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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조곡 Mozartiana(글/궝정옥)

모스크바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어려웠던 일 중에 하나는 잠과의 싸움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4시 30분에서 5시 사이다. 씻고 저녁 먹고 늦어도 6시 30분 이전에는 잠자리에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10시 30분에서 11시 사이가 되면 어김없이 볼코프 선생님의 전화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볼코프 선생님의 제자가 된 후부터 선생님과 약속한 것이었는데 6시에 자고 11시에 일어나서 곡을 쓰거나 오케스트레이션을 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참으로 열심히 했다. 그러나 차츰 전화벨 소리가 싫어지고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수화기를 놓는 순간 일어나서 커피부터 끓여 마시고 책상 앞에 앉아서도 엎드렸다 일어섰다를 수 차례 반복하고 다시 커피 한잔을 더 마시고 나야 좀 정신이 든다. 그때서야 오케스트레이션과 곡을 쓰기 시작한다. 잘 풀려나갈 때는 잠도 오지 않지만 잘 안될 때는 연거푸 커피만 계속 마셔대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오븐 렌지위에 커피물을 올려놓고는 잠이 든 것이다. 매캐한 냄새가 나서 일어나보니 주전자는 과열되어 손잡이가 녹아 내리고 거기에 불이 붙어서 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후 얼마동안은 커피를 끓일 때면 그 때의 절박했던 상황과 당황했던 기억이 떠올라 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잠이 달아나곤 했었다.
그곳에서 공부하던 동안 늘 소원했던 것이 마음 편하게 잠 한번 실컷 자보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때 잠을 깨우기 위해 마셨던 커피와 창밖으로 멀리 보이던 K·G·B 학교건물의 불빛, 인적이 끊긴 새벽 시간에 혼자서 빨강, 파랑 불을 계속 바꾸던 신호등, 지금 이 가을에 너무도 아름답게 물들었을 자작나무숲과 까쉬따얀짜 거리들은 아름다운 기억들 중 하나로 남는다. 더욱 잊을 수 없이 감사한 것은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를 해주시고 졸면서 쓰다보니 클라리넷과 바순의 자리를 잘못 기보하여 당황해하는 나를 웃기시려고 악기가 힘들어하는 것을 흉내내시며 용기를 주셨던, 끼릴 볼코프 선생님과의 추억이다.

모차르트를 존경하던 차이콥스키의 마음 담아
이번에 소개하는 곡은 수업을 마치고 가끔씩 선생님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듣던 차이콥스키의 조곡 제4번 op61이다. 차이콥스키에 대해서는 지난번에도 소개했기 때문에 이 곡에 대해서만 소개하고자 한다.
이 곡은 <모짜르티아나>라는 표제를 달고 있는 것으로 모차르트의 작품 네곡을 편곡하여 모은 것이다. 모차르트를 매우 존경하던 차이콥스키의 마음을 나타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차이콥스키는 이 곡을 쓰는 동안 모스크바의 출판업자인 유리겐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곡을 편곡하는 동안에 느낀 흥분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으며 거의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략) 이 곡은 새로운 표현방법으로 성공할 것을 믿고 있습니다."
초연은 1887년 11월 15일 모스크바의 러시아 음악협회의 연주에서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악기는 플룻, 오보에, 클라리넷, 파곳, 호른, 트럼펫, 팀파니, 큰북, 하프, 현 5부, 글루켄쉬펠로 이루어져 있으며 4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 1곡은 원곡이 K574이며 가벼운 주제가 플룻과 바이올린으로 나타나고 이것이 차이콥스키 특유의 크레센도로 전개된다. 주제가 파곳과 첼로로 연주된 다음 관과 현이 받아서 끝내게 된다. 제2곡(미뉴엣)은 원곡이 K355이며 모차르트 후기 작품으로 바이올린, 플룻, 비올라가 주제를 노래하고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16분 음표로써 수식해주고 있다.
제3곡(기도)은 원곡이 모차르트의 모테트(아베, 베름, 코르프스)로, 리스트도 피아노 곡으로 편곡하여 <시스티나 예배당>에서란 제목을 붙이고 있기도 하다. 차이콥스키는 이 곡에서 기도라는 부제를 사용하여 경건한 느낌이 들도록 해 느리게 연주되며 특히 하프가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다. 제4곡(주제와 변주)은 원곡이 글룩의 오페라 <메카의 순례>를 주제로 10개의 변주곡으로 만든 것이다. 각각 10개의 변주곡에서 목관과 현악기의 특색을 살렸으며, 특히 8번 변주에서는 글로켄쉬펠과 바이올린의 피치카토가 인상적이다. 10번 변주에서는 각 악기가 자랑이나 하듯이 연주되다가 합주를 한 후 반음계적 음형을 관악기로 클라이막스까지 끌어올린 다음 곡이 끝나게 된다.
이 곡은 여러 음반으로 많이 나와 있지만 예브게니 스베플라노프의 지휘로 러시아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곡이 유명하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