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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글/박순동)

한 눈에도 날라리, 양아치, 문제아로 보이는 네 명의 남자들. 그들이 주유소를 습격한다. 왜? '기냥! 주유소가 거기 있으니까.' 그렇다. 그들은 주유소가 거기 있기 때문에 주유소를 습격한다.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산에 오른다는 어느 등반가처럼….

노마크-파르라니(?) 깎은 검은머리에 치켜 뜬 눈매가 예사롭지 않은 남자, 노마크. 그는 그들의 짱이다. 노마크라는 이름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아무 것도 없다. "무조건 만땅이다"라고 우기며 모든 손님의 차에 기름을 가득 채우는 그의 고집 아닌 고집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도 몸을 움츠리게 하는 것이 있다. 좌절된 야구선수의 꿈, 그리고 부모님. 그는 고등학교때까지 야구 선수였다. 그것도 야구의 꽃인 투수였다. 그러나 그는 늘 소외된 존재였다. 다른 친구들이 연습할 때도 아무런 이유없이 내내 운동장만 뛰어야 했다. 어쩌면 고아라는 이유가 숨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고아이기 때문에 선생님에게도 무시당하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소외당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한 마디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야구부에서, 학교에서 뛰쳐나온다.

뻬인트-"씨팔! 어려운 말 쓰는 놈들은 다 죽어야

돼!" 한자 섞인 글이나 형식적인 글들을 보면 참지 못하고 부숴버리는 남자. 그러고는 한 번씩 '씩∼' 웃는 그
미소가 슬퍼보이는 남자, 뻬인트. 그는 머리 색깔만큼이나 튄다. 뻬인트라는 이름에서 풍기듯이 그는 그림에 미쳐 있다. 그래서 흰 공간만 보면 뭐든 그려내고야 만다. 심지어 주유소 앞 광고판까지도 흰색으로 칠해 버리고 그 위에 자신의 그림을 그려 넣는다. 마치 동물들이 자신의 영역 표시를 위해 실례를 하는 것처럼, 그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고자 한다. 그러고는 그림 위에 다시 빨간 페인트를 뿌리며 "다 그렸다" 라고 소리친다. 누군가 들으라는 듯이…. 그렇다. 그는 그림이 좋아서 미대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법대에 가길 강요한다.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부모님. 뻬인트는 그런 부모가 못마땅하다. 단지 그림이 좋아서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뿐인데…. 그래서 그는 법대도 미대도 아닌 바깥 세상을 택했다.

날라리-"너! 노래 불러 봐! 끊어지면 죽어!" 잠시도 노래를 듣지 않으면 미쳐버릴 듯이 음악에 집착하는 남자. 길게 기른 머리에 딱 붙는 가죽 바지, 삐딱하게 걷는 걸음걸이에서 '날라리'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남자, 딴따라. 그는 음악에 집착한다. 손님 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자신이 듣던 음악이 묻혀 버리자 "안들리잖아!"라며 소리치기도 하고 오디오가 망가지자 주유소 사장에게 "대신 니가 불러! 끊어지면 죽는다!"라며 협박하기도 한다. 왜 그는 음악에 집착하는가? 그는 소위 언더그라운드 락 가수였다. 나름대로 작은 밴드를 만들어 밤무대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는…. 그저 음악이 좋아서 노래할 뿐인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가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이 있다면 빚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맞으면서도 "악기는 안돼! 악기는 건드리지마!"라고 할 정도로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돈 때문에 음악에 대한 사랑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미처 뿜어내지 못한 음악에 대한 아쉬움이 집착으로 나타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무대포- 들고 다니는 방망이(大한국민) 까지도 무식해서 웃기는 남자, 무대포. 그러나 너무 순수해서 '바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 남자, 무대포. 여자와 단둘이 마주 앉아서 옷 벗기기 끝말잇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만 보아도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그는 무식하다는 말에 상당히 민감하다. 왜 그럴까? 그는 무식하다는 이유로 많은 무시를 당했다. 지각을 해도 "무식한 놈이 지각까지 해? 대가리 박어!", 좋아하는 여자가 생겨서 따라다니기라도 하면 "무식한 주제에 무슨…"이란 식이었다. 그는 대가리 박기를 싫어하면서도 좋아한다. 늘 자신이 받던 벌이 대가리 박기였다. 그래서 싫어한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벌을 줄 때도 그는 항상 대가리 박기를 명령한다. 스스로가 싫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도 고통일 것이라는 나름의 논리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에게는 대가리 박기만큼 무섭고 싫은 벌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대가리 박기를 좋아한다.
이처럼 너무나 다르면서도 비슷한 네 명의 남자들은 도대체 왜 주유소를 습격하는 것인가! 해답은 이미 '그냥'이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는 그들이 너무 특별하다. 그래서 주유소라고 하는 공간에는 주인공들도 모르는 뭔가 다른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왜 주유소를 습격했는가
그들은 왜 주유소를 습격하는가? 답을 찾으려면 주유소라는 공간에 대한 의미찾기가 우선이다. '주유소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의 답을 먼저 찾으면 그들이 왜 주유소를 습격했는가에 대한 해답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주유소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주유소는 말 그대로 기름이 부족한 차에 기름을 채워주는 곳이다.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은 것을 채우는 곳이 주유소라는 공간이다. 주유소에는 특별한 문이 없다. 들어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열려있는 곳이다. 주유소는 넓은 마당을 가지고 있다. 이 넓은 마당은 요즘 같은 도시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공간이다. 주유소에는 언제나 현금이 가득하다. 그리고 은행보다는 돈 털기가 훨씬 쉬운 곳이다. 또한 주유소는 오래 머무는 곳이 아니다. 기름을 채우는 동안 잠시 쉬어가는 휴식처이며 떠날 때는 뭔가 가득 찬 느낌으로 떠날 수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왜 주유소를 습격했는가?
노마크, 뻬인트, 딴따라, 무대포. 이들은 모두 누군가로부터 소외당하고 무시당해서 상처받은 인간들이다. 그들은 그 소외와 무시로부터 도망쳐나왔고 쉴 곳이 필요했다. 그들을 세상 밖으로 내몬 이들을 대신할 화풀이의 공간이 필요했다. 그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꿈을 가진 평범한 젋은이들이었다. 하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그들의 꿈은 무너졌다. 그럼에도 노마크는 여전히 야구공을 좋아하고 부모님이라는 말에 가슴 아파하며, 뻬인트는 그림을 그리고 딴따라는 여전히 음악에 집착한다. 그들의 꿈은 좌절되었지만 여전히 똑같은 꿈을 꾸고 있다. 그래서 무모한 듯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멀리 뛰기 위해 몸을 한껏 움츠린 개구리의 모습이 어울린다. 그들은 주유소를 습격한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주유소를, 다음으로 향하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 자신들의 절망적인 상황들을 잠시 묻어두고 쉬어 가는 장소로 주유소를 선택한 것이다. 주유소는 항상 기름과 현금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채워짐, 그 충만함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곳이 주유소다. 그들이 주유소를 찾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들은 주유소에서 왕이 된다. 마음대로 기름을 채우고 아무런 이유없이 전화기를 부순다. 마치 자신이 아무런 이유 없이 운동장을 뛰어야 했던 것처럼 끊임없이 전화기를 부수고 고쳐 놓으라는 명령을 되풀이한다. 또한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대로 그리며,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대로 듣는다. 나름대로의 위계질서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도 한다. 그렇다. 그들은 주유소를 화풀이의 공간으로 삼고 세상에게, 자신들에게 상처 주었던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이다. 그들은 세상의 거짓들을 보면 참지 못한다. 뻬인트가 한자만 보면 때려부수는 것, 노마크가 경찰을 끝까지 쫓아가서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라면서 기름값을 받아 내는 것. 이 모든 행동들이 그 때문이다. 세상에서 따돌림당한 그들이 이제는 세상을 향해서 소리치고 벌준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이 마지막, 주유소 마당에서의 장면이다. 그들과 싸우기 위해 몰려온 철가방 패거리와 어떤 조직, 그리고 그들을 막으려는 경찰들. 이 모든 사람들을 넓은 주유소 마당 안에 세워 두고 기름을 뿌린다. 그리고 라이터 불을 켠 채 소리친다. "움직이는 놈 있으면 확 던져 버린다. 꼼짝마!" 비처럼 쏟아지는 기름을 그대로 뒤집어쓴 그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다. 마치 그들을 심판하는 것처럼 보인다. 노마크는 나머지 세 명을 보내려 하지만 외로움으로 똘똘 뭉친 그들은 함께 남으려 한다. 결국 그들은 넓은 주유소 마당 안에 그들을 가두어 놓고 떠난다. 세상의 더러운 모습들을 가두어 놓고, 거기다 자신들의 더러운 모습까지를 얹어놓고 떠난다. 그렇다. 그들은 자신들을 내몬 더러운 세상을 벌하면서 자신들의 비겁하고 더러운 면을 보았고 그것을 주유소에 버린 것이다.
그들이 주유소를 습격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들을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냥' 이라는 황당한 대답밖에 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아무튼 그들은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노마크는 심판의 머리에 야구공을 날리는 투수로, 뻬인트는 다 그린 영화 간판에 빨간 물감을 뿌리며 "다 그렸다" 하고 외치는 극장의 그림쟁이로, 딴따라는 노인정까지 알려지는(?) 락 가수로, 그리고 무대포는 동네 꼬마들을 불러 세워 "맞장떠봐", "지는 놈은 대가리 박∼기" 라며 즐거워하는 어느 아파트의 경비원 아저씨로. 그렇게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코믹하지만 코믹하지 않은 메시지
'주유소 습격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웃긴다.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보는 이들이 웃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하지만 그 네 명의 남자들은 결코 웃기는 인물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웃긴 것인가? 솔직히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웃었지만 왜 웃었는지 모르겠다. 그들을 보고 웃지 않으면 나마저도 세상에서 내몰릴 것 같은 느낌에서?
이 영화는 왜 코믹이라는 요소로 관객들에게 다가가는가? 아주 치밀한 음모 아닌 음모가 감추어져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대리만족의 통쾌함을 느끼게도 하고, 알 수 없는 찝찝함을 남겨 주기도 한다. 일상적인 삶에 갇혀 살고 있는 우리들은 결코 할 수 없는 짓을 하는 그들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씁쓸함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코믹함으로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가지만 그 내면에는 코믹하지 않은 메시지가 담겨있다. 비겁하고 이기적인 우리들은 영화를 보며 부끄러워진다. 자신들을 꾸짖는 이들을 보며 즐거워하는 파라독스. 그들을 꾸짖는 마당놀이를 보며 마냥 좋아라 웃고 있었던 양반들을 연상시킨다. 그러고 보면 '주유소 습격 사건'은 해학과 풍자가 있는 우리의 마당놀이와 비슷하다. 내가 주유소의 넓은 마당에 집착한 것도 그 탓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