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내용

나의 인생학교(글/김연숙 - 안동주부문학회원)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는데, 안동문화원에서 운영하는 문화학교 사학년 팔반이면서도 어째 나는 변변한 글 한편이 없다. 거기다 식당 주인 삼년이 넘어도 ‘이것이요’ 하고 내놓을 주 메뉴 하나 없이 양손에 떡을 들고 하나도 놓치기 싫어하는 나는 정말 바보다.
장사를 하기보다는 사무실 겸 휴식 공간을 만들려던 당초 계획은 빗나가고, 맛이 있네 없네 칭찬과 격려에 비웃음과 야유까지 들으며 버티어 온 삼년을 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나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맛있게 먹어 주고 도와주신 몇 팀의 줄기 찬 사랑 때문이다. 그중에 나의 든든한 백그라운드이자 홈구장은 안동문화원 식구들이다.

고군분투하며 배워가는 장사이치, 삶의 이치
문화원 교장 선생님은 고군분투하는 내가 애처로우셨던지 일감을 주셨고, 이제는 천명이 넘는다 해도 차근차근 생각 하며 준비하는 여유까지 생겼다. 다섯 명의 밥을 팔겠다고 뚝향나무 종택을 가면서도 이슬 맺힌 꽃을 보고 종알종알 즐거울 수 있었고, 천명의 밥이 모자라 발을 동동 구를 때도 ‘글 한 편 쓸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 한결 수월해진다
교장 선생님의 엄한 훈시에 눈물이 핑 돌 때도 있었고 호탕한 웃음과 넉넉함 속에서 가족 같은 믿음이 생기고 하늘이 무너져도 요동치지 않을 것 같은 국장님을 보면서 침착함을 배웠다. 일일이 확인하며 앞뒤를 가려 행사 하나하나를 엮어 가는 구 과장을 보며 나는 참 작구나 생각하고, 톡톡 튀는 김 간사를 보며 젊음이란 희망이란 걸 느꼈다.

크고 작은 일감을 줄 때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마음이 생기면 나름대로의 연습을 시작 한다. 똑같은 메뉴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들의 입맛에 맞출까 애써 보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여러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리에 스치고 지나간다.
백 명의 김밥을 주문 받고 도우미들과 밤새워 김밥을 싸고 나니, 싸 보낸 김밥보다 더 많은 양이 남아 동네방네 퍼 돌리느라 뜨거운 여름날 땀으로 범벅이었던 일. 추석 날 이백 개의 도시락을 준비하고 남을까봐 염려했더니 불티나게 팔려 버려, 하루 종일 굶은 사람들 마냥 아우성치는 통에 시달렸던 기억. 매년 봄이면 민속박물관에서 한바탕 치러지는 여성한마당 잔치에 모두들 예쁘게 차리고 흥겨운데, 밥장사하다 놓쳐버린 아름다운 순간들.
정월 대보름 행사에 많은 음식을 준비 해 놓았으나 추운 날씨에 일찍 돌아가 버린 사람들.그네들이 괜시리 미워져 텅 빈 강가에서 달을 보며 울고 싶던 날, 모닥불을 쬐다 만난 행상 아저씨에게 많이 파셨냐고 물었더니 재미를 못 봤다며 지금부터 밤을 달려 내일은 강원도에서 장사 하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의 불평은 꼬리를 쏙 감추어 버렸다. 수 십리 길에 때로는 밥을, 때로는 고기를 잊어버려 어둠을 헤치며 달리느라 얼마나 용을 썼는지, 밤새워 40도의 고열에 시달려 이튿날 일어나지도 못하다가도 아침이면 손님의 아침을 준비하느라 멀쩡한 사람처럼 다니다보니 이일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문화학교 졸업식에서는 처음 시도해 보는 뷔페에 마음은 급하고 시간은 자꾸만 달아나 손님이 불어 날 때마다 가슴이 콩닥거려 이후로 무조건 넉넉하게 차리게 되었다. 야외에 가면 속수무책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집에서야 무엇이라도 대신하여 준비할 수 있지만 밖에 나오면 얘기가 틀려진다. 그래서 무조건 넉넉히 만들고 남으면 이곳저곳 퍼 나르는 게 주 특기가 되어버렸다.

방학이 되면 학생들이 예절학교를 시작한다. 이박 삼일동안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아침 점심 저녁 오가는 것도 힘들고 어렵지만, 무엇보다 여름에는 식중독 때문에 신경이 여간 쓰이는 게 아니다. 그때그때 음식을 만들어야 하므로 힘이 들지만 마지막 날 점심을 먹이고 나면 우리들만의 나들이가 시작된다.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도 동심으로 돌아가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근처에 있는 관광지를 돌아다닌다. 가까이 있지만 자주 나들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는 작기 때문이다. 숲에서 물에서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으면 피로는 사라지고 일상으로 돌아 올 때는 가슴 가득 꿈을 안고 돌아 오기에 나는 이 일이 좋다. 만드는 것도 재미있고 사람을 만나면 배울 수 있고 행사를 치를 때 마다 도전하는 용기도 생긴다.

웃음과 울음을 날줄씨줄로 엮어준 나의 인생학교
누군가 전생에 죄가 많으면 식당을 한다고 웃으며 들려주던 말이 생각난다. 그래도 나는 음식 때문에 문화원에서 수많은 것을 배운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도 만나고, 아름답고 고운 벗과도 만나고, 유치원부터 팔순의 어른까지, 안동의 양반들과 은발의 파란 눈동자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놀이 문화 속에서 웃음과 울음을 날줄 씨줄로 엮으며 살아간다.
나에게 연필로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있는 한 나는 문화학교에 문을 두드릴 것이고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으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더불어 나누면서 살고 싶다. 그래서 나의 인생 대학은 문화원의 문화학교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