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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현해탄을 건너온 미호씨(글/사진/서성훈 - 안동대 사학과 조교)

봄이 왔다. 언제나 봄은 코끝으로 느껴지는 훈훈한 바람보다 눈에 보이는 푸른 잎사귀와 꽃들로 그 시작을 먼저 알려온다. 작년에 떨어진 낙엽이 아직 채 썩지도 않았건만 그 자리엔 야속하리만치 파릇한 새싹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 푸르름이 매정하기보다 반가운 것은 지난 겨울의 서슬퍼런 맹추위에 그다지 미련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호 ‘이달에 만난 사람’의 주인공은 평범한 스물두 살의 아가씨이다. 제 또래처럼 젊음을 즐기며 자유를 만끽하고 20대만이 가질 수 있는 겁 없는 도전 정신으로 똘똘 뭉친 그런 평범한 아가씨이다. 단지 특별한 것이 있다면 그녀가 일본인이라는 것뿐이다.
오늘 만날 사람은 ‘이시이 미호(22세)’씨다. 올 3월 교환학생자격으로 혈혈단신 안동대학교에 온 용감한 아가씨로 원 소속은 일본‘국사관(國士館)대학교’이다. 사실 미호와 나는 오늘이 첫 만남이 아니다. 얼마 전부터 나는 일본어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소모임의 일원으로 미호와는 일주일에 한번 이상을 만나는 사이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년 들어 외국인을 주제로 한 기사를 기획했을 때부터 1순위는 미호로 생각하고 있었다. 좀더 친해져 보려는 사심에서 말이다.

항구도시 가나가와현에서 온 소녀, 이시히 미호
미호와 만나기로 한 날은 말 그대로 화창한 봄날이었다. 역대 최악이었다는 강력한 황사가 물러간 다음날로 조용히 사무실이나 카페에 틀어박혀 대화를 나누기에는 날씨에게 너무 미안한 그런 날이었다. 미호 씨에게 특별한 무엇인가를 구경시켜주고 싶었던 나는 임하 백운정 뒷산의 임하리 고분군을 구경시켜 주기로 했다. 하회마을이나 도산서원이야 앞으로도 볼 기회가 충분이 있을 것이기에 고대 안동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지막한 산길을 걸으면서 자연스레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해 봤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시이 미호라고 합니다. 국사관대학교 21세기아시아학과 3학년이고, 집은 가나가와현(神奈川縣)에 있습니다.”
가나가와현은 일본의 대표적 항구도시인 요코하마가 있는 곳으로 미호의 집은 요코하마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고 했다. 고향에는 부모님과 언니, 여동생이 살고 있는데 미호는 딸 부잣집의 둘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부모님이나 언니는 자기의 영향으로 한국에 관심이 많지만 동생은 아직 고등학생이여서인지 영어에 더 관심이 많다고 했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수험생에게 있어서 영어의 중요성은 매 한가지인 모양이다.

황선홍 선수의 팬으로 시작된 한국사랑
미호가 한국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재밌다.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우리나라 국가대표 축구팀이 일본에서 경기를 한 적이 있었단다. 그때 TV를 통해 본 황선홍선수가 너무너무 멋있어서 황선수의 골수팬이 되었고, 그것이 한국을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한국어를 공부하게 되는 계기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최근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도 늘어났지만 그전엔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이 그렇게 녹녹치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혼자 이리저리 뒤져서 꼭 외우고 다니던 말이 “황선수. 팬이에요. 제가 응원하고 있어요.”였단다. 언젠가 만나면 꼭 그 말을 전해주기 위해서였다니 웃음이 나온다.
아무튼 황선홍선수로 시작된 미호의 한국사랑은 반드시 한국을 가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바뀌었고 고등학교 때 4박5일간의 교환학생을 시작으로 이번 안동대 교환학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섯 번째 한국방문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냥 황선홍선수가 좋고 한국이 좋았을 뿐이지 한국어를 공부할 생각은 없었어요.”
처음 서울 잠실여고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한국어를 공부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홈스테이로 머물렀던 어느 잠실여고생의 집에서 가족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고, 떠나오는 길에 고맙다는 말 한마디 직접 전하지 못한 것이 너무 죄송해서 다음에는 꼭 내입으로 감사의 뜻을 전하리라 하고 시작한 것이 한국어 공부의 계기라고 한다. 스포츠스타를 통해 한국을 좋아하게 되고, 친절한 가족들에 의해 한국어를 공부하게 되었다하니 미호는 한국사랑의 정석을 밟아 온 셈이다.

당찬 그녀 “한국행 걱정되지 않았어요.”
한국에는 반일감정이 심한 편인데 한국에 오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냐는 질문을 해봤다. 물론 독도문제나, 교과서왜곡, 신사참배, 위안부문제 등 모두 일본이 자초한 일로 한국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긴 하지만 어찌됐든 한국을 찾은 일본인 입장에서야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전혀 걱정되지 않았어요.”
조금은 의외이다. ‘사실은 그것이 걱정이었어요.’라는 대답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너무나도 당당히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는 그녀의 대답이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이유를 물어봤다.
“물론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걱정했었어요. 하지만 홈스테이에서 가족들의 친절함이 저의 그런 걱정을 완전히 날려 버렸어요. 그 다음 방문부터는 걱정하지 않았어요. 한국 사람들이 다 그 가족들처럼 친절해 보였거든요.”
미호의 답변에 흐뭇하기도 하고 그 가족들이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고 누군가에 의해 미호가 실망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이 된다. 절대 그런 일 없이 그 흐뭇한 기분을 영원토록 간직하길 빈다.

제대로 한국말을 배우고 싶어 안동에 왔죠
마지막으로 교환학생의 장소를 안동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물어봤다.
“우리학교(국사관)에서는 고려대, 한양대, 동의대(부산), 그리고 안동대로 교환학생을 갈 수 있어요. 저도 서울이나 부산으로 가는 것이 생활하는데 훨씬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한국어 공부를 하는 데에는 안동이 훨씬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안동에는 일본인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가 한국말을 사용하는 일이 많아 질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한국어 실력이 능숙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녀의 말마따나 서울이나 부산의 대도시로 가면 생활하는 데는 훨씬 편할 것이다. 그에 비해 안동의 문화, 편의시설이야 안동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런 걸 모두 감내하고서도 안동을 선택한 미호. 놀랍다.

한국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것이 꿈입니다.
미호는 키가 작은 편이다. 그리고 눈도 커서 겁도 많게 생겼다. 이렇게 여려 보이는 아가씨에게서 어떻게 이런 강한 의지가 나오는 걸까. 내심 존경과 부러움의 뜻을 담아 한마디 건넸다.
“미호! 미호는 참으로 강한 사람 같아요.”
부끄러운 듯 손사래를 치며 미소 짓는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한달밖에 안 지났지만 벌써 너무 힘들어요. 하지만 나는 약하기 때문에 강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참고 견디고 있어요.”
한국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것이 꿈이라는 ‘이시이 미호’. 그래서 일본에서는 오히려 국어(일본어)교육을 전공하고 싶다는 그녀는 올 일년을 안동에서 보내고 난 뒤에는 한층 더 성숙된 모습이 되어있길 바란단다.
그러나 이미 미호는 성숙되어 있는 모습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향해 진취적으로 나아가며, 쉬운 길 보다는 험난한 길을 택해 자신을 단련할 줄 아는 사람인데 어찌 성숙되었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강산이 한번 변할 만큼의 나이 차이가 있는 나보다도 어른스럽다.
끝으로 저 멀리 바다 건너 철부지 둘째 딸의 안부를 걱정하고 있을 미호의 부모님께 이 말을 전해 드리고 싶다.
“미호 부모님! 미호는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안동 친구들이 잘 돌봐 주겠습니다.(美?のお母さんとお父さん！　美?は心配しないでください. わたしだち安東の友達が面倒をみますよ.)”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