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안장터를 찾아서(글/김선주)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추석 대목이 어느새 찾아왔다. 추석연휴가 어느 때보다 빨리 와서 그런지 유난히 올 가을은 빨리 온 것 같다. 추석을 일주일여 앞두고 찾은 길안장. 풍성한 과일과 먹음직스러운 떡, 그리고 제수용품으로 가득한 대목장이기에 배고픔을 달래며 딴엔 아침 일찍 서둘렀다. 그런데, 도착한 정류장에는 장바구니에 한 가득씩 벌써 장을 다 보고 돌아가는 할머니들이 많이 있었다.
장터어귀에는 생각만큼 사람들이 많이 있지는 않았다. 유행가 레코드 테이프 소리만 쿵짝쿵짝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잠시, 조금 들어서니 장꾼들이 많이 보였다. 장터 한 모퉁이에 자리 잡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강아지들, 꽤 많은 신발좌판, 옥신각신 가격을 깎느라 정신없는 어물전, 점점 들어가니 대목장 같진 않지만 거리에 사람들 소리로 가득 찼다.
제일 먼저 찾은 좌판은 깨, 햅쌀, 더덕, 도라지 그리고 모자와 머리핀 등 자질구레한 생활용품을 파는 곳이었다. 그 곳에 대목장 보러 온 한 아주머니, 찹쌀을 사 갈 모양이다.




솔밤 아주머니
“찹쌀 이거는 육천원, 묵은거는 오천원.”
“이거 햇거 맞아요? 섞인 거 같은데.”
“아지매, 이거 덜 마른 거를 찍어서 햇끈햇끈해. 내가 뭐 얼마나 먹고 살겠다고 속이고 앉아 있을까봐. 이거 예천 용궁서 나온 거야. 여기는 안 나와.”
햅쌀을 보러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든다. 좋은 거라며 두되나 사가져 가는 아주머니도 있고, 그냥 구경만 하다가 또 머뭇거리다 가는 사람들, 가지각색이다.
손님들이 가고 한산해졌다 싶어, 장사 좀 어떠냐고 물으니 대목이라도 뭐 그렇단다. 사람들은 많이 왔다 가도 예전만큼은 안 된다고 한다. 올해 예순일곱 된다는 아주머니, 집은 솔밤-풍산쪽으로 가다가 류병원 근처가 집이라고. 얼굴은 나가도되지만 이름만은 절대 나가면 안 된다며 끝까지 성함을 알려주지 않는다.
“장사한지 오래됐지. 자식들 공부시키고 다 했으니까. 28년쯤 되었구나. 자식? 여섯이야. 아들 둘, 딸 너이.”
자식들은 다 출가했고, 지금은 바깥어른이랑 대학에 다니는 손녀랑 그렇게 셋이서 살고 있단다. 전엔 혼자서 장을 다녔는데, 지금은 바깥어른과 같이 나온다고 한다. 다니던 직장을 정년퇴임한 후로는 같이 장터에 나와서 이것저것 돕는다고.
그래도 둘이서 지내는 것 보다 손녀가 있어 덜 적적하겠다는 물음에,
“학교 가니까, 요즘엔 만날 늦게 와. 같이 있어도 얼굴을 많이 볼 수가 있어야지. 오늘도 아침에 자는 거 보고 우리는 와부랬지 뭐. 그래도 가라도 있으니 덜 심심해. 있다가 없으면 또 섭섭꼬.”
같이 있는 손주가 하나뿐인데, 요즘엔 늦다며 섭섭한 눈치다. 그렇지만 장학금 받고 학교 다닌다며 기특한 손녀 자랑도 빼놓지 않는다.
영주에서 스물하나에 안동으로 시집 왔다는 솔밤 아주머니, 자식들을 다 출가시키며 살아온 그 세월은 오일장터에서 보낸 세월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대목장이 어데 있습니까 뭐….”
옆으로 더 들어가 보니, 한 포터 앞에는 건어물이 크게 진열되어 있었다. 거기서 청송 진보, 길안, 탑리 등 경북 북부권 내 오일장은 거의 다 본다는 장사한지 30년 베테랑 배선갑(52)씨를 만났다.
“옛날부터 여기는 길거리에 사람이 지나다니지도 못했는데, 예전이랑 지금은 참 많이 다르지요.”
그의 고향은 청송 진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장터에 다니다가 뒤에 사업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지금 사는 집은 대구라서 이 지역으로 오려면 새벽 세 네 시쯤에는 출발한다고.
“그래도 사람들은 난전에서 값을 깎는 재미에 여기 시골장터에 오지요. 단골손님도 많이 있고요.”
또 한쪽에서 건어물 하고 야채 등을 팔아 온지 20년째라는 부부장수도 만났다. 앞에는 추석 대목장인 것을 실감케 하는 토실토실한 햇밤도 소복이 쌓여 있었다.
“오늘 장사 좀 덜돼요. 마수도 못했어요. 대목장인데도 작년이랑은 틀려요. 추석이 빨리 와서 그런가 봐요.”
“대목장이 어데 있습니까? 뭐…”
대목장이라고 기대했던 만큼 그리고 또 예년과는 다른 분위기에 한숨만 내고 있었다.
“여름에는 농사철에 바빠서 사람들이 장에 잘 안 나와요. 농사짓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길안은 겨울하고 봄에 장이 잘 되죠. 농사철 들어가기 전에 사람들이 좀 많이 와요. 그리고 또 오전에 사람들이 더 오구요.”
장사 15년째라는 어물장수 이명규(47)씨의 말이다. 그는 길안장 뿐만 아니라 월곡 정산, 북문시장에도 간다고 했다.제수용품으로 뭐가 많이 나가느냐는 물음에,
“고등어가 제일 많이 나가지요. 안동은 더 그렇고요. 문어도 좀 나가고.”



점심때가 된 모양이다. 장터 사람들도 하나둘씩 모여 밥을 먹고 있다. 
“과거에는 안에 다 좌판이 있었는데, 지금은 시장 안에 가게를 다 지어놔서 옛날 같지를 아하지요. 30년 전에는 안동장보다 여기가 더 잘 됐다고. 저 위에는 우시장도 있었고… 우시장 치웠는지가 하마 20년 넘게 됐지. 그래도 유일하게 오일장은 하니까 이렇게 나와 있어. 오일장 그것도 없으면 어째. 장날은 우리 노인들이 나와 만나서 술도 한잔 먹고 이렇게 쉬는 날이야.”
의성 옥산에 살고 있다는 피복장수 신칠근(66)씨 이야기다.
“촌에 농사지어 가면서 이렇게 장날마다 길안, 의성장에 나와요. 옛날에 하던 거니까, 재고 관계 때문에 항상 세월이 가도 이렇게 나오고 있어요.”
거의 할머니 할아버지 상대를 많이 한다는 신칠근씨, 장터에 나와 있으면 사람들도 만나고 서로 안부도 묻고 하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한다.



길안 대목장, 기대만큼의 대목장은 아니었지만 이곳 장터야 말로 사람들과 사람들이 만나는 훈훈한 장소임에는 틀림없다. 만나야 또 서로 정이 오고가듯이 올해 우리 고향 농촌에서도 포근한 추석 명절이 되었길 진심으로 바래본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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