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뽕잎을 먹는 누에처럼 이상섭씨(글/천남희, 사진/박영대)
서울시 광진구 군자동에는 무표정한 회색건물들 사이에 4층으로 된 좀 낡은 붉은 벽돌 건물이 하나있다. 건물 입구에는 보도블록을 좀 비켜서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양쪽에 떡 하니 버티고 서 있고 그 주위로 솟대 두어 개, 회사명을 새긴 조각상과 길에서 주운 나무로 번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깎아 놓았다는 조각상이 세상의 모든 시름을 받아주듯이 다른 것들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뾰족한 삼각형으로 된 2층 난간에도 익살스런 표정을 한 앉은뱅이 나무 조각상이 천진난만한 모습을 하고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모든 조각들은 이제부터 내가 소개할 안동사람이 손수 다듬고 깎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상섭(39)씨가 경영하는 “예조 오름” 이라는 회사는 이렇듯 건물 입구조차 범상치 않은 모습으로 기자를 맞았다. 역시 안동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2층 사무실로 안내 받았다. 사무실에 들어가고 나서야 입구에서 본 것들이 앞으로 내가 받을 충격을 좀 완화시켜줄 대용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한 마디로 그의 사무실은 벽과 천정이 온통 진귀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마치 정리 되지 않은 미니 박물관을 보는 듯 했다. 한 벽면엔 아홉개의 원목 하회탈을 나란히 걸어 놓았고 또 다른 벽을 타고 놓여 있는 공룡을 비롯한 여러 가지 화석과 공룡 알, 공룡 레플리카(진품 복제), 비버 골격표본, 운석, 여러 종류의 동?식물호박, 토매(흙으로 만든 맷돌), 옹관, 박제 독수리 등 일반 박물관에서도 쉽게 접하지 못하는 다양한 종류들의 유물이 놓이고 쌓여 있었다.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공간만을 남겨둔 채…….
그가 하는 일
일반 사무실이었던 그곳에 천정은 서까래로 뼈대만 이어 한쪽에 이엉을 얹고 창문에도 문살을 만들어 넣어 밋밋함을 없애 마치 안동 민속촌의 한 가옥을 연상케 했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책장은 중도리를 켜고 다듬어서 만들었으며 제주도 여인들이 쓰던 허벅 받침대로 탁자를 만들고 의자는 절구통을 등받이만 남기고 잘라 속을 채워 놓은 것이었다.
우리 조상들의 생활필수품 이었던 절구통이 그런 용도로 쓰임에 씁쓸함과 주인장의 창의력에 대한 놀라움이, 앞서 본 여러 가지 유물들과 함께 머리 속을 흔들었다. 엉덩이에 깔고 앉자니 좀 어색하긴 했지만 친근감이 생기기도 하고 의외로 편안했다. 서글서글한 눈매로 선하고 인정 많아 보이는 그가 건네준 명함에는 박물관?과학관?홍보?전시관?조경시설 기획 설계 시공 및 건축이나 전시 모형, 화석, 전통인테리어 등을 한다고 적혀있었다. 이쯤 되자 머리 속은 점점 더 복잡해져가고 평범한 필부로 살아가는 나로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아 하는 일이 뭔지를 단순하게 물었다.
“글쎄요 하도 여러 가지 일을 해서 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한옥을 해체해서 필요한 제목을 훈증 처리한 후 재 복원도 하고, 건축 모형도 만들고 박물관이나 과학관 전시 기획 설계도 합니다. 일본에 전통인테리어 수출도 하고 가지고 있는 화석으로 공룡 전시회도 합니다. 현재는 고성 공룡 엑스포 2006년을 작업 중에 있고요.”
그는 지난 93년 대전 엑스포에서 북한 물산관 모형관, 백두산 천지, 금강산 모형 등을 만들어 이미 세간의 주목을 받아 왔다. 하는 일 못지않게 그의 직함도 여러 가지이다. 국가 중요 무형 문화제 제 108호 목조각장 이수자, 경북대학교 자연사 박물관 연구원, 색체 디자인 전문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불혹의 나이에도 미치지 않는 그가 해 놓은 일이나 하고 있는 일로 참 부지런히 열심히도 살았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
“안동대 미술학과 에서 동양화를 전공 했어요. 조각은 평소에 관심이 많았고 소질도 있어서 한국적인 기본사상을 배우려고 동양화를 택했죠. 군제대후 건축 모형 만드는 회사에서 1년을 일했는데 그곳 사람들이 모형은 잘 만드는데 색체조화를 전혀 못 맞추더라고요. 그래서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 독립했죠. 처음 일로 월드컵 경기장 모형을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더라고요. 또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전통인테리어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고기와를 가지고 잘라서 타일로도 써보고 높게 쌓아 기둥도 만들어 제주도나 안동의 분위기로 식당이나 카페 내부를 만들어요. 일본 신주쿠나 오사카에도 제가 한 인테리어가 있는데 세계적인 건축 잡지에도 소개되었더라고요.”
그런데 그가 모형을 만들고 인테리어 등 여러 분야에서 벌어들인 돈은 모두 공룡화석이나 여러 가지 유물을 사 모으는데 쓴다. 외국에 나갈 때마다 필요 하다고 생각되는 유물을 사오기도 하고 국내에서도 필요한 유물을 산지에서 구입한다. 돈이 참 많이 들겠다는 생각에 참지 못하고 물어 보았다.
“자연이 준 유물에는 가격이 없어요. 학술적 가치로는 산출할 수 없는 엄청난 가격이지만 지구 밖에 세워진 모든 건물은 모두 땅 속에서 파낸 자원이거나 자연에서 얻은 것으로 쌓아 놓은 것이죠. 그것을 어떻게 값으로 매기겠어요.”
순간 나의 속물근성이 참으로 부끄럽게 느껴졌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지나칠 정도로 많다는 그는 외국의 박물관을 두루 돌아보았다.
자연사 박물관
“외국 박물관을 700여개 다녀 보니깐 우리나라가 자연사 박물관 쪽에서 엄청나게 뒤떨어져 있더라고요.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 등에 있는 박물관에서는 체계화 된 전시물이나 연구자료 등을 완벽하게 갖추고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어요. 그 나라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먼저 꼭 찾아가는 곳이 자연사 박물관이죠. 그곳에선 일년 내내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잖아요. IOC 회원국 중에 국립 자연사 박물관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입니다. 일본에 자연사 박물관이 400여개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40여개 정도 밖에 없어요. 그나마 다행이 4～5년 전부터 자연사 바람으로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이나 계룡산 자연사 박물관에 관람객들이 모여들고 있지만 전시 종류나 내용면에서 소규모이고 인류의 자연 체계를 다양한 각도에서 체험할 수 있는 산 교육장으로 쓰기에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아이들이 쉽게 자연과 과학을 접하며 기초 과학을 익힐 수 있는 국립 자연사 박물관이 꼭 필요합니다.”
박물관 얘기를 하면서 그는 조금 전과는 다른 좀 격양된 표정과 말소리로 흥분하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놀이터에 내 놔도 제대로 놀지도 못해요. 우린 강이 모두 수영장이고 산과 들이 모두 놀이터였죠. 자연과의 대화를 풍부하게 할 수 있어서 넓은 시야를 가져야 인간에 대한 포용능력도 훨씬 커지죠. 그런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장소를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자는 거죠. 외국의 아이들이 박물관 바닥을 뒹굴며 자연을 이해하고 우리 인류의 과거를 되 집는 것을 보고 엄마 손을 잡고 그저 한 바퀴 휙 둘러 나오는 우리나라 아이들을 생각 했어요. 워킹페이퍼를 가지고 공부하면서 볼 수 있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박물관이 하루 속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수억을 호가하는 공룡화석을 사 모으고 여러 가지 유물을 모으는 건 모두 그런 생각에서입니다.”
외국의 대형 박물관 지하 수장고에서 본 엄청난 양의 유물과 또 그 유물로 실험 실습을 하고 있는 그네들을 보며 유물과 화석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는 그는 우리나라가 여러 가지 문화재 보호법에 막혀 박제 기술이나 해부 실습 등의 연구를 막는다며 아쉬워했다. 현재 그는 공룡 알 화석 70～80여개, 공룡 30여종, 골격 표본 등 2만점 이상의 유물을 시대별 종류별로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다. 사무실과 개인 수장고, 경북대 자연사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데 때가 되면 자연사 박물관을 세울 계획이다. 그의 말대로 아직은 나이가 좀 어려서 ‘젊은 놈이 뭐 아는 게 있겠냐?’ 는 식의 주위 시선으로 인해 지금은 꾸준히 내실을 다지고 있는 셈이다. 그는 또한 식물이나 동물 표본, 골격 표본 등을 약품 처리하여 영구 보관할 수 있는 ‘동식물 표본 수장법’을 개발하여 특허 출원 중에 있다.
안동 촌놈
“안동 촌놈이 서울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연고지 없이도 이렇게 사업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모두 제 어릴 적 자연에서부터 얻은 경험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 때 당시의 느낌이나 경험이 지금까지도 풍부한 이야기 거리가 되고, 계속되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어요.”
그가 먼저 고향 얘기를 꺼낸다. 그의 고향은 안동시 임하면 오대 1리. 길안천을 앞내로 두고 뒤로는 약산을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자락 끝에 자리하고 있다. 내 고향이 오대 2동이니 그와 나는 길안천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는 동네를 고향으로 둔 셈이다. 장마가 져서 누런 황토물이 오대 다리를 넘쳐흐르면 제방을 따라 가며 송사에서 떠내려 온 사과를 줍기도 하고 몸에 밧줄을 묶어 물로 뛰어들어 나무를 줍기도 했다한다. 물론 6형제 모두 일사불란하게 역할을 맡아 나무 줍기에 힘을 보탰다. 그래서 일까 그는 지금도 누런 황토물이 두려움의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친근감이 간다. 그는 산악스키를 즐긴다. 1회 산림청장배 산악스키대회에서 우승을 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다. 혼자서 서울근교의 산을 다니기 도하고 암벽과 빙벽을 타며 자연을 느끼고 체험 한다. 여름에 장마가 지면 산악자전거를 타고 탄천을 건너보기도 하고 겨울엔 한강 둔치에서 스키를 탄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혼자 해 보는 일이 재미있어요. 자연과 가까이 하면 얻을게 많아요. 늘 나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죠. 암벽등반도 많이 했어요. 백두대간 종주 가이드도 4년 정도 했죠. 그 모든 것이 자연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획일화되고 규격화된 일본 건축물에서 저의 회사 전통 인테리어를 수출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자연스러움을 최대한 살릴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 얼음 배를 타며 강을 건너기도 했고, 옥수수를 돌 위에 얹어서 구워먹어도 봤죠. 혹시 약쑥에 감자를 넣어 모래 덮어 구운 후 물을 위에 살짝 얹어 뜸 지어 먹어 봤어요?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요. 물론 그것들은 밭에서 서리한 것 들이였죠. 여름은 살찌는 계절 이었죠. 개구리나 뱀을 잡아서 구워먹기도 하고, 참새, 부엉이까지 잡아서 먹었으니까요. 길안천에서 고기를 잡으면 충분한 먹거리가 되죠. 장마 져서 큰물이 지면 수초 밑에 골뱅이 들이 모여 있어 경운기를 대고 삽으로 떠서 잡았어요. 지금은 잡으려 해도 없더라고요. 몇 년 전엔 오대 다리 밑에서 투망을 던지다가 경찰이 와서 난감한 적도 있었죠.”
어릴 적 아무런 대가 없이 아낌없이 주던 자연에게서 아니 고향 사람에게서 좀 실망했나보다. 그의 표정이 씁쓸하다.
“길안천에 제방을 쌓기 전까지 우리 동네의 ⅔가 늪이고 쏘였어요. 그 늪을 그대로 보존 했으면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최고가는 관광지가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같은 곳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얘기를 들으니 자연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남다름을 알 수 있었다. 어릴 적 그 늪과 쏘에 관한 무수한 이야기가 나돌았다. 톳제비에 홀려 밤새 같은 곳을 돌았다는 얘기며 용이나 이무기가 산다는 쏘에 관한이야기. 평자산 돌용 이야기……. 기억 저편에 가물가물 거리던 어릴 적 이야기를 그를 통해 들으며 나는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어릴 적 내 고향에 다녀 올수 있었다.
현재 그의 고향에는 일흔이 넘으신 두 부모님이 사과농사와 논농사를 짓고 계신다. 물론 지금도 결혼하여 각 지방에 흩어져 사는 6형제가 시간 나는 대로 돌아가며 농사일을 돕고 있다. 모형 만드는 회사로 시작하여 지금은 모형뿐만 아니라 전통인테리어나 공룡전시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동하는 그는 인간문화재 목조 각장도 이뤄야하고 자연사 박물관도 지어야한다 .어쩌면 모형을 만들고 전통인테리어를 수출하는 그 모든 일은 그의 꿈을 이뤄줄 튼튼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에 민주화를 위해 연일 수업 빼먹고 집회에 참석하는 우리에게 ‘뽕잎을 많이 먹은 누에고치에서 많은 실을 뽑을 수 있다’며 지금은 부지런히 뽕잎을 먹을 때임을 강조하며 우리를 강의실에 잡아놓은 교수님이 있었다. 그는 지금 부지런히 뽕잎을 먹고 있는 듯 했다. 그가 먹은 뽕잎이 튼실하고 고운 실이 되어 한올 한 올 풀어질 때를 기다려본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