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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단골 김 선생님(글/김연숙 - 안동주부문학회원)

“안녕하세요.”
“예, 오랜만이네요, 큰 집으로 가시더니 장사는 어떻니껴.”
“네 잘 하고 있어요. 근데 요즘 왜 얼굴 뵙기 그리 힘들어요?”
“김00 선생 소식 들었니껴?”
“무슨 소식을?”
“김 선생 돌아가신 거”
“아니 그분이 돌아가시다니요”
“갑자기 집에서 심장 마비로 그만.....”
사람 사는 일이 바람 앞에 등불이란 말처럼 찬바람이 옷 속을 파고든다

소주 한 병도 줍니까?
내가 김 선생님을 처음 만난 날은 겨울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다. 따스한 창가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데 깔끔한 모습에 007가방을 들고 문을 열며 들어섰던 그분.
“소주 한 병도 줍니까?”
“네, 들어오세요.”
여기저기 둘러보시며 마치 전시실에 들어선 느낌이라며 좋아 하셨다.
뜨끈한 국물 한 그릇에 얼었던 몸을 녹이시며 소주 한 병을 단숨에 비워 버리고는 민망하셨던지, 손이 떨려서 붓글씨를 못 쓴다며 애써 변명을 하셨다.

아침나절에 소주 한 병을 비우는 모습에 대단한 애주가라고 생각을 하며 마무리 짓지 못한 글과 씨름하고 있는데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시는 몇 분과 점심을 잡수시려 다시 오셨다
이런 일 저런 일 이야기를 나누시는 걸 귀동냥을 하다보니 교감 선생님으로 퇴직 하신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잔의 술에 기분이 좋아 지셨는지 전시된 글도 읽으시며 너무 분위기 좋다고 다시금 흐뭇해 하셨다.
그 이후 가끔씩 술 생각나면 들르시곤 하셨다. 이른 아침에 마땅히 술 한 잔 할 곳이 없어서 갈 곳을 찾았는데 거리도 가깝고 부담이 없어서 들르신다고 하셨다

오랜 지기와 함께 읊은 적벽가
어느 날인가, 어둑해지는 시간, 어디서 한잔 하셨는지 존경하는 선배시라며 멋쟁이 한분을 모시고 들어오시더니 소개를 시켜 주시고는 두 분이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셨다.
흥이 돌자 적벽가를 멋지게 읊으시며 등불을 밝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시는 듯 이야기에 취하셨다. 줄줄줄 한시 수백 편은 족히 외우신다는 말씀 속에 옛날 외할아버지가 책을 읽으시던 모습이 겹쳐지고 그 옆에 나는 웃음으로 화답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글이 짧은 나를 아시기라도 하시는 듯 해석까지 덧붙여서 한잔 마시고 한 수 읊고 한바탕 웃곤 하셨다. 지기와 서로 마음껏 즐기시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

하루는 텃밭에 풀어먹인 닭을 잡는 걸 보시곤 한 마리를 달라기에 가져가시라고 했더니 술을 한잔 하시고는 사모님에게 전화를 하셔서 김치와 함께 싸 달라셨다. 근데 닭을 보신 사모님이 ‘이걸 어떻게 요리 하냐’고 물으셨다. ‘그냥 고아서 드시면 좋지요’ 했더니 한번도 닭을 삶으신 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미셨다
어리석은 나는 처음에 그 말을 곧이듣고 정말 그런 줄 알고 별 팔자 좋은 아지매도 있다고 생각을 하며 속으로 웃었다. 부창부수가 이럴 때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파란만장한 삶, 갈무리 하고싶어 했던 그 분
오가며 단골이 된 어느 날 불쑥 날더러 당신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한 번 써 달라고 하셨다 난 실력이 부족하여 해 드릴수가 없고 제가 연재하는 사랑방 기자에게 부탁을 드려서 만나게 해 드린다고 약속을 했다
소여물을 썰다가 손가락을 잃으시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어린 마음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시고 독한 마음을 잡수셨다고 중년에 이르러 암이 몸에 침투 했을 때 죽기 살기로 등산을 다녀 물리치셨다며 지난날을 회상 하실 때 눈시울을 적시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했다. 내 사연도 제대로 못 쓰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라 사랑방으로 미루어 드렸는데 기자와 만나기로 한날 선생님은 모습을 감추셨다. 수많은 제자들 앞에 이야기를 내어 놓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기어이 오시지 않아 나는 원치 않게 그녀에게 바람을 맞게 했다.
그 뒤로 여러 번 자서전을 써 달라고 부탁을 하셨지만 난 쉬 응할 수가 없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길이 힘들고 고통이 따르지만 장사하는 입장으로 보면 퇴직금도 있겠다, 느긋이 여생을 즐기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간혹 하곤 했다.
사람 사는 일이 다 감사는 아닌지 사모님과 언짢은 일이 있으면 여자들은 왜 그런지 모르겠다며 넋두리를 하시고 한잔 하시면 금방 술 앞에서 약해지곤 하셨다. 기분이 좀 나아질까 싶어 내가 옆에서 한마디 거들어도 본다.
“속 좁은 여자가 그렇지, 나도 그래요.”
“허, 정말 마담도 그럽니까? 싸웁니까?”
너털웃음에 소주 한 잔으로 마음 달래시던 선생님.

다 스치는 바람 같은 인연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가슴앓이 사연 못 쓰는 글로나마 꼭꼭 써 드리는 건데 후회도 되고 가슴 한켠이 싸하다.
선생님, 못내........죄송해요.<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