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 태장재사(글/윤천근 (안동대 교수))
재사에 대한 단상
재사는 모두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작은 규모의 재사도 있고 큰 규모의 재사도 있다. 문중 전체가 모일 수 밖에 없는 시조의 재사 같은 경우는 규모가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되니 공간이 넓게 필요할 수 밖에 없고, 많은 사람들의 찬조가 가능하므로 규모있는 건물을 갖출 재력이 모아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동권씨 능동재사나 풍산유씨 숭실재 같은 경우도 그러하지만, 안동김씨 태장재사는 그런 대규모 재사의 전범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안동김씨 태장재사 같은 것이 이러한 전범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재사는 가문을 중심으로 하여 혈족의 모든 힘과 정성이 모아지던 시대의 유산이다. 그런 시대는 조선 후기이다. 그런 시대가 아직 계속되고 있는지, 아니면 이미 끝났는지는 분명하게 말하기 어렵다. 아마도 그것은 일반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나누어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이를테면 여기 안동김씨 태장재사의 경우에는 아직 그런 시대가 끝나지 않았음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오늘도 깨끗하고 위엄 있게 유지되고 있는 이 건물은 여전히 태장재사를 중심에 두고 있는 안동김씨 일족의 삶이 현재진행형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임을 웅변으로 증명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안동김씨 일문이 고려 초기에 처음 가문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여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가문의 성가를 높이 쌓아올린 결과라고 할 것이다. 가문에 대한 구성원들의 의식의 강도를 결정하는 것은 과거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현재나 미래는 가문의 과거가 마련하여 준 성가를 향유하는 시기이다. 이 경우에 있어서 과거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미래의 반대쪽에 놓여지는 과거, 즉 어떤 일의 결과가 놓여져 있는 지점이다. 다른 하나는 전통적 덕목이 여전히 기능하고 있는 곳, 즉 가문의식이 문화적 장악력을 행사하고 있는 지점이다.
안동김씨는 특히 순조 이후, 60년 안동김씨 세도시대를 열었던 주역이다. 세도정치라는 것은 정치적 권능을 한 가문이 독점하는 것으로, 그것이 우리 역사에 부정적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우리는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역사적 사실은 지나간 시간 속에 실재한다. 우리가 아무리 그것을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하여도 금관자가 서말이었네 어떠네 하는 이 가문의 당당했던 위세는 어찌할 수 없다. 그런 위세는 오늘날도 이 가문을 중심에서 이끌어 가는 힘을 행사한다.
“매년 음력 10월 10일이면 안동김씨 일가 300여 명이 모여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제사를 지내는데, 150명 정도가 이곳에서 자고 가지요. 하룻밤에 소 한 마리가 필요합니다. 많을 때는 600명까지도 왔었다고 해요.”
여기 안동김씨 시조묘단 입구의 재사로 답사를 간 학생들에게 관리인 김춘이씨가 들려줬다는 말이다. 600명이 모였다는 것은 가히 경이적인 숫자라 할 것이지만, 300명이 요즈음에도 모인다는 것도 놀랍기 그지없는 이야기이다. 150명이 여기서 자고 간다는 것은 안동 밖 먼 곳에서 150명이 온다는 말이라고 하겠다. 이런 성가를 유지하는 가문을 오늘날 찾아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시조묘를 모시기 위해 마련된 재사는 한 가문의 성가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파조나, 어떤 한 둘의 조상을 모시기 위한 재사와는 규모와 성격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한 둘의 조상을 모시는 재사는 그 계열에 속하는 한 두 후손이 흥하면 규모를 갖추게 되고, 그들의 세력이 약해지면 사라져 가게 된다. 이런 경우 규모도 작을 수 밖에 없으므로 쉽게 등장할 수도 쉽게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가문의 시조를 모시는 재사는 가문 전체가 흥성을 이루게 되면 등장하게 되고, 일단 등장한 뒤에는 오래 그 세력을 유지하게 된다. 한 사람의 흥성과 한 가문의 흥성은 기본적으로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태장재사 가는 길
태장재사는 안동김씨 시조 김선평의 묘단 아래에 위치한다. 시조의 묘단을 지키고 제사를 받들기 위해 이 건물은 지어졌다. 조선 영조 26년, 서기 1750년의 일이다. 조선 효종 4년, 서기 1653년에 처음 지어진 안동권씨의 능동재사에 비해서는 1세기 정도 늦은 셈이다. 이 100년의 시차는 조선왕조의 가문의식이 틀잡아져 나가던 시기에서 나타나는 것이므로 다른 경우보다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여기 두 가문 사이에서 나타나는 시차는 두 가지 요인이 뒤섞여 작용한 탓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안동권씨의 시조 묘는 실전되기는 하였지만 찾을 수 있었던 탓에 시조묘를 수호하고 묘제를 주관하는 건물이 일찍 건설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반면에 안동김씨 시조묘소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조선 인조 4년, 1624년에 결국 『여지승람』의 “부의 서쪽, 천등산 좌측 줄기에 봉우리가 하나 있으니 태장이라고 한다”는 기록에 의거해서 여기 설단을 하고 그 아래 재사가 들어서게 되는 것이지만, 이러한 차이가 아무래도 두 가문의 재사 건설 시간표를 서로 다르게 만들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이다. 다른 하나는 안동권씨는 고려 때부터 크고 작은 벼슬아치를 계속 생산하며 가문의 성가를 높이 쌓아 나가고 일문의 구성원 숫자를 확장하여 나갔다. 그런 점에서 안동 김씨는 안동권씨 만큼 초기의 성장이 비약적이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안동김씨는 조선 중기 이후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가문의 위세가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가문의 성장과정 속에서 보이는 이런 차이가 가문의 구심점인 시조 묘단 건설과 시조 묘를 수호하는 재사 건설의 시간 차로 나타났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후에서 북쪽으로 뻗는 길이 제비원 쪽에서 봉정사로 들어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 길 가에는 작은 마을이 있다.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마을 건너편, 산기슭의 한 쪽에는 신도비각이 보인다. 길 북쪽으로 붙은 작은 실개울 위에는 시멘트 다리가 걸쳐져 있고, 그 안쪽으로는 소나무 숲이 잘 관리되고 있다.
마을 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 열린다. 골짜기가 좀 넓게 벌어져 있다고 할 수 있을 따름이다. 아래 쪽, 나무 숲 사이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고, 한 쪽에는 네모난 인공 연못이 있다. 그 위쪽으로는 태장재사 들어가는 길이 뻗고, 그 위쪽 산기슭에는 태장재사가 버티고 서 있다. 동향을 하고 있다고 할까? 골짜기가 좁아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다.
태장재사
태장재사의 안마당은 직사각형 형상이다. 이상루에 서서 볼 때 안마당의 왼쪽은 두 간 건물로 막혀 있다. 앞에 쪽마루와 난간을 둔 두 개의 방이 여기 있는데, 이곳에는 ‘전임실’이라는 나무쪽이 붙어 있다.
안마당의 정면 뒤쪽으로는 9간의 건물이 일선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마당에서는 5단 계단을 통해 건물의 마루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뜨락까지는 4단 높이이다. 계단 쪽은 섬돌이 놓여 1단이 더 높은 것이다. 이 건물은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쪽마루 밖으로 난간을 두르고 있다. 각 간마다 방이 마련되어 있고 두 쪽의 작은 문이 달려 있다. 관리사로부터 6간은 참제원실, 그 옆에는 장노실, 그 옆에는 유사실, 그 옆에는 전사청이 나란히 1 간 씩 차지하고 있다. 이 건물의 가운데 부분 처마 밑으로는 ‘태장재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재사 건물은 전사청 앞에서 기억자로 굽어 진다. 이 굽어진 부분이 이상루 쪽에서 볼 때 안마당의 오른쪽 부분을 막아서는 것이다. 전사청 바로 앞으로는 두간 길이 정도의 마루가 있고, 그 아래쪽 구석에는 방이 하나 마련되어 있다. 이 방의 안마당 쪽 벽면에는 방문 위로 재장실이라는 나무쪽이 붙었고, 또 그 위로 천태암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 건물들 역시 나무판, 방문 외의 부분은 백토칠로 마무리 하였다.
안동김씨 태장재사는 들어가는 입구에서 보았을 때는 그 측면의 한 부분이 높이 솟아 있는 형상으로 나타난다. 마치 규모가 작은 일본 성을 보았을 때의 느낌과도 같다. 이 재사건물은 아마도 안동의 모든 재사 중에서도 가장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이다.
태장재사에는 각 방마다 누가 쓰는 방인지가 표시된 나무쪽이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능동재사와 여기 외에서는 이런 사례를 찾기 어렵다.
태장재사는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위의 산기슭 경사면은 나무와 잔디를 심어 정원 형상을 갖추었다. 그리고 그 경사면 위에 재사 건물을 세웠다. 길에서 재사 입구까지는 16계단을 두어서 산기슭의 기울기를 극복하였다. 정면 7간 측면 2간의 2층 누각. 중앙의 처마 밑에는 ‘이상루’라는 세 글자가 새겨진 현판이 있다. 서리를 밟으며 새벽 일찍 조상을 섬기기 위해 움직인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래층 7간의 제4간에는 두 쪽 대문이 가설되어 있다. 벽면들은 약 8할 정도를 나무벽으로 처리하였고, 위쪽의 나머지 부분은 백토를 발라 처리했다. 2층은 벽면의 8할 정도를 각 면마다 4쪽의 격자무늬 방문으로 처리하였고, 그 위쪽 나머지 부분은 아래층과 같이 백토를 발랐다. 안마당 쪽으로 터진 한 면만은 벽이 없이 그냥 열려있다. 처마의 아랫면과 기왓골의 수키와 마구리도 백토를 발라 처리하였다. 나무의 목질이 갖는 탁한 색감과 백토의 흰 색깔이 어울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으며, 오래 된 것 같지도 새로 지은 것 같지도 않은 중화된 느낌을 갖게 한다. 2층 누마루에는 밖으로 쪽마루를 돌리고 난간을 달았다. 난간은 계단이 놓여 있는 부분만을 제외하고 사방으로 돌아간다. 1층의 기둥은 8각으로 모가 나게 깎은 것이다. 주초는 아래가 넓고 위가 좁은 원구의 형상으로 잘 깎아 놓았다.
태장재사의 정문을 통과하여 5단 계단을 올라가면 안마당이다. 양쪽으로 태장재사 이상루에 오르는 계단이 가설되어 있다. 한단의 돌계단 위에 4단의 나무계단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이상루의 안마당 쪽 들보 사이에는 커다란 북과 북채가 매달려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 북을 쳐서 이목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는 탓일까?
누마루의 안마당 쪽을 제외한 면은 안쪽에도 밖과 똑같이 8할 정도의 벽면은 창호지를 바른 격자무늬 창호로, 그 외의 2할은 위쪽으로는 백토칠, 마루바닥 쪽으로는 나무를 횡으로 부쳐 처리하였다. 백토와 흰 창호지, 갈색의 부드러운 나무 색깔 등이 어울려 밝고 따뜻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이상루 마루 위에 서서 안마당을 향하면 왼쪽 끝은 관리사 영역이다. 관리사로부터 측문이 열리고, 그곳을 통해 재사로 들어올 수 있다. 태장주사중건기가 이상루 안에 현판으로 걸려 있는데, 그것을 보면 무인년에 이상루를 중건하면서 재사의 오른편에 주사 8간을 지었다고 되어 있다. 원래 재사에 주사가 있었지만 무너져 버렸으므로 다시 자리를 옮겨 새로 지었다는 것이다. 이상루에는 현판이 많이 걸려 있다. 그 중에는 시조태사묘이단기도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시조묘가 실전되었으므로 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는 옛날 태장리라는 자료와 옛 노인들이 이곳을 태사묘동이라고 전해 내려온 말에 의거하여 이 근처의 옛 유적과 풍수의 좌향을 고려해 가능성 있는 곳을 18～19개소 정하였고, 신씨 성 가진 사람과 산송을 벌려 이곳을 획득하였다는 점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정확히 어느 것이 태사 묘소인지는 확인 할 수 없어 묘단을 세워 제사를 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안동김씨 시조
여기 태장재사의 주인공은 신라 말기에 고창군(지금의 안동) 의 성주를 지낸 김선평이다. 김영한이 찬술한 ‘신도비명’에 의하면 김선평은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시조 태사공 김선평은 신라 말에 ‘고창’ 성주를 하였는데, 고려 태조가 견훤을 토멸시키고자 할 때 공은 권행, 장길 등과 함께 고창군을 들어 귀의하였다. 태조는 고창군을 얻어서 병산 싸움에서 승리하였고, 이로부터 의로운 이름이 점점 진동하게 되고, 마침내는 견훤을 토멸할 수 있게 되었으니, 공 등의 세 사람의 힘이었다. 공신을 책록할 때 첫머리에 거론되어 공은 ‘대광’이라 하였고, 권행과 장길은 ‘대상’이라 하였으며, 세 사람에게 다같이 ‘삼한벽상공신’이라는 칭호를 하사하였고, ‘태사’ 작위를 주었으며, ‘고창’을 ‘안동부’로 승격시켰다”
김선평의 후인들은 신 안동김씨로 불리워진다. 안동을 본으로 하는 두 김씨가 있으니, 구 안동김씨는 상락김씨라고도 불리워지고, 김방경의 가문이며, 신 안동김씨는 조선 말 세도정치의 주인공이고, 김상헌의 가문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