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으로 남는 동화, 권정생 선생의 『슬픈 나막신』(글/한경희)
아이들에게 전쟁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천사표 동화’가 아닌 이 동화의 진짜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 어린 아이 시절에 전쟁과 같은 슬픈 역사를 반드시 알아야 하는 걸까. 좀더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는 일일까. 『슬픈 나막신』동화를 읽으면 이런 생각을 떨쳐버리기 힘들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마음 놓고 권해주기에는 질퍽한 삶의 현장이 너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전쟁과 가난을 직접 겪는 아이들이 있었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전쟁을 아주 명확하게 분석하고 해석한들 무엇 하는가. 이미 사람들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이후가 아닌가. 사람들이 가장 아름답고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모두 잃어버린다면, 그것을 다시 찾을 수도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런 공포와 상실의 한 가운데 아이들이 있다면, 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너무나 모순의 관계를 느낀다. 전쟁을 일으키는 입장의 명분은 국익에 있거나 평화에 있다. 이 목적에서 벗어난 전쟁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전쟁 속에서 어떤 아이들이 행복해 했는가.
『슬픈 나막신』은 권정생 선생님의 매우 자전적인 동화로 보인다. 10여년을 도쿄에서 살았던 체험을 바탕으로 가난과 전쟁을 그려내고 있다. 시부야의 혼마찌 골목에는 조선인, 일본인 가릴 것 없이 모두 가난하고 애처로운 삶을 살아간다. 더구나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마당이라 가난은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에 이른다. 하루에 나눠주는 배급(전표)이 너무 부족해서, 썩은 고구마, 상한 빵을 먹고 버려진 개들을 잡아먹기까지 한다.
가난하던 삶에 전쟁까지 보태졌으나 그래도 이곳의 아이들은 씩씩하다. 아이들은 ‘그림인형극’을 보고, 또래끼리 〈이리와 아기양들〉의 이야기로 연극놀이를 한다. 부드럽고 연약한 생명은 강한 고집이 없으니 항상 살아있는 방향으로 지향하기 마련인가. 어른들의 침울한 정서와는 대조적으로 아이들은 비행기에서 쏟아지는 폭탄세례 이후에도 다시 모여 놀이를 할 수 있는 생명성이 있다. 이때 아이들의 놀이에서 신성한 기운마저 느껴질 정도이다.
시부야의 혼마찌 골목의 아이들은 애어른이다. 하나꼬, 에이꼬, 준이 등, 그 이름을 열거하는대로 모두 가난한 아이들. 물론 하나꼬는 예외다. 그러나 하나꼬는 부모님의 얼굴도 모르니 사실 가장 외로운 아이이다. 하나꼬는 고아원에 스즈꼬(동생)을 두고 마에다 씨 부부의 양녀가 된 아이이고, 에이꼬는 감자로 끼니를 때우면서 아픈 아버지의 시중을 잘 들었다. 이러자니 혼마찌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나이보다 어른스러울 밖에 없었고, 생활환경이 아이를 어른스럽게 만들어 준 셈이다.
조선인, 일본인이 함께 사는 동네이기 때문에 민족갈등이 쉽게 아이들의 싸움을 통해 나타난다. 용이가 카즈오와 싸웠는데 카즈오 형, 히로시가 용이의 따귀를 날리며 ‘조센징’이라고 욕을 하고 가버린다. 유리공장을 다니는 준이 형, 걸이가 “카즈오네 형하구 윗저고리를 벗고 배때기를 훤히 드러내 놓고 마주 서서 겨누며” 싸움이 붙는다. 걸이는 히로시에게 아이들의 싸움에 끼어들지 말라고 말하자, 히로시는 “애들이라도 조선놈의 새낀 나쁘다”고 받아친다.
식민지 상황에서 먹고 살 길이 없는 조선인들이 선택한 일본으로의 (강제)이주는 시작부터 불평등한 관계 속에 놓여 있었다. 식민지민이자 가난한 조선인으로 일본 땅에서 살아가는 일은 매우 힘겨운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혼마찌의 일본인 반장 나까무라 씨는 매우 공평하게 일처리를 하는 인물이지만 동네 사람들의 인심은 히로시 편에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사소한 다툼이 형들의 우격다짐으로 번지고, 민족갈등을 유발하는 감정으로 번지게 되었다. 히로시의 말처럼 ‘조선인은 나쁘다’는 등식은 ‘일본인=나쁘다’의 등식을 만들어내고 갈등을 계속적으로 키우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런 갈등이 일본의 전쟁 도발로 징집령이 떨어지면서 내면으로 가라앉는다. 히로시와 걸이는 모두 동원명령을 받고 전쟁터로 향한다.
전쟁터로 향하면서 걸이는 “누굴 위해서 싸우지”라고 묻는다. 여동생은 자신을 위해 싸우라고 말을 건넨다. 그러나 자기자신을 위해 전쟁을 한다는 말은 전쟁광이나 독재자의 경우를 제외하고 해당되는 말이 아닌 것이다. “자신을 위해 싸운다”며 전쟁터로 향하는 걸이의 모습 속에서 어떤 명분도 없이 전쟁을 강요받았던 우리의 아픈 역사가 떠올랐다. 일본군대를 탈출, 독립군에 가담해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목숨 건 행보가 걸이의 다짐에서 비치는 듯 했다. 아마도 아이들이 읽을 책이라서 작가는 이 이야기를 진전시키기보다는 물음표로 일단락 지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동화의 더 중요한 이야기는 조선, 일본을 나누어 보는 일에 있지 않았다.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조선과 일본이 구분되고 조선인에게 일본인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이들 눈에는 조선 사람도, 일본 사람도 모두 가난하고 힘들게 삶을 꾸려갔던 것이다. 준이를 좋아하던 두 일본여자 아이를 봐도 어른들의 계산이 전혀 없다. 단지 좋은 친구일 뿐이다. 작가가 표현한대로 “아이들은 무언가 모르게 어른들의 옳지 못한 일 사이에서 작은 가슴을 옴츠려야 했다. 아이들에게 죄가 없다” 『슬픈 나막신』에는 어른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많다. 특별한 한 아이의 이름을 부를 것도 없이 모두들 그러했다.
권정생 선생님의 모든 동화가 그러하듯이, 이 동화 역시 어른들이 먼저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일본어로 번역해서 일본의 어른들에게도 읽히고 싶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