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의사의 술 이야기(글/김승열)
응급실 기피대상 1호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료진이 제일 싫어하는 환자는 어떤 환자일까? 대부분의 의사, 간호사들은 술 취하여 난동을 부리는 환자를 제일 싫어한다. 일반 사회 생활에서는 술 취하여 난동을 부리거나 주사가 심하더라도 참거나 피하면 되지만, 응급 치료의 특성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욕을 하고 폭력을 행사하더라도 의료진과 환자라는 관계가 있으므로 응급이 아닌 상황을 확인하기 전에는 진료를 해야하므로 피하거나, 참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폭행을 당하더라도 진료는 해야 하므로 응급실 의료진으로서는 술 취한 환자는 정신과 환자보다 더 진료하기 어려운 환자이다. 더욱 더 술 취한 환자는 항상 응급일 가능성이 높기에 더욱 더 심각하다.
의사들의 격언에 ‘술 취한 환자는 신경외과환자다’라는 말이 있다. 술 중독은 급성이건, 만성이건 정신과나 내과에서 치료하는 내과 환자인데, 뇌수술, 척수 수술을 주로 하는 신경외과 환자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뇌중풍의 증상과 술 취한 사람의 상태가 분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드물게 술에 취하여 뇌를 심하게 다친 환자를 단순히 술 취한 상태로 판단하여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고, 반면에 이러한 문제를 고려하여 고가의 검사를 하면 나중에 환자나 보호자가 왜 필요 없는 검사를 했냐고 항의하니, 술 취한 환자는 아무리 잘 진료해 주어도 그야말로 잘해야 본전이고, 폭행을 하거나 욕을 하지 않는 술 취한 환자는 오히려 고마울 정도이다. 또 이뿐 아니라, 술 취한 환자는 어떠한 연유이든 몸 전신에 외상이 많고, 따라서 법적인 문제가 따라 다니는 환자도 많다. 의료 외적으로도 의료진을 힘들게 하는 대표적인 환자이기도 한 것이다.
박수 받을 때 술을 떠나라
그렇다면 술은 어떻게 해서 사람을 이렇게 변하게 만들까? 여기에 재미있는 의학 상식이 숨어 있다. 흔히 생각하기로는 술은 해방감을 가져오게 한다고 믿지만, 의학적으로는 반대이다. 술은 억제 작용을 한다. 무엇을 억제할까? 의학, 생물학적으로는 술의 억제 작용을 ‘억제의 억제’라고 한다. 즉 보통 때 사람은 양심이나 이성 등의 통제 작용으로 본능이나 비도덕적인 사고나 행동을 억제하면서 살아간다. 술은 이러한 양심과 이성, 도덕심이라는 억제 작용을 억제한다. 그런데 술을 계속 마시면 억제 작용이 감정까지 억제하게 된다. 그래서 처음 술을 마시면 도덕, 양심, 이성의 억제 작용을 풀어주어 기분이 들뜨게 되고 쾌활해진다. 계속 술을 마시면 술은 감정까지 억제해서 우울해지게 된다. 처음 술을 마시면 웃다가, 술을 많이 마신 후에는 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즉 처음의 억제로 감정 표출이 되고 억제의 정도가 강해져 감정까지 억제되면서 슬픈 감정, 억울한 감정 등 부정적인 감정이 통제를 받지 않고 나오기 때문에 이러한 감정의 변화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술은 기분 좋을 때, 그야말로 ‘박수 받을 때 술을 떠나야’ 좋은 인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술에 대한 오해
그리고 술을 마시면 뇌의 호흡 중추도 억제가 된다. 술을 마시고 사망하는 경우는 술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대개는 호흡 부전과 이른 봄이나 겨울에 추워도 깰 수가 없어 사망하는 사례가 많으므로 만취 상태의 환자를 술을 깨우게 한다고 추운 곳에 방치하는 행동은 매우 위험하다.
또 만성 알콜 중독에 대한 오해도 깊다. 술 중독은 뇌의 질병이다. 그러므로 본인의 의지만으로는 금주는 매우 어렵다. 술 중독을 정의하기는 매우 길지만 간단히 말하면 본인의 의지로 술을 그만 마실 수 있다면 대부분 술 중독이 아니다. 술 중독은 본인의 의지만으로는 끊기 어려운 뇌의 질병이다. 이는 도박 중독이나 마약 중독도 마찬가지이다. 술 중독에 빠진 사람은 술에 대한 뇌의 반응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 이러한 이유로 술 중독에 빠진 사람은 술을 끊을 수는 있어도 줄일 수는 없다. 본인의 의지로 술을 줄일 수 있다면 술 중독이 아닐 정도이다. 참고로 금주를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금주 단체의 회원 가입과 참석이다. 대표적으로 A.A(익명의 금주 동맹)라는 단체가 있다. 이 단체는 금주를 한 사람들이 서로 돕는 자조 모임이며, 회원의 비밀을 보장하기 위해 익명을 사용하는 순수 민간 단체이다.
마약이나 도박 중독과 마찬가지로 술 중독은 환자 본인만이 아니라 대개는 한 가정을 파괴하고 가족 해체에 이르는 사회적 질병이다. 사회적 대책도 중요하며, 가족들의 관심만이 문제를 줄일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