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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발 딛고 한복명장에 도전하는 김옥수씨(글/이미홍-객원기자)

한땀 한땀 손바느질 고집하는 김옥수 한복 알면 보인다고, 친정이 송현 쪽이라 그 앞을 참 무수히도 지나쳤건만 눈에 들어오지 않던 그 자리가 내가 필요해서 보니 태화삼거리에 들어서자마자 금방 눈에 들어온다. 옛 한전 건물 건너편, ‘전통한복 김옥수’라 적힌 간판이며 아담한 가게 안쪽에 전시된 고풍스러운 고운 한복들이며가 눈에 쏙 들어온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가게의 반 이상을 차지한 넓은 재단 책상에서 김옥수 그이가 재단을 하고 있다. “안동에서 가게를 내고 한 지는 얼마 안돼요. 태화파출소 앞에서 시작을 했다가 반응이 좋아서 이리로 옮겨서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수선가게를 하려고 시작했는데, 막상 시작하려고 하니까 이왕 가게를 하는 거 내가 한복 기술이 있는데 왜 그걸 하겠나 싶어서 한복가게로 시작을 했어요. 손님들이 알음알음으로 아시고 자꾸 한복을 부탁하시는 바람에 한 벌,두 벌 해 주다 보니까 그게 소문이 좋게 나서 이곳에 가게를 낸 지 이제 3년쯤 됐네요.”

소아마비의 열여덟소녀가 이악물고 상경했죠
열여덟이 되던 해인 77년 봄, 그이는 혼자 서울 행 기차를 탔다. 뭔가 기술을 배워 자신의 앞날을 개척하기 위해서였다.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를 저는 불편한 몸이라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옥수 씨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집안의 막내이자 몸이 불편해서 애지중지 자랐던 옥수 씨가 서울까지 혼자 한복 배우러 간 사연을 이야기 하자면 하나 밖에 없는 귀한 아들이자 집안의 기둥이었던 오빠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잘나고 똑똑해서 서울에서 좋은 대학을 다녔던 오빠였다.
“우리 오빠가 대학 다니다가 연탄가스 사고로 죽었어요. 하나 밖에 없던 아들을 그렇게 보내고 우리 부모님들이 넋이 나가 사셨어요. 오빠가 청량리역에 친구를 마중 나왔다가 여인숙에 들어갔는데, 비어 있던 방에 금방 연탄을 넣고 방을 주었다가 사고가 나니까 여인숙 주인이 약병을 하나 갖다 놓고 약 먹고 자살했다고 한 거예요. 청량리 주변 파출소, 가까운 병원에 돈을 먹여가면서 그렇게 했어요. 국립과학연구소에 해부까지 하고 수차례 재판을 해서 7년 만에 그걸 밝혀냈어요. 그동안 오빠 시신을 냉동실에 넣어 놓았다가 경기도 광주에 임시로 가매장을 해 놓았었는데 산사태로 그게 지금 다 떠내려가고 없어져 버렸어요. 우리 엄마가 그게 한이 되어서 참 마음 아파하셨어요. 다들 그 문제에 온 신경을 쓰느라 나한테는 누구하나 신경을 써 줄 여력이 없었어요. 그러니 어떡해요. 내 살 길은 내가 알아서 챙겨야 했어요. 서울을 가기로 결심한 것도 저였고, 서울 갈 때도 저를 데려갈 사람이 하나 없었어요.”

처음 서울 가서는 친구 아버지가 하는 피혁공장에서 일을 했다. 공장에서 남은 일을 가지고 와서 가죽을 자르는 일이었는데,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그 일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월급이 4만원이었는데 그는 집에서 쉽게 일을 한다고 2만원을 받았다.
“그렇게 6개월 동안 일을 해서 12만원을 모았어요. 그런데 거기서 지내다 보니까 이렇게 지내다가는 사람이 안 되겠다 싶어요. 오빠들이 웃통을 훌훌 벗고 해서 처음에는 고개도 들지 못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이 언니는 이 오빠하고 좋아하고 저 언니는 저 오빠하고 좋아하고 그래요. 여기서 계속 있다가는 나도 저렇게 되기 십상이다 싶어 추석 때 휴가비를 주길래 그때까지 모은 돈에다 그것까지 합쳐서 들고 공장을 그만두고 나왔어요.”
그 돈으로 옷 한 벌을 사 입고 신문에서 오린 광고전단을 들고 한복학원을 찾아갔다. 한 달 학원비가 3만원이라고 했다. 그 돈으로 등록을 하고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 한복과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학원에 등록할 때 학원에서 그러더라고요. 두 달 과정을 수강을 하고 나가면 한 달에 60만원을 번다고요. 지금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얘긴데 그때 저는 그 말을 안 믿었어요. 단지 저를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생각했어요. 두 달 배우고 무슨 60만원을 버나, 한 오 년은 해야 그래 벌지. 뭐든지 그걸로 제대로 돈을 벌려면 10년은 해야 된다고 저는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생각한 저 자신이 저는 지금도 기특해요. 그렇게 작정하고 일을 배웠으니까 오늘의 제가 있는 거거든요.”

한복학원 두달 수강만에 수강생을 가르쳤죠
77년도 봄에 상경해서 공장에서 지내면서 틈틈이 신문을 보며 평생 동안 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궁리를 하던 차에 신문에서 한복학원 광고를 발견하고 이거다 하고 마음으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제일 큰 한복학원 두 곳 중에서 을지로6가에 있는 박오려 선생님이 하는 한복학원으로 마음을 정하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었다.
“그때 박오려 선생님이 학원을 15년을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한복을 배우러 온 사람 중에 니가 나이가 제일 어리다고 하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한복기술은 주로 혼자 된 사람이나 나이가 좀 있는 언니들이 했는데 제가 가니까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하더라고요. 근데 제가 거기서 두 달 과정을 수강을 하고 제주가 있으니까 저더러 수강생들을 가르치라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6개월 동안 수강생들을 가르치면서 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지내다 보니까 이렇게 학원 안에만 있으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밖에 나가서 기술을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원을 그만두고 장이동에 있는 큰 한복집에 취직을 했어요.”
장이동이라면 당시 연예인도 많이 오고 장관들도 많이 사는 유명한 동네였다. 한복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옥수 씨가 일을 하게 된 곳은 그곳에서도 한복 잘한다고 소문난 큰 가게였다. 그 가게에서도 잘한다고 금방 입소문이 나서 옥수씨를 찾는 손님이 많았다고 한다.
“저는 운이 좋게도 첫 번째 손님이 큰 손님이었어요. 친정이 수도학원을 하는 요리연구가 이종임씨였는데, 요리에 관계된 분야에서는 유명한 분이다 보니까 요리 전시라든가 하는 일로 외국에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 입을 한복 일습을 다 해 가신 거예요. 그 일로 솜씨를 인정받아서 전통복식으로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교수님이 오셔서 우리나라 전통복식을 비치해 두는 전시관이 있는데 거기에 전시할 옷들을 좀 해달라고 해서 시대별 의복 일체를 맡아서 했어요. 그러다보니까 자연 소문이 나서 그 다음에 한 것이 전두환 대통령 영부인이었던 이순자 여사의 한복을 하게 됐어요.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식을 하고서 외국에 나가게 됐는데, 그때 영부인 의상 일습을 제가 했지요. 그러면서 소문이 나서 일이 엄청나게 밀려들었어요. 그분들은 옷을 할 때 소문내지 않는 게 조건이에요. 하지만 장사하는 사람이 어디 소문을 안 낼 수가 있나요? 거기서 장관부인들, 대기업 사모님들, 유명인들 옷 많이 했어요.”

거기서 그렇게 한 10년 정도 일을 했는데 주인 부부가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독일로 이민을 갔다.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랬다고, 주인이 바뀌자 전처럼 마음 놓고 일만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너무 힘이 들어서 도저히 계속할 수 없겠다 싶어서 한 일 년 있다가 그만두고 나왔다. 지난 10년간 공들인 무언가가 무너지려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옥수 씨는 무너지려는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서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그때 옥수 씨가 믿을 거라고는 그동안 쌓아온 실력 밖에 없었다. 그래서 옥수 씨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인정받기 위해서 그때부터 기능대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가는 데마다 금메달을 땄다. 자신들보다 가방끈이 짧다고, 그까짓 남의 밑에서 10년 경력 하며 은근히 무시하던 사람들도 옥수 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기능직 실력 인정안하는 풍토, 안타까워요
“저 같은 경우는 몸이 이렇다 보니까 이론을 배우러 다니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솔직히 이론은 좀 부족해요. 손으로 만드는 거는 손끝의 감각으로 하는 거라 자신이 있는데, 항상 이론적인 면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있어서 저는 어디 가면 모르는 게 있으면 자꾸 물어요. 지난번에 대구에서 전통 복식을 전공한 교수님한테 제가 물었어요. 전통, 전통 하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전통이냐고. 그러니까 그 교수님이 그러더라고요. 한복 같은 경우에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복의 형태가 다양하기 때문에 개량한복처럼 일반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전통 한복이라고 봐야 한다고요. 그래 다행이다 싶었죠. 괜히 전통한복 한답시고 내세워놓고 엉터리 전통한복을 만들어 손님한테 내놓을 순 없는 거잖아요.”
아직은 공부를 더 하려고 해도 애들이 한창 크는 때라 형편이 그렇게 안 되지만, 애들이 좀 더 크면 한 번 제대로 공부도 하고 싶다. 지난번에 직업전문학교에서 실기 강의를 좀 맡아달라고 요청이 들어왔었다. 추천해주는 분은 더 이상 무슨 자격이 필요하냐 그랬는데, 최종 단계에서 학력 때문에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노동부에서 지원해주는 자격 요건에 강사 학력을 따지더라고요. 그러는 데서 제가 기가 죽더라고요. 그게 너무 속도 상하고 해서 제가 학생으로 등록을 해서 그 선생님이 하시는 강의를 들어봤어요. 솔직히 실기는 어디에 내놓아도 안 빠질 자신이 있는데, 직업전문 학원에서 학벌 위주로 강사를 뽑는 거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거 같더라고요. 이론 위주로 공부하신 분들은 아무래도 실기가 엉터리거나 대충하는 부분도 있거든요. 하지만 현실이 그런 걸 또 어떡해요. 그래서 제가 늘 못 배운 그게 조금 허전해요.”
그럴 때는 염색하는 신계남 선생님을 보면서 힘을 얻곤 한다고 했다. 염색하면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분인데, 중학교 중퇴의 학력을 가지고도 염색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동양대학교 교수로 계시는 분이다. 신 선생님을 보면서 옥수 씨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고 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나라는 기능직 분야에서는 대우를 제대로 안 해주는 게 있어요. 어디든지 가보면, 전국에 기능대회 같은 곳에도 나가 보면, 그런 걸 느껴요. 원래 기능대회에서 1등을 하면 다음에는 출전을 못하는데, 20년 이상 된 사람들은 다시 출전할 수가 있다고 해서 작년에 참가를 했는데, 갈 때는 진짜 너무너무 기대를 많이 하고 갔거든요. 그런데 심사 보시는 분들이 너무 아무 것도 모르시는 분들이 앉아 있는 거예요. 한복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심사를 한다는 게 너무 속상하고 당사자들로서는 장래가 걸린 일인데 너무 무성의하게 심사한다 싶은 점도 있더라고요. 바느질이 예쁘고 안 예쁘고는 나중에 봐야 아는 문제고 전통 한복의 기본이 있는데 기본에서 벗어난 거를 겉모양만 보고 그냥 통과시켜 주기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그것까지도 대회의 일부니까 받아들여야죠. 그 대회에서 제가 장려상을 받았어요. 그런데 1등 아닌 바에는 장려상이 최고라고 우리끼리는 그러거든요. 장려상은 다음 대회에 또 나갈 수가 있으니까요.”

시어머니 중매로 애들아빠 ‘촌돼지’ 만났지요
결혼은 스물여섯 살 때 다리 수술을 하러 갔다가 하게 됐다. 전라도 여수에 있는 재활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는데 거기서 남편 신종식씨(50)를 처음 만났다. “다리는 어렸을 때 놀다가 마루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는데 그때 치료를 잘 못해서 그게 소아마비가 돼서 이렇게 됐어요. 당시에 우리 엄마가 나를 동네 의원한테 데리고 갔는데 거기서 침을 놓아주더래요. 그런데 그게 잘못되었는지 그 뒤로 한쪽 다리를 완전히 쓰지를 못하더래요. 그 후로는 클 때까지 따로 병원 다니지도 않고 그냥 지냈는데 제가 한복 기술을 배우고 돈을 벌고 그러니까 주위에서 다들 수술을 하라고 권하더라고요. 저도 솔직히 누워 있는 한이 있더라도 나을 수만 있다면 수술을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 사람들이 소아마비 환자들 다리 수술로 유명하다고 권해서 전라도까지 가서 수술을 하게 된 거죠. 그런데 저희 남편도 거기에 수술을 하러 와 있었던 거예요.”
두 번째 수술을 하고 재활 치료 때문에 근처 여인숙에 머물고 있는데, 옆방에 청송에서 온 사람이 있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도 하고 가깝게 지낸 것이 결혼까지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수술을 1차 2차 이렇게 하면서 병원에서 소개해 주는 여인숙에서 6개월을 지낸 거예요. 그때 시어머니가 안동에서 왔다는 소리를 듣고 저를 참하게 본 모양인지 이것저것 묻더라고요. 근데 저도 그때 무슨 맘이었는지 얌전을 떨면서 묻는 말에 일일이 대답을 다 해 드린 거예요. 그런데 우리 엄마는 다리 수술하러 왔지 연애하러 왔느냐고 저를 밖에도 못 나가게 했어요. 그런데 우리 시어머니가 제가 욕심이 났던지 여인숙에서 같이 지내던 옆방 사람을 통해서 중매를 넣은 거예요. 저는 솔직히 처음에는 남편에 대해서 그리 마음이 없었어요. 저는 활달하고 센스가 있는 사람을 좋아했는데 남편은 별로 말도 없고 행동이 느릿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막상 결혼 이야기가 오가자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옆방에 다리 수술을 하고 와 있던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우리 신랑을 거기서는 촌돼지라고 별명을 불렀는데 그 언니가 나더러 ‘내가 겪어 보니 촌돼지 사람 참 괜찮더라. 생각 잘 해 봐라.’고요. 그래 보니 사람이 약삭빠르지도 않고 참 순수하고 그래요. 남편이 금세공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만하면 먹고 살기도 걱정 없겠다 싶고 그렇더라고요. 게다가 우리 시어머니가 서두르는 바람에 얼떨결에 약혼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약혼을 하고 한 6개월 동안을 결혼 얘기가 없더라고요. 우리 엄마는 원래 펄펄 뛰고 반대를 했어요. 그런데다가 저쪽에서는 아무 말도 없으니까 다른 데 선 보라고 저를 떠밀어 보내고 그러대요. 그 때 저한테 정말로 선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해 보니까 ‘내가 뭐가 그리 잘났다고 이 사람한테 그런 짓을 하겠나.’싶고, 도저히 그렇게는 못하겠더라고요.” 인연이어서 그랬던 거라고 옥수씨는 지금도 믿고 있다.

손바느질따라 진보, 서울, 다시 고향에 정착
그렇게 결혼을 하고 진보에 셋방을 얻어 살림을 시작했다. “시집올 때 미싱하고 가위하고 다 들고 왔거든요. 들고 오니까 시어머니가 수단이 좋으셔서 우리 며느리 바느질 잘한다고 일거리를 중매를 하셨어요. 그래 포목점에서 천을 떠 가지고 옷을 지어 줬어요. 바느질이 잘 나오니까 소문이 나서 여기저기서 일감이 들어 오대요. 지금 열아홉 된 우리 딸아이가 그때 돌도 안 되었을 땐데 똥을 누면 실밥이 섞여 나오고 그랬어요. 우리가 우시장 옆에 살았는데 그때 그곳 사람들 도움을 참 많이 받았어요. 내가 바쁘다 싶으면 애를 안고 가서 봐주기도 하고 기저귀도 빨아서 널어놓고 가고, 저녁이면 아기 데려다 주고 그랬어요. 어떤 애기 엄마가 제가 하도 바쁘니까 아기 바구니를 하나 갖다 줘요. 거기에 애를 눕혀놓고 한 발로 밀면서 한 발로는 미싱을 돌리고 바느질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남편이 안동에 있는 금공장을 인수를 하게 되면서 안동으로 오게 되었다. 첫 애 돌 지나고 왔으니까 안동으로 나온 지도 어느덧 18년이 다 되었다. 안동에 나와서도 남편이 하는 일을 돕는 짬짬이 알음알음으로 계속 한복 일을 하던 옥수 씨는 <동방예술>이라는 이름으로 SBS 의상 담당을 하는 친구가 불러서 한동안 다시 서울로 가서 일을 했다.
“그 친구가 그 전에 저한테서 의상을 배웠거든요. 보통 그런 거를 남한테는 잘 안 가르쳐주는데 저는 그 친구한테 다 가르쳐줬어요. 내가 다리 수술을 받고 누워 있는데 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그 친구가 기능대회에 두루마기가 나온다는 정보를 알았나 봐요. 나한테 두루마기 만드는 거 좀 가르쳐 달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 더운 여름에 택시를 타고 가서 삼일을 꼬박 가르쳐줬어요. 그런데 가을에 다리 기브스를 풀고 나니까 기능대회가 있는 거예요. 기브스 푼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라 저는 경험 삼아 같이 나갔는데 그만 3등 동상이 걸린 거예요. 차라리 장려상이면 나중에 다시 출전을 할 수 있는데, 동상까지는 다음 대회에 출전을 못하니까 표현은 못했지만 속으로 저는 가슴이 무너지는 거 같더라고요. 그 친구가 그때 1등을 했어요. 교수님이 KBS에 추천을 해서 그 친구는 그때부터 방송국에 들어가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나와서 자기가 동방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해서 SBS 의상을 맡아서 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 친구는 내 재주를 아니까 아깝다고 자꾸 서울로 오라고 그러는 걸 애들 키우고 살림하다 보니까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남편 종식 씨가 하던 금세공이 주물 기계가 나오면서 수익성이 낮지 않게 되어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참에 서울로 가서 다시 시작하자 싶어서 옥수 씨가 먼저 올라가고, 남편도 공장을 정리하고 서울에서 금은방을 시작했다.
“그때 올라가서 제일 처음 한 일이 친구가 하고 있던 드라마 임꺽정 의상이었어요. 뒤이어 만강이도 하고, 장희빈도 하고, 크고 작은 사극을 도맡아서 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인천하를 했는데, 여인천하가 끝날 즈음 IMF가 왔어요. 그러니까 드라마 의상도 입찰제로 바뀌면서 경쟁도 치열해지고 그러다보니 일자리도 자연히 줄어들게 되더라고요. 일거리가 있어도 돈이 안 되니까 결국 그만두게 된 거지요. 그런데 남편 일도 IMF로 금모으기를 하고 그러니까 잘 안 되더라고요. 서울서 한 삼사 년 있었나, 둘 다 힘이 드니까 그래도 고향이 낫다 싶어서 안동으로 다시 내려왔지요.”

제대로 배운 전통기술, 제 자부심의 밑바탕이죠
그때 드라마 의상을 많이 한 것이 결과적으로 옥수 씨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시대 의상은 전공 교수님들한테 일일이 고증을 받아서 하기 때문에 전통 복식에 대해서는 정말로 제대로 배우는 기회가 되었고, 두고두고 옥수 씨의 재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차이지만 그런 거는 안 해 본 사람들은 잘 모르거든요. 깃이라든가 동정이라든가 문양이라든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기법들이 다 있거든요. 저고리를 예로 들자면 저고리는 옷감 따라 깃이 제 모양으로 잘 놓여야 품위가 나요.”라고 옥수 씨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한복학원을 하던 박오려 선생님부터 시대고증을 마친 의상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까지 전통한복을 제대로 배웠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부심만큼이나 옥수 씨는 자신의 옷에 책임을 질 줄도 안다.
“저는 그래요. 제가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옷이 손님 마음에 안 들면 그만이에요. 그리고 10년, 20년이 돼도 하다 보면 저도 실수가 있어요. 아무리 잘했다 싶어도 입어보면 또 달라요. 사람마다 체형이 다 다르고 옷 입는 맵시가 다르기 때문에 항상 입어 봐야 알아요. 그래서 저는 손님한테 꼭 제 앞에서 옷을 입어보게 해요. 어쩌다 급해서 옷을 배달을 하게 되면 그게 두고두고 저는 마음에 걸려요. 그리고 손님이 마음에 안 들면 제가 책임을 져요. 그런데 아무리 힘들어도 손님이 나만한 이가 없다고 하면 또 그 맛에 해요. 보자기 하나라도 내 집에 오면 그 사람한테는 그게 중해서 한다 생각하고 해요. 그런데 제가 가게를 하면서 처음과는 조금 변한 건 있어요. 나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무리 바빠도 다 받아서 밤을 새서라도 해주는 편인데, 자꾸 그렇게 하다 보니 몸이 힘들더라고요. 밤에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시력도 자꾸 떨어지고요. 그래서 안 되겠다 내 몸을 관리하면서 일을 해야겠다 싶어서 요즘은 일거리가 밀려 있으면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거절을 해요. 그런데 배짱을 부리니까 좀 낫대요. 배짱을 부리니까 해 달라고 오히려 매달리데요. 제가 수공도 많이 받고 비싼 데도 해 달라고 부탁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한복 수공 값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복이 양장에 비하면 수공이 많이 싸요. 아홉 폭 치마 깨끼 박는 걸 다들 만 원을 받아요. 저는 그러지 말라고 해요. 저는 삼만 원을 받아요. 손님이 여기는 별 다르냐 왜 이렇게 비싸냐 하면 설명은 못해요. 하지만 세세한 거 따지면 조금 조금씩 달라요. 그런데 한복을 많이 입어보신 분들은 알아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대가는 제대로 받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선택은 손님이 하는 거니까요. 저는 지금까지 따로 홍보라고 해 본 적이 없어요. 인편으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저한테 한 번 옷을 하신 분들은 대부분 다음에 다시 찾아오게끔 정성을 다하려고 해요.”

이제는 기술 전수받을 제자 두고픈 욕심도
지금 옥수 씨 욕심으로는 이 기술을 누군가에게 꼭 전수해 주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명장도 꼭 따고 싶다. 그 과정을 다 밟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김옥수가 안동 돈 다 번다고 소문이 났다는데, 속 모르고 하는 소리들이지만 그는 그 소문을 그대로 나도록 그냥 둘 참이다. 소문이 현실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는가? 그런데 전수자를 찾던 옥수 씨 눈에 들어온 사람이 있다고 했다.
“안동대학 의상학과를 졸업하고 대학박물관에 있으면서 저한테 와서 한복을 배우러 온 대학원생 아가씨가 한 사람 있어요. 이 일은 타고난 감각이 있어야 되고, 돈을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 일이 좋아서 해야 돼요. 제가 웬만한 사람들은 눈에 안 차는데 이 학생은 가르쳐 보니까 얼마나 잘하는지 처음부터 제 맘에 쏙 들어요. 그래서 제가 내가 얼마든지 가르쳐 줄 테니 배워서 이 일을 해라 그랬어요. 그러기로 하고 두 달을 가르쳤는데, 저는 지금도 그 학생이 너무 아까워요. 계속 배워서 이 일을 전수받았으면 싶어요. 제가 우리 남편한테도 그러는데 이왕이면 될성부른 제자를 키워야 보람도 크잖아요. 제자를 잘 키워 놓으면 내 이름이 난다고 제가 남편한테 늘 그러거든요.” 이름나는 것을 운운한 것은 사실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전통한복을 제대로 배운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라고 자부하는, 명장을 꿈꾸는 자신의 전통 한복에 대한 기법을 남겨서 전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우리 한복의 아름다움을 지켜가는 일, 누군가는 그 일을 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올해 제가 마흔 여섯인데 지금 생각으로는 돈 버는 일은 오십까지만 할 작정이에요. 그때쯤이면 아이들도 학교를 어느 정도 마치고 자기 일을 가질 테니까 그때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작품도 하고, 작은 복식학원 같은 걸 차려서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어요. 배울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배우겠다는 사람만 있으면 저는 하고 싶어요.”

장애가 내 인생에 장애인 적 없어,
전통명장의 꿈은 언젠간 이룰 겁니다.
옥수 씨는 다리 수술을 다섯 번을 하고 양쪽 목발을 짚고 다닌다. 남편 종식씨도 다리 수술을 몇 차례나 하고 한 쪽 목발을 짚고 다닌다. 살아오면서 장애인이라서 받은 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옥수 씨는 어떤 일 앞에서도 장애가 있어서 못하겠다던가 하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목발을 짚고도 남들하고 똑같이 돈 벌고 자식들 키우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 마흔 여섯, 옥수 씨는 전통한복 명장의 꿈을 가슴 속에 품고 오늘도 밤을 새워 한 땀 한 땀 바늘땀을 뜨고 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