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이라는 숫자와 ′우리′(글/장형석)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100이라는 숫자와 참 많은 인연을 가진다. 늘 시험이라는 관문을 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100이란 숫자는 뇌리 안에 박혀, 이것을 목표로 하여 이를 성취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고 있다.
또한 100이라는 숫자는 일상생활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 예를 들어 인류의 역사를 세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세기는 바로 100년을 기준으로 하고 있고, 체력장의 종목 중에 100미터 달리기가 있고, 스포츠를 보다보면 100대 스타를 뽑고 있다. 이것뿐 아니라 대한제국기 신교육을 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던 고등학교나 대학교가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고 해서 대규모 행사를 치르고 있다. TV프로그램에서도 퀴즈 쇼 같은 경우 대체적으로 기본점수 100점으로 시작하고 있다.
왜 이렇게 100이라는 숫자는 우리 생활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일까?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우리가 현재 10진법을 쓰고 있으니까’, ‘가장 큰 수인 10의 곱이라서 가장 크고 완전한 수니까’라고 여겨서 그렇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한 수, 가장 큰 수라고 여겨지는 100이라는 숫자. 이것 때문에 우리는 웃고 운다. 인사고과에서 100점 만점에 몇 점, 시험성적이 100점 만점에 몇 점, 어느덧 현대인들은 100점 만점에 몇 점이라고 평가하고 평가받는 그러한 숫자의 놀음에 놀아난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 사람은 100점 만점에 몇 점’이 아니라, ‘그 사람은 괜찮아’, ‘진국이야’, ‘그 사람은 좀 게으르지만 실력은 대단해’라고 사람이 사람답게 평가하고 평가받았으면 한다.
우리는 종이위에 매겨지는 시험 점수나 퍼센트로 기록되어지는 숫자가 아니기 때문이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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