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일기장(글/정현주(영남초등학교 교사))꼭 필요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끔찍이도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 바로 ‘일기’를 써야 한다는 의무감은 아닐까? 작년 한 해 ‘아이들이 일기를 즐겁게, 스스로 쓰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라는 과제를 안고 고심한 끝에 낸 결론 중에 하나가 바로 선생님의 일기장을 공개하는 것이다.
사실 학급 홈페이지에 공개적으로 일기를 쓴다는 것이 왜 부끄럽지 않겠는가마는 나름대로의 사명감을 안고 교단일기를 하나씩 써내려 갔다.
- 공개하는 선생님의 일기 -
유난히 햇살이 청명한 날
오늘은 유난히 더욱 햇살이 청명하게 빛나는 날이다.
교실에만 있다가 점심시간이라도 운동장으로 나가는 날이면 햇빛에 눈이 부셔 약간 눈을 감게 되지만 따뜻한 기운이 온 몸 가득히 퍼지는 조금은 나른하기도 한 그 느낌이 너무나 평온하다.
나도 이러한데, 우리 꼬맹이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 교실에만 6교시까지 있어 얼마나 답답할까 그 마음 알 것 같다.
나 역시 어릴 때엔 자유시간 - 그것도 야외수업 - 교과서에서 해방되어 조금이라도 밖에 나가고 싶어 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이번 주에는 오늘같이 따뜻한 날엔 피구라도 한 번 해야겠다. 우리 꼬맹이들이 조금이라도 딱딱한 교과서에서 벗어나서 마음껏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따스한 봄날
일주일째 감기에 걸려 있다. 그동안의 피로가 겹쳐 빨리 낫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선생님이 건강해야 더 즐겁게 활기차게 수업을 할 수 있을 텐데. 내일은 병원에 다시 가 봐야 겠다.
벌써 6학년을 맡고 한달이 다 지나가고 있다. 교정 여기저기에 목련도 매화도 한껏 꽃망울을 터뜨리고 남쪽 진해, 경주에서는 벚꽃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올 봄에는 우리 꼬맹이들과 활짝 핀 꽃나무아래에서 사진을 멋지게 찍어 볼 생각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흐르면 우리 꼬맹이들이 교복 입은 모습으로, 또 몇 년이 더 흐르면 훌쩍 커버린 청년의 모습이 되겠지만 선생님인 나의 기억 속에는 지금의 모습이 영원히 남을 테니 말이다.
얼른 건강해져서 새로 시작되는 이번 주에는 더욱 활기차게 즐겁고, 신나게 우리 꼬맹이들과 함께하고 싶다.
최선을 다해서!
바쁜 오늘
환경정리며, 진도며, 생활지도며,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는 요즈음이다. 그래서 지나가는 시간이 너무도 아쉽다. 할 것은 너무 많은데, 시간은 참 빨리도 간다.
젊은 그대! 다시 한번 힘을 내어보자!!!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누군가 지난번에 말했지?
“똑같이 반복되는 학교생활인데 그렇게 특별한 게 있을까요?”
하지만 시간은 늘 1교시에서 6교시까지 반복 될지 모르지만 그 시간 속에 담긴 내용도 과연 같을까?
교단일지우리는 늘 깨달을 수는 없지만 어제와 오늘과 내일, 우리에게 펼쳐지는 경험들은 분명히 다를 거야.
늘 반복된다고 생각하는 시간을 ‘어떻게 가꾸어 나갈까?’ 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니?
화초를 가꾸듯 나무를 돌보듯 그렇게 시간도 가꾸고 돌보아야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해.
선생님 역시 너희들과 만나게 될 수많은 시간들을 되도록이면 즐겁게, 유익하게, 만들고 가꾸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단다.
분명 그 경험들이 똑같지는 않지?
내일 함께 가지게 될 그 시간들을 우리는 최대한 노력해서 유익하고, 보람되고, 신나고, 즐거운 것으로 만들어가야 할 거야.
그러기 위해서 선생님도 너희들도 우리 함께 하루를, 1년을, 더 나아간다면 평생을 노력해보자.
어떠니? 함께 노력해 줄 수 있겠니?
선생님은 너희들과 함께 노력하고 싶은데…
욕심 많은 선생님
선생님은 참 욕심이 많지.
너희들이 누구보다 착하게 잘 자라주었으면 하는 바램.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예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
교단일지
결과보다는 과정 그 자체에 최선을 다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
가끔 선생님이 혼을 내지만 원망하기 이전에 그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선생님의 바램.
이런 저런 바램이 정말 많고도 많은 선생님은 욕심이 참 많은 것 같구나!
이 일기는 연일 매스컴에 보도되어 우려를 자아내는 일진회며 청소년 폭력 등의 사건들과는 동떨어진 시간을 써 내려 가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물론 어른들이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다. 다만 내가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이런 보도들로 인해 대한민국의 대다수 아이들의 순수성이 오인되는 것이다. 아이들과 부닥치면서 생활하는 나에게 보이는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이 다른 어른들에게도 보이기를 바란다.
이러쿵 저러쿵 아이들과 이야기 하듯, 때로는 자신에게 채찍질하듯 써 온 몇 편 안되는 일기를 통해 아이들과 교직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조그만 계기를 이루었다고 감히 말한다.
아이들의 일기지도가 교단일기를 쓰게 된 계기가 되긴 했지만, 그야말로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아이들과의 하루하루가 담겨진 이 일기장 속에서 그들의 해맑고 순수한 눈망울을 늘 볼 수 있으니 난 행복한 선생님이 아닐까?<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