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장(글/김윤한)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하나 둘 종종걸음을 치며 마을로 향했다. 마을 반대편 쪽으로 허술한 시멘트 다리가 하나 놓여있고 입구는 허술한 안내판 하나가 서 있다. '대한불교 수보리암 1.4㎞'.
다리를 지나 천천히 산길로 접어들었다. 땅거미가 깔리는 시간, 암자까지 가려면 족히 이십여 분은 걸릴 것이다. 암자로 향하는 사람은 혼자뿐, 산자락을 향해 완만하게 나 있는 오르막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이름 모를 새들이 우짖어댔다.
초가을이라지만 어둑살이 들자 제법 차가운 바람이 옷소매를 스쳐 지나갔다. 오 분 정도를 걸었을까, 다시 조그만 마을 하나가 눈 안에 들어왔다. 어느 옛날 이야기에서처럼 대여섯 채가 될까말까 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집집마다 빤한 불빛들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인가를 만나자 갑자기 시장기가 돌았다.
탁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문득 '무상함'이란 단어를 떠올
렸다. 탁호가 죽다니……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 그 소식을 듣고는 하마터면 현기증에 쓰러질 뻔했다. 20년이 넘게 티끌만한 소식 하나 흘려 보내지 않더니 그는 결국 그렇게 일찍 인생을 끝낸 것이다.
탁호와 나는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우리 마을은 면소재지에서도 30여리나 떨어진 외진 곳이었다. 십여 호 되는 마을에는 아이들도 제법 있었으나 탁호와 나처럼 동갑내기는 몇 되지 않았다. 더욱이 탁호네와 우리집은 작은 도랑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 누구보다도 가깝게 지냈었다. 마을 앞으로는 작은 강이 흘렀다. 우리는 여름이 들기가 무섭게 아침밥만 먹고는 늘 강에 나가 멱을 감거나 얕은 곳에서 피라미를 잡으며 놀곤 했다.
우리가 초등학교를 들어가 네 번째 여름방학 때였다. 그날도 탁호와 나는 형이 감춰놓은 작살을 가지고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우리는 물가에서 커 온 탓에 학교에 들기 전부터 자주 물고기를 잡으러 다녔고 심상찮이 반찬거리가 될 정도로 피라미를 잡아오기도 했었다.
내가 물고기를 쫓고 탁호가 물고기를 내 쪽으로 몰아부치면 물고기는 어느 순간 정신을 잃어버리고, 그 때 나는 쏜살같이 작살질을 하는 것이다. 큼직한 물고기가 찔려 올라올 때마다 우리는 환호를 지르며 버드나무 가지에다 물고기를 하나씩 꿰었다. 물고기를 꿴 버드나무 가지에 제법 무게를 느낄만한 때였다.
어른 손바닥보다도 더 큰 붕어 한 마리가 내 앞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탁호도 신이 나서 정신없이 물고기를 내 앞으로 몰아붙였다. 물고기가 잠시 넋을 잃고 있는 사이 힘껏 작살을 던졌다.
순간적인 일이었다. 탁호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감싸안고 앞으로 꼬꾸라졌다. 얼굴을 감싸안은 손가락 사이로 시뻘건 피가 흐르고 있었다. 개울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워낙 순간적인 일이라 나는 한동안 넋을 잃고 가만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빗나간 작살이 탁호의 얼굴에 찔린 것이었다.
다행히 작살이 눈동자는 피해 갔다. 하지만 왼쪽 눈두덩 위에 워낙 깊이 꽂혀 읍내 병원에 가서 꿰매기도 했지만 눈두덩 상처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았다. 대추알 만한 크기의 그 상처 자욱은 보통 피부보다 더 희멀건 색깔을 하고 있었고 꼭 화상을 입었던 피부처럼 더 번질거렸다. 그리고 더욱 문제는 수술이 잘못되었는지 상처가 덧나서 그랬는지 눈 모양이 보기 흉하도록 일그러진 상태가 되고 만 것이다.
어릴 때는 오히려 잘 몰랐지만 나이가 들면서 탁호의 그 상처는 내게는 어쩌면 탁호보다 더 큰, 정신적인 상처가 되어 나를 괴롭혔다.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늘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고, 특히 얼굴 상처때문에 여자애들 누구도 탁호와 가까워지려고 하지 않을 때, 탁호의 고민이야 말할 수 없었겠지만 나도 탁호못지 않은 괴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암자가 가까웠는지 희미하게 목탁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내 발자국 소리에 놀라 아마도 꿩인 듯한 날짐승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아올랐다. 오히려 나도 그 소리에 놀라 잠시 멈칫하고는 꿩이 날아간 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몹시 목이 말랐다. 헛입을 다시며 다시 암자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지리산 자락 어디에 있는 암자에서 사십구제중이라는 이야기는 탁호의 죽음을 내게 전했던 그 초등학교 동창이 바람처럼 일러주었다. 문득 그 '수보리암'을 찾아가기로 결정을 내린 것은 오늘 아침나절이었다. 비록 악연이 깊이 꼬여 있다지만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어찌 그를 원망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l 그런 가운데 탁호가 내게 주고 간 아픈 생채기도 함께 내 뇌리 속에서 뭉글뭉글 되살아났다.
내가 군대에 갔다와서 직장생활 때문에 서울 어느 변두리에서 자취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나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친구 소개로 숙희라는 이름의 여자와 한창 연애중이었다.
그날밤 아홉 시쯤인가 숙희가 나를 찾아왔었다. 둘이서 방안에 멍하니 앉아있는 것이 쑥스럽기도 했겠지만 그녀는 마다하는 나를 뿌리치고 굳이 걸레를 빨아 먼지 앉은 책상이며 가재도구를 닦고 방청소를 했다. 묵묵히 걸레질을 하는 그녀의 목선이 유난히도 가냘팠다. 가만히 다가가 조용히 손목을 움켜쥐었다. 참새 한 마리를 움켜쥔 것처럼 그녀의 손이 짜릿한 체온으로 내게 전해져 왔다.
그 때 누군가 밖에서 바람소리처럼 조용히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그녀의 손을 놓고 문을 열자 문 밖에는 뜻밖에 탁호가 서 있었다. 어떻게 내 거처를 알았는지 그렇게 나를 불쑥 찾아온 것이다.
갑작스런 방문에 놀란 나는 단칸 자취방에서 대접할 것도 없고 해서 소주라도 사올 작정으로 탁호에게 그녀를 소개하고는 곧장 가게로 내려갔다. 하필 그날 따라 인근에 있는 가게는 문이 닫혀있어서 시내 사거리까지 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몇가지 안주와 술을 사서 돌아오는데 한 이십여 분이나 지났다.
그런데 방안에 돌아와보니 탁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탁호뿐만 아니라 그녀까지도 함께 어디로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흡사 누가 싸우고 난 자리처럼 방안의 물건들이 이리저리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장미가 그려진 그녀의 붉은 스카프가 외롭게 선풍기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그 뒤로 그녀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로 연락을 취하고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어렴풋이 전해들은 소문은 그녀가 서울을 떠났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그녀도 탁호도 내 주변에서 아주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비록 내가 탁호에게 지은 죄가 있다지만 어떻게 친구 애인을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한동안은 무지하게 원망도 했었다. 그리고 나를 떠나간 그녀를 정리하기 위해 번민도 많이 했었다.
그러나 그것역시 아픈 과거이지만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홀가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얼굴 상처때문에 내가 지고 있던 빚, 그로 인한 고통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지자면 내가 탁호에게 입힌 상처보다는 탁호가 내게 준 상처가 몇 갑절 큰 빚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 나는 어쩌면 사람이 살아가는 어떤 규칙이랄까, 법칙같은 것을 느끼곤 했다. 내가 탁호의 얼굴에 낸 상처는 오랫동안 내 마음을 괴롭혀왔고 결국에는 흡사 빚을 받아가는 사람처럼 탁호는 내게서 그녀를 앗아간 것이었다. 어쩌면 내가 진 빚을 갚아야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요 삶의 규칙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비록 그 대가가 너무 크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비포장길을 오르자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시멘트로 포장한 긴 길이 암자를 향해 S자로 완만하게 뻗어 있었다. 걷기에는 비포장이 낫다고 하지만 어둠속에서 장마에 군데군데 파인 길을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장기도 들고 해서 포장도로가 나타나자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목탁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절집 사람 이외에 목탁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인듯 느껴졌다. 암자 주위의 온갖 짐승들만이 매일저녁 이 목탁소리를 듣고 있을 터였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거의 끝나갈 지점에 다다르자 드디어 암자 입구가 나타났다. 느티나무인 듯한 고목들이 어두운 하늘을 가리며 길게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다. 서로에게 아픈 인연의 씨앗을 뿌리고 또 거두어들였던 탁호, 이제 잠시 저승으로 떠난 탁호의 쓸쓸한 영혼과 만나게 될 것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어디서 한 무리의 귀뚜라미들이 적막을 흔들어댔다.
대웅전 앞에 멈춰서서 호흡을 가다듬고는 조용히 법당 문을 열었다. 법당 안에서는 오십은 지난 듯한 한 스님이 끊어질 듯 목탁을 치고 있었다. 법당 좌측에는 어두침침한 가운데 영단이 자리잡고 있었고 갓 스물이 될까말까한 젊은이가 고개를 숙인 채 엎드려있다가 인기척이 나자 내게로 눈길을 돌렸다. 죽은 탁호의 아들인 것 같았다. 어둠속에서이긴 하지만 메부리코에 큰 머리, 이십 년 전 내 자취방에 찾아왔던 바로 그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탁호의 죽음은 이제 내 눈앞에 뚜렷한 하나의 현실로 다가와 있는 것이다. 비록 나쁜 인연이 있었다지만 그렇게 죽어버리다니……. 내게 못다 갚은 빚을 스스로의 목숨으로 대신해 갚았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바깥에서는 바람이 부지런히 풍경을 울리고 있었다. 내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그때 누군가 내 등을 가만히 두드렸다. 눈물을 닦으며 뒤돌아 보았다. 아까 그 스님이 나를 향해 희미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아, 그런데 어둠속이긴 하지만 왼쪽 눈두덩에 흉칙스럽게 엉겨붙은 상처, 그는 분명히 탁호였다. 나는 어두침침한 눈을 비비며 영단 쪽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사진속에서는 우리 나이 또래쯤 되는 한 남자가 쓸쓸한 흑백사진으로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그럼 동창생이 전해 들었다는 탁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은 어디에서 나왔단 말인가? 동창생이 말했던 암자 이름은 같지만 탁호는 엄연히 이승 한 구석에서 나와 얼굴을 맞대고 있는데 말이다.
내가 탁호의 아들로 생각했던 그 청년은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며 영가 앞에 다시 엎드렸다. 그리고 한동안 깊은 침묵이 흘렀다. 그 스님 아니, 나와 쓰린 과거를 주고 받았던 그 탁호는 조용히 합장을 하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얼굴에는 주름이 어지럽게 패여 있었다. 나도 합장을 한 채로 마주 섰다.
"황운 스님"
탁호, 바로 그 초로의 스님이 내 손을 덥썩 움켜잡으며 내 법명을 불렀다. 탁호는 내가 승려가 된 것까지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삭발한 서로의 머리를 올려다보고는 속세의 그 무겁고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인연의 끈을 다시금 떠올렸다. 우리는 묵묵히 두 손을 움켜 잡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미타불 앞 양초의 촛농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밤이었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