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과 여유로움을 주는 안동사람 조용수씨(글/천남희, 사진/박영대)

‘GM대우 긴급 출동반 애프터서비스 본부’
내 취재원인 조용수(44) 씨가 근무하는 곳이다. 사랑방에서 받은 연락처로 전화했을 때 그는 고향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되었고 유명인도 아니니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며 정중하게 거부의사를 밝혔다. 조금 당황스러워서 엉겁결에 한마디 던졌다.나도 안동사람이다
“누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죠?”
“그야 당연히 안동이지요.”
“그럼 됐어요. 언제 뵐 수 있을까요?”


긴급출동, HAM
고향, 안동이라는 말 한마디에 귀가 솔깃해 지고 마음이 열리는 건 고향 떠나 타지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공통점이 아닐까? 그렇게 해서 그와의 만남은 이루어 졌다.
물론 일정하지 않은 그의 근무시간과 날마다 변하는 근무지로 쉬이 만나지는 못했다. 어렵게 잡은 약속 날 ‘긴급 출동’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어감 때문인지 아님 만남의 장소가 강남의 압구정동이라서 그런지 왠지 약간 긴장된 마음이었다.
“일이 바쁜 건 아니지만 상황이 언제 걸릴지 알 수 없어 늘 대기 상태로 지내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비수기라서 하루에 네다섯 건 정도이지만 휴가철이나 명절엔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빠요.”
그가 대기해야 하는 현장 옆 아파트 공원 의자에서 들은 첫마디였다.
서울 양평동의 긴급 출동반에는 33명의 직원이 교대로 24시간 비상대기를 하고 있다. 1993년도에 대우에 입사하여 2001년도에 긴급 출동 반으로 옮겼다는 그가 하는 일은 시동이 걸리지 않거나 움직이지 않는 차를 응급조치 하여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평소에 정비에 관심이 많았고 기술도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 곳곳을 옮겨 다니는 지금의 일이 자기 적성에 딱 맞는 일이라며 즐거워한다.
“저는 여행가는 것을 좋아 합니다. 차에 기름만 가득하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희망에 행복해지죠.”
그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이 약간 흥분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직업상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그는 나름대로의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10년 전부터 시작한 취미 생활이 아마추어 무선사(HAM)이다. DS2DGX를 콜사인으로 가지고 안동 뿐만 아니라 각 지방의 소식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며 우정을 나누고 있다. 조그마한 무전기로 전파를 보내면 누군가가 응답을 하는데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여러 곳의 사람들과도 간단한 의사소통이 된다고 하니 그는 무선을 통하여 국내외를 여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안동 소식도 자주 들어요. 안동에서 열리는 축제이야기를 들으면서 꼭 한번 가봐야지 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아직 못 가봤어요. 몇 년 전 백혈병 환자 수술에 필요한 혈액을 구할 때도 HAM들의 이야기를 듣던 외국인의 도움으로 피를 구한일이 있었는데 정말 감격적이었어요.”
나도 안동사람이다나름대로 보람도 있고 유익한 취미 생활이라며 이야기하는 그는 정말 그 매력에 푹 빠져 있어 보였다. 항상 정해진 근무지에서 언제 있을지 모를 상황을 기다리는 직업이어서인지 그의 자그마한 차 안엔 늘 혼자 있어야 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무전기며 자동차에 관련된 정비지침서, 책 등이 하나 가득 실려 있었다.




솔잎 밟고 건너던 낙동강
안동시 남후면 하아동 72번지가 그가 태어나 여덟 살까지 생활한 곳이다. 동네 앞에 작은 시내가 있었고 2㎞ 떨어진 곳에 풍산들을 끼고 낙동강이 흐른다. 어릴 적 그 냇가에서 멱 감고 놀기도 하였으나 학교 갈 때 비가 와 불어난 물로 돌다리가 묻히면 동네 형들이 업어서 그 시내를 건너 주었다. 겨울에 낙동강이 얼었을 때도 맘씨 좋은 뱃사공 아저씨가 얼음위로 놓아 준 솔가지를 밟고 건너가곤 했다며 강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 했다. 나도 안동사람이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장마철엔 아예 학교에 못가는 날이 더 많았데요”
어디 그 곳 뿐이랴. 강을 사이에 두고 학교에 다닌 학생들이라면 모두 유년기 그 잊지 못할 해프닝이 있지 않은가? 변변한 다리가 놓이지 않았던 그 때엔 큰비만 내리면 강을 사이에 두고 학교에서 미리 마중 나온 선생님의 눈도장으로 출석을 하고  집에 오곤 했다 또 수업중이라도 비가 많이 내리면 어김없이 그곳의 학생들은 일찍 하교하는 특혜(?)를 누렸었다. 불어난 강물로 두렵고 불안했던 때의 일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모두 아름답고 그리운 추억들이다. 요즘 고향에 가면 낙동강물이 너무 많이 줄어들었고 하천공사로 주변이 몰라보게 변해 어릴 적 고향모습을 찾을 수 없다며 아쉬워했다. 고향 떠나 몇 십 년이 지났지만 그의 마음은 솔잎 밟고 건너던 낙동강이 그리운가 보다.



고향, 아낌없이 베풀어 주시는 친척
현재 그가 살던 곳엔 작은 아버지가 고향을 지키고 계신다.
“시골에 살 때엔 큰아버지 집을 중심으로 4 형제 분들이 빙 둘러서 살았죠. 당연히 어른들도 자주 뵙고 친척들도 자주 왕래하여 집안어른들 얼굴 정도는 알았지만 지금은 모두 흩어져 살고 있으니 친척얼굴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바쁘다는 이유로 또는 멀다는 핑계로 자주 왕래하지 못함이 어디 그 뿐이겠는가. 핵가족과 도시화로 사라져가는 우리의 미풍양속이 또 얼마나 많은가? 모두 아쉬울 뿐이다.
“지난 한식날 안동을 다녀왔는데 좀 일찍 출발했더니 작은 집에서 아침을 먹고 수동인 외가 집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은 인천인 우리 집에서 먹을 수 있더라고요. 중앙고속도로가 생기고부터는 안동 가기가 훨씬 수월해 졌어요. 집에 오는데  여기저기서 농사지으신 거라며  마늘, 고구마, 콩, 파 등 싸주시는데  차 가득 싣고 돌아오는 길이 좀 죄송스러웠어요. 맘은 그게 아닌데 농번기에 일손 하나 거들지 못하고 애써 지으신 농산물을 바리바리 싸주시니까 고맙기도 해서…….”
나도 안동사람이다고향 떠나 뜸하게 가는 안동이지만 아낌없이 베풀어 주시는 친척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을게다. 여덟 살 때 고향을 떠나 충주에서 살다가 지금의 인천에 자리 잡기까지 고향 친척 분들의 늘 한결같음이 그를 계속해서 그쪽으로 발걸음하게 하는 끈이 되고 있으리라.
한참 고향이야기를 하는데 호출이 왔다. 그 언제 걸릴지도 모른다는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출동한 지 20여분 뒤에 간단한 문제였다며 웃으며 돌아왔다. 그에겐 비록 간단한 문제겠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의 그 답답함이란 운전을 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 쯤 겪어 본 일일게다. 그 답답함을 해결해 주고 오는 발걸음이 가벼울 수 밖에.나도 안동사람이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고향이야기에서 나는 내 고향 모습을 보았다. 자연의 소리에 무감각 했던 어린시절 나뭇가지 끝이 연두 빛으로 물들 이맘 때이면 우리는 입술이 보랏빛 물이 들도록 이산 저산을 다니며 참꽃을 따먹고 달래, 냉이를 캐며 봄을 맞았다. 모심기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모를 나르기도 하고 못줄을 잡아 주며 모자라는 일손을 도왔다.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꿈이 되어버린 마음속에만 아련히 남아있는 유년시절의 추억이다. 고향 떠나 살면서 이름모를 들꽃이 정겹고 맨발에 와 닿던 흙의 부드러움이 그리운 건 모두 그런 유년 시절의 추억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서 일게다.



마음에 좋은 것을 품고 사는 사람
직업특성상 휴가철이나 명절에 남들과 같이 친척들을 만나 옛정을 나누거나 가족과 여행을 떠나지는 못해도 그는 나름대로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었다. 주 5일 수업으로 첫 휴일이었던 3월 달엔 중3과 1학년인 두 아들을 -가지 않겠다는 아이들에게 한번 난리를 친후 겨우 움직여- 데리고 경복궁을 다녀갔고, 여의도 윤중로 벚꽃 축제에도 부인과 함께 다녀왔다 한다. 가족 이야기를 하는 그에게서 마음에 늘 좋은 것을 품고 사는 사람의 부드럽고 너그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나뭇가지마다 달려있는 봄의 연한 색 때문일까, 샛노란 개나리꽃을 보면 행복을 느낀다는 아침방송을 봐서 일까, 어쨌거나 조용수씨를 만난 그날 나는 처음 긴장되었던 마음과는 달리 내내 편안하고 여유로왔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는 서울의 어느 한곳에서 고객과의 행복한 만남을 기다리며 미소짓고 있을게다. 그의 밝은 미소가 온 대지에 생기를 불어넣는 따사로운 봄 햇살 같고, 아낌없이 베풀어 주시는 고향어르신들의 맘과 같이 늘 변함없기를 고향이 같은 사람으로서 바래본다. 고향을 위해 큰 업적을 남긴 것도, 그의 표현대로 별로 내세울 것 없는 그의 생활이지만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필요한 고객들에게 따뜻한 손길로 다가가는 조용수씨, 또 한 사람의 안동인 이었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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