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문화가이드 뉴욕사람 마크씨(글/백소애-편집기자)

아침나절 빗줄기가 약간 보이더니 오후가 되자 날씨가 말갛게 개였다. 토요일 2시 약속이었다. 안동시청 소속의 계약직 공무원으로 안동관광정보센터에 근무 중인 미국인 마크 씨. 처음 약속을 잡았을 때, 휴일인 주말에 만나는 것이라 마크 씨는 약간 망설였지만, 이내 만나겠노라 했다. 평소 지인들과의 약속시간에 두서없는 나도 ‘코리언 타임’이라는 유쾌하지 않은 이미지를 남길까 싶어 통역을 맡아줄 영어강사 배현주 씨와 함께, 1시 반에 일찌감치 시청 앞에 나와 있었다. 1시 40분이 되자, 큰 키의 외국인 한명이 왔다. 그가 마크 씨임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구수한 뉴요커 마크씨의 안동 입성기
마크 쉐얼프(Mark S. Schaerf) 씨는 지난 1995년도에 한국에 왔다가 1년 동안 서울에서 학원 강사로 일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경력이면 더 좋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다는 걸 뒤늦게 알고 충남 아산의 순천향대학에서 2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뉴욕이 고향이다. 부모님과 세 명의 남자형제 중 둘째이다. 1969년생이니 우리나이로 40세다. 40세면 불혹(不惑), 부질없이 망설이거나 무엇에 마음이 홀리거나 하지 않는 나이라는데, 그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메사추세츠 브랜다이스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뉴욕 콜롬비아대학 역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뉴욕 메트로폴리탄대학에서 부교수를 역임했고 이후 한국에 머물다가 타이완, 터키 등지로 다니며 영어강사로 일했다. 그는 소위 엘리트 석학이다. 자신의 나라에서도 좋은 직업, 주류로서의 삶이 얼마든지 가능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다. 법조계 집안인지라 한국으로 떠나올 때만해도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로스쿨에 들어가기를 기대한 가족의 바람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왔다. 그가 미국에서의 생활을 접고 한국행을 결심한 이유가 궁금했다.
“뉴욕에 있을 때, 뭔가 고립됐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죠. 다른 환경에서 시작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어요.”
박물관에서 근무도 했었고 대학에서 학생상담도 했고 강의도 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즐겁게 했으나, 뉴욕에서의 감정적인 고립감을 극복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에게 풍기는 정적이고 유(儒)한 분위기는 서양의 외모를 갖추었으나 동양의 정서를 가진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뉴욕과는 궁합이 잘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크 씨는 뉴욕 도심의 높은 빌딩 사이에서 뭔지 모를 소외감을 느꼈다 한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도태되는 도시에서, 이 느긋한 역사학도는 회의를 느꼈음직하다. 치열한 경쟁의 도시를 떠나 다른 나라를 돌아다녀보고 싶었다고 한다. 본인의 전공도 역사학이니 역사가 깊은 곳을 다녀보고 싶었을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안동시청의 구직공고를 보고, 자신의 전공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일 것 같아 도전해 보았다. 서류를 보내고 전화인터뷰를 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안동과 관련된 단어인 ‘양반’ ‘종택’ 등을 말했는데, 대답을 못한 것도 있어서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거기다 전화인터뷰를 할 때 담당자의 목소리가 냉랭하여 자신이 최종합격자가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수많은 지원자들 중에서 자신이 선택되어 놀랐고 너무 기뻤다고. 사심이 깃들지 않은 담당자의 목소리는 다른 이들에게도 모두 냉정하게 들렸을 것이고, 그의 솔직한 인터뷰와 역사관련 경력을 인정한 결과이리라. 그 결과 작년 4월에 안동시청에 2년간 공무원으로 근무하기로 계약하였다.


한국어, 읽는 건 되지만 말하는 건 어려워요
그와 인터뷰 하는 내내 통역 없이 대화하기가 쉽지 않은 한국어 실력이 아쉬워서 솔직하게 물어보았다. 예전에 3년 정도 있었고 지금도 한국어가 필요한 업무를 보고 있는데 한국어를 배울 생각은 해보지 않았느냐고. 이에 그또한 솔직하게 대답했다.
“수년간 영어공부에 매달리는 한국 사람도 영어에 서툴 듯, 저 역시 외국어인 한국어가 그렇게 쉽게 배워지진 않아요. 사실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저에게 맞는 프로그램이 없었어요. 기회만 된다면 서울에서 체계적으로 한국어를 배운 직장동료 게이코 처럼 내 자신의 수준에 딱 맞는 프로그램을 접해서 배우고 싶어요.”
외국어를 배울 때 기본적으로 수준에 맞는 반으로 나뉘어 강의를 듣는 것처럼 본인의 수준에 맞는 한국어 강좌가 있었다면 꼭 기회를 잡았을 거라는 마크 씨. 서울에서 학원에 근무 때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고, 아산에 있을 때는 그런 프로그램이 없었다 한다. 한국어로 일상적인 대화에 어려움이 있는 그로서는, 제대로 한번 배워보고 싶은 열망이 강해보였다. 언어적인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에서는 마크 씨 본인도 많이 아쉬워하는 부분이었다.


 




독특한 안동문화, 지낼수록 정드는 고장
현재 안동시청에는 일본인 게이코 씨와 중국인 유선문 씨도 외국인 공무원으로 근무 중이다. 같은 동양권이고 문화적인 공감대도 어느 정도 형성되는 그들과 달리 유일한 미국인 공무원인 마크 씨가 느꼈을 문화적인 괴리감은 어땠을까?
“뉴욕은 바쁜 도시잖아요. 하루 종일 북적되는 도시와 이곳 안동은 아무래도 많이 틀리죠. 하지만, 만약 9?11때 뉴욕에 있었을 것을 생각해보면 무섭죠.”
분단의 국가에서 평화를 느끼는 아이러니 앞에서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한국의 다른 지역에도 있어본 그로서는 안동이 타 도시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안동은 다른 도시보다 한국의 상징이 많은 것 같아요. 문화유산도 많고 사람들이 자부심도 강해요.”
그는 한국 사람의 민족주의보다 안동사람이 가지는 한국의 민족주의가 더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동이 한국의 여러 장단점을 상징적으로 집약해놓은 도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정확한 직업 명칭을 뭐라 불러야 할지를 물으니 본인도 알고 싶다고 말하며 웃는 마크 씨. 홍보물이나 책자, 안내자료 등의 번역을 도맡고, 외국인 관광객을 안내하는 등의 일을 하는 마크 씨를 업무상으로 말한다면 ‘관광 안내원’ ‘문화 안내원’으로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여러 관광지를 소개할 때는 본인이 직접 인터넷과 책 등을 통해, 그리고 여러 번 직접 방문해 본 경험으로 안내를 한다고 한다. 짬 날 때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정리한다고 하니, 시간이 흐를수록 마크 씨는 안동사람보다 더 안동을 소개하는데 능숙한 사람이 될 것만 같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특히 좋아하는 곳은 아무래도 한국의 전통가옥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하회마을을 유독 좋아한다고. 서애 유성룡 선생에 관한 이야기 등 마을에 얽힌 역사나 이야기에 관한 부분은 한국인들이 좋아하고, 마크 씨는 개인적으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병산서원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단촐한 가족, 담백한 생활
어느덧 1년을 훌쩍 넘긴 안동생활에서 그가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보인다. 작년 국제탈춤페스티벌에서 그의 여자친구 루이스 씨와 전통혼례를 치렀다고 한다. 마크 씨와 루이스 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축제에서 시연하는 퍼포먼스라고 생각해서 즐겁게 즐기고 있었는데 그게 진짜 그들의 결혼식이 된 것이다. 식이 끝나고 인터뷰를 하면서 진짜 결혼식이었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시장님과 시청 직원들의 서프라이즈 선물이었습니다. 하하!” 고운 한복을 입고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을 받은 마크씨. 허니문은 옥동 이마트였다고.
네델란드인 루이스 씨와는 인도여행 중에 만나 서로 미래를 약속하게 되었다. 이번 탈춤축제기간이 결혼 1주년이 된다며 웃는 마크 씨. 현재 루이스 씨와 개와 고양이, 이렇게 한 가족을 이뤄 용상동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안동에 생활하면서 섭섭하거나 힘든 일, 혹은 문화적으로 부딪치는 부분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키가 크고 덩치도 큰 마크 씨에게 짓궂은 질문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이 곧잘 있는 모양이다. ‘몸무게가 몇이냐’부터 개인적인 질문까지. 심할 경우에는 ‘노랭이’라는 무례한 호칭으로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편적인 특징을 꼽자면 사생활과 외모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거리낌 없이 얘기한다는 점이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사람들도 있고 인사말 대신 형식적으로 묻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그에겐 곤란했을 것이다.
이젠 익숙해진 하회마을에 가면 탈춤을 추는 이들이 저 멀리서도 자신을 알아보고 미소 짓는 것이 보인단다. 탈 너머 표정도 알아맞히는 ‘정’이 쌓여 기분이 좋다고 한다.
미국에 있는 가족은 아직 이곳에 와본 적이 없다. 한번은 서울에 있는 친구가 안동에 방문했는데 마크 씨가 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안동의 이곳저곳을 소개해주었고 친구는 아주 흡족해하며 돌아갔다고 한다.
아침이면, 낙동강변에 있는 안동관광정보센터로 출근하는 마크 씨. 가끔 택시를 타기도 하고 걸어가기도 하고 지인과 카풀을 하기도 한다. 핸드폰도 없고 자가용도 없이 안동에 살지만 부족함이 없다는 그.




마크씨, 안동이 그렇게 좋아요?
마크 씨는 생산적인 일을 많이 하고 싶다고 한다. 역사적인 도시에서 이런 일을 하는 지금도 보람되고 기분이 좋다고 한다. 나중에 계기가 되면 글도 써보고 싶다고 한다. 전공을 살려 역사소설을 꼭 써보고 싶단다. 사람들에게 안동의 꼭 추천해주고 싶은 곳을 말해달라고 하자 도산서원, 하회마을, 제비원, 병산서원 등 우리에게 익숙한 곳은 모두 추천해주고 싶다한다. 3일이면 안동의 모든 곳을 둘러볼 수 있다고 눈을 빛내는 그.
채식위주의 식사를 하지만 찜닭 얘기가 나오자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그는 찜닭 마니아다. 다른 지역에 있을 때도 찜닭을 먹으러 일부러 안동에 온 적이 있을 정도란다.
안동시청 앞 솟을대문에는 마크 씨가 번역한 문구가 새겨져있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Andong, the Capital of the Korean Spirit > Culture보다 Spirit이 더 적절한 단어임에 틀림없다며 스스로 흐뭇해하는 마크 씨.
안동이 그 정체성을 간직하면서 ‘문화’와 ‘관광’에 눈을 돌리고 투자하는 것은 역사학도가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바람직한 것 같다고 말한다. 안동을 이야기하고 소개하는데 서슴없고 이 역사 깊은 도시를 사랑하는 마크 씨의 온화한 미소만큼이나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찜닭을 같이 먹을 날을 기약하며  시청 앞에서 인사를 나눴다.
여러분이 혹, 낙동강변을 걸어가는 마크 씨를 발견하면 우리식 인사로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실례가 아닐 것이다. “마크 씨, 밥은 먹었니껴?”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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