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흥재사(글/윤천근).jpg)
남흥재사 가는 길
와룡면 중가구리. 와룡면 소재지의 안동 쪽 끝 부분에서 작은 시내를 건너는 시멘트 다리는 둘이다. 가구의 골짜기를 흘러내린 물과 면 소재지 쪽에서 흘러내린 물이 합해지는 지점에 마련된 시멘트 다리를 건너면 가구동의 골짜기 속으로 물길을 따라 뻗은 1.5차선 정도의 길이니, 그 끝은 와룡면 소재지에서 정산으로 향하는 2차선 도로와 만난다. 두 물이 합해지는 아래쪽에 마련된 시멘트 다리를 건너면 역시 1.5차선의 구불거리면서 골짜기의 안쪽을 파고드는 길이 길게 뻗어 나가는데. 그 길의 끝은 안동댐으로 연결된다. 남흥재사의 표석은 이 길의 초입, 시멘트 다리의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골짜기는 산의 품속으로 파고들거나 다른 골짜기로 연결된다. 와룡에서는 뒤의 경우가 일반적이다. 와룡의 산은 높지 않으므로, 골짜기는 그 끝에 낮으막한 고갯마루를 두고는 다른 골짜기로 넘어드는 것이다. 와룡과 안동댐 사이의 이 길은 두 개의 고갯마루를 두고 세 개의 골짜기를 연결시켜 놓고 있다. 와룡 쪽 골짜기가 끝나는 지점에서 도로는 심하게 태극 형상으로 굽는다. 한번 휘돌면 마을의 뒤 쪽으로 나가고, 거기서 또 한 번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굽으면 또 다른 골짜기, 그러니까 이 길 주변에 풀려있는 두 번째 골짜기로 들어서는데, 바로 그 지점, 두 번째 굽이가 한껏 굽어져 긴장된 반원의 호를 그리는 지점에 무슨 원심력이라도 작용한 것인 양 반원의 호 밖으로 길이 하나 뻗고, 그 초입에는 역시 남흥재사 가는 길을 알리는 낮으막한 표석이 숨겨져 있다.
한 2키로 가면 된다. 길 가의 밭에서 고추를 따고 있던 노인이 들려 준 말이다. 조금 가면 된다. 얼만 안 멀다. 한참을 가라. 그게 우리네 어른들에게서 통상 들을 수 있었던 표현법이다. 그런 표현법이 이제는 한 2키로와 같은 미터법으로 바뀌어 버렸다. 미상불 그런 표현은 정확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웬지 낯설게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길은 마을 아래 쪽을 타고 옆으로 길게 펼쳐진 골짜기 속으로 스며든다. 길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휘돌고, 진행방향의 왼쪽 산기슭에는 묘지와 표석이 어우러진 모습이, 오른쪽에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남흥재사는 그 마을 속, 마을의 가장 위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남흥재사의 첫인상, 그리고 재사의 구조와 기능
높은 대좌 위에 자리잡은 2층 집.
나무 벽으로 이루어져 있는 높은 집.
나무의 질감과 색감이 그 미학을 결정하는 큰 집.
남흥재사를 처음 보았을 때의 내 느낌은 그런 것이었다.
통상 우리가 우리 문화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2층구조의 집은 누정이다. 누정은 열린 공간을 추구한다. 기둥과 마루로 이루어진 것이 누정이다. 그 안에는 작은 방이 들어서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작은 방이 들어선다면 주거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데, 대개 사적인 건물이 이런 모양을 갖춘다. 이런 경우 누정은 공부와 연결된다. 방이 없는 누정은 공적 건물이기 십상이고, 이런 경우 그것은 놀이와 연결되게 마련이다.
누정은 사적인 것일 때는 1인용, 공적인 것일 때는 다인용이 된다.
공적인 것일 때는 누정은 좋은 경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열려 있는 2층의 누마루이면 된다. 그리하여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나 연회를 즐기는 사람들의 필요에 응하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누정은 번화한 곳, 대중의 발길이 닿는 넓고 빼어난 자연 속에 위치한다. 사적인 것일 때는 좋은 경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열려있기도 해야 되지만 한사람의 삶을 담아낼 수 있도록 닫혀있기도 하여야 된다. 최소한도의 숙식을 가능하게 해 주는 구조가 첨부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적 건물로서의 누정은 번화한 곳, 넓고 큰 자연 속에 위치하므로, 그 자연을 조망하고자 한다면, 그리하여 시원하고 빼어난 자연을 향유하고자 한다면, 조금 높은 지점으로 올라설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공적 건물로서의 누정, 평지의 누정은 2층의 누마루 위에 자리 잡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네 집의 마루 개념이 독립된 건물로서의 모습을 갖춘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러나 개인 공간으로서의 누정은 대개 산 속으로, 계곡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자연히 주변 환경 속에서 조금 높은 지점을 점유하므로, 굳이 2층의 누각 구조를 원형 그대로 갖출 필요가 없다. 자연의 대좌, 또는 인공으로 조금 높인 대좌로서 충분하고, 위에 마루를 갖춘 작은 사랑을 배치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네 문화 속 2층 건물은 공적 공간으로서의 누정, 번화한 곳 속에 놓여진 누각에 의해 대표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재사는 공적 건물로서의 누정과 사적 건물로서의 누정을 복합하고 있는 건물이다. 재사는 누정과 같이 남성의 공간이다. 남성의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재사는 또 사랑과 통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이 생활의 영역이라면 재사는 특별한 쓰임새를 따로 갖는 영역이므로, 이 점에서는 사랑과 다른 지점에 놓여진다.
공적인 누정이 2층의 마루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과 같이, 재사도 2층의 마루 구조를 갖는다. 공적인 누정은 여가를 목적으로, 연희를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을 담아 주는 기능을 하며, 그러할 때 대중들은 자연과 열린 관계를 맺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구한다. 그 여가와 연희가 자연을 한 부분으로 참여시켜 이루어지는 것에서 일정한 가치를 생산하게 되는 것이고, 또 그러므로 공적인 누정은 차단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재사는 대중을 담아내되 모든 대중을 향해 열려있는 것이 아니다. 재사는 가문이라는 대중을 향해서만 열려 있다. 재사는 자연과 만나는 것에서 그 의미와 가치를 생산하는 구조물이 아니라 그 자체의 특별한 목적을 구현하는 것 속에서 그 의미와 가치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것은 조상의 제례라고 하는 특별한 목적만을 위한 건물이다. 그러므로 이 공간은 자연을 받아들일 필요나, 자연을 향해 열려있을 필요가 없다.
재사의 누마루는 제례를 행할 사람들이 충분히 모여 있을 수 있는 공간 규모를 갖추어야 하고, 필요에 의해 차단과 개방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는 개폐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목적과 기능에 부합되게 설계되어 있는 것이 재사의 누마루다. 재사의 누마루가 2층 구조 위에 올라앉아 있는 것은 쾌적함과 시원함을 추구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그 외에도 위엄을 염두에 둔 배치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외에 재사를 구성하는 부분들은 사람들이 숙식을 할 수 있는 공간, 제물을 마련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식사를 마련하는 공간과 제물을 마련하는 공간은 서로 겹친다.
남흥재사의 구조
재사의 구조에 있어서 아마도 가장 중시되는 미학적 관점은 바로 이 위엄일 것이다. 이것은 후인들이 가문의 조상을 모시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당연히 그 중심에 놓여질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 남흥재사는 이 점에서 특히 뛰어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마을 뒤편, 낮은 산이 원형을 이루며 둥그렇게 둘러싸고, 재사는 그 반원형의 호 안에 우뚝 솟아 있다. 마을의 한켠을 가르며 오르는 시멘트 도로는 조금 가파르다. 그 도로를 타고 올라 마을 뒤쪽의 넓은 공간으로 오르면, 앞에 재사가 우뚝 솟은 모습으로 눈에 들어오니, 재사는 마치 중세 유럽의 성과도 같이 마을 뒤에 우뚝 솟아서 마을을 굽어보며 군림하는 모습을 갖추고 있는 셈이라고 하겠다.
재사는 남향을 하고 서 있다. 기단은 높다. 물론 통상의 건물에 비해서 높다는 것이지, 재사의 경우에는 이보다 높은 기단 위에 올라앉아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중앙에는 대문으로 오르는 7단의 자연석 계단이 마련되어 있다. 그 좌우로는 2단의 높은 석축이다. 아래쪽 석축이 위쪽 석축보다 높다. 계단 서쪽부분에는 위에 또 하나의 낮은 석축이 올라붙어 있으니, 좌우의 균형은 철저하게 고려되고 있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기실 남흥재사를 수식하고 있는 미학은 균형과 통일의 미학이라고 하기 보다는 조화의 미학이다. 부분마다 조금씩 좌우가, 색감이, 재질이 어긋나면서도 전체적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보는 남흥재사는 두 채의 건물이 이어져 있는 모습이다. 동쪽에는 누각 건물이 있다. 2간 규모이다. 서쪽에는 헛간 건물이 있다. 3간 규모이다. 두 건물 사이는 약 1미터 정도의 간격이 있는데, 벽으로 메워서 하나로 붙여 버렸다.
동쪽 건물의 1층은 백색의 회벽과 나무틀,그 사이에 들어박혀 있는 작은 1쪽 방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두간의 벽 위로는 나무판만으로 만들어져 있는 누각이다. 1층과 2층 사이에는 키 낮은 난간이 전면으로만 조금 튀어나와 있다. 그 위로는 완전한 나무로만 이루어져 있는 2간 규모의 나무 벽이다. 각 간마다 밖으로 여닫게 되어 있는 두 쪽의 큰 나무문이 달려 있다.
서쪽 건물은 1층 규모를 갖추고 있다. 3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쪽의 두 간은 중앙에 서로 층이지는 나무판 벽을 두고 위 아래로는 백토가 칠해져 있다. 서쪽 건물의 동쪽 한 간은 대문영역이다. 이 한간의 아래쪽 5분의 4는 나무 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에 두 쪽의 큰 대문을 두고, 그 양쪽으로는 세로의 나무판이 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위쪽 5분의 1은 백토가 칠해져 있는데, 남흥재사南興齋舍라는 글씨가 횡으로 씌여진 검은 현판이 거의 전 부분을 가리고 걸려 있으므로, 벽의 색감이 앞에서 확인될 수는 없다. 백토의 색감은 퇴색되어 흙 색깔을 띄는 것으로 변해져 있다.
측문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안마당은 좁고, 상당한 경사를 통하여 안채의 마루방과 연결되어 있다. 이 높이, 그러니까 경사면은 정문 쪽으로 들어오는 사람에게는 일정한 위엄을 느끼게 하는 구조로 배치되어 있다. 안마당이 따로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보다는 4단의 뜨락이 안마당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리라.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작은, 진실로 좁직한 직사각형 모양의 안마당에 이른다. 이것이 안마당을 구성하는 제1의 뜨락이다. 그 앞으로는 30센치 정도 높이의 석단이다. 석단 위는 좁직한 뜨락이다. 이것이 안마당을 구성하는 제2의 뜨락이다. 뜨락의 한가운데에는 정방형의 오똑한 자연석 섬돌이 있다. 앞에는 다시 70센치 정도 높이의 석단이다. 그 높이를 단숨에 오를 수 없으므로 중간에 오똑한 섬돌을 놓은 것이다. 섬돌을 통하여 2단의 계단 기능을 수행하게 하려는 의도이리라. 70센치 높이의 석단 위는 제 3의 뜨락이다. 한가운데에는 다시 하나의 섬돌이 놓이고, 앞에는 이번엔 50센치 정도 높이의 석단이 가로 놓인다. 그 위로 오르면 역시 중앙에 섬돌이 있는 제 4의 뜨락이 펼쳐진다. 이 뜨락은 마루로 오르는 곳이고, 서쪽의 측문으로 들어오면 안마당 영역의 서쪽 벽을 타고 춤이 낮은 몇 개의 계단을 통하여 이 뜨락에 이르도록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돌아 오르는 길은 공식적인 통로가 아니리라. 우리는 측문을 통해 들어갔지만, 제례가 있는 날에는 정문이 열릴 것이고, 참례하는 일족의 구성원들은 정문을 통해 줄지어 들어설 것이다. 그들은 일곱계단을 걸어올라 정문에 이르고, 4단의 뜨락과 세 개의 섬돌을 거쳐 한줄로 걸어 들어와 마루에 오를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그들은 좁직한 공간의 모아진 분위기와 섬돌과 석단으로 높이를 단축하는 상승의 기분에 고무될 것이고, 그것은 그들이 각자의 집에서부터 가지고 나섰던 조상에 대한 숭모감을 확대, 강화시켜 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마루는 좌 우로 방을 두고 있다. 가운데는 뒤가 막혀있는 마루방이다. 통상의 사대부 가를 염두에 둔다면, 이곳이 안채에 해당하는 부분이리라. 뒷 벽 양쪽에는 현판이 매달려 있다. 동쪽의 현판은 선조설단사업추진위원명단先祖設壇事業推進委員名單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1994년 7월 12일 선조 위위승동정공衛尉丞同正公 이하 4대 6위의 설단계획을 결의한 후 1995년 10월 15일 고유제告由祭의 봉행까지 이 사업에 현로賢勞하신 임원진의 명단을 다음과 같이 게재한다.”
이 현판의 앞부분이다. 이 설단 사업의 결과물은 건너 산 기슭에서 볼 수 있다.
서쪽에 붙은 현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흥재사 중수기. 남흥재사는 전리판서공典理判書公과 참판공參判公 양대분의 성소지소省掃之所(돌보았던 곳)로 창건년대는 명확치 않으나 추상(추측)컨대 판서공의 년대로 미루어 천여년으로, 그 간 여러차례의 중수 내역은 청벽靑壁 이수연李守淵 공의 기에 명시되어 있고, 이후 현재까지도 여러차례의 중 개수는 있었을 것이나 기록이 없어 알지 못한다. 금반(이번)의 중수는 1993년 시비 7백만원으로 화장실 개축, 1995년 시 도비 6천만원으로 재사의 부분보수, 1998년에 시 도비 1억원으로 전체보수를 완료하니, 앞으로 수 30년은 지탱할 것으로 생각된다.”
현판기록은 중수를 도운 사람들에 대한 감사로 이어진다.
이 마루방의 불쪽 벽을 이루고 있는 두 개 기둥에는 각각 1977년 문화공보부 장관 명의로 내려온 ‘지정문화재 이외의 문화재 통지서’와 1981년 경상북도 지사 명의로 발급된 ‘지방문화재 지정서’가 액자 속에 넣어져 매달려 있다.
이 현판들과 액자들이 붙어있는 마루는 동쪽으로 남흥재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2층의 누마루로 연결된다. 서쪽 일부만 안마당 쪽으로 터져있는 마루이다. 남 북은 각 2간, 동 서는 각 3간이다. 마루의 북쪽으로는 큰 방이 하나, 그리고 안채 영역 쪽으로 연결되는 구석에 작은 방이 하나 있다. 동쪽 영역과 남쪽 영역은 나무판 문으로 막혀 있다. 서쪽은 기둥 밖으로 좁직한 쪽마루를 깔고, 그 밖으로 낮은 난간을 둘렀다.
동쪽 세 간의 나무판 문 위쪽으로는 지붕 아래 각 한 개씩의 현판이 걸려 있다. 남쪽 끝 부분에는 원모루遠慕樓라는 큰 글씨의 현판이다. 중앙에는 앞에서 거론된 바 있는 이수연의 중수기가 걸려 있다. 북쪽에는 남흥재사라는 현판 글씨가 걸려 있다. 정문의 현판글씨와는 같지 않다. 이수연의 중수기는 몇 가지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수연은 숭정崇禎 후 재 갑자년에 이 중수기를 쓴다. 숭정시대가 1644년에 끝나고, 그후 첫 번째 갑자년은 1684년, 두 번째 갑자년은 1744년이다. 그러니까 이 중수기를 통해 우리는 1744년 까지의 이 남흥재사와 관계된 역사를 알 수 있는 셈이다. 이 때 이수연에게 와서 중수기를 요청하는 사람은 남경장南慶長이다. 그는 가문에서 정리한 남흥재사 관계 기록을 이수연에게 내놓으며 말한다.
“이는 내 12대조 판서공 휘諱 휘주暉珠와 11대조 참판공 휘 민생敏生의 분암墳庵중수 전말이다.”
이 부분은 남흥재사가 위의 두 분을 모시는 분암으로 지어졌음을 알려준다. 계속되는 남경장의 말에 의하면 판서공은 원나라 지정 년간에 출생하여 명나라 홍무 초년에 타계하였다고 한다. 홍무 원년은 1368년이다. 지정 원년은 1341년이다. 14세기의 초반이 판서공의 시대임을 알 수 있다. 남경장도 이 재사가 언제 지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이 재사는 ‘방 5간, 루 8간, 좌우의 익랑翼廊 10여간, 총 수십여 가架’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이수연은 기록한다. 봄 가을 두 계절에 영가(안동), 선성(예안) 두 읍의 자손들이 여기 모여 향사를 지낸다는 것이다. 이수연은 남씨의 보첩과 재사의 증 개축에 대해서도 보고한다. 남씨는 원래 보첩이 없었는데 처사공(표형; 標衡), 진사공(여형; 汝衡)시대에 보첩을 만들어 여기 남흥재사에 그 판본을 두었으며, 이 때 남흥재사도 증 개축을 하였다고 적고 있는 것이다. 현존하는 원모루 라는 현판 글씨도 진사공의 72세 시의 수적이라는 것이다. 처사공 진사공이 증 개축한 남흥재사를 남경장의 시대에 다시 중수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남흥재사와 영양남씨 사람들
남흥재사가 위치하고 있는 곳은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의 낮으막한 산골짝 속이다.
안내판의 기록을 보자.
“이 건물은 고려 말기에 전리판서를 지낸 남휘주와 공조참판 남민생의 묘를 지키고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건립년대는 1500년대로 추정되는데, 남흥사 법당 건물을 개조한 것으로, 이곳의 지명을 따라 남흥재사로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 재사는 정면 5간, 측면 5간의 입구자 형 건물로 오른쪽 대청을 누각 식으로 꾸몄다. 이 누각 부분에는 고식의 문얼굴과 설주가 있는 등, 조선 전기의 건축수법이 남아 있다. 재사의 입구는 남쪽을 향하고 있고, 대문간으로 들어서면 왼쪽에 외양간이 있다. 외양간 옆에 고방과 부엌, 안방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처음 여기 있었던 것은 남흥사라고 하는 절일 가능성이 크다. 다음으로 들어오는 것이 남휘주와 남민생의 묘지 였으리라. 아마도 그 두 남씨의 극락왕생을 남흥사에서 빌기도 하였을 터이다. 두 사람의 묘가 가설되던 시대는 고려 말기, 아직도 불교시대의 한가운데라고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왕조로 들어가면서 불교문화는 점차적으로 극복된다. 그 발걸음은 느리게 진행되었다. 유학의 묘지문화는 16세기를 넘어가서야 오늘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 완성된다. 안내판에 남흥재사의 건립년대가 1500년대로 추정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다.
그런데 사실, 1500년대라고 하는 것도 너무 이른 혐의가 있다. 묘지 아래 상당한 규모의 재사가 건립되는 것은 그만큼 묘지수호의 문화가 굳건하게 갖추어진 다음의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 가문에서 묘지 수호의 문화가 본격화 되고 나서 아마도 제일 먼저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는 시조 묘 문제일 것이다. 시조 묘 찾기, 또는 시조를 제사하는 단소를 설치하기 등은 입향조 또는 중흥조를 제향하는 재사를 갖추기와 시기적으로 멀리 떨어져서 말해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남씨들의 시조는 누구이고, 그 상계의 흐름은 어떻게 전개되는가?
“남씨는 본관이 셋이니, 영양 의령 고성이며, 모두 영의공英毅公을 시조로 하니--- 영의공의 휘는 민敏이요, 초명은 충忠이며, 성은 김씨이니, 여남汝南 사람이다. 당나라에 벼슬하여 안렴사로 천보天寶 14년(당 현종 43년, 신라 경덕왕 14년, 서기 755년)에 사신으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올 때 태풍을 만나 신라의 유린 고을에 포박하였다. 공이 그곳에 살기를 원하여 경덕왕이 천자에게 아뢰니 천자가 허락하거늘 신라왕이 공이 남쪽에서 왔다하여 남씨로 사성하여 영의공으로 봉하고 영양현으로 식읍을 삼게 하니 자손들이 대대로 그대로 살게 되었다. 휘 익翼이라는 분이 영양에 습봉되고 그 후에 또다시 의령 고성으로 분봉되어 드디어 삼관三貫이 되었으며 덕업과 문장의 선비들이 울연히 뒤를 이으니 그 번성함이 비할 데가 없도다, 도지圖誌를 살펴보면 유린 땅은 처음 진한에 속했다가 지금은 영남의 영해부로 되었다.”
대제학 남공철南公轍 공이 지은 글 중의 일절이다.
영의공 남민의 가계는 홍보洪輔(重大匡), 군보君甫(樞密院 直副使), 광보 匡甫(固城君)로 이어진다. 남민과 홍보, 군보, 광보 사이의 관계는 선조이고 후손이라는 것 외에는 명백히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의 일절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시조 영의공 이후 약 600년이 지난 고려 중엽에 남씨는 대광공 홍보, 밀직공 군보, 고성군 광보의 3형제분을 기점으로 하여 각각 영양남씨, 의령남씨, 고성남씨로 분관되었는데---”
<<남씨 대동보>> 수권首卷의 <서문>에서 남덕우南悳祐가 기록하고 있는 구절이다.
홍보는 영양 남씨의 영양 쪽 가계를 열어나가는 1세로 기록된다. 군보는 영양 남씨의 안동 쪽 가계를 열어 나가는 1세가 되며 동시에 의령 남씨의 1세가 되기도 한다. 광보는 고성 남씨의 1세이다.
안동 쪽 영양 남씨의 가계는 군보를 1세로 하여 2세 공약公若(衛慰丞 同正), 3세 비備(及第, 金紫光錄大夫), 4세 성노星老(典兵判書), 5세 유손有孫(判圖判書), 6세 휘주暉珠(典理判書), 7세 민생敏生(戶曹參判) 등으로 이어져 나간다. 남흥재사가 세워지는 것과 관계된 인물이 바로 6세 휘주와 7세 민생 임은 앞에서 이야기한 바이다.
위의 남덕우 씨 글을 참고하자면, 영양남씨가 파보를 만드는 것은 17세기의 일이다. 시조 제단이 처음 세워지는 것은 숙종 을묘년(1675년)의 일이다. 시조가 배를 타고 들어왔다는 축산포에 유허비를 세우는 것은 정조 22년(1798년)의 일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남흥재사가 16세기에 세워진다는 것은 시대를 조금 올려 보고 있다는 혐의를 벗을 수 없으리라. 어떤 일족에게 있어서 가문과 조상을 숭배하는 문화는 특별히 어느 하나만 독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갈 수 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보첩을 만드는 일이나 시조를 숭배하는 곳을 만드는 일, 시조가 아닌 다른 조상을 숭배하는 곳을 만드는 일은 비슷한 시기에 같이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남흥사 건물을 접수하여 남흥재사가 재사로서의 기능을 본격적으로 수행하는 시기는 17세기의 어떤 지점으로부터가 아닐까 하는 추정을 하여 본다. 이 경우 남흥재사에 남아 있다는 조선 전기 건축수법은 적어도 남흥재사의 건립시기를 확정하는 데에는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을 터이다. 남흥재사는 이미 있는 사찰 건물을 접수하여 재사의 모습을 갖추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흥재사의 원경
마을의 초입으로 돌아나와 영양 남씨 사람들이 새로 건립한 단소영역을 돌아보았다. 마을 입구 건너편의 산기슭을 2단으로 정리하여 아래 쪽에는 ‘고려위위승동정영양남공유허비(高麗衛尉丞同正英陽南公遺墟碑)’와 4대 6위의 ‘설단기념비’를 세우고, 위쪽에는 그 4대 6위의 묘소를 일선으로 배치하였다. 1995년에 만들어졌으니 극히 현대적인 것이라고 하겠다.
남흥재사는 잘 관리되고 있고, 영양남씨의 안동쪽 계열에서는 이 남흥재사를 중심에 두고 오늘날도 조상을 모시는 새로운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조상을 모시고, 조상의 향화를 이어간다는 것은 중요한 일임을 알 수 있게 하는 사례이다. 이런 행위가 현대라고 하여서 무의미하여 질 이유가 어디 있겟는가? 조상을 모시는 것이 조상의 덫에 치이는 것이 아니라, 조상의 유덕을 이어받아 자신을 빛나게 닦아나가는 태도와 연결되는 것이라면, 조상을 모시는 열정은 아무리 강하다고 하여도 문제라 할 수 없을 터이다. 아니, 반대로 스스로를 가꾸어가는 중요한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리라.
영양 남씨 상계의 4대 6위 단소가 있는 마을 건너 길 위에서는 마을 위쪽에 높다랗게 올라앉아 있는 남흥재사가 어디서보다도 잘 조망되었다. 그 나무 판과 나무 문으로 이루어져 있는 원모루의 2층은 거기서도 착 가라앉은 나무의 부드러운 색감으로 나의 시야 속을 파고 들었다.
돌아 나오는 길, 내내 내 머리 속을 지배했던 것은 그 나무의 색감이었다. 그리고 거기 덧붙여져 재사 북쪽 건물의 마루방 한쪽에 놓여 있었던 두꺼운 떡판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15센티는 되어 보이는 떡판의 윗면에는 무수한 칼질의 흔적이 너무도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조상에게 바쳤던 떡을 나누어 먹기 위해 칼질을 하였던 흔적이리라. 조상을 추념하는 마음 만으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엄숙한 제의에 참석하고 나서 조상의 기운이 미쳤던 떡을 나누어 한 조각씩 먹는 느낌은 과연 어떠할 것인가? 범상치 않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이리라는 점만은 분명할 듯 싶었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