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제도 정착의 시험대가 될 6월 선거(글/조동진)지난 95년 민선자치단체장이 선출되면서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는 외형적인 틀을 갖추게 되었다. 과연 제대로 정착되고 발전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의 눈길 속에 우리의 지방자치제도는 갖가지 부작용과 시행착오 속에도 나름대로 성장의 길을 걸어 왔다. 인사와 재정, 각종제도의 중앙집권화 속에서도 지방자치단체와 의회는 지역분권의 명분과 기반아래 착실히 지방자치의 자양분을 축적해 온 것은 적지 않은 성과였다. 1·2대 지방선거가 풀뿌리 민주주의로 일컫는 지방자치제도의 싹을 틔우는 시기였다면 이제 두 달 정도 남은 6월 지방선거는 그 싹을 만개시키는 중요한 선거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방자치제도 정착과 결실의 시험대가 될 이번 선거에서 우리 지역에는 누가, 어떤 인물이 출사표를 던졌는가를 점검하고 선거의 향방을 짚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다.
3선 입성, 한나라당 바람 계속될까?
이번 지방선거는 과거와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현직 단체장이 3선 고지에 오를 것인지, 지난 1998년 지방선거와 2000년 총선 때처럼 한나라당의 열풍이 그대로 지속될 것인지, 그리고 중앙 정치권에서 불어닥친 경선을 통한 선거개혁의 성공여부, 마지막으로 유권자들의 정치의식이 세 번째 맞는 지방선거를 통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경북북부지역의 시 지역은 안동과 영주시 상주시에서 현시장이 3선에 나섰고 군지역에서는 봉화와 의성군수가 3선 도전에 출사표를 던졌다. 청송과 예천군수는 재선 도전에 나서고 있고 김학문 문경시장과 이여형 영양군수는 3선과 재선출마를 포기하는 용단을 내렸다.
선거법상 자치단체장은 3선 이상은 할 수 없게 돼 있어 이번 3선 도전은 현역 단체장에게는 마지막 선거가 될 수 밖에 없고 과연 3선 입성이 가능할지가 주요 관심사이다. 3선에 도전하는 현역 단체장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추진해 온 각종 현안사업의 마무리와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사업추진을 내세우며 마지막 봉사임을 강조하고 있다. 새로운 일꾼임을 내세우며 출사표를 던진 도전자들은 자신만이 지역발전의 적임자임을 강조하며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그러나 대도시나 중앙 정치권과는 달리 지연과 혈연, 학연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고 서로를 손바닥 들여보듯 하는 지방중소도시의 특성상 현역단체장의 3선 입성은 재선과는 달리 그리 만만찮은 일은 아닌 듯 싶다. 경쟁자의 상대성에 따라 양상은 다르겠지만 어느 지역마다 3선에 대한 거부감과 견제심리가 적잖게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고 3선에 도전하는 단체장들은 재임기간이 그대로 선거운동이라 할 정도로 기득권을 안고 수성에 나서고 있어 어느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도전에 나선 출마예정자들은 한나라당 공천따기에 혈안이 될 수 밖에 없다. 영남권에서 한나라당 공천은 바로 당선이라는 등식이 이어져 왔고 이 등식이 이번 선거에서도 실현될 수 있는가가 두 번째 관전포인트이다.
경북지역은 이제 우여곡절 끝에 지역마다 한나라당 단체장 후보 공천작업이 끝났고 공천결과에 따라 후보자간 교통정리가 이루어지는가 하면 탈당과 무소속 출마 등 다양한 형태의 선거전이 전개되고 있다.
비록 지방선거라 할지라도 이번 선거 역시 중앙선거, 중앙정치권과 따로 떼어내 생각할 수 없고 결국 함께 맞물려 갈 수 밖에 없다.
중앙정치가 만들어낸 지역구도 정치의 산물인 한나라당 열풍이 이번에도 영남권에 그대로 나타날 수 있을까?
집권여당인 민주당의 국민경선제도는 선거개혁, 정치개혁이라는 시대적 요청·국민적 정서에 부합하며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여당 대통령후보의 국민경선제도에서 돌풍처럼 나타난 노무현 경선후보자는 이제 한순간의 돌풍이 아니라 거대한 태풍으로 변해 한반도를 휩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시점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경선후보자는 유력한 야당 후보자 이회창 총재를 거의 더블스코어로 앞서가고 있는가 하면 곤두박칠 쳤던 집권여당의 지지율이 야당과 비슷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선거개혁, 정치개혁을 선도한 집권여당의 신선한 변화가 국민에게 부응한 점도 있지만 국민의 뜻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개혁의 바람을 외면하고 측근 정치의 구태에 빠진 한나라당의 안이한 자세가 더 큰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국민들은 구태정치에 식상해 있으며 그것이 태풍이든 거품이든 무언가 변화된 풍토와 바람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나마 한나라당이 여론을 수렴하며 전열의 재정비에 나섰고 집권여당은 후보자간 이념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의 정치상황이 어떻게 변하고 전개될지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지난 선거와 같은 한나라당의 바람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재현될지 아니면 망국적인 지역구도가 깨질지는 또한 아무도 예단할 수 없는 일이다.
중앙정치의 풍향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지방정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주목하는 것도 이번 선거의 놓칠 수 없는 관전포인트이다.
세번째 감상법은 중앙선거의 개혁바람이 지방선거에까지 적용돼 경선을 통해 후보자를 선출한다는 시도이다.
한나라당 공천은 곧 당선이라는 구도에서 과거와 같은 밀실공천에서 벗어나 경선을 통해 떳떳하게 후보자를 선출하는 것은 지방선거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라 하겠다.
그러나 아직은 시기상조일까?
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한 지역이나 합의추대를 통해 후보를 선출한 지역 가운데 상당수 지역에서 말썽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한나라당 안동시장 후보자 선출에서 모 후보자는 불공정 경선을 주장하며 선출대회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데 이어 중앙당에 이의신청을 내는가 하면 경북지구당을 찾아가 항의 농성을 벌였다.
한나라당 영양과 예천군수 후보자 공천에서도 공천에 탈락한 후보자들은 역시 불공정을 주장하며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는 등 지역마다 공천에 따른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한나라당 청송군수 후보자 공천에서는 공천 헌금이 오가는 타락상을 보이며 헌금을 갖다준 모 후보자는 구속되는 사태에 이르렀고 돈을 받았다가 되돌려준 현역 지역구 의원은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됐다. 현찰로 공천헌금 1억원을 주었다며 공천을 자신하며 떠들고 다녔던 후보자나 이를 받은 뒤 다른 용도로 쓴 흔적을 보였다가 뒤늦게 되돌려 준 현역 의원의 행보는 우리의 선거문화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그러진 자화상이었다.
처음으로 시도된 지방선거의 후보자 경선이 성공이냐, 아니냐 하는 평가는 어쩌면 성급한 결론일지 모른다. 아직은 미완성의 작품으로 남은 이번 경선이 앞으로 정당정치 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나아가 지방정치 발전을 견인하는 계기가 됐다면 그나마 위안이 될 수 있을것이다.
성숙한 유권자의 역량이 선거개혁 이끌어
선거의 주인공은 결국 후보자와 유권자들이다. 법과 규정이라는 제도의 틀이 있고 정당과 선거 운동원 등 주변 요인이 있지만 깨끗한 선거·공정한 선거는 후보자와 유권자 두 주인공이 만들어야 내야 할 몫이다.
우리나라는 초등학교의 반장선거에서부터 농·수·축협의 조합장 선거, 지방의회, 단체장,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 등 선거 천국의 나라에 살고 있는 착각을 느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합리적인 여론수렴과 결론을 도출하는 최적의 제도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공정한 게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흔히들 단체장 선거나 총선은 30當 20落 이라는 말이 오가고 있지만 단순한 設이 아니라 신빙성 있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후보자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금품살포에 나서고, 선거브로커들은 여기에 편승해 떡고물을 찾아 쫓아다니는 하면, 유권자들 역시 마치 당연한 것처럼 금품을 바라고 있다.
정책과 능력을 내세운 선거는 그야말로 교과서에나 나오는 이야기로 현실정치에서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거는 돈과 조직이라는 양대 요소로 치뤄진다고 하지만 우리의 선거문화는 돈이 모든 과정을 지배하고 결과까지 용인하고 미화시키는 비뚤어진 기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구사회가 수 백 년에 걸친 시행착오 속에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다면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일천하기 짝이 없으며 아직도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과정에 있다. 민주시민의식이 하루아침에 바뀌고 정착될 수 없는 만큼 과감한 제도개혁과 함께 우리의 의식도 점진적으로 변화해야 되고 성숙돼야 할 것이다.
이제 민선 3기 지방선거를 맞아 후보자는 물론 유권자들은 스스로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그 변화의 출발점을 선거에서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혼탁과 불법, 부정선거를 최소한 줄여나가고 선거를 국민들의 건전한 축제로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바램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아니라 언젠가 이루어지고 반드시 해내야 할 이 시대 국민의 중차대한 과제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선거문화의 개혁과 변화의 주체는 후보자인 동시에 유권자인 우리 스스로이기 때문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