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봄 이야기(글/이인우 - 의성 안평중학교 교사, 소설가)
입학식 풍경
우리학교는 열 분의 선생님과 세분의 일반직이 근무하는 조그마한 학교이다. 금년 3월은 교장, 교감선생님을 비롯하여 많은 선생님들이 전,출입을 했다. 거기다 교무부장을 하시던 분도 바뀌고 나니 인수인계가 무척 분주했다. 부임도 하지 않은 교장, 교감, 교무부장이 발령 소식을 듣자마자 출근하여 정식 근무를 했다. 입학식은 해야 하는데 장학생 선발은 어떻게 했는지 서류를 뒤적거리느라 오전 시간을 몽땅 보냈다. 사무부장과 담임을 발표하고, 교무실을 정리하다보니 봄방학은 아예 반납했다.
3월 2일 아침이 되었다. 학생들이 등교하고 전 직원이 출근하자 적막하기 만하던 학교가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시업식은 생략하고 입학식을 하기로 했다. 운영위원장과 동창회장이 참석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가 생겼다. 운동장에서 입학식을 하도록 준비되었는데 9시가 가까워지자 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거기다 바람이 거세게 불더니 비는 진눈깨비로 변해 운동장에서는 도저히 입학식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입학식은 교실 2칸을 터서 만든 회의실 겸 탁구실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빈 교실로 남아있던 회의실, 입학식 현수막을 급조하고 의자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사이가 없었다.
식이 시작되었다. 신입생 남자 5명 여자 1명, 재학생 26명, 회의실은 너무 한산했다. 재학생이 들어오고 신입생 수 보다 학부형 수가 많은 입학식이 거행되었다.
급하게 준비하다 보니 국기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정말 난감했다. 결국 운동장 국기게양대 국기를 향해 좌향좌를 하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다. 신입생 선서와 장학금 전달이 있고 교장선생님의 감동적인 식사로 이어졌다. 운영위원장의 축사가 끝나자 교직원 소개도 있었다. 학생과 첫 대면을 하는 신임 교장선생님께서 교감선생님을 소개하고 교감선생님이 교직원을 소개했다. 계속 근무하시던 선생님들은 아주 젊고 유능하신 분들이었다. 서로 어색하기도 하련만 한마음으로 동분서주하다보니 쉽게 마음을 열 수 있었다.
새로 오신 선생님들이 낯선 학교에서 새댁이 시집 온 날 첫 아침식사를 준비하듯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좌충우돌하다 입학식은 그렇게 끝났다.
자전거 통학과 선미
우리 학교 학생 수는 32명이다. 대다수 학생들은 자전거로 통학을 한다. 통학 거리가 가장 먼 학생은 금곡리로 8km정도가 되며 자전거로 40분 정도 걸린다. 평균 통학 거리는 2km 정도인데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걷지 않으면 자전거를 탄다. 자전거 사고를 염려하여 2인승은 말리는데도 학생들은 교통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선생님과의 약속을 어기는 경우가 있다. 특히 자전거가 고장났거나 선미처럼 동생을 자전거 뒤에 태워야 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학생들은 더욱 그러하다.
얼굴이 예쁘고 깡마른 선미는 긴 생머리의 소녀이다. 넷째 딸인데 남동생이 초등학교 6학년이다. 선미의 부모님은 아들을 낳기 위하여 딸 넷을 낳은 의지의 한국인이다. 의지의 한국인은 몇 집 더 있다. 딸 다섯을 낳고 아들을 낳아 누나들 속에 행복하게 자란 학생도 몇 명 있다. 선미는 등교할 때 금지옥엽 귀하기만 한 남동생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초등학교까지 갔다가 우리 학교로 온다. 아마 귀한 아들이니 넷째 딸이 등교와 하교는 책임지라고 집에서 시킨 것 같다. 그 초등학생의 통학 수단은 ‘누나 자전거 뒤에 고이 모셔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긴 머리 날리며 자기보다 몸집이 더 큰 동생을 태우고 달리는 것을 보면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선미는 공부도 잘하고 학교생활도 모범적일 뿐 아니라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 착한 학생이다.
시내버스는 시간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제 시간에 온다 해도 손님이 없어 한산하기만 하다. 학생들은 그런 버스를 타는 것보다는 자전거에 책가방을 척 싣고 친구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침을 달리는 것이 더욱 신나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 일찍 출근하는 날은 자전거 행렬을 구경할 수 있다. 줄지어 가다가 언제 흐트러졌는지 나란히 가기도 한다. 한산한 지방도로에 차라도 오면 약속이나 한 듯이 한 줄로 서는 우리 학생들의 준법정신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생존경쟁과 연관짓는다 해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살구나무 아래서
운동장과 교사(校舍) 중간지점 언덕에 수령이 50년은 됨직한 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 있다. 주변은 작은 개나리가 있고 잡초가 자란 흔적이 있다. 너무 외로워 보였다. 무슨 나무이기에 저토록 오랜 세월을 교정 언덕에 버티고 있을 수 있을까? 무척 궁금했다.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시골 아이들답게 그저 ‘나무겠지요 뭐! 라고 할 뿐, 이름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바람이 훈훈해지기 시작하고 새싹들이 뾰족이 고개를 내밀고, 성급한 개나리가 피는가 싶더니 목련가지에도 흰색이 커져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학생들과 무슨 나무인지 내기를 걸었다. 전교생 32명을 대상으로 이름 알아 맞추기를 했다. 방법은 본인 이름과 예상되는 나무 이름을 써서 작은 통에 넣어 두었다가 잎이 돋으면 열어 보는 것이었다. 물론 나도 적어 넣었다. 가장 많이 쓴 이름으로는 참나무, 두충나무, 소나무, 벚나무였다. 혹은 산수유나무, 앵두나무, 복숭아나무도 있었다. 시골 아이들이라 비교적 나무 이름을 많이 알고 있었다. 내가 쓴 것은 참나무였다.
언덕 위 나무는 다른 나무들이 잎을 피워도 소식이 없었다. 어제 보나 오늘 보나 거무튀튀한 나무 색과 앙상한 가지가 바람에 흔들릴 뿐이었다. 목련이 시들어가고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릴 즈음, 안개가 자욱하다 걷히고 난 정오였다. 2층에서 수업을 하다 우연히 올려다 본 언덕 위 나무에 마침 소식이 왔다. 그것은 푸른색 잎이 아니었다. 나뭇가지 끝에서 보일 듯 말 듯 붉은 색이 비치고 있었다. 저것이 무엇일까? 하루가 다르게 시력이 약해지던 나는 ‘이제 색명까지 왔는가’ 더럭 겁이 났다. 하던 수업을 멈추고 아이들도 나처럼 보이는가 싶어 쳐다보게 했다. 잠시 후 몇 명의 학생들이 나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아무런 변화도 눈치 채지 못한 학생도 있었다.
다음 날, 그리고 다음날이 되자 붉은 색 기운은 현실로 다가왔다. 온 가지가 붉은 색으로 덮이던 날 우리는 비로소 내기를 하자던 통을 열고 결론을 내렸다. 그 나무는 연분홍 그리움을 가슴 가득 품고 봄을 기다리던 살구나무였다는 것을.<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