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지역 대안교육의 터가 생겼다(글/피재현)
우리나라 공교육을 한 단어로 평가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획일성’이라는 단어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본격적으로 공교육이 도입된 이후 1949년 ‘교육법’이 제정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근현대 교육은 국가가 검인정한 교과서를 통해 보편성과 통일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학교급과 학년이 같다면 전국 어디에서나 수업내용과 진도까지 똑같은, 그야말로 획일성의 첨단을 걸어왔다. 이러한 획일적인 공교육은 대학 입학 제도를 통해 꾸준히 강화되어 왔으며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을 강화한 7차 교육과정에서조차 국가 교육과정과 검인정 교과서 제도는 유지되고 있다.
답답했다. 거대한 뿌리로 성장해 온 국가 교육제도의 그늘에서 학생은 옷에 맞지 않은 옷을 벗어버리려고 몸부림쳤고 학부모들의 답답함도 점점 커져만 갔다. 게다가 현장 교사들도 국가주의 교육의 강화를 거부하고 참교육의 기치를 내걸었다.
별반 달라진 것 없는 교육 현실에 돌파구를 낸 것은 1990년대 초반부터 일기 시작한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이었다. 획일적인 학교교육에 다양한 교육적 경험을 제공하려는 시도들이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전국적으로 일기 시작하여 경기도 광명의 ‘창조학교’(1992), 대구 ‘민들레 만들래’(1993), ‘자유학교 물꼬’(1993), 부산 ‘창조학교’(1994), 경기도 성남의 ‘여럿이 만드는 학교’(1994) 등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갔다.
이러한 민간의 자발적인 흐름에 더해, 교육당국도 대안교육에 대한 정책적 육성의지를 가지기 시작했다. 교육당국이 이렇게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가진 것은 학교에서 벗어나는 학생들을 교육적으로 치유하려는 노력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청소년 범죄가 증가하는 현상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책으로 대안교육 문제를 검토하면서 부터다.
2005년. 어찌되었든 이제 우리나라 교육은 반드시 공교육 일변도로만 모든 것을 이루어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듯하다. 이것이 바람직한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은 잠시 유보하고, 지금 우리의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과 발전은 실로 거대한 물결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양질의 면에서 발전해오고 있다.
전국적으로 1백 여 개에 이르는 대안학교는 특성화학교나 도시형 대안학교, 특정 이념과 철학을 중심으로 하는 프로그램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며 그야말로 교육의 대안을 만들어가기에 여념이 없다.
여기에 2000년대 들어서면서 새롭게 생겨난 대안학교의 한 흐름이 있다. ‘위탁형 대안학교’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2001년 3월 서울시 교육청이 3개의 대안교육 위탁기관을 지정하면서 시작된 위탁대안학교는 2005년 현재 서울 11개소, 부산 5개 등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2006년 1학기에 6개 기관을 더 지정한다.
위탁대안교육기관? 그 개념이 그리 쉽게 와 닿지만은 않는 이 시스템은 한마디로 학교교육에서 소외되고 획일적인 교육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학교 소속 학생이라는 신분적 테두리를 그대로 두고 별도의 기관에서 위탁 교육을 실시하는 시스템이다. 일종의 학교교육의 아웃소싱(outsourcing)으로 봐도 좋을 이 대안교육 시스템은 공교육의 가치를 훼손하거나 대립적 관점에 서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과 가치가 있다.
우리 경북에서는 처음으로 지난 10월 가톨릭상지대학이 경상북도 교육청으로부터 위탁 대안교육기관으로 지정을 받았다. 학교 이름은 “나섬학교”. ‘나눔과 섬김의 학교’, ‘나 스스로 서는 주체적 인격의 형성을 통해 인생의 길에 나선다’는 뜻을 가진 이 학교는 우선 경상북도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위탁 대안교육의 출발점이라는 의의와 전국에서 처음으로 사립대학이 부설기관으로 학교를 만들었다는 의의를 가진다. 교육도시 안동으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대안교육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의견을 나누어 왔으며 상당수 학부모들이 대안학교에 관심을 가지고 학생들을 타지의 대안학교로 진학시켰다. 안동이 쌓아 온 교육도시의 명성과 교육열을 놓고 본다면 안동에 대안학교가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인데, 이제야 처음으로 “나섬학교”가 생겨남으로 해서 대안교육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기대가 본격적인 실천의 길로 옮겨진 느낌이다.
이러한 의의는 경북 전체로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경상북도는 2002년 이후 해마다 1천7백 여명 정도의 중등학생들이 학교를 떠나는 것으로 나타났다(경상북도 교육청 통계). 사태가 이런데도 탈학교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당국의 의지나 민간의 노력은 미미한 것이었다. 위탁 대안학교는 우선 1차적으로 이 학생들이 완전히 제도교육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을 막고, 나아가서는 이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제 길을 찾아가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학교교육 제도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 학생들이 이상하게 취급되거나 포기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위탁대안학교를 고민하게 된 동기이고 보면, 이 학생들에 대한 교육적 배려와 지속적인 관심은 학교 밖으로 이어지는 청소년 범죄나 사회문제의 해결에도 상당한 예방적 효과가 있을 것이다. “나섬학교”는 이 부분에서 막중한 사명을 가진다. ‘처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 결과를 주목받게 되고 성과 여부에 따라서 파급력을 가지기 때문에 우리 안동에서 “나섬학교”가 좋은 사례로 성장해 간다면 경북 전역의 시군으로 확대되어 많은 학생들이 그 수혜를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나섬학교”의 의의는 대학이 지역사회의 교육문제를 고민하고 그 고민이 실천적 움직임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가톨릭상지대학은 천주교 안동교구가 설립한 대학으로 설립당시(1969년) 교육 기회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당한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전문 직업인의 소양과 방향을 제시해준다는 교육적 사명을 가지고 출발했다. 그것은 가톨릭 정신에 입각한 선택이었으며 지난 시기동안 그 역할을 충실히 해 왔다. 그러나 지금 대학은 과잉수요와 진학생 부족으로 존립위기를 맞을 만큼 위기에 처했고, 저마다 무한경쟁을 통한 살아남기에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이 와중에 위탁대안교육기관을 만들어가는 가톨릭상지대학의 선택은 낮은 곳으로 그리스도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하는 초심을 회복하자는 진정성으로 다가온다. 대학은 지역사회의 다양한 문제, 특히 청소년 문제나 교육문제에 긴밀히 참여하고 역할을 맡아나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의 미덕인 지속성과 책임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학이 대안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이렇게 새 장을 마련했다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모습으로 평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 한 학생이 있다. 학교에 가기 싫다. 선생님은 머리에 물을 들였다고 구박이고, 귀걸이도 못하게 한다. 수업은 제 실력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앞서있고, 의욕을 잃어버린 수업시간에는 할 일이 없다. 아이들도 자기와 잘 놀아주지 않는다. 학생은 점점 비뚤어지고 학교에서는 문제아 취급을 해버린다. 학교라고 해서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학을 보내야 하는데, 40명이 넘는 한 학급 아이들을 두루 다 잘 데리고 가야하는데, 꼭 개성을 빙자해서 따로 노는 아이가 있다. 부모도 무슨 다른 방법이 없다. 한마디로 대책없이 고등학교 3년을 보내야 할 판이다.
그럴 때 “나섬학교”와 상담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섬학교”는 국영수사과기음미체의 기본적인 일반 교과목을 가르치는 외에도 연극, 문화예술체험, 공예, 디자인, 사진, 악기 배우기 등 문화예술 영역의 교육과 집단상담이나 노동과 봉사, 미술치료 등의 인성과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과목, 진로탐색 프로젝트를 통한 길찾기 등의 교과목을 개설하고 있다. 이 공간에서 새롭게 만들어가는 공동체는 의욕상실에 걸린 한 학생에게 새로운 용기와 길을 제시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고, 반갑게 인사하고, 서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그렇게 만나서 나눔과 섬김의 사회를 배우고 자기를 세상에서 제일 귀한 존재로 만들어 가는 수업을 해보자! 이것이 새로 문을 여는 “나섬학교”의 바램이다.<안동>
피재현(011-9353-9070, ppppp20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