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가 실을 뿜듯이, 임청각(臨淸閣)(글/이 완 규)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고향의 논밭이 거칠어지거늘 어찌 돌아가지 않을소냐.
내 이미 덧없이 살아온 지 오래이건만, 어이 상심하여 홀로 슬퍼하는가？
나 이제 깨달았노라. 지나간 일이야 돌이킬 수 없지만 오는 일은 좇을 수 있음을.
참으로 길을 잃고 방황했으되 아직은 그리 멀리 벗어나지 않았으니, 오늘 돌아가는 것이 옳을진대 지난날 머문 것이야말로 잘못임을 이제 깨달았노라."<歸去來兮./田園將蕪 胡不歸./旣自以心爲形役 奚 而獨悲？/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實迷途其未遠 覺今是而昨非.>
'돌아가리라.' 만고절창 『귀거래사』는 첫 글자에 벌써 가슴이 울렁거린다. 그렇다. 나도 돌아가리라.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공도자가 스승인 맹자께 여쭈었다.
"사람들이 모두 선생님께서 논쟁하여 이기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그러하옵니까?"
"내가 어찌 논쟁하여 이기기를 좋아하겠느냐. 부득이하여 그럴 따름이니라. 하늘아래 백성들이 살아온 지가 오래되었다. 천하는 한번 다스려지면 한번 어지러워지느니라."
-{맹자} [등문공하]-
일치일란(一治一亂)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변의 진리다. 크게 보면 치세나 난세나 다 역사의 자기 현현임이 분명하지만 왜소한 개인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는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다. 누가 난세에 나서 곤고한 삶을 이어가기를 바라리오. 허나, 또 그 누가 자신이 태어날 때를 선택할 수 있겠는가?
난세를 헤쳐 불멸의 공적을 쌓은 인물은 뭇 사람의 기림을 받지만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 전원으로 돌아간 인물은 왕왕 무능력과 패배의 낙인만이 뒷날 그의 이름 위에 드리운다. 그런데 정녕 조직에 부응하고 사람에 부대끼는 생활을 생래적으로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오류선생(五柳先生) 연명(淵明) 도잠(陶潛, 365∼427)은 한(漢)의 치세기를 지나 난세 중의 난세인 위진남북조 시대를 살았다. 빈한한 가정에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차에 걸쳐 벼슬길에 나아갔으나 번번이 견디지 못하고 물러났다. 연명의 다섯 번째 출사이자 마지막 벼슬살이는 팽택(彭澤)지방의 수령이다. 그는 『귀거래사』의 서문에서 '팽택은 집에서 거리가 백 리 정도며 공전(公田)의 수입으로 생활할 수 있어 나아갔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마음이 가는 곳은 언제나 전원이었다. 그가 쉽게 물러나기만 한 것은 난세의 벼슬살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벼슬한지 며칠만에 고향을 잊지 못하여 돌아가려는 마음이 생겼다. 어인 까닭인가? 타고난 성품이 저절로 그러한 것은 고치고자 부지런히 힘써도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굶주림과 추위가 비록 절박하다 하더라도 본성을 떠나면 온갖 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귀거래사 서문}-
그런 법인가? 바람 부는 대로 몸을 눕히는 풀잎처럼 살 것이며, 창랑의 물이 맑은 날은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린 날은 발을 씻으면 될 것을……. 부평같은 한세상 무엇이 그리도 애닳아 꼭 자기식으로만 살아야 하는가. 성인은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법이며, 세사의 추이에 따르는 것을 그대는 진정 모른단 말인가?
"이보시오! 내가 듣건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모자와 먼지를 털어서 쓰고, 새로 몸을 씻은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했소. 어찌 깨끗하고 깨끗한 이 몸으로 세상의 더럽고도 더러운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어부사}-
오류선생 연명과 삼려대부(三呂大夫) 굴원(屈原, B.C. 343?∼B.C. 277?)은 그 마음이 가는 곳이 여느 사람과는 매우 달랐다. 허나 그들은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세속의 티끌을 뒤집어쓰면서까지 벼슬을 살 인물이 아니다. 연명은 처음에 일년 정도 팽택의 수령으로 있으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부임한 지 겨우 80여 일이 지나자 부랴부랴 짐을 싸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말았으니 동진(東晋) 의희(義熙) 원년(405), 그의 나이 마흔 하나 때의 일이었다.
이증의 산소
이증(李增,1419∼1480)의 자는 자겸(子謙)으로 여말선초에 영욕의 삶을 살다 간 철성군(鐵城君) 용헌(容軒) 이원(李原, 1368∼1429)의 여섯째 아들이다. 공은 서른 다섯에 사마시에 합격한 뒤에는 과거에 응하지 않았으나 음보(蔭補)로 진해, 영산[昌寧]의 현감을 지냈다. 공은 일찍부터 벼슬보다는 전원 생활에 뜻을 두었는데 영산현감으로 재직 중,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임기를 남겨둔 채 사직했다. 안동에 머물러 살만한 곳으로 여겨 안동부 남문의 바깥인 지금의 운흥동에 복거(卜居)하니, 누에고치에서 실이 풀리듯 반천년을 연면부절한 고성이씨(固城李氏) 안동입향조로 성망이 높다.
하지만 그 생애와는 별도로 공의 산소는 일찍부터 풍수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일본인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은 조선총독부의 촉탁을 받아 당시 민간에 널리 유포된 풍수관련 이야기를 정리했는데 총독부에서 그것을 1931년에 『朝鮮の風水』라는 책으로 펴냈다. 민음사에서 1990년 같은 제목으로 발간했다. 민음사판 『조선의 풍수』는 소리 소문도 없이 94년에 이미 11쇄를 찍었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하고 싶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풍수 지식을 거기서 얻고 있으며 여러 책들에 등장하는 우리나라 풍수 관련 설화나 전설같은 음택발복 이야기들도 거기에서 많이 인용한다. 그 책에는 유달리 안동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며 이증의 산소에 얽힌 이야기도 실려 있다.
"안동 미질(美質)의 수다산(水多山)에는 고성이씨의 선산이 있다. 이 산은 와우형으로 무덤이 와우의 뿔에 해당하는 곳에 있다. 그리고 부인의 묘가 와우의 복부인 유방에 해당하는 곳에 있다. 이 산에 묘를 쓴 다음 5대째에 자손이 번영하고 많은 고관이 배출되었고, 13대가 지난 현재에는 이 일문의 지손이 무려 오륙천 명이란 많은 수에 달했다. 이 묘지에 관해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고성이씨가 이 산에 묘를 쓴 다음 6대부터 계속 대관이 배출되었는데 참배하러 오는 후손들때문에 근처의 주민들이 받는 고통이 대단했다. 이 때 한 중이 와서 보니 실제로 묘가 좋아 대관이 속출하여 주민들의 고통이 줄지 않을 것인즉 자기에게 많은 시주를 하면 피해를 없애겠다고 하자 주민들이 찬성했다. 그 중은 이 산의 앞쪽에 있는 바위가 인각상( 殼狀,등겨,벼껍질 모양)을 하고 있는데 와우의 식량이 되는 곳에 묘를 썼기 때문에 대대로 현달하니 바위를 부수면 된다고 하자 주민들이 바위를 부셔버렸다. 이 일을 전해들은 이씨일문은 크게 놀라 재빨리 바위를 다시 모아 옛날처럼 해두었지만 그 뒤로는 소관밖에 나지 않았다."
음택이나 양택이 명당으로 소문이 나는 것은 다양한 경로가 있다. 그 중 일반인들에게 가장 흔하고 신빙성이 있다고 믿어지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후손의 영화, 즉 발복이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 뛰어난 인물이나 거부가 되거나 또는 그 반대로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그 원인을 조상의 산소에서 찾는 습관이 우리 생활속에 깊이 박혀 있다. 그것이 맞느냐 않느냐고 따지는 것은 종종 부질없을 정도로 그 습관은 완강하다. 풍수학인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맞닥뜨리게 되는 이 문제의 해결책을 나는 아직 모른다.
돌아왔노라！
"돌아왔노라！
바라건대 고상한 모임도 즐거운 놀이도 모두 끊으리라.
나는 세상과 어긋나거늘 다시 수레에 오른들 무엇을 구하리오？
사람들과 정답게 얘기 나누다 거문고 뜯고 글 읽는 즐거움이여, 한 점 근심 없도다."(歸去來兮/請息交以絶游./世與我而相違 復駕言兮焉求?/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
돌아왔노라! 오류선생의 포효에 옹송그리지 말자. 내 아직까지는 사세 부득이하여 이곳에서 서성거리고 있지만 반드시 전원으로 돌아가리라. 돌 정 신부(神父)도 쉰 다섯에 돌아갔으며 스승님께서도 세상과 어긋난 것은 선생과 같되 일흔이 다 되어서야 돌아가셨으니 나도 아직은 여유가 있으리라.
노래부르리
"부귀도 영원도 바라지 않노라.
좋은 날 홀로 거닐다 지팡이 세워두고 김이나 매리.
언덕에 올라 휘파람 불고 강가에 다다라 노래부르리.
조화의 섭리에 스러지리니 하늘이 주신 것을 즐길 뿐, 다시 무엇을 생각하랴！"(富貴非吾願 帝鄕不可期/懷良辰以孤往 或植杖而耘 ./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 復奚疑!)
마땅히 그러할 것이다. 내 걸어가야 할 길에 이미 세속의 명리를 끊었으니 어찌 소요하며 자적하지 아니하랴? 세상의 그 무엇이 이 즐거움에 짝할 수 있으리오. 정녕 속인은 모르리라. 이 가없는 평화와 드높은 정신의 경지를…. 스승님께서도 그러하셨다.
"점아, 너는 무엇을 하고 싶으냐?"
"예, 저는 다른 사람과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무슨 걱정인고? 각자 자기 마음이 가는 곳을 말할 따름이니라."
"늦봄에 새 옷을 마련하여 어른 아이 여남은 명이 기수(沂水)에서 실컷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쏘이다가 콧노래 부르며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호오, 그렇구나. 나도 너와 함께 하리라."
-{논어} [선진]-
임청각(臨淸閣) 이명(李 )은 자겸공의 다섯 아들 중 셋째이다. 그의 생몰년도와 행적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성종 17년(1486) 사마시에 합격한 뒤 음보(蔭補)로 형조 좌랑에 이르렀으나 갑자사화 때 조카는 사형을 당하고 그는 형인 낙포(洛浦) 굉( )과 함께 영해에 유배되었다. 중종반정 후 복직되었지만 벼슬살이에 뜻을 잃고 형과 함께 낙향하였다. 낙포는 낙동강 언덕에 귀래정(歸來亭)을 지어 풍류를 즐겼으며 그는 영남산 기슭에 집을 짓고 『귀거래사』의 한 구절을 따 임청각이라 당호하고 산수를 벗삼아 여생을 보냈다.
한 사람이 뒷날에 이름을 남기는 까닭은 다양하지만 우리가 임청각 이명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임청각 건물의 구조와 배치 및 조형의 우수성 때문이다. 나아가 그 건물의 자리매김, 즉 풍수적 입지의 탁월함 때문일 것이라고 여겨지는 후손의 영달이다.
한옥의 특성
임청각은 한옥이며 살림집이다. 한옥(韓屋)은 한국의 집이란 뜻이다. 집은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일상의 삶이 진행되는 개방 공간이며 동시에 폐쇄 공간이다. 그러므로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생활을 남김없이 보여주는 박물관과도 같다. 집의 구조를 보고 왜 그렇게 지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 나라의 자연 환경과 삶의 방식 및 그곳에 사는 사람의 가치관까지 이해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한옥에는 우리 민족의 생활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목수(木壽) 신영훈(申榮勳)은 우리나라가 서구화와 산업화의 격류에 휩쓸려 전통은 재래의 악덕만을 의미한다는 사고에 젖어 있을 때, 누구 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는 한옥의 가치를 발견하고 삼십여 년 동안 전국을 발로 뛰면서 한옥을 정리하여 80년 초 열화당에서 『한국의 살림집』을 상재했다. 나는 그의 책을 스승으로 삼아 공부하다가, 그 뒤 출간된 서수용의 『안동의 문화재』를 길잡이로 하여 틈만 나면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한옥이 보존된 안동의 골골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바깥으로만 나돌다가 코앞에 있는 임청각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목수가 정리한 한옥의 특성을 세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구들과 마루가 한 곳에 있다.
구들은 추위를 물리치기 위한 난방장치다. 우리는 이 구들을 온돌로 발전시켜 효율적으로 추위를 물리친 세계에서 유일한 민족이다. 우리나라는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이가 어떤 때는 무려 50℃를 넘는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다. 추위는 불을 때어서 강제적으로 물리칠 수 있다. 자연적 환경에서 추위를 물리치기 좋은 방법은 땅 쪽으로 가까이 가는 것이다. 가능하면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땅 위에 집을 지어서 추위를 물리친다면 방도, 창도, 문도 작게 하고 천장과 반자도 낮추어 건물의 내부공간을 폐쇄적으로 만드는 것이 좋다. 한옥, 특히 초가집의 반자가 낮고 방이 작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더위는 다르다. 더위를 피하는 법은 추위를 물리치는 방법과는 완전히 반대다. 방도, 창도, 문도 크게 하고 천장도 높게 하여 가능하면 넓게 개방하는 것이 유리하며 땅에서 떨어질수록 좋다. 오죽하면 나무 위에다가 집을 지을까? 더구나 더위는 추위처럼 강제로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부채가 고작이다. 오직 피해야 한다. 이 극도로 상반되는 조건을 한 곳에서 동시에 만족시키고자 노력하여 최선의 방법을 찾아낸 것이 바로 한옥의 구조다. 즉, 난방 장치인 구들을 온돌로 변형시켜 낮고 작은 폐쇄적 방을 만들어 추위를 물리치고, 냉방 시설인 마루를 방 옆에 넓고 높게 설치하여 더위를 피했다.
하지만 넓고 높은 마루를 설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만들기도 어렵거니와 자칫하면 난방에 결정적인 피해만 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일반 상민들은 냉방 설비를 포기하고 자연에서 더위를 피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큰 나무의 그늘이나 강가보다 더 시원한 곳은 없다. 몹시 더우면 집 밖으로 나가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민의 집은 추위를 물리치는 것이 최대 과제가 되어 점점 폐쇄적인 공간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허나 양반은 다르다. 그들은 상민의 교육과 다스림을 담당한다. 그러므로 학식으로 자신을 닦아 권위를 보존하고 행검(行檢)을 솔선하여 일상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 상민의 지표다. 더위를 상민처럼 피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재력을 활용하여 집 안이나 밖에 여름을 나는 공간을 설치하게 되는데 사랑채나 안채의 대청, 곳곳의 마루, 좋은 자리에 앉은 누와 정자 등이 그것이며 그 여름 공간의 구성이 한옥의 하이라이트다. 겨울철에 한옥의 여름 공간을 보고 추워서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많은 사람들이 한옥을 보면서도 공간의 용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만 하니 집을 구경하는 재미가 하나도 없을 수밖에 없다.
둘째, 단층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건물 내부 공간의 바닥 높이가 다르다.
일제시대와 새마을운동을 거쳐 산업화된 오늘날 우리의 집은 거의 한옥의 원형을 상실했다. 아파트가 가장 좋은 예인데, 한마디로 건물 내부 공간이 수평으로 되어있다. 이른바 입식 부엌이라는 말이 그 실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원래의 한옥 내부 공간은 부엌바닥이 집에서 가장 낮은 곳이고 온돌은 부뚜막보다 높으며 마루는 또 방바닥보다 높아서 같은 높이의 바닥이 없다. 천장의 높이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대개 변형은 되었지만, 한옥의 구조에서 생활하거나 살아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건물 내부 공간의 바닥 높이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왜 그런가에 대한 의문을 가져본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집은 그냥 다 그러려니 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절대로 다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옥만의 독특한 구조로서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건물 내부 공간구성 방법이다. 이 때문에 건물의 내부에 다양한 얼굴의 공간이 존재하게 된다. 숨바꼭질해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공간들이 어린이의 감성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리라는 것을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기능적 편리함을 금과옥조로 삼는 서구식 동선(動線) 개념은 살림집에서조차 정서순화 기능을 몰아내었다.
셋째, 툇간이 있다.
낮은 부엌바닥과 구들을 놓은 방바닥, 나무를 깐 마루바닥은 높이가 각각 다르다. 그러므로 각각의 공간에 드나드는 출입문도 자연히 그 높이가 다르다. 이는 공간의 이동에 몹시 불편한 구조지만 그렇다고 그 공간들을 하나로 꿰는 내부 출입구를 만들게 되면 공간의 독립성이나 냉·난방의 효율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므로 각각의 공간 외부에 출입구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내부 공간에서 밖으로 나온 뒤에 다른 공간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 이 때 공간 출입구의 높이가 문제가 되며 또한 비를 피하는 번거로움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하나는 툇마루, 쪽마루, 뜰마루 등을 놓는 툇간, 즉 죽담(봉당)의 설치이며 다른 하나는 길게 앞으로 나와서 툇간을 가리는 지붕의 처마다.
임청각과 나
나는 비오는 여름날 고향집 마루에 걸터앉아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바라보던 어릴 적 기억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지금도 장쾌하게 비가 퍼붓는 여름날이면 개다리소반을 앞에 두고 마루에 앉아 낙숫물 바라보며 술 한 잔 기울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어느 해던가 비오는 여름날, 나는 아무도 거처하지 않는 임청각에 홀로 앉아서 낙숫물을 보고 있었다. 그곳은 정침(正寢)의 사랑마루였는데 영천(靈泉)의 정기로 세 분의 정승이 난다는 우물방 옆에 있다. 누구와 함께했던지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달밤에 술을 들고 가기도 하면서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나도 반드시 이런 식의 집을 지으리라!"
나는 전원으로 돌아가서 내가 설계한 대로 집을 지을 것이다. 그 집을 설계하기 위하여 고건축을 공부했다. 혼자서 초행길을 헤매는 것은 기본이고 거의 미친놈이 되어 낯설고 물설은 마을에서 무너져 내리는 집을 기웃거린 것이 도대체 몇 년인가? 행여 집주인이 있어 뭐 때문에 왔느냐고 물을 때, 대답이 궁해서 머뭇거리던 내 모습이 그들에겐 얼마나 이상한 놈으로 비쳤을까? 수백 개가 넘는 고건축 부재 이름은 어디 물어볼 데도 없는데 용도와 모양을 기억하느라 가뜩이나 둔한 머리가 빠개지는 듯한 고생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세상에서 돈도 없는 내가, 옛날같은 한옥을 짓고 살지는 못할 거라는 실망으로 번민했다. 요즘의 건축 재료로 한옥의 특성을 살리는 집을 지으려면 아무래도 자재와 구조가 잡히지 않는 안타까움에 머리 속에서 수많은 집을 짓고 부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극복했으니 그 동안 기울인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나는 기필코 때가 되면 내 집을 지으리라.
우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건축업자가 미리 지어 놓은 집을 골라서 사게 된다. 주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집을 짓는 것은 거의 꿈같은 일이다. 그러나 막상 원하는 형태의 집을 대강이나마 설계해보라고 하면 난감하기 짝이 없다. 기껏 머리에 들어오는 생각은 베란다와 정원이 있는 서양식의 이층집이거나 영화속의, 지을 수 없는 집이 고작이다. 집을 설계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인이 짓는 집이 진짜집이다.
신영훈은 집의 형태와 기능 및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요소는 주인의 안목이 70%고 목수의 능력이 20%며 나머지 10%가 부재의 힘이라고 했다. 처음 그 글을 보았을 때는 전혀 이해가 안 되었는데 이제는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었다. 가묘(家廟)를 모시고 군자정(君子亭)을 거느린 임청각을 보면서 나는 이 집을 지은 주인의 안목에 경하를 보내마지 않는다.
임청각의 자랑
임청각과 관련된 고성이씨 일문의 자부심은 남다른 데가 있다. 건축적 아름다움이나 가치는 보물로 지정된 사실만 보아도 충분할 것이다. 해처럼 총명하고 밝은 사람이 되고, 달처럼 그윽하고 정감있는 사람이 되라는 소망을 담아 건물의 구조를 일월(日月)을 합친 용(用)자로 만들었다. 삼정승이 태어날 방과 멋들어진 군자정도 있고, 절묘한 입지와 야무지고 강건한 매무새로 범접하기 힘든 경건함을 유발하는, 그래서 내가 판단하기에 아주 우아한 가묘도 있으니 구경하는 재미가 그저 그만이다.
임청각 구경의 재미를 높이기 위해 임청각만의 독특한 문얼굴과 가묘를 살펴보자. 문얼굴은 출입하거나 빛을 들일 목적으로 문이나 창을 내려고 기둥 사이에 설치하는 수장목(修粧木, 기둥과 기둥 사이를 가로지르는 나무의 총칭)과 벽선(壁線, 기둥에 붙여 세우는 각재)의 짜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밝은 햇살과 맑은 공기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다.
한옥은 유럽의 건물들이 음산하고 축축한 외기로부터 가족들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하여 폐쇄적으로 덮어씌운 형태로 발달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옥은 서양의 집과는 달리 외부와 내부의 공간이 유기적으로 소통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는데, 그 특색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문얼굴이다. 집을 보려거든 그 집의 문얼굴을 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문얼굴의 구성은 집의 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임청각의 창과 문에는 문설주와 문지방을 제외하고 벽을 가로지르는 중방이나 띠방, 상인방 등의 부재가 없어서 문과 창이 마치 벽에 붙은 액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부재를 설치한 뒤 회벽으로 감추었는지 아예 없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문과 창을 설치한 곳을 나는 임청각 이외에는 본 적이 없다.
가묘(家廟)
살림집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건축물이 가묘다. 제례(祭禮) 공간이므로 일반인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막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집의 가장 뒤쪽에 있는 까닭에 알고서 찾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가묘는 특별한 의미와 엄격하게 절제된 구조를 가진 독특한 건물이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고조 이하 조상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던 집안의 사당이 가묘인데 설치된 시기는 고려말 주자학의 전래와 때를 같이 한다. 조선조 세종(世宗,1419∼1450)때에 이르러 국가적으로 장려하였으며 가묘를 설치하지 않은 사대부는 문책을 당하기도 했다. 그 뒤 유교적 윤리 관념이 생활화되어 사대부 양반층에게 일반화된 시기는 대략 선조(宣祖,1568∼1608) 이후가 된다. 가묘는 정침의 동쪽(왼쪽)에 설치하며 정면 세 칸에 도리가 다섯 개 걸리는 오량가(五梁架)로 짓는 것이 원칙이다. 내부 구조를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면 천장은 대개 연등천장이며 바닥에는 마루나 벽돌을 깔고 북쪽 시렁에 네 개의 감실(龕室)을 설치한다. 감실마다 탁자가 있고 위에 주독(主 )을 놓으며 그 속에 신주를 모신다. 신주는 고조고비(高祖考 )부터 고비(考 )의 순서로 서쪽부터 차례로 모신다. 집안에 수해나 화재, 도둑이나 병화가 들었을 때 가장 먼저 구하는 것이 사당이다. 신주와 유서를 옮기고 제기를 옮기며 집안의 물건들은 그 뒤에 옮긴다. 그 집안의 정신적 지주이므로 여염집의 다른 건물은 모두 단청과 공포( 包)의 설치를 금지했지만 가묘에는 허락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묘는 시채(施彩)를 하지 않았는데 조선시대 사대부의 검소한 생활과 자기 절제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제한된 건물 양식과 크기 안에서 신위(神位)를 모시는 집에 걸맞는 장엄미를 구현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세 칸 집의 단순 소박함으로 제례 공간의 장엄함을 연출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소박함과 화려함은 원래 서로 융화되기 힘든 미적 감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두 가지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조화시킨 건물이 빛나는 법이다.
나는 임청각의 가묘가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한 건축물임을 느낀다. 그 흔한 보아지도, 창방도 없으며 소로도 받치지 않아 단순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 단순함은 그냥 단순함이 아니다. 부재의 아름다움과 치목(治木)의 섬세함에서 결구(結構)의 짜임과 공간의 분할에 이르기까지 단아함속에 강건함을, 소박함 속에 위엄을 담은 보기 드문 건물이다. 뒷벽은 목심(木心)으로 공간을 균일하게 나누었는데 마치 열주(列柱)처럼 그곳이 성스러운 공간임을 암시한다. 나아가 오른쪽 박공 벽면의 공간 분할은 환상적이라는 말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내가 임청각에 갈 때면 이곳의 툇마루에 걸터앉아 기둥을 쓰다듬으며 자꾸만 봉정사 극락전의 단아하고 장엄한 모습이 오버랩되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나 고성이씨의 진짜 자랑은 이런 건물에 있지 않다. 이곳에서 태어났거나 그 영향이라고 믿어지는 자손들의 영달이 자랑이다. 영달도 영달이려니와 임청각의 후손은 무려 스무 대(代)에 이르도록 양자를 들이지 않고 종자종손으로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야말로 그들의 가장 큰 자랑일 것이다.
이런 사실을 설명할 때 우리가 흔히 쓰는 것이 풍수의 명당발복론이다. 묘터발복이 더 쎄냐? 집터발복이 더 쎄냐? 하는 문제는 술사들의 소관이니 제쳐두더라도 풍수학인으로서 나는 임청각의 입지에 대해서 풍수적 해석을 해야하는 고민이 생겼다. 임청각을 자주 보면 볼수록,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고민은 커져갔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 문제를 거론해 놓은 곳이 없었다. 눈 밝은 선인들이 왜 이 임청각을 그냥 지나쳤을까? 설마 실제로 특기할 만한 것이 없단 말인가? 미련한 내 눈으로도 보면 볼수록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조그마한 단서라도 남아 있었으면…….
군자정의 시판 하나
95년 여름에 송현동에서 용상동으로 이사를 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법흥교에서 임청각을 보는 재미가 각별하다. 그 재미가 좋으면 좋을수록 임청각의 자리터가 나를 괴롭혔다. 간악한 왜인들이 단맥(斷脈)을 하기 위하여 임청각의 하반신을 잘라서 철도를 놓는 바람에 원래의 생김새를 잃은 불구의 땅이지만, 그래도 그렇지…….
잡힐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채로 그 해를 넘기고 다시 찾은 군자정에서 벽에 걸린 시판을 더듬거리며 읽다가 송강(松岡)을 만났다.
題李秀才江閣 이 수재 강가 집에 제함
綺寮高架翠蠶頭 아름다운 누각과 푸른 잠두봉이
俯揖紺寒碧玉流 검푸른 강물에 고개를 내미누나.
陰雨來時雙鯉躍 비 따라 잉어는 쌍쌍이 뛰고
壑雲橫外亂山稠 구름 비낀 골짝 너머 빽빽한 산.
淸尊自可邀紅友 맑은 잔은 제 스스로 술을 맞건만
曲應須喚莫愁 간드러진 노래는 수심만 부르네.
香土不曾吹入夢 꿈엔들 보았으랴 이런 터전을
他風月伴江鷗 풍류는 제쳐두고 물새와 벗하리라.
첫 구의 잠두(蠶頭)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임청각의 뒷산이 잠두봉이란 말인가? 그렇구나!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눈이 있어도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더니…….
잠두, 즉 누에머리 형상이라면 문제는 풀린 것이다. 임청각 정침은 누에의 오른쪽 눈무늬에 자리 잡고 있는 와혈이다. 횡대(橫臺)가 뚜렷하고 현릉(弦陵)이 곤충의 입처럼 선명하다. 문제는 풀었지만 그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 게 슬펐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이 시를 쓴 송강(松岡)이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했으니.
늙은 누에가 실을 뿜듯이
가파른 산밑에 살지 말고, 강가에 살지 말라. 예로부터 내려오는 이 격언은 우리나라의 기후 현상을 잘 반영한다. 여름철 집중호우 때 일어나는 참담한 일들을 보노라면 이 말은 실감이 난다. 어려서 기억이 전혀 없지만 사라호 태풍의 위력을 생생히 기억하시는 아버지와 형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나무며 집이며 산과 제방이 마치 종이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청각은 상당히 가파른 산에, 더구나 강 가까이 집을 지었으니 임청각 주인의 땅을 보는 안목이 높아서일까? 아마도 산신(山神)의 인도를 받았으리라!
거듭 말하지만 풍수 물형론(物形論)은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을 낳는다는 유감주술(類感呪術)의 일종이며 자연 친화적 공간 인식 체계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이며 다음은 아마도 옷일 것이다. 누에고치에서 뽑는 실이 명주실이다. 이 실로 짜는 명주(明紬), 곧 비단(緋緞)이야말로 문명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는 지금이나 미래에서도 최상의 옷감이니 옛날에야 두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옷으로 입기에야 서민으로서는 그림의 떡에 가깝겠지만 비단은 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누에를 치는 것은 내가 비단옷을 입기 어렵다하여 치지도외할 성질의 일이 아니다. 누에와 관련된 풍수설화가 많은 것은 그만큼 누에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에가 주는 혜택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누에와 뽕나무로 대변되는 물형이 주는 소응(昭應), 곧 발복의 내용은 무엇일까? 첫째는 비단같은 화려함과 비단옷을 입을 수 있는 부귀일 것이고 둘째는 누에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이다. 누에가 다 자라서 몸속이 투명해지도록 말갛게 변한 뒤에 입으로 실을 토하며 고치를 짓는 것을 보면 어디에 저렇게 많은 실이 들어있어서 자신의 몸을 감싸는지 신기하기 짝이 없다. 그러므로 늙은 누에가 실을 뿜어내는 것과 비슷하게 내 자손도 끝없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이 누에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내 자손도 누에의 실처럼 끝없이 이어지며 비단처럼 세상에 유익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된다. 이러한 소망을 담은 땅을 가리켜 선인들은 노잠투사(老蠶投絲)라고 이름붙였다. 임청각은 누에머리와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다. 게다가 앞에 흐르는 낙강과 반변천의 물길은 누에가 뿜어내는 실처럼 끝없이 흐르니 거기, 그 자리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자취와 닮지 않았는가?<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