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남병, 미녀병(글/김승열 - 안동성소병원 응급의학과장)의사로서 몇몇 지방에 근무하면서 깨친 점 중의 하나가, 좁다면 좁은 한국에서 지역에 따라 질병이나 외상의 발병률이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안동은 지역적으로 아무래도 외모 지상주의가 덜 한 지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형외과가 제일 약한 지역이 안동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한국 전체에서, 특히 서울의 강남 일원에서 불고 있는 외모와 성형 열풍은 그 도를 넘어서지 않았나 우려되기도 한다.
이러한 외모 열풍이 불고 있는 현실에서 미인, 미남이 되는 병, 혹은 미인과 미남만 걸리는 미인병, 미남병이 있다면 걸리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천사가 되는 병도 있고, 악마가 되는 병도 있으니, 미남병, 미녀병이 없으란 법은 없을 듯 하다. 없을 듯 하다가 아니라, 실제로 미남병, 미녀병이라고 하는 병이 있다.
미남병
기흉(氣胸)은 농담 삼아 말하지만 미남병이라고 한다. 외상없이 생기는 자연 기흉, 혹은 자발성 기흉이 바로 미남병이다. 미남병이라고 하는 이유는, 기흉은 키가 크고 마르고 늘씬한 남자에게서 잘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에게 잘 생기는 이유는 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가슴 내 폐를 둘러싼 기압 때문으로 본다. 단지 마르고 키가 큰 정도의 기압 차이로 대부분의 자연 기흉 환자는 미남병 환자이다. 마르고 키가 큰 정도의 기압차이로도 인체는 이와 같이 엄청난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기흉은 어떤 병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흉강 내에 공기가 들어가 폐가 눌리는 질병이다. 더 자세히 알아보자. 폐(허파)는 우리 몸의 다른 내장과 마찬가지로 여러 겹의 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풍선 안에 풍선이 하나 더 들어 있는 상태를 상상하면 된다. 안쪽의 풍선이 폐이고 밖의 풍선이 가슴이라고 상상하면 된다. 또 폐의 상태는 두 풍선이 거의 붙어 있는 모양이다. 또 공기는 안쪽 풍선만 들어가고 나올 수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안쪽 풍선에 구멍이 나는 상태가 바로 기흉이다. 안쪽 풍선에 구멍이 나서 바람이 새어 나와 안쪽 풍선과 밖의 풍선 사이로 공기가 새어나가면, 안쪽 풍선은 점점 작아져서 안쪽 풍선에 들어가고 나오는 공기의 양은 적어지게 된다. 이런 상태가 바로 기흉이다. 긴장성 기흉은 이러한 상태가 더욱 심해져 대정맥과 심장이 반대편으로 밀려 호흡곤란과 함께 피의 흐름에 문제가 생기는 응급상황이다. 이럴 때는 즉각 주사 바늘 등으로 기흉이 생긴 쪽의 공기를 빼주지 않으면 갑자기 사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연 기흉이 긴장성 기흉이 되는 예는 드물다. 다쳐서 생기는 외상성 기흉에서 긴장성 기흉이 흔히 생긴다. 자연 기흉의 증상은 기흉이 생긴 쪽의 가슴이 뻐근하게 아프거나 기침이 가장 흔한 증상이다. 흔히 기침을 심하게 하거나 하품을 할 때 등 등 가슴에 물리적 압력이 있을 때 안쪽 내막이 조금 찢어져 생긴다. 많은 환자들이 부드럽고 탄력이 있어야 하는 내막이 결핵이나 기타 다른 이유로 탄력을 잃어 잘 찢어지기 때문에 생긴다고 보고 있다. 치료는 소량의 기흉은 관찰만 하거나, 주사바늘이나 관을 넣어 공기를 빼주면 된다.
미녀병
미남병이 있으니, 미녀병이 없겠는가? 미녀병은 미남병과도 관련이 물론 있다. 미남병인 기흉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결핵이 바로 미녀병이다. 왜 결핵이 미녀병일까? 결핵을 미녀병이라고 한 이유는 약간씩 틀리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결핵의 증상인 각혈과 얼굴의 창백함이 원인이다. 결핵은 소모성 질환이다. 즉 신체가 허약할 때 잘 걸리고, 허약하게 만드는 병이다.
예술가들의 자유분방함과 불규칙한 생활은 결핵이 잘 걸리는 원인의 한 가지 이기에 미녀병이라고 하기도 하였고, 결핵에 걸리면 호흡곤란과 얼굴이 창백해지고, 몸이 약해진다. 가히 남성의 보호본능을 자극하기도 하고, 창백한 얼굴이 매력적일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하여 각혈은 비극성을 자극한다. 또 여성의 생리적 특징과도 연관되어 여성성을 돋보이게 하였을 수도 있다. 영웅으로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자격의 하나가 비극적인 죽음이듯이, 여성도 비극이나 극적인 죽음으로 더욱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그러므로 각혈, 피는 중세와 근세의 낭만 시대에는 이러한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결핵에 걸린 여성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였기에, 결핵은 미녀병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현대에 와서는 각혈을 심하게 하는 중증 결핵은 드물어졌지만, 수 없이 많은 다른 질병을 보는 다른 과와 달리 결핵은 단일 질병으로 아직도 한국에서는 독립된 결핵과 전문의를 따로 배출할 만큼, 환자가 수없이 많고, 또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이다. 영국에서 노동자 보호를 위한 산업안전 위생법이 제정된 중요한 이유의 하나가 결핵이었다.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노동력을 제공할 노동자가 결핵으로 수없이 죽어감으로 산업 발전에 문제가 생기자 위생법을 제정하였다고 할 만큼 결핵이 만연하였다.
아마 인류 역사상 결핵만큼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고, 많이 연구된 질병은 없지만 아직도 결핵은 미해결의 질병이다. 중세에는 이러한 결핵에 일부 여성들은 일부러 걸리기를 원하기도 했다고 하니, 미모를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하는 것은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니었던 셈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