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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을 지키며 산다. 성진골 김말음 할머니 이야기(글/이미홍)

우리가 찾아간 많은 이들이 그랬다.
“옛날 얘기, 뭐 할 게 있다고? 이제 다 지나가 버린 이야기인 걸.”라고.
나라고 뭐 별다르게 살았던 것도 아니고, 다들 힘들게 살았던 시절인 데 고생하며 자란 게 무슨 자랑도 아니고 그런 게 이야기꺼리나 되냐고 되묻곤 했다.
그런데 그 물음 뒤에 따라 나오는 “내야 뭐 그냥 살았지…….”로 시작되는 푸념 속에 그 분들이 살아온 이야기가 고스란히 딸려 나왔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이야기들은 하나하나가 다 특별했다.
김말음 할머니 댁에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 할머니는 별 할 얘기가 없다고 오지 말라고 했다. 두 번째 전화했을 때 할머니는 시간이 없다고 했다. 나중에는 와도 나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래 우리는 ‘어느 날 가겠다’하고 무작정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 가서야 확인 전화를 했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막김치를 버무리고 있다가,
“기어코 왔니껴? 추운데 방에 드가서 기다리소.” 했다.

어린 시절, 기억 안나는 고생
음력 12월 13일생으로 환갑 생일이 얼마 안 남았다는 김말음 할머니는 해방되던 해에 태어나긴 했지만 아주 어릴 적 기억은 없다고 했다. 그저 듣기로 만주서 태어났다고 했다.
“해방 전에 우리 아부지 어무이 내외분이 만주에 가셔서 사시다가 해방되고 들어오셨다고 하는데 그때 내가 두세 살 정도 돼서 나왔다고 그래요. 아버지가 만주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는 기억에 없어 모르겠고, 나와서는 고향에 가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지요.”
해방이 되고, 간도로 일본으로 갔던 사람들 중에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전쟁 직후의 나라 안은 어수선했고 막상 돌아오기는 했어도 먹고 살 길이 막막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더러는 도시에 그대로 눌러앉았지만 그래도 비빌 언덕을 찾아 고향으로 내려가는 축들이 많았다. 만주서 귀국한 아버지는 식구들을 데리고 고향인 서후로 내려갔다.
“우리 아부지 고향이 서후여서 서후로 와서 살았어요. 우리 형제가 아들 하나, 딸 다섯 육남매였는데 제일 위가 오빠였고 바로 위에 언니가 있고 내가 셋째였지. 우리 어릴 때 6.25가 났는데, 6?25라고 해도 내 쪼매할 때 피난 간다고 보따리 싸 가지고 산길로 갈 때 비행기 날아다니고 총쏘는 소리 들리고 그런 기억들이 얼핏 날 뿐이지 자세한 기억은 안 나. 그런데 6?25 지나고 얼마 안돼서 우리 오빠가 군에 갔는데 나중에 전사통지서가 왔어요. 그때는 전쟁 직후라 그랬는지 군대에 가서 살아오는 이가 별로 없었어. 그리고 우리 엄마는 내가 일곱 살 때 돌아가셨어요. 오빠 죽고 그리고 얼마 안돼서 엄마 돌아가시고 우리 아부지가 딸 다섯하고 사셨는데, 결국 고향에서는 오래 살지 못했어요. 아부지 재혼하고 서모 밑에 크다가 내가 열세 살 정도 되었을 때 안동으로 나왔어요.”

서모살이와 남의집살이
클 때 이야기하면 고생한 이야기 밖에 없다는 김말음 할머니, 할머니의 어릴 적 고생했던 기억은 어머니의 부재에서 비롯된 서러움과 뒤섞여 있었다.
“일곱 살 먹어 우리 엄마 죽고 그때 고생 많이 했지요. 일곱 살 때 새엄마가 들어왔어요. 새엄마 들어오고 열 세 살 될 때까지 새엄마하고 같이 살았는데 그때 정말 피눈물나게 고생했지 뭐. 나무도 하고 나물도 하고 소 먹이고 꼴 베고 일도 참 많이 했어. 어려서 그랬던지 서럽기는 또 왜 그리 서럽던지.”
“가끔 형제들끼리 모여 어린 시절 얘기 하면 끝에 동생 둘은 그때 어려서 아무 것도 몰랐고 언니하고 내하고 바로 밑에 동생 셋이서 옛날 서모 밑에서 크던 이야기 많이 하지. 우리 언니는 조금 커서 눈치가 빨라서 새엄마 말도 잘 듣고 새엄마한테 잘 보일라꼬도 하고 그랬는가본데 나는 어려가지고 천지도 모르고 속을 썩여서 더 미움을 받았지.”
그러다가 안동으로 나오면서 형제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친척 집으로도 가고, 남의 집으로도 가고. 언니는 고모 집으로 가고 열 세 살이었던 자신은 무릉에 있는 어떤 부잣집으로 남의집살이를 가게 되었다고 한다.
“가서 밥 해주고 애도 봐주고 했죠. 그런데 그 집 가서는 오히려 고생 안하고 편히 지냈어요. 밥도 흰 쌀밥 먹고 밥하고 살림만 하면 되었으니까. 그 옛날 서모(계모)살이는 참 유명하잖니껴?” 라는 그이의 말 속에 그 시절의 서러움들이 녹아 있다. 오죽하면 남의 집 식모살이할 때가 더 좋았다고 할까?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마음고생은 덜하고 살았다는 이야기로 알아들었다. 그 집에서 결혼할 때까지 살았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있는데 문득, 내 어린 시절의 기억 한 조각이 딸려 올라왔다.
어렸을 때 외가 쪽으로 먼 친척이 되는 뒷집 할머니 댁에 미경이 언니가 있었다. 어려서 기차간에 버려진 걸 서울 갔다 오던 할아버지가 데려왔다는 미경이 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하나뿐인 아들은 서울서 살아, 할머니 혼자 남은 뒷집 할머니네서 스물 서넛이 될 때까지 살았다. 할머니하고 둘뿐인 살림이라 일이 많지 않아 언니는 들로 산으로 나물을 뜯으러 다니거나 겨울이면 냉이를 캐서 팔거나 하며 어른들 말로 ‘팔자 좋게’ 지냈다. 우리 언니하고 나도 미경이 언니 따라 나물 캐러 다니곤 했는데, 가끔 뜬금없이 우리를 보며 ‘너들은 좋겠다!’ 하거나 먼 데를 쳐다보거나 하곤 했다. 아무튼 미경이 언니는 몸도 튼실하고 무엇이든 잘 먹고 일도 잘하고 거기다 마음까지 순하고 너그러워 어른들도 우리도 다 좋아했다. 적적했던 뒷집 할머니 집은 우리를 이뻐하시던 할머니 덕에 우리 공부방이다시피 했는데, 학교라고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언니는 우리가 학교 갔다 와서 숙제하는 옆에 앉아 나물을 다듬으면서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우리가 쓰다만 공책이나 연습장에다가 글씨를 써 달라고 해서 일이 끝난 저녁이면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글씨 연습을 했다. 그렇게 해서 언니는 자기 이름 석 자와 집 주소를 쓸 줄 알게 되었다. 뒷집 할아버지네 성을 따라서 권미경이라고 했던 언니는 나중에 알고 보니 정미경이었다. 스물 네 살이 되었을 때 언니는 어찌어찌 연락이 닿아 친부모를 만나게 되었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잘못해서 잃어버렸다며 친부모가 언니를 데리러 왔을 때 처음에 언니는 선뜻 따라나서지를 못하고 할머니만 자꾸 쳐다봤다. 할머니가 어여어여 가라고 하자 울면서 보기만 하다가 갔다. 그 몇 년 뒤 미경이 언니는 결혼한 신랑하고 함께 아이를 안고 할머니를 찾아왔다. 볼살이 빠져 새댁같이 수줍은 얼굴로 언니는 보고 싶었다고, 잘 사니까 걱정 말라고 할머니 손을 잡아주고는 갔다.

결혼, 이사, 장사
열아홉에 할머니는 와룡에 사는 할아버지한테 시집을 갔다. 시집 와서 보니 신랑은 가진 것 없는 집의 맏이였다. 그 시절 없는 집 촌살림이 오죽 할까? 남의 집 곁방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그래도 신랑 각시가 부지런해 몇 년 지나 시골집이나마 집을 장만했다. 그러나 내 땅뙈기 하나 변변하게 없는 시골생활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전지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서 남의 거 얻어서 농사 지어 놓으면 가을에 품값 주고 곡수 주고 나면 남는 것도 암 것도 없고 먹는 거도 제대로 안 돼. 그래 안동으로 나온 거지. 나는 그때 시내 나올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할아버지가 가자 그래서 나왔지. 그것도 어느 날 장에 갔다 오더니 ‘우리 내일 이사 가자’ 그러더라고. 농사 지어봐야 남는 것도 없고 우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더라도 안동으로 가서 벌어먹고 살아보자고.”
알고 보니 할아버지는 말은 안했지만 그전부터 안동 장에 나와서 이리 저리 먹고 살 방도를 찾아본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작정을 하고 그날 장에 아는 사람을 통해 성진골에 방을 구해 놓고 들어왔던 것이다.
“가장이 가자 하니까 가야지요.”
그날 밤, 할머니는 군말 없이 이삿짐 보따리를 쌌다.
“그때 안동 나와서 집을 얻어 온 게 이 성진골이었지요. 그때 성진골로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으이 이곳 토박이나 다름없지요.”
그렇게 안동으로 나와서 할아버지는 연탄공장에 나가고 할머니는 집에서 애 낳고 키우며 살았다. 그 몇 년이 할머니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막내가 어느 정도 크고부터는 그네도 벌이를 하러 나섰다. 없는 살림에 애가 넷이나 되었기 때문에 부지런히 벌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야채 장사 과일 장사 안 해 본 게 없어요. 그때는 안동역 앞에서 다라이 놓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홍시나 다른 과일도 받아서 팔고 그랬어요. 과일 장사도 하고 야채 장사도 하고 그랬지요. 그러다가 학교 앞 골목에서 애들 상대로 10원짜리 장사를 시작했어요.”
그이가 말하는 10원짜리 장사란 요즘으로 치면 달고나 같은 뽑기 장사를 말하는 거였다. 그리고 그이가 10원짜리 장사를 한 그 곳은 아마도 성진골에서 가까운 동부 초등학교 앞 골목 어디쯤에서였던 모양이다. 애들이 다니는 학교라 학교 바로 앞에서 하지 않고 골목 저 안쪽에서 장사를 했을 그 엄마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그래도 그 10원짜리 장사로 그이는 아이들을 다 키웠다. 애들이 다 클 때까지 그 장사를 했다.

자식 자랑
할머니는 학교를 못 다녔다. 흔히 하는 말로 학교 문 앞에도 못 가 봤다. 언니들도 그렇고 동생들도 다 학교를 못했다. 그때 새 엄마 들어오고 하면서 어렵게 사느라 공부는 다 엄두도 못 냈고 딸애들은 본래 공부를 안 시키는 거라고 해서 학교는 아예 생각도 못해 봤지만, 그래도 엄마가 살아있었더라면 조금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못 배운 걸 원망해본 적은 없었다.
“배운 게 없어 놓으니 글 모를 때, 돈 계산할 때, 그럴 때 힘들긴 했지. 십 원짜리 계산이야 하지만 큰 계산 같은 건 힘들지 뭐. 그치만 우리 때야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고 그러이 사는 데야 크게 지장이 없었지. 내사 그래도 그것 때문에는 크게 원도 한도 없어. 그저 새끼들 데리고 사느라 바빴지.”
아마 그 새끼들이 없었더라면 그 시간들을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새끼를 품은 어미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강한 법이니까.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지만 늘 마음만큼 해 주지 못해 미안한 게 어미된 이의 마음이었다.
“애들 아버지가 아프고 사남매 하고 먹고는 살아야겠고 그러면서 참 고생 많이 했지. 그래 애들 공부도 다 초등학교까지 밖에 못 시켜줬어. 애달팠지만 먹고 사는 것도 힘에 겨웠으니까. 그래도 다들 지 앞가림들을 해서 넷 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땄어. 그리고 첫째는 방송통신대학을 했고, 서울서 사업하는 둘째는 나이가 서른일곱인데 지금 야간대학에 삼 년째 다니고 있어. 내가 못해줘서 애달팠는데 다행히 저들이 그렇게라도 해서 졸업장을 받아주니 고맙지.”
라는 그 말 속에 고마움과 자랑이 슬쩍 엿보인다.

지금의 생활
오래 아프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어느덧 십팔 년이 되어간다고 했다. 그전부터 아파서 일을 못나가고 집에 있었는데 말년에는 암까지 와서 고생하다 가셨다고 했다. 할아버지 때문에 굿도 하고 교회에 기도도 다녔다. 그러다가 할머니는 교회 신자가 되었다.
“교회 다닌 지는 한 이십 년 됐지. 할아버지가 아플 때 목사님 따라 애들하고 같이 기도하러 다니기 시작한 거지. 할아버지 아프고 약도 숱한 약 쓰고, 굿도 숱한 굿 하고 그랬는데 그래도 안 나으니까 마지막에는 교회에 기도라도 하면 나을까 하고 애들하고 온 식구가 기도하러 갔지.”
얼마나 절박했으면 올망졸망한 애들을 데리고 교회문을 들어섰을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면서도 행여나 누워 있는 남편의 병을 고칠 수 있을까 싶어 많을 때는 일주일에 서너 번도 굿을 했던 지어미의 그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까?
“애들 아버지 오랜 아픈 덕에 나도 우리 애들도 고생이 많았지. 애들 아버지 약값에 애들 먹여 살리느라고. 아들 셋, 딸 하난데 그래도 애들이 다들 착해서 그거 보고 살았지. 이제는 다 결혼해서 각자 살고 있어요. 막내만 여기서 나하고 같이 살고.”막내아들 부부가 일을 나간 집에서 일곱 살 난 손녀딸 승미와 용상 사는 딸네 아들인 초등학교 6학년인 외손자를 돌보며 지내는 게 김말음 할머니의 요즘 일과라고 했다. 옆에서 연신 놀아달라고 치근대는 손녀 다독이랴, 옆방에서 컴퓨터에 빠져 있는 외손자한테 컴퓨터 너무 오래하지 말라고 하랴 할머니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도 손주들과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처음 산 집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산지는 십오 년 정도 되었다고 했다.
“그전까지는 계속 남의 집에 세들어 살았지. 이곳 성진골로 와서도 이사를 몇 번은 다녔으니까. 이사철 되면 방 구하러 다니느라고 정신이 없었지. 그때는 다들 애들 많다고 방을 잘 안주려고 해서 애를 업고는 방 구하러 다니느라 애를 먹었어. 애는 울고 방은 못 구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다 됐지 뭐. 다행히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방을 주고 그랬지. 이삿짐을 하도 싸서 나중에는 이사하는 데 도가 텄지 뭐. 처음에 이사 나와서 한 몇 년은 애들 넷에 시어머니까지 일곱 식구가 한 방에서 다 살았어. 시어머니 돌아가시고도 애들 아버지가 십 년 넘게 아파 누워 있으니 내 혼자 벌어서는 먹고 사는 게 고작이라 방을 늘려갈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애들 다 크도록 남의 집에 세를 살았다. 그러다가 십오 년 전에 이 집을 사게 되었을 때는 식구 모두 말도 못하게 좋아했다. 다 커서도 한 방에서 자던 애들이 더 좋아했다.
집을 사고 나서 누군가가 세를 얻으러 왔다 간 날, 큰 아들이 그러더란다.
“어무이요, 이제는 딴 방에서 잠 좀 한 번 자보게 제발 세 주지 마소.”라고.
스무 살이 넘도록 식구들이랑 한 방에서 잤으니 오죽했을까. 큰 아들이 하도 소원을 해서 집을 사고 나서 세를 얻으러 오는 이가 많았지만 그이는 그때도 그 후로도 세는 한 번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지난 일들이 새삼스러운지,
“에휴, 그 고생을 말로 하자면 한정이 없고……, 그 세월을 되짚어 살라카믄 내사 못 살 거 같애.”
라는 할머니다.

할머니의 바램
요즘 뭐가 제일 걱정이냐는 말에 집안에 가만 앉아서 노는 내가 뭔 걱정이 있겠냐는 말 끝에,
“가만히 놀면서도 아프니까 그게 걱정이지. 요대로 살다 깜박 가면 그게 좋지. 다른 거는 아무 바래는 거 없고 그저 아프지 말고 이렇게 살다가 가면 그게 젤이지. 만날 사는 게 그렇다보니까 십 원 한 장 모아 놓은 거 없고, 부모라고 애들한테 물려 준 것도 보태준 것도 없고. 다 저 벌어 저들 힘으로 시집 장가 갔으니 내사 애들한테 바라는 것도 없고…….”
한 마디로 스스로를 위해서 꼬불쳐 놓은 돈도 없으니 제일 걱정은 죽지도 않으면서 돈이 많이 드는 큰 병이라도 날까 하는 거라고 한다.
자식이 자랑이다
젊어서부터 노는 데는 근처에도 안가 봐서 할머니는 노는 건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둘째 아들네 손주 돌잔치 때 사돈이 내보고 손을 잡고 노래 한 곡 하라는 데 나는 할 줄 아는 노래가 없어서 그냥 가만 섰다 왔지 머. 스스로 기가 맥혀 집에 와서 내가 둘째 며느리한테 그랬어. 나는 참 헛살았다. 노래도 모르고 춤도 모르고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고 해 놓은 것도 없다. 그랬더니 둘째 며느리가 그래. ‘어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아들딸 다 잘 키워 놓으셨잖아요. 노래 못하시는 게 어때요’ 그러더라고. 말이라도 그래 해 주이 고맙지.”
어릴 때 친구들은 다 흩어져 소식을 모르고, 커서는 남의집살이 하느라 친구를 몰랐고. 그리고 나중에는 애들하고 먹고 사느라 이웃 재미도 모르고 살았다. 그저 집을 둥지 삼아 자식새끼들 보듬고 사는데 온 정신을 쏟고 살았을 뿐이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고 했다.

그곳을 지키며 산다
사남매랑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등바등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어느새 훌쩍 세월을 건너뛰어 고개 들어 보니 환갑이 코앞에 와 있다는 김말음 할머니. 지금은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지천인 세상이지만 어려운 시절을 건너왔던 할머니는 지금도 무청 하나도 그냥 버리지 못한다고 한다.
“옛날에는 아주 부잣집이라도 다들 못 먹고 살았어. 아까워서 못 먹고 아끼느라 못 먹고. 맹 우리처럼 조밥에다 꽁보리밥에다 그렇게 먹었지. 내 처음 시집갔을 때 이웃집에 나락을 몇 백말씩 하는 집이 있었는데 그 집 사람들 밥 먹는 거 보면 조밥에다 콩잎사귀 싸먹고 그랬어. 콩 타작 나락 타작할 때 보면 콩 한 짝 나락 한 알이라도 밖으로 튀어가면 젓가락으로 그걸 일일이 다 줍고 그랬어. 참 버리는 게 하나도 없었지. 요새는 어디 그래? 멀쩡한 음식도 먹기 싫으면 쓰레기통에 텁썩 버리고 텁썩 버리고 그러지. 요새 사람들 버리는 거 보면 옛날 부잣집서 먹는 거보다 더 많이 버려. 옛날에는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버리는 게 없었지.”
요즘 사람들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귀한 줄을 모른다는 할머니 말에 괜히 가슴이 따끔거린다. 할머니가 자식들을 보듬어 키운 둥지를 나서며 보니 집이 제법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안동 시내가 저 멀리까지 내려다보인다. 해가 다 빠져 어스름한 대문 앞 가로등 아래에서 시내를 뒤로하고 사진을 찍는 할머니를 보고 있는데 어느새 하고 있었던지 두 볼에 금귀고리 한 쌍이 반짝거린다. 아마도 자식들 중에 누군가가 해 줬거니 싶어 누가 해 준 거냐고 물으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온다.
“우리 영감 살았을 적에 해 준 거여. 내가 머리가 아프고 어지럼증이 있었는데 금붙이를 지니면 괜찮다고, 나보고 아프지 말라고 하며 직접 금은방에 가서 해 주데.”
하는 말에 다시 보니 얼마나 만지고 닦았는지 금귀고리가 새것마냥 반짝거린다. 할머니는 그렇게 십 팔년 전에 세상 떠난 남편이 해 준 금귀고리를 달고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 집 그 자리에서 자식들을 위해 그 집을 지키며 살고 있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