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해체를 기다리는 성곡동 잿골(글/사진/ 이현정).jpg)
용상동에서 북쪽 계곡을 따라 5분여를 가면 성곡동 잿골이다. 마을 입구는 공사로 어수선하지만, 동네에 들어와 보니 여느 동네와 같이 여름날의 무더위로 한가하다. 어느 동네엔들 넋놓고 앉아 한숨 내쉬는 사람이 없을까만, 저기 벤치에 앉아 한숨을 내쉬는 아주머니는 어쩐지 무심코 지나칠 수가 없었다.
2000년 7월 “안동문화관광단지 개발”이 국책사업으로 확정되어, 유흥시설과 숙박단지 건설이 추진 중에 있다. 그 개발지역 중심에 성곡동 잿골이 있어 2005년 말에는 이곳 주민의 이주가 끝나고, 2015년에는 지금의 잿골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잿골에는 빈집이 여러 채 있다. 버려진 살림살이에는 먼지가 뿌옇게 앉았고, 동네 잔치라도 열 정도로 넓은 마당에는 버려진 땅에 가장 먼저 난다는 망초가 키높이로 자랐다. 이 집을 두고 간 가족들은 어딘가에 뿌리 내리고 살겠지만, 어딘들 나고 자란 집만큼 정이 깊을까. 버려진 집안의 구석구석에는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싸늘함만이 감돈다.
30여 가구 중 5가구 정도는 이미 마을을 떠났지만 보상문제로 아직 마을을 떠나지 못한 가구가 더 많다. 떠난 사람들의 빈자리가 곧 떠나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크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남은 이들이 쉬 떠나지 못하는 건 보상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여생을 보낼 양으로 무리를 하여 튼튼하고 반듯하게 지은 이층 벽돌집을 버리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문이며 지붕이며 하다못해 마당 한 구석까지 꼼꼼히 직접 손 본 집이라 더욱 그럴게다.
잿골 중앙에는 정미소가 있다. 낡은 정미소 처마에 주마등처럼 매달린 순찰함과 잡초만 무성한 골목길, 방범대 발길조차 끊어진지 오랜 골목안 허물어진 담장을 사이에 두고 늘어선 빈집들이 스산하기만 하다. 밤마다 마을 골목 사이사이 손전등을 들고 다녔을 마을 청년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정든 삶의 터전을 내어준 잿골 사람들에게 관광단지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