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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수꾸떡 아저씨(글/김연숙 - 안동주부문학회원)

“여보세요. 경찰서죠?”
“예, 그렇습니다.”
“여기 좀 와주셔야겠어요.”
“무슨 일이신데요?.”
수화기를 내려놓자 더럭 겁이 나는 한편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안절부절이다. 어디에서 넘어졌는지 얼굴은 피투성이고 만취해서 인사불성인 아저씨를 나 혼자 감당 못해 경찰에 도움을 청한 것이다.

차가 도착하고 아저씨와 어떻게 되는 사이냐고 묻는 경찰에게 난 얼떨결에 친구 분이라고 말씀 드렸다. 난감해하는 내 얼굴을 보며, 하필이면 이런 분이 친구냐고 빙그레 웃는다. 남자 셋이서 매달려도 힘에 부칠 만큼 덩치는 크고, 술에 취해도 힘은 세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쩔쩔 매면서 단골이냐고 다시 묻는 경찰아저씨. 단골이라고 말하기도 우습고 그냥 잘 아는 분이라고 했더니 동정의 눈길로 나에게 ‘이분 어디어디 사시는 거 맞죠?’ 한다.
길가에 누워서 잠이 들어 누군가의 신고로 여러 번 집까지 데려다 드렸다는 경찰 아저씨는 ‘이분, 말씀도 할줄 아시냐’며 나에게 되려 묻는다.

아저씨의 별명은 대한민국 수꾸떡. 누가 붙여준 이름인지 몰라도 험한 세상을 살아오신 듯하다. 아는 것도 많고 힘도 세지만 술에게만은 늘 져서 상처투성이 얼굴로 노숙자처럼 길 위에 뒹굴기 대장이다

내가 아저씨를 만난 것은 밥 배달을 나가서였다. 초면에 심부름을 하시고 무거운 것도 들어 주시는 고마운 마음에 남겨진 음식을 드리다보니 정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가게에 오시면 마치 자기 집처럼 냉장고 문을 열고 술을 마음대로 잡수시는 것이다. 그것까지는 그래도 괜찮은데 심할 때는 우리 집에서 한 잔 하고 나가셔서 만취가 되면 다시 오셔서 엉엉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나 혼자 있다가 취해서 오시는 모습이 보이면 문을 잠그고 살며시 도망도 몇 번 가곤했다.
정신이 말짱 할 때는 양반 체면도 차릴 줄 알고 주머니에 서푼만 들면 무엇이든지 다 사주신다며 큰소리 뻥뻥 치지만, 술만 들어 갔다하면 세상 설움 혼자 가진 듯 그렇게 서럽게 눈물을 뿌렸다.

어느 날은 이른 아침에 오셨는데 보니 주머니에 돈이 가득해서 저축해 두고 아껴 쓰라며 나에게 돈을 맡기라 하셨더니 반쯤 주셨다. 점심으로 냉면도 사고 아이스크림도 사 주시고 가셨는데 저녁때가 되어서 만취한 얼굴로 오시더니 맡겨 놓은 돈을 달라셨다. 반쯤 드리고 두었더니 밤중이 되어 또 오셔서는 마저 달라신다. 할 수 없이 다 내어 드렸다. 술이 취했는지 정신이 있는지 구분이 안 간다. 술 취해도 집은 잘 찾아가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걸 보면 건강은 타고 나신 것 같았다. 본인 말에 의하면 참기름, 소주, 영양탕을 많이 먹어서 상처도 빨리 낫는다고 자랑이다.

정신이 맑은 날 아저씨께 술에 취하면 왜 그리 우시냐고 물었더니 아직 총각인 신세가 속상하고 남들은 잘 사는데 외로워서 그런다고 하셨다. 혼자 산다는 것, 취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며 내게 무슨 낙이 있냐고 하시며 눈시울을 적시셨다.
바보 같은 나는 아저씨를 한번 고쳐 보겠다며 나름대로 노력을 한다고 작년 1월 협박 반, 사정 반으로 교회에 모셨다. 그렇게 반년쯤 다니시던 아저씨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마냥 ‘세상으로 돌아간다’며 한 수 위에서 나를 놀리셨다
잔소리 아닌 잔소리꾼이 되어 맑은 정신일 때면 설교를 하고 만취가 되면 만사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옆지기가 그토록 술주정을 해도 한마디 말도 없이 보고만 있어 주는 것이다. 내 마음이 조마조마 할 때도 참는 것이었다.
아저씨 계신 곳에 오가는 일이 어느 덧 이년 가까이 되었다. 아저씨는 이제 인간이 반쯤은 되었다고 말하시며 우리 집에 오시면 소주 한 잔으로 만족해하시고 얼굴에 상처 나 길가에 누워서 잠들어 경찰차를 부르는 일이 줄어들었다. 교회에 오신 뒤로 여러 교우들이 숱한 소식을 들려줄 때가 있다. 전화로 아저씨에게 왜 그러냐고 한소리하면 우물가 사장님은 천리안이냐고 껄껄 웃음으로 버무리는 아저씨.

개가 한 마리 필요해서 아저씨께 얻어 왔다가 사정이 여의치 못해 밤중에 돌려 드렸더니 이른 새벽 잠자리에 전화가 왔다. 밤새 생각해도 나에게 결별 할 만치 잘못한 일이 없다며 도대체 왜 그러냐고 잠을 못 주무셨단다. 그토록 애를 먹이고 야단법석을 떨어도 미운 마음이 안 드는 것은 아저씨가 가진 양반의 기질과 어린 아이처럼 고집 부리는 모습에서 착한 심성과 순수함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몇 번이고 약속 한 것들을 반복해서 말씀드려도 아저씨는 흘려듣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면서 육십 평생을 술과 외로움으로 사신 길 아직은 공사 중이지만, 언젠가는 당당하고 멋진 모습으로 우물가 큰 대문으로 대한민국 수꾸떡 아저씨가 들어오실 날을 기다린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