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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이끌어갈 안동무용계를 꿈꾸며(글/임종교)

돌아보지 말라고 했든가.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기 마련이랬다. 뭔가 거두어들일 이때쯤이면 누구나 한번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된다. 오늘같이 비가 오면 그런 심란함을 더 부추인다. 이 비가 지나면 지천의 나무 잎파리들은 지금까지 묻혀있던 제 빛깔을 세상에 선명히 드러낼 것이다. 그때의 장관은 더 말해 무엇하랴. 묻혀있어야 할 때를 알고 나서야할 때를 아는, 결국 깡그리 비우고 마는 자연 앞에 새삼 부끄러움만 더해간다.

뚜렷한 성과나 가능성은 없지만 어디에 있던 혼자 걷는 길만큼 외롭고 힘든 건 없다. 안동에서 무용가하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몇 안되고 지금까지 40여명 이상의 문화예술인을 소개하면서 무용으로는 오숙자 선생 다음으로 두 번째라는 것만 봐도 그동안의 활동또한 미미했음을 알 수 있다. 중학교 3학년때부터 무용을 시작해 이제 마흔 둘이라는 나이를 가졌으니 안동에서 활동해온 그의 무용인생이 고스란히 안동무용계의 역사나 다름없을 터이다. 그렇다고 그의 활동력이 미미하다고 성급히 속단하기는 이르다. '째즈 아카데미'에서 만난 그는 무용을 한 때문인지 금방이라도 무대에 서라면 그럴 수 있을 정도로 흐트러지지 않은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현재 법상동 새마을 금고 3층에서 째즈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고, 예총 무용협회 안동지부장으 로 있는 남향란씨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제가 뭐 자격이 있습니까, 자랑할 것도 없는데 부끄럽고 쑥쓰럽네요." 처음 전화로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도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자신에 대해서도 그리고 무용협회에 대해서도 지금의 처지로는 뚜렷한 가능성이나 성과를 보여주기가 어렵다고 처음부터 솔직히 털어놓았다. 모처럼만에 무용인을 소개하는 터라 기대감이 한풀 꺽이긴 했지만 솔직함과 신중함을 보여주는 그가 오히려 더 미더웠다.

열악한 가운데에서도 공연 올려 그동안 무용인의 활동도 저조했고, 일반인의 관심밖에 무용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가 지부장이 되면서 이러한 분위기를 일신해보겠다는 의지가 경북무용제, 전주자매결연 초청공연, 중견무용가 초청공연, 김소라교수 초청공연, 안동예술제까지, 무용의 불모지라고 해야 할 안동에서 심심찮게 시민들에게 무용공연을 제공온 것을 보면 드러난다. 그러나 공연을 준비해서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 지부장이라는 직책은 무색하기만 하다. 실무적인 일을 도와줄 수 있는 회원이 없다보니 팜플렛 배부에서부터 모든 자질구레한 것까지 혼자 맡아야하고, 공연이 끝나면 뒷정리까지 그의 손이 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가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해 자신없어 했던 이유도 이런 일들을 감당하고 맡아할 회원이 없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이번 안동예술제에서도 실무일은 제쳐두고라도 무용협회에 주어진 공연시간을 다 맡을 만큼 역량이 되지 못해 전주무용단을 초청하고, 자신의 제자이기도 한 대구 효대 학생들까지 불렀다. 그렇게하고도 전체공연시간이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올해들어 중견무용가 초청공연이나 김소라교수 초청공연 등 지방에서 중앙의 무용가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남향란씨의 노력이 컸다. 93년 무용협회가 생기기 이전에는 소규모의 학원 단위로 여는 발표회가 전부였던 것이 안동 무용계의 현실이었다. 무용협회 초대회장이었던 최성옥씨와 그가 주도가 되어 무용협회를 만들어놓고도 활동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된 데는 지역적 특성상 무용인구가 많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지만 열심히 키워놓으면 대학진학으로 외지로 모두 빠져나가고 마는 현실도 한몫을 했다. 또 현직 교사들로 이루어진 회원들도 교육무용만 전담하다 보니 무대에서 막상 뛸 사람은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들이다보니 전근이나 결혼을 이유로 나가는 분들도 많고, 무용과가 없다보니 가르쳐도 모두 외지로 나가버리고, 학교 선생님들도 가정살림하면서 이 일에 전념한다는 것도 힘들고 나이고 있으시고 교육무용만 하시다보니 이래저래 공연을 직접 하시기는 힘들지요." 그래서 한번 공연을 하려면 나가있는 제자들도 부르게 되고 주위의 도움도 받고, 초청공연의 횟수도 늘리게 된다. 우선은 많은 사람들에게 무용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고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렇게 힘들여 공연을 올려도 막이 내리는 것과 동시에 실체가 없어져 버리는 일회성 공연에 지나지 않는 것이 더 허탈하고 걱정되는 일이었다

인력난, 경영난 예술분야도 마찬가지 그런 문제를 극복해보려고 그가 지부장을 맡으면서는 결혼으로 인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만두었던 남향란무용연구소를 째즈 아카데미로 이름을 바꾸고 무용학원을 다시 시작했다. 무용협회 공연을 지속적으로 제대로 끌고 나가보겠다는, 그래서 안동에 무용의 꽃을 한번 피워보겠다는 그의 포부가 깔려 있었다. 부족한 인적자원은 학원을 열어 학원생들과 회원인 무용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모으면 무용하는 사람이 없어 공연을 못하는 일은 해결될 것이고, 무용협회 연습장으로도 공간확보가 되기 때문이었다. "순전히 무용협회일 때문에 학원을 시작했지요. 학원생들을 가르쳐서 무대에 올려보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어렵고 그러네요." 그가 81년 남향란무용연구소를 할 때까지만 해도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로 나누어 했을 만큼 무용을 배우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세파트를 다 합쳐도 예전의 한파트 정도가 안된다고 한다. 인력난 못지않게 경영난도 마찬가지다. 안동의 경우 다른 인근지역에 비해 문화예술지원이 극히 열악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공연예술분야 중에 무용은 그 부대비용이 많이 든다. 특히 무용을 돋보이게 하는 의상을 구입하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다. 발레의 경우 의상비만도 몇백만원이라고 하니…. 이런 상황에서 매 공연때마다 새로운 기획을 가지고 무대 올린다는 건 하늘의 별을 따는것보다 더 힘든 일일 터이다. 그러다보면 공연의 내용은 식상해지기 마련이고 관객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는 악순환은 계속된다. 예술분야의 가장 큰 생명력인 '창조'라는 부분이 무시되면 그건 예술로써 가치를 담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녀는 주부로서의 알뜰함까지 합해 이런 상황을 잘 극복하고 있는 것 같다. 현실에 잘 적응하는 편이라는 그는 이번 예술제에서 한국무용 '香' 공연의 의상은 지난번 문화거리에서 품바공연을 했을 때 입던 개량한복을 염료만 사서 염색해서 마련한 것이란다. 어떻게 보면 궁색해지기도 하련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정해진 예산안에서 활동은 불가능하다. 결국 처음에는 회원들의 회비를 거뒀던 것을 이제는 지원비만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 것도 그의 이런 다부진 살림살이 덕분인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거든요. 남 부러워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거지요. 이런 것도 다 선생님께 배웠지요."

특별한 사제지간 그는 무용을 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스승으로 단연 최원경 선생을 꼽는다. 최원경 선생은 고 김상규 선생의 부인으로 현재도 대구에서 최원경무용연구소를 하고 있기도 하다. 그에겐 스승이기도 하지만 여느 모녀사이보다 더 친밀할 만큼 특별한 사제지간이라고 한다. 그가 무용을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때로, 최원경 선생이 안동에서 최원경무용연구소를 차렸을 때다. 이전에는 오숙자 선생에게 무용을 잠시 배우다가 학원이 없어지고 마침 그의 집 앞에 최원경무용연구소가 생긴 것이 인연이 되어 81년, 남향란무용연구소를 내어 독립하기 전까지 최원경 선생 밑에 있었다. 그는 대학진학을 포기했다. 당시 가고 싶은 학교에 진학하지 못해 한참 상심하고 있을 때 최원경 선생이 무용가는 학교에 머무는 것보다 사회생활하면서 무용의 길을 닦는 것도 괜찮다며 자신도 그랬었다고 독려했다. 그 이후로 그는 최원경 선생에게 현대무용을 배우면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틈틈이 백연우 선생에게 한국무용을 사사하고 국립발레단 연수도 77년부터 85,6년까지 계속해서 받았다. "한번도 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후회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학교에 다녔던 애들보다 더 열심히 배웠고 더 많이 배웠다고 생각해요. 선생님과의 만남은 저에겐 행운이었어요." 그는 무엇보다 무용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사람으로서, 한 여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도 같이 배웠다고 한다. "무용하기 전에 모든 인간생활에 대한 걸 배웠어요. 엄마 같으시지요. 대단한 미모이시고 인간적으로 한 여자로 존경하지요. 뭐든 남탓으로 돌리기보다 내탓으로 돌리고 흐트러짐없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냥 걸을때도 무용하는 것 같이 생활이 곧 무용이신 분이지요."

째즈댄스 가르치며 무용의 점진적 대중화 꾀해 조근조근한 말투와는 다르게 무용협회의 문제에 관한한 힘들어하면서도 적극성을 보였다. 책임을 목숨처럼 생각한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있게 무용협회 일을 해내고 있다. 무용협회 일만큼 안타까운 일 중 하나는 무용이 아직 안동에서 사람들의 생활속에 자리잡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라는 거다. 돈이나 들이면 되는 것으로 무용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그래서 무용을 대중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해서 시작한 것이 째즈반 운영이다. 째즈댄스에 대한 홍보가 시작되자 흥미를 가지고 문의를 해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전문강사를 초빙해서 현재 일주일에 두 번 주부반과 직장반을 운영하고 있다. 사람들이 많아지면 시간도 늘리고 째즈댄스도 무용협회 공연 무대에 멋지게 선보일 계획을 갖고 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에도 째즈반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무용하면 선뜻 배우겠다는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이것을 적극 활용해 점진적으로 무용인구를 확대시킬 생각인 것이다. 마침 저녁 시간에 째즈댄스 수업이 있는 날이라 한번 배워볼까하는 마음도 있어 다시 찾았다. 유연한 몸놀림의 강사를 쫓아 아직은 서툴고 어색하지만 열심히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달밤에 체조도 아니고 비오는날 밤에 뭔가 싶겠지만 음악에 따라 몸을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생활과 피로에 지친 몸과 마음이 활기를 찾아가는 듯 하다. "무용은 굳이 아름다움과 결부시키지 않더라도 몸을 움직이는 거니까 건강을 위해서 좋지요. 생활도 긍정적으로 되고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생활이 달라져요. 안 움직이는 것 자체가 답답하고 더 늙고 그렇지요. 생활과 멀리 떨어져있는 게 아니라 음악이 나오면 몸을 좀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즐기고 그러면 좋겠어요." 용상시민공원에는 아침마다 운동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다. 그 사람들을 위해 음악을 틀어놓고 포크댄스라도 출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면 무용은 우리 생활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로 자리잡아 갈 것이란 게 그의 말이다. 그는 또 무용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초등학교와 여성회관 주부들을 대상으로 무용강습을 나가고 있기도 하다.

그는 이제 무대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이젠 무대를 마련하고 그 무대에서 맘껏 끼를 발휘할 무용가와 그를 지켜보고 즐기는 관객들을 이어주는 일에 더 열중하고 있다. 그래서 올 연말에는 전국무용제에서 대상을 받은 팀을 초청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무용가로 무대에 서는 것은 결혼한 이후부터 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을 단련하는 일만은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전성기가 지났다는 말 듣기 싫어서도 아직까지도 열심히 해요. 하고 있는 한 저력이 있다, 역시 다르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지요." 아직도 무대에 설 날을 꿈꾸며 자신을 놓치않고 있는 남향란씨. 지금은 혼자나 다름없이 안동무용계라는 잘 굴러가지 않는 수레바퀴를 힘들게 조금씩 옮겨가고 있는 그의 모습이 불안해보이기도 하지만 그는 언제나 주위의 무용인들을 받아안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언제라도 앞에서가 아니라 뒤에서 수레를 받쳐줄 준비도 되어 있다고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무용협회의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았다고나 할까.<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