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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싣고 달리는 사람. 11번 버스기사 이상대씨.(글/이미홍 - 객원기자)

버스를 기다려본 사람들은 안다. 기다리던 버스가 제 시간에 오지 않을 때의 초조함을. 특히나 올겨울 같이 추위가 매서운 날 버스정류장에서 시린 발을 동동거리며 버스가 올 방향을 향해 고개를 빼기를 반복하다가 버스가 왔을 때의 그 반가움을. 이놈의 버스가 왜 이렇게 늦냐며 짜증을 내던 그 동안의 원망은 아랑곳없이 너도나도 조금이라도 먼저 타서 자리에 앉아가려고 사람들은 앞 다투어 버스 계단을 오른다. 누구는 앉고 누구는 서고 대충 자리가 잡히고 나면 버스는 어느새 출발을 하고.... 그러고 나면 모두들 별 말없이 묵묵히 차창 밖을 응시하곤 한다. 간혹 등하교길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 탈 때면 왁자지껄 정신이 없지만, 어른들은 당최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소리들을 지들끼리 쉬지 않고 와글대다가 탈 때와 마찬가지로 한꺼번에 후닥닥 내리고들 나면, 어른들만 남은 버스 안은 다시 조용해지고 사람들은 다시 묵묵히 앉아 기사 아저씨가 틀어놓은 라디오를 듣거나 창밖에 시선을 주거나 하며 목적지까지 간다. 그게 우리네 보통 안동사람들이 타는 버스 안 풍경이다. 그런데 타는 것만으로 기분 좋은 버스가 있다면, 기분 좋은 인사와 웃는 얼굴로 맞는 버스기사가 있다면 어떨까. 그런데 정말 그런 버스가 있다. 항상 웃으며 인사하는 기사 아저씨가 운전하는, 그래서 그 버스에 타면 자신도 모르게 한번쯤 웃게 되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런 버스가 안동에 있다. 그래서 하루 날을 잡아 입소문 타고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그러나 나는 그 실체를 잘은 몰랐던, 특히나 안동대학교 학생들에게 유명하다는, 인사 잘하는 친절한 11번 아저씨를 만나러 갔다. 1월의 어느 목요일이었다.

재주 없는 저한테는 꽤 괜찮은 직업입니다
초인종을 누르니 웃는 얼굴의 인상 좋은 중년의 아저씨 이상대씨(50)가 웃으며 문을 열어 주었다. 보통 이틀이나 삼일 일하고 하루를 쉰다는데 오늘이 마침 삼일 일하고 나서 쉬는 날이라 집에 있다며 혼자서 우리를 맞았다. 아내는 일하러 가고 군에 갔다 와서 복학한 아들과 초등학교 4학년인 늦둥이 막내딸은 손님이 온다고 했더니 둘 다 자리를 피해서 나가버렸다고 한다. 버스 기사아저씨 아니랄까봐 자리에 앉자마자 본인이 모는 버스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요즘은 1번과 2번과 11번을 하루건너 운행을 한다고 했다. 하루는 일번 하루는 11번, 또 하루는 2번, 하루는 11번, 그리고 하루는 주간 하루는 야간 이런 식으로 일을 한다. 그러니까 지금은 1번과 2번 11번 이렇게 세 코스를 운행하고 있다. 그것도 주야간을 섞어서 하는데 어제 11번 야간을 하고 오늘 쉬는 거라고 했다.
“야간은 아침 5시 20분에 집에서 나가서 옥동이나 용상이나 출발지로 가서 6시부터 돌기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하루 종일 계속 도는 거죠. 어제는 11시쯤에 끝났나 그래요. 제일 긴 시간은 밤에 안동대학 안에 들어가는 게 있는데 마지막이 11시 20분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날은 운행 끝내고 입금하고 들어오면 1시가 넘어요. 그렇게 들어오는 날은 원래 다음 날 쉬어야 되는데 그렇게 하면 한달 채워야 되는 일수가 모자라게 되기 때문에 서너 시간 자고 곧바로 그날 운행을 위해 나가야 해요. 한 달에 20일이 정해진 일수인데 보통 21일에서 22일 정도 일을 해요.”
11번을 하는 날은 풍산 가면 한 30분 정도 시간이 나고 천전 가면 또 25분 정도 여유가 생긴다. 그럼 그 시간을 이용해 잠시 잠을 잔다. 운전하면서 쉬는 시간이 그것 밖에 안 되나 싶은데, 그 시간이 결코 짧은 게 아니란다. 그리고 지금은 전처럼 촌으로 멀리 다니는 것도 아니고 시내 운전만 하니까 그게 오히려 규칙적이고 편해서 좋다고 한다. 버스 기사가 ‘배운 거 없고 가진 밑천 없는 자신한테는 천상인 괜찮은 직업’이라고 그는 늘 생각한다.

막장일에 덤프트럭 운전에 잔뼈 굵은 젊은 날
그는 영주가 고향이다. 고향에서 어머니 모시고 농사지으며 살다가 결혼을 했다. 그이 맘에는 부모님 모시고 농사지으며 계속 살고 싶었지만 첫애를 낳고 나서 분가를 해야 했다. 장남도 아닌 그가 부모님 모시고 사는 걸 꺼려하는 형수의 눈치도 그랬고 처자가 있는 가장으로 뭐든지 생업을 가져야 했다. 먹고 살 길을 찾아 도계로 갔다. 탄광 경기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인 80년도였다. 처음에는 영월에 있는 석공훈련소로 갔다. 그때는 탄광에 들어가려면 거기에서 교육을 받고 시험을 쳐야 했다. 시험문제가 애국가 4절까지 적는 거였다. 손바닥에 깨알같이 적어서 외워서 시험을 쳤다. 탄광이 국영기업체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그런 문제가 나오는 게 당연하게 생각되었더랬다. 교육이 4주간 이루어지는데 교육을 마치고 막장으로 배치가 되는 거였다. 그때 광부들이 가장 가기 싫어했던 곳이 태백 장성이었다고 한다. 굴이 제일 깊고 일이 고되고 힘든 곳이라고 소문이 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힘든 곳이 도계탄광이었다. 그런데 그 도계 탄광으로 배치를 받았다. 그렇게 해서 탄광 막장에서의 일을 시작했다.
“최고 깊이까지 들어간 게 지하 5800미터까지 들어갔었어요. 아찔했죠. 위험했지만 그일로 식구들이 먹고 살았죠. 그때만 해도 탄광 경기가 좋았던 때였거든요.”
그러나 몇 년 안가 탄광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그는 안동으로 왔다.
“버스 운전하기 전에 덤프트럭을 6년 정도 했어요. 풍천면에 사문석을 캐는 데가 있어요. 사문석은 자석 성분이 있어서 전량 포항제철이나 광양제철소로 보내지는데 덤프트럭으로 그걸 운반하는 일을 오랫동안 했어요. 그런 건 전부 화물열차로 실어 나르는 역출이기 때문에 그걸 일직 운산역까지 운반하는 일을 했지요. 그러다가 오토바이랑 사고가 났어요. 그때 좀 많이 다쳐가지고 일을 못하고 쉬게 되니까 나중에는 자연 해고가 되더라고요.”
그 길로 안동 시내로 나온 게 지금까지다. 안동에 와서 버스 운전을 하면서 집도 사고 생활도 안정이 됐다.
이야기를 하던 중간에 슬며시 일어나더니 안주인이 집에 없어 대접할 게 없다며 손수 마실 것과 과일을 내온다. 사과 한쪽을 집어먹고 있자니 11번 운행하다가 풍산 사는 할머니한테 얻은 건데 맛이 괜찮다고, 가끔 손님들한테서 과일이며 나물이며 얻어들고 올 때가 많다고 자랑을 한다.
“제가 인사를 하기 시작한 지는 한 7년 된 거 같네요. 11번, 1번, 2번 운전한 지도 한 7년 됐고요. 그 전에는 촌으로만 다녔어요. 일직, 옹천, 구담 방면으로 다니다가 인사이동 때 순환조로 올라오게 되어 가지고 그때부터 계속 지금 노선을 운행하게 된 거죠. 버스 운행이 벌써 13년이 되었네요. 저한테는 버스 운전하는 지금 생활이 맞나 봐요. 저는 지금이 좋아요.”

10년 무사고 눈앞에 두고, 아쉽지만 어쩔수 없지요
이제는 집집마다 차 없는 집이 없다보니 도로 위에 차들이 워낙 많아 버스 운전에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더구나 안동 시내는 주차공간이 부족해서 도로가에 주차를 하는 경우가 많아 버스승강장에 정차하고 출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할 수 없이 도로 위에 정차한 채로 손님을 태우고 내리는 경우가 생긴다. 당연히 위험한 일이다. 그런데 어쩔 수가 없는 그런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다 버스 타시는 분들 중에 아무래도 노인 분들이 많다 보니까 여러모로 신경이 많이 쓰인다. 아무리 조심조심해도 사고 가능성을 항상 안고 사는 직업인 것이다. 그의 10년 무사고가 깨어진 그 사고도 그렇게 일어났다.
차가 정차했다 출발하는 사이를 틈타 문 가까이로 자리를 옮기시던 할머니를 미처 보지 못하고 출발하는 바람에 할머니가 넘어지는 사고가 났다. 급히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다행히 병원에서는 별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다며 입원을 하셨다. 무사고 경력을 깨기 싫어 할머니 해달라는 대로 하다가 생각하니 이건 아니다 싶어 그는 자기 발로 걸어서 경찰서로 갔다. 그러고 나자 할머니는 툭툭 털고 일어나 병원을 나가버리셨다. 그렇게 그의 무사고 경력에는 오점이 생기고 말았다. 그때 한 수 단단히 배운 그는 이제 노인분들이 자리에 무사히 앉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절대 출발하지 않는다.
“그때가 무사고 9년 8개월이었는데 10년 무사고면 경찰청장한테 메달을 받아요. 그걸 한 번 받아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물 건너 간 거죠. 그때는 그 할머니에게 참 섭섭했었는데, 덕분에 그 담부터는 배로 신경을 써요. 지금은 그냥 액땜했다고 생각하지요.”

여린 성격 고쳐 보려고 인사를 시작했지요
“인사는 저만 하나요? 어느 기사분이든지 다 똑같애요. 근데 유독 저한테만 이러시니 다른 기사분들 보기 민망해서 어째요? 인사라고 해야 그냥 ‘안녕하세요?’하는 건데 별다른 게 있나요? 인사를 하는 데 무슨 특별한 계기 같은 게 있었던 건 아니고요. 그저 제가 겉으로는 털털해도 안으로는 여린 면이 좀 많은데 그걸 고쳐보고 싶어서 시작한 거예요.”
그는 마음이 너무 여려서 조금만 슬픈 걸 봐도 눈물이 나서 못 본다고 한다. 같이 TV를 보다가 슬픈 장면이 나오면 부인이 채널을 돌리거나 아예 TV를 꺼버릴 정도란다. 그래 성격을 한 번 바꿔보자 싶어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격도 고치고 손님들한테도 좋고. 하지만 막상 작정을 하고 시작은 했지만 처음에는 쉽지가 않았다. ‘안녕하세요?’라는 그 소리가 해놓고도 스스로 왜그리 어색하던지...
“처음에는 인사를 해 놓고는 제가 고개를 들지 못했어요. 인사를 하면 아는 사람인가 싶어 쳐다보는 손님도 있고 자연스레 내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되잖아요. 아이구, 얼마나 쑥스럽던지..., 거기다 다른 기사분들이 상대적으로 욕을 먹게 되니까 그것 때문에도 처음에는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많았어요. 그러던 것이 어떻게 손님들을 통해 입소문도 나고 인터넷에도 알려지고 하게 되면서 좋게 봐 주시는 분도 많구나 싶어 계속하게 되었지요. 그때부터는 다른 기사분들도 이해도 해주시고 자연스레 인사를 하시는 분들도 늘게 되고 해서 괜찮아졌지만요. 이제는 인사 안하시는 분들이 오히려 적을 걸요?”
그가 인사를 하게 되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안동사람들이 인사가 좀 야박하다는 것이다. 인사를 하면 반갑게 받아주거나 마주 인사를 건네는 이는 주로 할머니들이나 아주머니들, 그리고 대학생들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무뚝뚝하니 요금만 내고 들어가 버린다고. 인사를 했을 때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고 마주 인사해주고 하면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 맛에 아마도 인사를 계속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비록 마주 인사를 건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의 인사를 받고 기분 나쁜 손님은 없었을 것이다. 단지 익숙하지 않아서, 마음은 있어도 그가 처음에 그랬듯이 쑥스러워 주저하다 그냥 자리에 가 앉고 만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하던 것이 한 번 두 번 같은 차를 거듭 타게 되다보면 손님들도 어느새 그의 인사가 반갑게 다가오게 마련이다. 그의 인사에 익숙해지게 되는 거다. 그러면 처음에는 인사를 해도 별 반응이 없던 손님들도 하나 둘 아는 체를 해 온다.
“아저씨, 아직도 이 버스 운전하시네. 인사하시는 것도 그렇고 말씀도 그렇고 여전하시네요.”하고. 그럴 때 그의 기분은 말할 수 없이 좋다.

이젠 인사 안 하는 게 더 어색해요
직업이 서비스업이다 보니 그에게 있어 친절은 기본이다. 그가 밝은 웃음과 함께 건네는 인사 외에도 늘 손님들에게 가지는 자세가 친절이다. 입으로는 웃으면서 불친절하다면 그건 인사 안하느니만 못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무거운 짐을 들고 타는 노인이 있으면 그는 기사석에서 일어나 그 짐을 들어준다. 내릴 때도 마찬가지로 거들어준다. 도로도 사람도 바쁜 시내 운전에서는 그게 쉽지 않을 때도 있지만 사정이 허락하는 한은 그렇게 하려고 한다. 그건 친절을 떠나서 사람 살아가는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동료들한테 말 듣고 이럴 때는 고만 두어야겠다 몇 번이나 맘먹었다가도 하던 거라 또 그걸 하루아침에 고만두기도 그렇더라고요. 그러다가 여기저기 알려지고 나니까 더 그만둘 수가 없게 돼서 그때는 차라리 잘됐다 싶더라고요. 방송에도 몇 번 나가고 대학생들이 인터넷에도 더러 올리고 그랬나 봐요. 어느 날 시청에서 시장님 비서실이라며 전화가 왔더라고요. 고맙다고요. 저가 전화 받고 오히려 고마웠죠.”
“손님들 중에 ‘아저씨 성격이 참 좋아 보이니더.’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고 어른이고 간에 똑같이 반갑게 웃으며 인사하고 몸 불편하신 어르신들 손잡아 주고 하는 거 보고 그래 이야기하는 손님들이 많아요. 그런 이야기 들으면 기분이야 좋지요. 하지만 제가 특별히 성격이 좋아서 그런 거는 아니에요. 할아버지 할머니들 타시면 조심하는 거는 친절도 친절이지만 우선 내 자신이 사고가 안 나려면 조심해야 되는 거기 때문에 당연한 거지 그게 뭐 칭찬받을 일인가요? 저 같은 경우는 전에 그런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몇 배로 신경을 쓰지요. 가끔 사무실로 불편사항 같은 게 신고가 들어오면 사무실에서 기사들한테 물어요. 오늘 언제 어디서 할머니 타셨을 때 급출발한 적 있냐고? 제가 그래요. 저한테는 그런 거 묻지 말라고요.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 자리에 완전히 앉기 전에는 절대 출발을 안 해요. 그거 한 가지는 제가 확실히 몸에 배였어요. 별거 아닌 거 같지만 그런 안전사고는 늘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내만 조심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시내에서 음식점을 하시는 지인 한 분이, 언젠가 청소년수련관에 애들 밥을 해주러 가야 하는데 시간은 없고 차는 없고 해서 버스에 음식을 보따리 보따리 실어놓고 남편이 지금 음식을 더 가지고 오고 있으니까 기다려 달라고 부탁을 드렸단다. 근데 기사 아저씨가 짐도 같이 들어 올려 주시고 사정 이야기를 듣고는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기다려 주셔서 제시간에 맞게 가서 식사 대접을 할 수 있었다며, 우리에게 인사 잘하고 친절한 1번 기사아저씨 이야기를 두고두고 하신 적이 있다. 그런데 그에게는 그게 특별한 일이 아니었기에 그는 기억을 못했다. 자기 아닌 그 어떤 기사분이라도 그 정도 친절은 기본이니까 그 아주머니가 다른 기사분과 착각을 하셨을 수도 있다고 괜히 자신이 공치사를 먹는 것 같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긴 아무렴 어떻겠는가. 그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을. 굳이 시시비비를 가려서 밝히지 않는다고 해서 그 빛이 바랠까.

그 사람 맹장염이 우릴 맺어줬어요
부인 권성희씨(46)와는 80년도에 만나서 결혼을 했다. 자신이 집사람 하나는 정말 잘 만났다고 생각한단다.
“제가 그때 어머니하고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겨울에 리어카에 나무를 싣고 가다가 넘어져서 다리를 다쳤는데 그때 영주에서 못 고친다고 안동으로 가라고 해서 안동성소병원으로 왔어요. 그때 마침 집사람이 크리스마스이브에 맹장염으로 같은 병실에 입원을 하게 된 거래요. 그런데 집사람이 제가 엄마를 간호하고 하는 걸 잘 본 모양이예요. 맹장 수술은 큰 병이 아니라서 집사람은 그때 일찍 먼저 퇴원을 했는데 퇴원하고 나서 밖에서 만나고 그러다가 그래 결혼을 하게 된 거래요. 바보같이... 그때 저를 만나 가지고 고생만 했지요. 지금도 용돈벌이라도 한다고 청소하러 다니고 그러잖아요.”
이제는 생활도 안정되고 나름대로 여유도 생겼지만 용돈이라도 번다고 굳이 일을 다닌다고 했다. 그래 그럼 당신 번 거는 당신 용돈해라 하고 일하게 내버려뒀단다.
안동에 온 지가 어느새 20년이 넘었다. 어머니가 여기 이 집에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형님한테 가 계시다가 치매기가 있어서 양로원에 보내자고 그러더라고요. 그래 제가 우리 집으로 모셔왔어요. 그런데 치매기가 있으시다 보니까 대소변도 못 가리고 하셔서 우리 집사람이 참 고생을 많이 했어요. 제가 가끔 어머니 목욕도 시켜드리고는 했지만 우리 집사람이 밖에도 못 나가고 하루 두세 번 시키고 해도 불평 한마디를 안 했어요.”
내가 봐도 그는 정말 장가를 잘 들었다.
“처음 결혼했을 때 우리 옆집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계셨어요. 그런데 우리 집사람이 새댁이면서 국도 끓여서 할머니 갖다 드리고 그러더라고요. 흔히 하는 말로 처음에는 저 사람이 미쳤나 싶었죠. 그런데 집사람이 먹을 게 있으면 갖다 드리고 말동무도 해드리고 하니까 그 할머니가 교회에서 얻은 미역도 주시고 뭐가 생기거나 하면 우리 집사람한테 주고 그러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아, 저 사람한테 저런 면이 있구나.’ 하면서 느낀 게 많았죠. 우리 집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보니까 우리 어머니도 군소리 한마디 없이 모셨던 것 같아요. 저야 늘 고맙죠. 그때도 고마웠고 지금도 고마워요.”
그런 부인한테, 애들한테 잘해야 하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오래 전에 둘째 아들을 잃었다고 했다. 두세 번을 물어도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아직도 그 일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은 모양이다. 둘째를 잃고 늦게 낳은 막둥이라 그런지 막내딸에 대한 식구들의 사랑이 각별한 건 당연한 일. 막내딸 이야기를 하는 그의 얼굴에도 미소가 감돈다. 담배를 하루 한 개피 피우는 데 보통 집에 와서 쉴 때 한 대 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집에 딸아이가 있으면 절대 못 피운다. 재떨이고 담배고 다 뺏어가 치워버린다. 오빠가 군대 제대하고 왔어도 동생한테 번번이 진다고 했다. 그들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식구들 이야기를 하는 그 얼굴에 따스한 웃음이 배어 있다.

예전보다 손님은 줄었지만 인심만은 푸짐해요
시내 운전이 아무래도 신경이 많이 쓰이다 보니 운행이 있는 날은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그 속에서 늘 한결같이 웃으며 인사하고 친절하기가 쉽지 않을 건 뻔한 이치다. 더구나 1, 2번이 전에는 6분 거리로 다녔는데 지금은 코스도 바뀌고 8분 거리로 다닌다. 버스 손님이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다. 손님이 줄다보니 그에 따라 차도 줄고 기사도 줄었다. 그래도 그는 짜증 대신 웃으며 거리를 달린다. 웃으며 인사하다 보면 힘든 것도 잊어버린다.
버스기사 13년, 이제 안동 일대 지리는 눈감고도 훤하다. 특히나 7년을 하루같이 매일 다니는 길목이며 사람들이 어찌 익숙하지 않을까.
“오랫동안 같은 노선을 다니다 보니 손님들도 눈에 익으신 분들이 많아요. 풍산하고 천전을 오가는 11번 타고 다니시는 어르신들은 대개 다 알지요. 특히 임하 천전에 계시는 분들은 동네도 좁고 종점이라 매일 거기서 쉬기도 하고 시간될 때까지 기다려서 출발하다 보니까 더 잘 알지요.”
촌으로 다니다 보면 와서 이거 먹고 가라 저거 가지고 가라 잡는 손길들이 있을 때 그는 보람을 느낀다. 무얼 얻어먹고 얻어와서가 아니라 그의 노고를 알아주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버스 운전이 보람되게 느껴진다고 했다. 과일이나 채소를 푸대에 담아서 버스가 서는 길가에 기다리고 섰는 할머니들도 계신다. 전날 장날이라든가 무슨 날이어서 짐이 많을 때 그가 짐 싣고 내리는 걸 거들어준 데 대한 나름의 보답이다. 간혹 끌어올려준 보따리 속에서 감 하나나 귤 하나를 꺼내서 쓱쓱 닦아 한 입 깨물어 보라고 건네는 손길들이 있을 때 그는 사는 게 즐겁다. 버스 운전하기를 참 잘했다 싶다.
올해 나이 50, 앞으로 58세 정년까지 8년 남았다. 운전 빼고는 할 게 없는데 아직은 뚜렷하게 생각한 건 아닌데 작은 차를 한 대 사서 개인적인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덤프차를 운전할 생각도 해보곤 한다.
취재를 하는 중간중간 사진은 왜 그리 많이 찍느냐고, 녹음은 왜 하느냐고 고만 찍으라고 연신 손사래를 쳐대는 품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모양이다. 성격이 여리다는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조금은 짐작이 갔다. 웃음은, 웃는 얼굴로 건네는 인사 한 마디는 그런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이자 그가 가진 아름다운 무기인지도 모른다.
“제 딴에는 한다고 하는 데도 시비 걸고 하는 손님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손님들이 뭐라 해도 이기는 방법은 내가 지는 거예요. 직업 자체가 서비스업이다 보니까 항상 진다는 마음으로 해야죠. 젊은 운전자들 중에는 길가에 차를 아무렇게나 대놓고 자기 볼일만 보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요. 좀 비키라고 하면 앞에서 가다가 급브레이크를 콱 밟아 버리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저는 죄송하다고, 그냥 가시라고 그래요. 그리고 간혹 가다 제가 잘못할 때도 저는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요. 괜히 큰소리 내고 싸워봤자 저도 손해지만 손님들한테 피해가 가니까요. 그리고 어쩌다 차가 승강장을 지나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손님들이 성질을 내잖아요. 그럼 백미러로 보고 있다가 아, 저분 성질났구나 싶으면 그 손님 올라탈 때 더 크게 웃으며 인사를 해요. ‘예,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하고요. 그러면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손님이 화 안내고 그냥 들어가요. 웃으니까 덕을 많이 봐요.“

오늘도 역시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다음 날 낮, 옥동 정류장으로 2번 버스를 타러 갔다. 이상대 기사님이 2번 버스를 운행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동료 기사들이 옆에서 농반 진심 반으로 좋겠다며 한마디씩을 거들었다. 늘상 그런 모양인 듯 훤하게 빛나는 그의 머리를 두고 놀리는 소리에도 그는 맞장구를 치며 같이 웃었다. 그렇게 그는 웃으며 차에 올랐다. 그가 그렇게 웃는 얼굴로 손님들을 향해 인사를 건네니까 손님들도 웃으며 타는 이가 많았다. 웃음은 전염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얼마 안 가 한 무리의 꼬마들이 버스에 올랐다. 기사 아저씨가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하며 인사를 하니까 아이들이 일제히 “안녕하세요!”하고 같이 인사를 한다. 어떤 이는 타지도 않고 애초부터 길을 물을 요량으로 정류장에서 버스를 세운다. 아는 대로 성실히도 가르쳐 주고는 출발을 한다. 중간에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타시니, 어김없이 그분들이 천천히 올라오셔서 의자를 짚어가며 자리로 가서 다 앉고 나서야 차가 그제야 출발을 한다.
한 사람이 타든 한꺼번에 여럿이 타든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그가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를 웃으며 건네는 인사에 더러는 같이 인사를 하고 더러는 그냥 자리로 가 앉았다. 그렇지만 이상대 기사님이 건네는 인사 한 마디로 인해 차안 공기가 한층 밝아보였다면 그건 내 착각일까?
버스를 내리면서 나도 기사 아저씨를 따라 웃으며 인사를 건넸는데, 인사하는 그 얼굴이 참말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이, 버스는 나를 떨궈놓은 채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