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와 화병(글/김승열)
건강칼럼의학에서 문화의학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보편성, 과학성을 추구하는 현대 의학에서 문화에 따른 인간 육체의 차이성보다 동일성이 더 많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역이나 사회, 문화에 따라 독특한 질병은 의사와 의학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문화의 차이에 따른 질병은 고유의 풍토에 의한 질병이 아니면 정신과 질환이 많다. 한국의 독특한 질병의 양상은 선진국에 진입한 국가 중에서 유독 결핵의 유병율이 높은 현상과 간·폐디스토마와 같이 민물고기를 회로 먹는 식습관에서 유래된 질병을 들 수 있고, 문화 정신병으로는 아직까지는 한국인의 고유한 신경증인 화병을 예로 들 수 있다.
한국인의 병, 화병
필자가 안동의 한 병원의 응급의학과 의사로 응급실 근무를 하면서 느낀 타 지역과 다른 안동의 특징을 든다면 비교적 가정 폭력이 적은 대신 화병이 많다는 점이다.
화병은 한국의 독특한 문화 정신병으로 미국정신의학회와 세계보건기구(WHO)의 질병 색인에 등록된 한국인만의 유일한 질병이다. 화병은 영어로는 Hwa-byung이라고 하며 1996년 미국정신의학회에서 한국의 사회적 상황에서 생긴 문화 정신병으로 등재하였고, WHO에서도 하나의 질병, 진단명으로 인정한 질병이며 신경증의 하나로 규정하였다. 참고로 정신병은 환각, 환청, 환시 등이 있고, 다른 사람이 이해 할 수 없는 말을 하는 등의 사고의 왜곡이 일어나는 정신분열증이나 조울증 등의 정신증과 사고의 왜곡이 없는 신경증으로 나누는데, 흔히 말하는 히스테리나 스트레스 관련 증후군과 강박 증후군 등이 신경증에 속한다.
화병의 증상
화병도 스트레스, 주로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일어나는데 굳이 다른 신경증, 즉 히스테리와 달리 나눈 이유는 증상이 매우 독특하기 때문이다. 먼저 화병을 이해하기 위해 히스테리를 살펴보자.
히스테리는 최근에는 쓰이지 않는 병명으로 크게 전환 장애와 신체화 장애로 나눈다. 전환 장애란 쉽게 말하면 마음의 문제를 극적으로 표시하는 장애를 말한다. 감정적으로 현재의 상태를 받아들이기 힘들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통 갑자기 쓰러지거나 넘어지면 호흡수가 급격히 증가한다. 보통 정상 성인은“ 분당 20회 이하의 호흡을 하지만 전환장애가 일어난 환자는 호흡수가 30～40회 이상, 심지어 60회 이상이 될 때도 있다. 몹시 가쁜 호흡을 하기에 보통 보호자들은 숨을 잘 못 쉰다고 하지만 사실은 호흡을 못하여 문제가 생긴 문제가 아니라, 너무 호흡을 많이 하여 생기는 문제이다. 쓰러지지만 갑자기 쓰러지는 다른 병, 즉 간질이나 실신·뇌졸중과 구별되는 점은 전환 장애로 쓰러지는 환자는 다치지 않게 자기를 보호하면서 쓰러지고, 실신이나 간질·뇌졸중으로 쓰러지는 환자는 작지만 다치는 경우가 많은 점이 하나의 구별점이다. 전환 장애가 갑자기 나타나는 마음의 문제가 몸으로 나타나는 질병이라면 신체화 장애는 반대로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마음의 병이다. 즉 스트레스를 몸으로 표현하지만 다른 신체의 질병처럼 나타난다는 점이 다른 점이다. 즉 온몸이 이유 없이 아프거나, 팔다리가 아프거나, 가슴이 아픈 등 꼭 신체의 질병처럼 보이는 마음의 병이다.
대부분의 화병은 집안 내에서 생긴 문제이므로 집안 내에서 해결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미 형성된 집안의 유교적 질서를 바꾸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안에서 벗어나 직업을 가지거나, 자원봉사 혹은 각종 교육 활동과 사회생활에 참여함으로 억압된 감정을 풀 수 있는 기회를 다양하게 만든다면 화병은 훨씬 줄어 들 수 있다.
”건강칼럼화병도 이와 같이 마음의 문제가 몸으로 나타나며 전환 장애나 신체화 장애와 비슷한 증상도 많지만 굳이 따로 구별하는 이유는 증상이 아주 독특하기 때문이다. 전환 장애나 신체화 장애가 다양한 감정의 표현이나 마음의 문제를 몸으로 나타나는 질병이지만 화병는 많은 감정 중에서도 특히 분노 감정을 오랫동안 억제한 결과로 나타나는 질병이다. 의학에 있어서 질병으로서 화병은 흔히 말하는 일상생활 중에 사용하는 화병이라는 용어와는 다르다.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 ‘울화가 치민다’라고 하는 것은 분노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지만, 질병으로서의 화병은 이런 표현을 할 수 없어 생기는 질병이다. 화병이 다른 신경성 질병과 다른 독특한 증상은 가슴 한가운데와 명치 끝이 답답하면서, 여기에 무엇인가 뭉쳐져 있는 듯한 느낌과 무엇인가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다. 또 자주 한숨을 쉬고 얼굴에 열을 받은 듯이 화끈한 느낌이다. 다른 증상들은 이른바 신체화 장애와 비슷한 증상들이다. 즉 신경성 질환들에 나타나는 모든 증상이 다 나타날 수 있다.
증상은 신체에 대한 증상이 정신적인 증상보다 더욱 많으며 만성 피로감·가슴의 두근거림·두통·얼굴 화끈거림·불면증·잘 놀람 등의 증상이 가장 많다. 하지만 어떤 증상도 다 올 수 있다. 한마디로 위의 가슴 증상과 함께 신경증으로 오는 모든 증상이 다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중년여성의 화병, 사회활동 참여로 해결 가능
화병은 한국인의 4% 정도가 있다고 하며 대개 중년 이후, 특히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물론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는 수험생을 비롯하여 사춘기 이후 성인이라면 누구나 다 걸릴 수 있지만 특히 중년 여성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더구나 안동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많은 것은 화병이 생기는 이유를 생각하면 충분히 알 수가 있다. 화병은 지속적인 분노의 억압, 즉 분노를 표현하지 못해서 생기는 질병이므로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안동 지역의 특성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지역보다 예의와 질서를 중시함으로 가정 폭력은 한국의 어떤 지역보다 적지만, 한편으로 안동 지역은 한국의 어느 지역보다도 엄격한 유교 문화에서 특히 중년 이상의 안동 지역 여성들은 이러한 분노를 표현하지 못함으로 오는 스트레스가 심했음을 화병 환자의 수에서도 알 수 있다.
사실 화병은 이러한 사회 문화에도 원인이 있는 한편, 무조건 참기만 하고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푸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거나 배울 수 없는 개인적인 문제도 동시에 존재한다.
마치 양날의 칼처럼 유교적 질서가 살아 있기에 가정 폭력은 적지만 대신 화병이 많은 안동의 지역 특성에 맞추어, 화병을 줄이기 위해서는 안동 지역 사회의 노력과 함께 개인적으로 분노를 올바르게 푸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가부장적 질서, 권위적 질서로 집안에서는 분노를 승화시키기 어렵다. 즉 집안에만 갇혀 지낼수록 화병은 점차 심해지므로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사회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화병은 집안 내에서 생긴 문제이므로 집안 내에서 해결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미 형성된 집안의 유교적 질서를 바꾸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안에서 벗어나 직업을 가지거나, 자원봉사 혹은 각종 교육 활동과 사회생활에 참여함으로 억압된 감정을 풀 수 있는 기회를 다양하게 만든다면 화병은 훨씬 줄어 들 수 있다. 실제로 도시의 젊은 여성에게는 다른 신경성 질환은 있지만 화병은 거의 없다. 이 것이 사회생활의 참여가 화병의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