지 못하는 면도 많다.
"아무래도 아마추어들이니 사명감이 떨어지지요. 그래도 중학교에는 제가 클럽활동으로 연극을 하고 있고 고등학교에도 연극반이 있어서 청소년연극제에 나간 그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단원으로 들어오니까 힘이 되기도 하는데 남자아이들은 군대가고, 여자단원들은 시집간다고 가버리고 없지요."
연습장을 찾았을때도 두명의 대학생들이 있었다. 제자이기도 한 그들은 대학에서도 연극써클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에게 희망을 걸어보지만 아직은 더 많은 젊은 단원들이 필요한 실정이다 .
또한가지 그들에게 힘든건 연극을 찾는 관객들이 너무나 극소하다는 사실이다. 우선 자신들의 역량부터 아직 멀었다고 고백하면서 관객들의 무관심에 대해서도 섭섭함을 표시한다.
"연극의 붐을 일으킨다는 것이 굉장히 어렵지요. 특히 안동의 극단 수준도 그렇고 관객층인 대학생들도 외면하는 상태지요. 무대공연에 대한 무관심인데 다른 예술쪽도 마찬가지겠지만 공연을 찾는 사람들도 대체로 분석해보면, 안동 토백이보다 대구나 다른 대도시 지역에서 연극의 맛을 못잊고 연극의 향수를 갖고 찾아오는 관객들이 주로 많은 것 같애요."
그렇지만 그에겐 관객은 소중하고 예리하다. 그의 첫작품 서툰사람들을 공연하면서 그는 도둑 장덕배 역을 맡았었다. 여교사를 묶어놓고 지갑을 서랍에서 꺼내서 돈을 세면서 대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장면인데 막상 서랍을 열어보니 소품이 없는 것이었다. 그다음부터는 대사도 생각이 안나고 이영저영 어떻게 넘어갔는지도 모르게 공연을 마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돈을 헤아리면서 얼마야 그래야 하는데 없으니 얼마나 난감했겠어요. 관객들은 얼마나 주의깊게 보는가 하면 제가 끼고 있는 시계까지 봅니다. 정말 관심있게 찾아온 분들에게는 거짓말을 못하는 거지요."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엄한 관객은 바로 교직생활을 하면서 만나 결혼한 아내 최미숙(40)씨다. 이해도 많이 해주지만 자신이 한 공연에 대해 거의 칭찬한 적이 없다면서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돌려 표현한다. 그리고 아버지보다 연극적 끼다 더 다분하다는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정욱이가 따라다니며 힘이 되고 있다.
전국연극제 참가를 위하여
그와 극단 광장이 현재 의욕적으로 대들고 있는 큰일이 있다. 내년에 있을 경북연극제에 작품다운 작품을 출품해서 전국대회에 한번 나가보는 것이다. 경북도 8개지부에서 한팀만 전국대회에 출전할 기회를 얻게 되는데 이미 공연할 작품도 정해뒀고, 모두들 그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내년도 경북연극제의 대본은 이미 준비가 됐고 전력투자해서 내년 1월부터 강도높게 연습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영주지부도 나갔는데 안동은 지금까지 못나갔는데 내년에는 죽을힘을 다해 한번 나가볼 예정입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새롭게 기획을 할 것이고, 객원연출이 필요하다면 부를 작정입니다. "
그외에도 지역에서 연극을 하고 있는 대학동아리들과의 교류와 합동공연 등도 추진해 좀 더 풍성한 연극판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자주 열리는 것도 아니지만 생업에 종사하면서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공연 준비를 하다보면 주말과 휴일까지 반납해야 하고 학교 직원들이 모이는 자리에도 못끼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니 이제는 왕따를 당할 지경이라며 자신의 고충을 웃음으로 마무리한다. 그가 이러면서 하고자 하는 일은 한가지다.
"안동에서 연극문화의 틀이라도 세우고 싶고 후배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라도 마련될 때까지 한번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
그의 이 말로 충분하지 않은가. 먼저 이 길을 걸어온 선배로서의 역할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무대미술도 제작해야하고 소품도 만들어야하고 연습도 진행시켜야한다는 끝말을 남기면서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아직은 허울만 좋은 연출가`인가보다.
그들은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연극을 매개로 지역민들속에 숨쉬고 싶은 인사이더의 꿈을 이뤄가고 싶은 것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