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명 시인의 시집 <한 시절>(글/한경희 -안동대학교 국문학과 강사-)

"복사꽃 시절을 부르다"


인생의 어느 고개에 이를 즈음 이미, 살아버린 날들에 대한 자기연민이 진동하게 되는 것일까. 「한 시절」 (한양명, 모아드림, 2006)은 지나온 시간에 대한 고백적인 헌사의 기록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원래 시 쓰는 일이 제 것의 속살을 다 보이지 않고, 실토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일까. 시인은 시집을 묶는 일이 살아온 인생을 묶는 일인 양 뜸을 들였다. 시집이 나올 거라는 소문은 미문으로 동네를 배회했고 한 동안 두절된 안부가 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마치 인생 몇 토막을 정리하듯, 「한 시절」을 부려놓았다.
시와 인생을 나눌 수 없었던 “한 시절”이 시인에게는 여전히 현재적인 통증으로 남아 있는 상태이다. 당연한 고통이 아니었을까. '조시'만을 겨우 쓰면서 몇 년을 지내온 시인에게 시의 길을 묻는다는 것은 거의 고문에 가까울 것이다. 시인은 시 쓰지 못한 나날들에 대해 “혓바닥에 고여 들어 침처럼” 살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살이 중독으로부터 깨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 깨어남의 구체적 증거로 「한 시절」을 묶어냈을 것이다.


「한 시절」의 절창은 아무래도 ‘시절’과 관련되지 않을 수 없다. 시집의 제목으로도 이름을 얻은 ?한 시절?과 성장기의 아픈 추억 '트로트'는 지나온 시간과 거리두기에 성공한 작품이다. 그 어조의 담담함과 달리 시인은 잃어버린 것들을 가슴에 꾹꾹 눌러 담아둔 것이다. ?트로트?에는 성장기의 아픔과 낭만을 함께했던 친구를 잃어버린 이야기가, '한 시절'에서는 사는 일이 힘들었으나 꽃을 잊지는 못했던 아름다운 시절을 아껴둔 마음이 잘 보인다.
시인의 아쉬운 마음은 흘러가는 시간에 모여 있었다. 아니, 시간에 모이도록 해 두었다. 흐르는 물처럼 혹은 강처럼 가난도 사랑도 시도 흘렀음을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사실은 한 때의 간절함과 그리움을 풀어놓은 것이건만 가급적이면 집착을 피해 멀리서 조망하려 애쓴 덕분에, 가난하거나 살기 어려웠던 슬픈 사연들이 추억의 힘으로 단단하게 언어 그대로의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인의 개인사에서 친구의 죽음이나 꿈을 두고 좌절과 방황을 일삼던 시절이란 존재를 온통 흔들었을 치명적인 사건임에 분명하다. 시인은 치사량에 가까웠을 삶의 마디에서 별로 엄살조차 부리지 못했던 것 같다.


'한 시절'에는 시인의 복사꽃시절이 짤막하게 언급되고, 대부분은 잃어버린 꽃에 대한 고백으로 이어진다. 사실은 시인에게 “한 시절”이란 꽃을 잊고 지낸 시절이 아니라, 그 꽃 속에 있던 시절이다. “희망 없던 시절, 친구와/말없이 한참을 바라다보고/손 내밀어 만져보던” 그 복사꽃의 한 때는 ‘희망이 없었으므로’ 무지막지하게 찬란하였을 것이다. 인생에서 빛나는 일이란 희망으로 들고나는 것이 아니라, 희망에의 의지로 호출되는 법이므로.


 


“세월도 강도/흘러온 것들은 또 그렇게 흘러/바닷가 낙척서생이 된 친구는/봄마다 복사꽃의 안부를 물어왔지만/먹고 살 길을 찾느라/그 꽃을 잊고 지낸 나는/친구의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 '한 시절' 부분 -


'한 시절'이 잃어버린 희망을 두고 쓴 시라면, '트로트'는 잃어버린 친구들에 대한 시이다. 낡은 사진첩을 조심조심 넘기듯 '트로트'의 장면에는 “마지막 잎새를 배호보다 잘 부르는 성일이”, “트로트 선곡집을 공부한 기형”이가 있다. 동숙의 노래, 배호, 문주란의 노래 등, 뽕짝을 함께 부르며 그 시절의 꿈을 더불어 낚았던 성일이, 기형이. 기타를 뜯고 뽕짝을 부르며 무럭무럭 자라던 그 한 때의 행복함이 상처와 상실로 마감된 슬픈 기록이다.
이들은 낡은 흑백사진에서 한명씩 얼굴이 사라지는 공포영화의 장면처럼 시인의 앨범에서 사라져 갔다. “임동이발소 시다 출신 성일이는/어미 없는 자식 둘을 두고” 죽었고, 기형이는 “북아현동 자취방에서 연탄가스로 죽었다” 이들의 죽음은 이미 가버린 트로트의 시대처럼 구성진 추억은 되었으나 즐겨 부를 노래는 되지 못했다. 시인은 그들의 죽음, 횡사에 대해 어떤 말도 다 닫아걸고 “트로트”로 그것을 모조리 덮어두었다. 이러자니 “꺽꺽한 목소리”의 구체적인 현장에 대한 상상력이 오로지 트로트로 모이는 답답함이 있다. 그래도 어쩌랴. 시인은 그렇게 답답했던 한 시절이었다고 또 다시 고백하는 중인 것을.


시집 「한 시절」에는 “시절” 이야기가 자주 출몰한다. “한 시절의 희망과 또 한 시절의 낙담들”이 만난 '실상사', 저마다의 시절을 완전히 하직한 조시 몇 편과 아예 '조시'라고 쓴 시에서 보여주는 시절의 국면들, “흐르는 길을 따라 사랑도 흐른” '법주사行', 의상과 선묘의 “그 시절의 미소로 날 오라”하는 '부석사', 1994년 3월?, “한 시절의 밥이었던 꽃” '참꽃', 서로를 알고도 알 수 없는 “그 시절의 고등어” '천전리', 시가 통째로 시절을 알리는 전언인 '라디오', “지난 시절 청춘의 꿈”이 무너진 '허리골에서' 등.
이 시집의 시들은 시절에 대한, 시절에 의한, 시절을 위한 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생의 국면마다 특별하게 마디를 이루거나, 연령대별로 잘라낸 특정한 시간대가 바로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절의 노래들”이 시 '익는다는 것은'에 이르면 오랜 시간의 상흔이 어디에다 닻을 내려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익는다는 것은'은 시간을 제대로 발효시킨 작품이다. 맛있는 과육이 익어가는 길이 반듯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시간과 다르지 않은 내용을 가졌다. 부제로 “자두에게”라고 붙여서 과일을 두고 쓴 글임을 금세 알 수 있으나, 굳이 과일에 매일 필요는 없다. 과일 자두가 사람 아무개로 읽힌들 어떠랴. 익는다는 것은 제대로 단단해지는 씨앗을 이르는 것이고, 익는다는 것은 “제 맛을 낼 때 미련 없이 떨어지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익는다는 것은 속으로 단단해져서 다시 생명을 기약하는 씨앗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래서 물러지는 살점과는 달리 씨앗은 단단해진다. 여기에서 하나 더, 미련 없이 떨어질 수 있을 때 제대로 익었다고 할 수 있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의 한 구절처럼 마치 떠날 때가 언제인가를 아는 이의 아름다움 뒷모습과 닮았다. 자연의 주기나 순환이 뒤틀리지 않고 여직 지속되는 원리가 ‘익으면 떨어지는’ 생명성에 있었던 것이다.  


시인이 밝힌 대로 시와 밥은 상생이 참 힘들다, 아니 안 된다. 그 상생의 고통이 이 시집에도 잔뜩 들어있다. 밥이 될 수 없는 시를 두고 시인이 끙끙 앓은 것은 “어디다 쓰지 못하는 것”이 시인에게는 유용했기 때문이다. 그 유용성으로 우리도 겨우, 희망을 향한 의지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한 시절」이후 시인에게 시와 밥은 어떤 관계가 될지 궁금해진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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