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국 교육자의 안동 예찬론(글/권기성)

지령 100호를 맞는다니, 창간초부터 관심과 애착을 가져온 필자로서 감회가 무량하다. 오늘날까지 ‘안동’지의 터전을 가꾸고, 안동인의 삶의 질을 높혀 주고, 또한 안동 문화를 형성하는데 많은 기여를 한 발행인 및 편집위원 여러분들의 업적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우리 안동의 이미지가 영국, 중국, 일본 등 국내외에 걸쳐 그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은 바로 여러분들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특히 이번에 중국 교육계 중진들이 세명대학교 초청으로 안동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들의 예찬이 하도 각별해서 여기 글로서 남겨 놓고자 한다.
이들은 공?맹자가 태어난 중국 태안(泰安)지방의 고위 교육자들로서 예향 우리 안동을 들르지 않고서는 한국을 방문한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태안지방은 공자가 태어난 노(魯)나라 곡부와 맹자가 태어난 추(鄒)현을 안고 있는 곳으로, 도덕을 기리고, 학문을 숭상하고, 예의를 지키는 도학군자(道學君子)와 홍유석학(鴻儒碩學)이 많이 배출된 고장으로 이들 지역을 일컬어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고 한다.
이들 교육자 일행이 한국의 추로지향인 안동은, 중국 태안과 너무나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즉 천혜의 배산임수(背山臨水)로 자리잡은 선비의 고도, 인재의 고장으로, 그 기개가 태산교악(泰山嶠嶽)이라고 할 만큼 그들은 우직하면서도 믿음직스럽고, 무뚝뚝하지만 예(禮)를 논하고, 양반의 맥과 혼이 이어지는 유림의 고장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적 중심지고, 또한 역사적 뿌리가 깊은 인간적 삶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명당이라고 했다.  여기 이 안동을 보고 그들은 맹자가 말씀한 “천리(天利[時])는 지리(地利)에 못미치고, 지리는 인리(人利[和])보다 못하다”는 그 참 뜻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의 3대루라고 불리는 영호루(映湖樓)를 거쳐, 안동권씨, 안동김씨, 안동장씨의 시조를 모신 태사묘(太師廟)를 방문하여 안동 양반의 기지와 그들 호족의 역사를 인식하였고, 또한 중국에 있는 장씨의 족보를 알아내기도 했다. 이렇게 그들은, 볼 것도 많고 시간도 촉박한지라 서둘러 하회마을로 향해 부용대에 올라 태극형의 산과 강, 그곳에 자리잡은 하회마을을 한 눈에 조망하면서 안동 선비들의 면모와 안동 전통문화가 생생히 숨쉬고 있는 유교문화의 본향임을 느꼈단다. 1999년 영국 엘자베스 여왕이 이곳 안동을 가장 한국적인 곳으로 선택하여 찾은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고 본다.
더욱 안동에는 유림의 거두인 퇴계 이황의 체취가 어린 도산서원을 비롯, 서애 유성룡의 병산서원, 언젠간 임금님이 머무를 것이라는 곳 봉정사, 그리고 개목사, 우유당, 임천각등 명문세족들의 정묵온아(靜默溫雅)한 문화유적이 곳곳에 있어 우리 안동인의 사대부적 의식을 반영해 주고 있단다. 특히 도산서원은 한국의 추로지향의 중심지로 퇴계학맥이 연연히 이어진 유서깊은 곳으로 이들은 잠시 안동호를 바라보면서 마치 중국의 곡부(曲阜)에 온 착각을 할 정도로 그 분위기에 빠져 버린 듯 불역락호(不亦樂乎)를 되새겨 보았다고 한다.
이렇게 그들은 예향 안동에서 충(忠)·효(孝)·인(人)의 본 뜻을 음미하면서, 안동인의 국난극복시 의연한 대처정신을 알게 되었으며, 예를 숭상할줄 아는 그 많은 안동 성현들의 삼강오륜(三綱五倫)과 인의인(仁義人)의 예를 느꼈으며, 또한 한반도 인재의 반이 영남 안동인이라고 일컫는 “人多 安東”이란 말을 한국 곳곳에서 실감하게 되었단다. 공자는 오랫동안 왕에게 충성을 바쳐 국가 발전을 위한 많은 정책을 폈으나 주위의 견제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에 돌아와 제자들의 교육에 전념하였다. 그의 언행록 『논어』를 통해 그의 사상을 전파 시켰다. 이러한 사상의 중심은 인으로, 그것을 최고의 덕으로 삼고, 사람을 사랑하고 예를 실현시킬때 그 정당함을 나타내 상호상승·조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안동을 예향이라고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단다. 안동이 낳은 많은 인재들은 예를 숭상했다. 예가 지향하는 바는 인의 즉, 덕에 있는바, 그분들은 자연을 사랑함에 앞서 사람을 사랑했으며, 또한 사람에 대하여 올바름이 우선이며, 그것이 무엇인지 가르쳤다. 우리 인간을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순수한 행동으로 올바르게 되면, 바로 그것이 예가 된다는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고 난세라 할지라도 예는 살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오늘날 세상은 너무나 거칠고, 무례하고, 혼란스럽다. 오륜지도(五倫之道)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예는 접어두고라도, 인의와 권력을 훔치는 무리들이 득세하는 판국이 개탄스러우며, 또한 안타깝기 그지 없다. 공자도 일찍이 이를 우려하여 권력의 언저리에 진을 치는 위정자(爲政者)가 많을 수록 세상은 항상 어둡고 백성은 목말라 신음하게 마련이며, 정쟁은 그치기 어렵다고 했다. 현실이 그렇지 않는가?
자고로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예는 즐겁고, 자식이 부모에게 베푸는 예는 경건하며, 권력자가 국민에게 주는 예는 솔직하고 거짓이 없어야 한다.  이러므로써 바로 사회 전반이 아름다워지고 신의의 예가 형성되지 않겠는가.
여기서 이곳 안동인이나 중국의 태안인이나 모두 예를 다시 숭상할 줄 아는 예지(叡智)를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하면서, 이들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채 태안으로 돌아 갔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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