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탈하고 솔직한 방송인 김민정 아나운서(글/노영옥)
새삼 '풍경소리'가 그리운 시절이다. 그 맑은 공명의 울림을 간직한 '사람'을 사랑하고픈 사무침의 계절, 그것도 싱그러운 주말에 충분히 마음을 설레게하는 한 여인과의 인터뷰가 있었으니, 다만 내가 남아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잘나가던 댄스가수의 유행가 제목처럼 '그녀는 예뻤다'였고, 오늘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현 안동문화방송국 아나운서로 있는 김민정, 바로 그녀다.
방송국 로비에서 기다리길 잠시, 빈자(貧者)에겐 언제나 반가운 자판기 커피와 더불어 그녀는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그녀는 귀에 설지 않은 또랑한 목소리로 '주저리 주저리' 자신의 일상을 소탈한 모습으로 엮어내 주었다. 뛰어난 카메라매너에, 유연한 사고, 적당한 유머를 겸비한 채로.
내가 하면 잘할 것 같다는 마음으로 뛰어든 방송국
대구가 고향인 그녀는 안동 MBC에 96년 3월에 입사해 올해로 입사 4년째에 접어들고 있는 준고참(?)이지만, 입사 3년까지는 연차로도 안 쳐준다는 방송계에서는 '나 4년이나 됐어요'가 아니라 '나 4년 했어요'가 정언(正言)이다. 수습 석달을 거친 후 바로 현장에 투입되어 비교적 짧은 시기에 이것저것 방송에 관한 다양한 경험을 한 편인데도 요즘에 들어서야 비로소 방송일이란 걸 조금 알 것 같다고 한다.
그녀는 원래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무용(발레)을 했었고, 대학에서는 현대무용을 전공했지만 체력적인 한계를 실감하고 십수년간 하던 발레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 그녀가 아나운서로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막연한 동경에서 출발한 것으로도 보인다. 그렇지만 뭐 한 번 한다고 하면 물불 안가리고 하는 성격인지라 너무너무 하고 싶은 마음에 그저 '저 일 내가 하면 잘할 수 있을것 같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대학 4학년때 덤벼든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중학교 때부터 방송을 접했었고, 입사 전에는 울산 MBC에서 엠씨로 활동하기도 했다.
갈수록 부족하단 생각 들어
아나운서로의 그녀의 하루는 아침에 6시반까지 출근해서 아침종합뉴스와 스튜디오에서 진행을 하고 퇴근했다가, 다시 2시에 출근이다. 새벽같이 출근하니 아침식사는 거의 못하고, 방송=시간엄수에 따른 스트레스는 기본적으로 감수해야 한다. 방송일이란 게 그렇지만 긴장의 연속이다보니 스트레스성 두통에 시달리고, 주작업장인 부스는 방음설비로 사방이 막혀 공기도 잘 통하지 않아 비염, 감기는 달고 살고, 바쁘고 피곤한 생활의 연속이니 자칫하다 갈라지는 소리라도 날라치면 아나운서로서 직무유기이다.
잘난 것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지만 다만 자신이 하는 일이 그렇기에 뭍사람들의 입담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위치이고 보니, 어디가나 입조심에 몸조심, 많이 태연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에 따른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다.
"옛날 같으면 편하게 즐기면서 보았을 방송이 이제는 라디오를 들어도 일인 거예요. 아, 이 때 이 상황에서 이 멘트를 했구나, 왜 저렇게 했을까. 텔레비전을 보면서는 시선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어떤 멘트를 하는지, 나 같으면 어떻게 하겠다, 그렇게 되더라고요. 짬 나는 대로 모니터하는 거지요."
겉으로 보기엔 잘나가고 있는 것 같으니 결혼한 친구들은 부러움반 질투반 섞인 우스개소리로 우린 집에서 편하게 잘만 사는데 너는 팔자가 사나워 그 고생을 하는 거라며 은근히 시샘을 하기도 한다.
소탈한 성격에다 사람들하고 얘기하는 거 재미있어하고, 어디가나 적을 안 만들고, 사람관계가 불편한 건 제일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은 낮은 자세로 사람들 얘기를 많이 들어줘야 하는 방송일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는 잘 모르지만, 찾아 다니면서 보고, 혼자 익히면서, 자기가 길을 잡아 나가야 하는 아나운서라는 힘든 직업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늘 생각은 어떻게 하는가 하면 열이면 아홉명이 싫다고 해도 한 명이 좋다고 하고, 아무리 좋다고 해도 한 명은 싫어할 수 있는 게 방송이니, 누구보다 (무엇이 부족한지) 자기가 제일 많이 잘 알기 때문에 절대로 자만하게 되거나 하는 그런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라고.
뿌듯함이랄 것까진 없지만 그래도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니까 굉장히 좋은거고,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엔 무르익는 자의 겸손이랄까 갈수록 부족하단 생각이 든다고 한다.
"라디오 프로그램 할 때는 '아, 나 더 이상 쏟아낼 게 없다', 되게 잘났다고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내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보니까 내가 아나운서라고 얘기하는 게 부끄럽고, 이건 시청자나 청취자를 기만하는 거다(웃음) 그런 생각도 많이 했었어요, 아나운서는 만들어지는 거라고 하지만, 아직은 모양만 갖춰진 것 같고 내가 정말 이렇다고 보여줄 것은 없으니…, 노력해야죠."
생방송 초년병의 눈물
역시 방송의 맛은 '생방(송)'에 있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성격적으로 맞는 것도 '정오의 희망곡'같은 FM이지만, 현재 진행하고 있는 뉴스또한 그것을 하면 왠지 자신이 단정해지는 것 같고, 깔끔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 좋단다. 뉴스를 진행하면서는 가장 명확한 전달을 위해 나름대로는 표정이나 어감에서 차이를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아나운서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소양을 지켜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기사를 씹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그 긴장이 오죽했으면 그러랴.
여기서 아나운서 초기시절 진땀나는 절대절명의 에피소드 한 토막을 들어보자.
3분짜리 뉴스 기사 하나가 뒤집혀 있는 것을 모르고 화면도 준비 안된 상황에서 뉴스를 줄기차게 읽어내고 보니 어제 이미 나간 뉴스의 기사더란다. 열악한 환경의 여파라기보다 투철한 공영방송의 재활용 원칙에 입각, 이면지를 사용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간신히 뉴스를 끝내고 눈물이 범벅이 된 채 나와서는 동료들과 같이 안동댐에 가서 소주 마시며 그 챙피함과 아슬함을 달래기도 했다고.
전화데이트를 하면서 사람살이에 대해 많이 듣게 되고 또 그만큼 나누게 되는 것도 좋지만, 모든 프로그램에 구구절절 기나긴 장문의 편지를 써오는 청취자가 있어 엠씨들로 하여금 그 이름을 외우게 하는 것도 이젠 다 옛날의 일이 돼버렸다. 요즘 청소년들은 선물 따라가고, 편지니 엽서니 하는 것보다 즉석에서 바로 이루어지는 뭔가를 원하는 추세라고 한다.
라디오 프로그램 디제이를 하면서는 방송멘트도 직접 쓰고 음악 선정도 본인이 해야 하기에 진짜 정신없지만 하다보니 어느새 요령이 생겼다. 음악 나가는 3분 동안에 화장실도 다녀오고, 커피도 한 잔 마실 만큼 여유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라디오 디제이를 하면서 우리나라 음악이 갖는 식상함에 대해 고민도 하게 됐고 타성을 깨고자 하는 그녀 나름의 작은 노력이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일례로 사람들은 특히 청소년들은 가수의 노래를 들을 때조차도 보여지는 게 단 줄 알지, 가수의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려 들지 않는다. 필요성을 못 느낀 까닭도 있겠지만 보여지는 것이란 많은 부분 방송에서 만든 것이니 방송하는 사람들이 음악을 선곡할 때 신경을 많이 써야 될 부분이라고 말한다.
지역성 살린 방송으로 극복해야
다른 외국과의 비교는 차치하고라도, 중앙방송과 지역방송 간에는 기본적으로 발생하는 필연적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지역방송이 중앙방송과 동등한 차원에서 보여지길 희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그 대안으로 중앙방송 무작정 따라하기식이 아닌 차라리 안동이 갖는 지역적 특성을 많이 살려내는 방송을 하여 듣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리라고 했다.
자연환경이 뛰어나고, 특산물이 많다는 안동에 4년 동안이나 있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을 만나거나, 여러곳을 돌아보거나, 안동의 문화공연을 생각처럼 많이 찾아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지형적인 오지인 데다가 막혀 있고, 그래서 발전이 더디 되고……, 그나마 뭔가 하고자 하는 안동의 젊은이들조차 모두 외부로 나가는 상황에 대해 무엇보다도 교통의 지대한 영향력에 제일 먼저 그 문제의 중요성을 꼽는다.
안동의 문화적 여건에 대해서는 솔직히 특별히 생각해본 게 없지만 안동이 졸지에(?) 뜨고 있는 상황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 숙박시설, 먹거리가 없고, 볼거리는 많다는데 딱히 이렇다고 보여줄 만한 것은 없는 것 같다고 한다. 한 마디로 개선될 부분이 많을거란 말엔 공감하면서도 왠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인 까닭일까. 그녀의 말처럼 교통이 뚫리고 있으니까 좀 좋아지려나.
폐쇄적인 안동정서
안동 아이들의 정서를 가장 단적으로 나타낸 말을 꼽으라면 '튀면 손해다'는 말일 것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안동의 지역적 특성과 부딪히는 부분으로 폐쇄적이며, 말을 하는데 있어 굉장히 소극적, 수동적이라고 한다. 청소년 대상 방송을 모니터해 보면 흔한 말로 촌놈이라고 무시한다는 듯한 피해의식 같은 것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단다. 결코 그게 아닌데 여기에는 또 교육의 문제도 있는 것 같다고 한다.
현 리포터로 활동하고 있는 대학생 친구들을 만나 보아도 '아, 조금 더 폭넓게 생각할 수 있을텐데, 좀 더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을텐데 보여지는게 그러니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어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얘기해야 하는데 상하관계로 너무 규정지어 보니까, 사람을 끌어안기보다는 오히려 폐쇄적으로 흘러간다는 인상을 심어주게도 된다고.
특히 안동의 고질적인 병폐, 지양하고 싶은 정서를 아프게 꼬집낸다.
"남의 말을 참 많이 한다는 거, 잘 알지 못하면서 잘 안다고 얘기하는 거, 특히 남의 얘기에 대해서 내가 느낀 만큼만 얘기하면 되는데, 자기 생각이 아니라고 마구 뱉어내는 거, 솔직히 남말하면 좋은 얘기보단 좋지않은 얘기들을 하게 되잖아요."
참 일리있는 말이다.
청취자와 같이하는 솔직한 방송
청취자나 시청자들에게 아나운서로서 어떤 모습, 어떤 이미지로 다가갔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한다.
"……되게 어려운 질문같은데(웃음), 있는 그대로죠 뭐. 있는 그대로. 그냥 방송할 때 잘하고 싶고, 항상 부족하고 아직까지도 막 열심히 보고 들어가는데도 막상 (발음을)씹고, 내용이 이거였는데, 이거 아닌 것 같다 싶을 때도 있고, (그러니까)어떻게 보여진다기보다 있는 그대로…."
보여지는 모습만으로는 가장 화려한 삶일 수도 있고, 기회가 되면 큰 데로 나가고 싶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안동)서도 생각해보면 할 일이 참 많더라고요. 이제 맛만 본 정도지 제대로 못해 본 것도 많잖아요. 뭐든지 막 해보고 좀 배워보고 싶더라구요, 어디든지 여행도 많이 해보고 싶고, 어학공부도 하고,"
이렇게 배움에 대한 욕심에서 나아가 비겁한 짓 하지 말고, 정말 참된 인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인간적인 욕심이 풍부한 아나운서에게 만족스러운 순간이란 있을까, 있다면 어떤 때일까, 문득 궁금해져 묻는 말에,
"뭐든지 잘한다 소리 들으면 좋겠지요. 내가 만족했을 때 '아, 내가 해냈구나. 다른 사람들과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FM 하나를 맡아도 아, 이 프로 참 재미있다. 다른 것보다 그거 들으면 편하다' 친구들한테 얘기하듯이, 방송은 들어서 편하고 재미있어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방송, 그러니까 같이 가는거요. 늘 함께 호흡한다고 생각하고, 절대로 태만해지지는 않을거예요. 매너리즘에 빠지지는 일 없이." 당당히 미소짓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다.
사람이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는 중요하다. 그리고 어떤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있는가도. 그러나 있는 곳에서 자신이 처한 환경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는 더욱 중요한 일이다. 그리하여 살아 있는 눈빛을 간직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일 수 없다.
차가운 인상을 가졌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그녀지만 화면 받으면서 늘 웃고, 그러니까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주위사람들또한 푸근해졌다고 하지만 그 말 때문이 아니더라도, '앞으로도 계속 마이크를 잡고 싶어요'가 그녀의 진정한 속마음일 것임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축제가 한창인 가을, 가을처럼 익어가는 안동의 한 젊은이를 만나면서 나는 문득, 습관처럼 그리워지는 '풍경'같은 그리움을 그녀에게 기대해도 무리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정서를 해치지 않는 약간의 환상을 가미한 채로 말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