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가암(九佳庵)(글/윤천근-안동대 교수)
낮은 산 골짜기 속 작은 건물
이 건물은 봉화군 눌산리 579번지에 위치한다. 법전에서 영양 나가는 길과 법전에서 현동 나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높고 낮은 길들이 뒤엉켜 있는 그곳의 동쪽 모서리 부분으로는 작은 소나무 동산이 있다. 잘 가꾸어진 소나무 동산이다. 소나무 동산이 입구를 막고 있는 골짜기 안은 조용하고 한적하다. 골짜기는 밋밋한 사선을 그리며 안으로 파고든다. 동북에서 서남방향을 향해 뻗어 내리는 꽤 깊은 골짜기이다. 골짜기 한쪽은 밭이고, 길은 골짜기의 북쪽 부분으로 가설되어 있다. 산은 나직하고, 골짜기는 좁직하다. 길이 직진을 하다가 멈추는 곳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고목들이 여럿 버티고 서 있고, 골짜기가 시작되는 산기슭 경사면 위로는 높직한 대좌 위에 올라앉은 건물의 처마 한 끝이 보인다. 길은 건물이 자리 잡고 있는 가파른 대좌의 아랫부분을 짧게 휘돌아 오른다. 동향을 하고 있는 이 짧은 길의 끝으로는 산기슭 아래 작은 우물이 마련되어 있다. 우물 위쪽으로는 향나무 하나가 서 있다. 거기서 길은 다시 서향을 취하고, 서쪽으로 방향을 잡자마자 구가암의 비좁은 앞마당으로 들어선다.
구가암. 작고 상당히 매력적이면서도 원형이 갖는 특징이 많이 무너져 있는 건물이다. 이 건물에는 여자분이 기거하고 계신 모양인데, 불교 공부를 하는지 건물의 여기저기에 불교적 분위기가 덧칠되어 있다. 그것이야 굳이 탓할 일이 아니겠지만, 모름지기 어떤 것이든 그것이 저대로의 향기를 뿜어내기 위해서는 딱 있어야 하는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하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남의 재사에 들어와 앉은 부처의 흔적은 부처를 춥고 쓸쓸한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재사 역시 돌려세워진 주인처럼 쓸쓸하고 추워 보이기는 매한가지이다.
구가암은 두릉(杜陵) 이제겸(李濟兼)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재사이다. 19세기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상당히 대범한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는 매력적인 건물이라고 하겠다. 이 곳은 아마도 원래는 두릉 이제겸이 머물면서 공부하고 마음을 닦았던 곳일 것이다. 그곳에 후에 후손들이 재사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원래 있던 집을 재사로 쓰기 위하여 개축한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새롭게 재사 건물이 지어지는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구가암의 구조적 특징 - 까치구멍집
두릉 이제겸은 이인좌의 난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후 방면되자 깊은 산 속으로 숨어 들어온다. 산과 들의 자유로움을 배우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더러운 세상에서 도피한 결과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 결과 그의 족적은 여기 법전의 한 귀퉁이, 깊은 산 속이면서도 그리 깊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구가암 영역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 건물의 미학은 상당히 독특하다. 특히 부엌문을 설치한 기법이 그러하다. 건물은 동서 방향을 중심축으로 하여 놓여져 있는데, 부엌은 그 동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동향을 하였던 좁직한 길이 작은 옹달샘에서 서향을 하기 위해 몸을 틀다가 북쪽을 휩쓸고 나아가는 지점, 그 북쪽 발치에 부엌은 있다. 이 부엌문과 문이 있는 부분의 벽을 처리한 방식은 방문자의 눈을 끌기에 충분하다. 나는 그 어디에서도 대범하고 파격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이와 같은 미학을 접해 본 적이 없다. 처음 우리의 시선이 가 머무는 것은 주초이다.
대개의 경우 주초는 하나의 자연석을 쓰게 마련이다. 다듬은 돌이라고 하여도 하나의 덩어리를 쓴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여기 구가암에서는 조금 판판한 자연석을 두 장 겹쳐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올렸다. 이럴 경우 두 주초 사이에는 아무래도 틈이 생기고, 이 틈은 기둥의 안전성에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두 돌이 한 돌처럼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돌 사이의 틈을 메꾸어서 하나로 늘어 붙일 필요가 있는 문제이다. 오늘날 구가암에서는 이 문제를 두 돌 사이에 시멘트를 넣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전에는 어떠하였는지 모를 일이다.
주초가 놓인 위치는 높이에 차이가 있다. 평면을 깎아내고 기울기를 없앤 후에 건물을 앉히는 것이 아니라 건물이 위치하는 곳의 기울기와 흙의 요철을 그대로 두고 건물을 올리고 있는 탓이다. 이런 방식은 의외로 옛 건물의 여기저기서 빈번하게 확인된다. 여기서는 그 방식이 보다 두드러지게 보인다는 것뿐이다.
구가암 건물에서 우리가 또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것은 부엌의 천장구조이다. 중앙의 서까래가 마지막 들보 위에 얹히고, 우측 사면의 서까래가 모여드는 지점에는 사각의 깊은 우물이 만들어지고, 그 속의 삼각형 꼭지점 부분 고매기는 비워져 있다. 흔히 까치지붕집이라고 하는 구조가 여기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까치구멍은 초가지붕에서 보이는데, 여기서는 기와지붕 속에서 나타난다는데 특징이 있다. 원래는 초가였던 것을 기와로 바꿔 올린 것이라기보다는 집의 구조 자체가 상당한 규모와 품격을 갖추고 있다. 그러니 집은 원래부터 기와로 지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기와집을 지으면서 까치구멍을 마련한 것은 나로서는 특이한 경우인데, 혹 어디 다른 곳에서도 예가 발견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구가암의 건물구조
구가암은 기역자를 옆으로 엎어놓은 평면구조이다. 오른편 끝으로는 한 칸 앞으로 튀어나온 여견재가 있고, 그 왼편으로는 한 칸 안으로 물러난 구가암 본채가 동 서 축을 바탕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오른편의 한 칸 더 튀어나온 부분, 그러니까 여견재 부분에서는 측면 3칸 규모가 된다.
여견재의 앞으로 튀어나온 부분은 누각이다. 누각은 2층의 누대 위에 서 있고, 아래편으로는 아궁이가 마련되어 있다. 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이고, 그 뒤편으로는 방이 있는 탓이다. 아궁이는 그 방에 불을 지피기 위한 것이다. 누각은 3면으로 쪽마루가 둘러져 있다. 기둥만큼의 굵기를 갖는 마루틀 사이에 두터운 마룻장이 깔려 있는데, 폭은 두 뼘 정도 된다. 마루 끝의 마루 틀은 마룻장보다 조금 높이 배치되어 있다. 난간이 없으므로, 이 부분을 걷는 것은 상당히 위태로워 보인다.
마루는 누각을 디귿자로 휘돌아 왼쪽으로 더 뻗어나간다. 왼쪽으로 3칸, 그러니까 왼쪽 건물의 왼쪽으로부터 제 3칸 부분에까지 쪽마루는 같은 폭으로 뻗어 나간다. 누각의 마루장 높이와 왼쪽 건물채의 마룻장 높이는, 왼쪽의 경우가 손가락 두 마디 가량 낮다. 마루는 건물의 오른쪽 측면으로도 뻗어있다. 이 부분에서는 앞으로부터 제 3칸 끝부분까지 마룻장이 나아가는데, 제 3칸에 이르러서는 역시 높이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낮아진다.
건물의 왼쪽 끝 부분은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부엌이다. 앞에서 보았을 때 왼편 끝의 1칸은 처마를 반 칸 정도 달아맨 것으로써, 부엌의 허당과 뒤편으로 광이 배치되어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의 전의 용도는 지금과는 달랐을 터이지만, 지금은 부엌 안 수도가 마련되어 있다.
정면에서 보았을 때 제 2칸은 부엌문이 달려있는 부분이다. 부엌문의 문지방 부분은 상당히 두터운 사각 목재이다. 마치 들보로 올릴 수 있을 정도의 목재가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일반적 기대를 저버리고 있는 두께인 셈인데, 구가암에서는 이런 점이 특별히 시선을 잡아끄는 특징으로 나타난다.
이 칸은 주초 부분 1, 대문 부분 4, 위편의 벽 부분 2의 비례로 횡분된다. 벽은 백토로 칠해져 있고, 주초부분은 대부분의 영역이 예의 굵다란 문지방으로 처리되어 있다. 대문 부분은 중앙에 두 짝의 문을 두고 양쪽으로 판자를 수직 방향으로 붙인 것이다. 문짝은 위아래가 다 나무를 밖으로 덧대어 문짝을 세우는 방식을 썼다. 아랫부분의 양쪽에 댄 나무는 문지방 만큼이나 굵은 토막이다. 이 토막의 위쪽으로 홈을 파서 나무문의 양 끝에 만들어진 쐐기 모양의 나무 돌기를 넣어 돌아가게 하는 방식인데, 나무돌기가 들어간 홈에는 또 앞쪽으로 통하는 구멍이 마련되어서 그 안에 물이 들어가거나 흙이 찼을 때 밖으로 흘러나올 수 있게 하였다. 위쪽의 고정틀은 문틀 전체의 위쪽을 가로지르면서 덧대어져 있다. 그것은 밖으로 세 개의 불룩한 곡면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그 양쪽 곡면 부위에 홈을 파서 문의 위쪽 돌기를 집어넣도록 되어 있다.
이제겸의 선조들
이제겸의 가계를 쫒아 올라가다 보면 송재 이우에게 이른다. 퇴계 이황의 숙부이다. 송재 이우(李?)의 자는 명중(明仲), 호가 송재이다. 을축년(1469)에 안동군 도산면 온혜리에서 판서공 이계양(李繼陽)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모친은 영양김씨 김유용(金有庸)의 따님이다. 형은 진사공 이식으로, 퇴계 이황의 부친이다. 이식과 이우는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으며, 똑같이 지역 선비들 사이에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다. 이식이 일찍 타계함에, 이우는 조카들을 친자식처럼 아끼며 가르쳤다. 퇴계 이황은 특히 숙부인 이우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이우는 이황을 ‘광상’, 즉 ‘이마가 넓은 아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이황은 만년에 ‘내가 학문을 성취한 것은 오로지 숙부의 가르치심 덕분’이라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이우는 조정에 출사하여 용재(容齋) 이행(李荇), 충재(?齋),최숙생(崔淑生), 음애(陰厓) 이자(李?),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충재(?齋) 권벌(權?) 등과 교유하였으며, 시와 술을 즐겨 하였다. 송재 이우는 24세 때 생원시에 합격하고, 1498년에는 문과 급제로 출신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로부터 벼슬살이를 시작한다. 1501년 사간원 정언이 되었을 때에는 유자광(柳子光)을 탄핵하는 상소를 거듭 올렸다가 곤욕을 당하기도 한다. 중종반정 때에는 정국공신에 녹훈되고, 청해군에 봉하여졌다. 진주 목사 시절에는 관내에 거주하는 포은 정몽주의 증손녀 정씨를 포상하여 달라는 상소를 올려 실행하기도 하였다. 정씨부인은 갑자사화로 죽은 조지서(趙之瑞)의 아내로, 정절이 높고 효행이 뛰어난 여인이었다. 강원도 관찰사 시절의 시 <인제남강을 건너면서>는 그가 어떤 벼슬아치였는지를 알게 한다.
일만 마리 소, 땀을 흘려서/
사슴 밭을 일궈냈네/
힘을 다해도 자신의 것으로는 되지 않느니/
모두 다 관청의 차지/ 세금으로 내고 공물로 바치고/
사사로이 쓴 빚도 갚아야 하리/
살갗이 벗기우고 뼈가 깎여나가고/
시궁창에 넘어박혀 죽어나가도 돌아보는 이 없네/
아무리 힘써도 잘 먹고 잘 살지 못하는 건/
세상에 너 뿐만은 아니지/
밭 가는 사람 배 부르지 않고/
누에치는 아낙 따뜻하게 못 입네/
만사가 이러하니 한심하기 그지 없어라/
무슨 수 써서라도 5정역사(五丁力士) 불러내어/
만 자루 도끼를 쥐어 주고/ 강을 막고 산을 깎아/
뽕 밭 삼밭을 일구리라/
그런 다음에야 이곳 백성 편히 살 수 있으리니//
백성의 곤궁한 삶을 아파하는 목민관의 의식이 이 시에는 잘 갈무리 되어 있다. 시인 송재의 모습은 딱따구리라는 시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아름다운 날개 환하게 빛나는데/
아침 햇살이 그 위에서 부서지누나/
한 나무를 다 쪼지도 못하고서/
다시 늙은 괴목과 버드나무에 옮겨가 쪼는구나/
버드나무 가지 사이 넘나들며 배를 채우네/
나무는 벌레를 없애주니 즐거우리라/
그러나 나무가 썩으면 벌레가 생기는 법/
쪼는 것이 늦었으니 무슨 공이 있겠는가//
(이상 진성이씨 송당공파 세보)
절묘한 은유 속에 웅변을 묻어두고 있는 시라고 하겠다. 송재 이우는 1517년에 49세를 일기로 타계한다. 배위는 정부인 월성이씨이다.
송재 이우의 아들 이수령(李壽?)의 자는 대년(大年). 임술년(1502)에 출생하여 음사로 찰방을 지냈다. 기해년(1539)에 타계하였으며, 배위는 의인 은풍신씨이다.
이수령의 장자 이빙(李憑)은 경진년(1520)출생. 자는 보경(輔卿), 호는 만취헌(晩翠軒)이다.퇴계 이황에게 수학하였다. 이황이 호를 지어주고 현판을 써 주었다. 은일로 부솔첨정(副率僉正)에 천거되었다. 을유년(1585)에 타계하였으며, 후에 태복 정이 증직으로 주어졌다. 배위는 숙인이 증직으로 내려진 광주김씨이다.
이수령의 차자 이결(李潔)의 자는 탁경(濯卿), 호는 도연(道淵)이다. 병술년(1526)에 출생하여 계미년(1583)에 타계하였다.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목사를 지냈다. 상주 도연에 옮겨 살았으며, 묘는 도연에 있다. 배위는 숙인 동래정씨이다.
이수령의 삼자 이충(李?)의 자는 사거(思擧), 호는 고암(古庵)이다. 무자년(1528)에 출생하였다. 예천 사월리에 옮겨 살았다. 퇴계선생에게 수학하였다. 신사년(1581)에 타계하였으며, 배위는 단인 전의이씨, 후배위는 단인 예안김씨이다. 이제겸은 이충 계열에 속한다.
이제겸과 그의 후손들
이제겸(李濟兼)은 이동표의 아들이다. 이동표의 장자는 이회겸(李晦兼)이다. 이회겸의 자는 명경(明卿)이고, 정사년(1677)에 출생하여, 갑진년(1724)에 타계하였다. 통덕랑이다. 배위는 공인 안동권씨이다. 이제겸의 부친인 이동표의 자는 군칙(君則), 호는 나은(懶隱), 시호는 충간공이다. 진성이씨 송당공파 세보는 이 계열을 송재 이우에서 시작되어 나은 이동표로 이어진다고 정리하여 주고 있다. 이동표의 위상은 이 계열의 진성이씨 세계에서 그만큼 중요하게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이다.
이동표는 1644년에 출생하여 1711년에 타계하였다. 처음으로 춘양에 이거하여 살았다. 배위는 증 정부인 안동권씨이다. 이동표의 부친은 이운익(李雲翼)이다. 이운익의 자는 자의(子儀), 임자년(1612)에 출생하여 갑진년(1664)에 타계하였다. 배위는 순천김씨이다. 이운익의 부친은 이지온(李之?)인데, 자는 덕성(德盛)으로, 임진년(1592)에 출생하였으며 배위는 영해신씨이다. 이지온의 부친은 이장도(李章道)인데, 자는 비숙(斐淑)으로 임신년(1572)에 출생하였고, 배위는 예안김씨이다. 이장도는 이충의 3자이다. 이장도의 백형은 이규도(李揆道)이고, 둘째형은 이일도(李逸道)이다. 이제겸은 송재로부터 나은에게로, 나은으로부터 이충-이장도 계열로 이어 내려온 진성이씨 일문의 세계를 상속한다.
이제겸은 조선 19대 숙종 9년(1683)에 출생하여 영조 18년(1742)에 타계하였다. 자는 선경(善慶), 호는 두릉(杜陵), 본관은 진성이다. 나은(懶隱) 이동표(李東標)의 둘째아들이다. 숙종 40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영조 1년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별시과거에 참시관이 되었다. 율봉찰방에 부임한 이듬해 이인좌의 반란으로 청주병사가 살해되고, 이어서 진천, 안성이 습격당하는 등 사태가 위태로워져서 이제겸은 역마를 민가에 숨겨두고 율봉에서 백리쯤 떨어진 중약에 숨어 있었는데, 적당이 율봉을 급습하여 역마를 모조리 약탈해 갔다. 이제겸은 어찌할 수 없어 서울로 올라가다가 도원수 조명항(趙命恒)을 만나 적을 토벌하는 대열에 합류한다.
난이 평정되고 나서 임지로 돌아갔는데, 적당 중의 한 명인 강필선이 ‘율봉찰방 이제겸이 역마를 난군에 제공했다’는 무고를 하여 죄를 얻게 되었다. 이제겸은 평안도 신천에 유배되었다가 제천으로 배소가 옮겨 졌으며, 이듬해 나라에 경사가 있어서 풀려났다. 그때부터 이제겸은 노루골에 숨어서 산수를 벗하며 시를 읊고 글씨를 쓰는 것으로 소일하였다. 이제겸은 문장과 글씨가 뛰어났고 <<상례절>>(喪禮節), <<두릉집>>(杜陵集) 등의 저서를 남겼다.
창랑정사는 이제겸이 머물러 않아 공부하던 곳이다. 구가암은 그의 후손들이 그의 묘사를 돌보기 위해 지은 집이다.
이제겸의 아들은 이중연(李重延)이다. 자는 희원(希愿), 호는 누실(陋室)이다. 신묘년(1711)에 출생하여 갑인년(1794)에 타계하였으며, 묘는 소천에 있다. 첨추(僉樞)벼슬을 지냈다. 배위는 숙부인 풍산유씨이고, 재배위는 숙부인 진주강씨이다. 아들이 없어서 이중실(李重實)의 아들 이진규(李鎭奎)를 양자로 들여 후사를 이었다. 이진규는 자가 치오(稚五), 호가 풍락정(風洛亭)이다. 경신년(1740)에 출생하여 정사년(1797)에 타계하였다. 묘는 분천에 있고, 배위는 남양홍씨이다. 이진규의 아들은 이한기(李漢綺)이다. 자는 백원(伯元), 호는 오류헌(梧柳軒), 신사년(1761)에 출생하여 무진년(1808)에 타계하였다. 배위는 완산유씨이다.
이한기의 아들은 호가 화남(華南)인 이의상이다. 1792년에 출생하여 1851년에 타계하였고, 배위는 안동권씨이다. 이상의의 아들은 호가 정와(靜窩)인 이득노(李得魯)이고, 1808년에 출생하였으며 1873에 타계하였고, 배위는 풍산김씨, 후배위는 파평윤씨이다. 이득노의 아들인 이교영(李敎英)의 자는 화여(華汝), 호는 귀은(歸隱)이다. 계사년(1833)에 출생하여 을미년(1895)에 타계하였다.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영해부사, 청송부사를 역임하였다. 문집을 남겼고, <<송서요훈>>(宋書要訓)을 남겼다. 향산 이만도의 행장이 있으며, 서산 김흥락이 묘갈을 찬하였다. 배위는 숙인 풍산김씨이다. 이교영의 아들은 이종대(李鍾岱)인데 자는 태숙(泰淑), 호는 기포(杞圃)이다. 정묘년(1867)에 출생하여 병인년(1926)에 타계하였다. 유고를 남겼고, 배위는 공인 풍산유씨이다. 그는 이갑수(李甲洙)의 부친이며 현종손인 이정의 조부이다.
창랑정사
이제겸이 이인좌의 난 이후 숨어 들어와 거주한 곳은 창랑정사이다. 창랑정사는 구가암으로부터 법전 쪽으로 더 나아가서, 옥천터 위쪽에서 태백 나가는 길이 갈라지는 부분 위편에 자리잡고 있다.
창랑정사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눈 아래 흐르는 계곡의 시내와 시내 건너편 산줄기의 흐름을 직각으로 바라보며 서 있다. 양쪽으로 갈게 터진 공간의 중간 부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정면 5칸 중, 왼쪽 끝 1칸은 방이다. 정면 1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앞쪽 벽면은 위 1, 아래 3정도의 비례로 분할되고, 아랫면의 중앙에 두 쪽 방문을 달았다. 방 앞으로는 두뼘 정도 쪽마루를 두었다. 쪽마루는 기둥 앞으로 나서서 정면 다섯 칸 전체의 앞면으로 뻗어 있고, 양쪽 측면의 북쪽 끝단까지 이어져 있다. 쪽마루의 높이는 둘로 나뉘어진다. 정면 오른편 끝 칸에서 쪽마루는 40센치 정도 높아진다. 두 쪽 마루 사이의 거리는 해소되지 않고 계단처럼 두 개의 높이의 차이를 갖는 횡면으로 배치되었다. 두쪽 마루는 높이 뿐만 아니라 폭도 조금은 다르다. 오른쪽 쪽마루는 왼쪽 쪽마루에 비해 5센치 정도 폭이 좁은 것이다. 높은 쪽마루는 이 건물 오른쪽 1칸의 앞면과 측면을 니은자로 끼고 돈다. 낮은 쪽 쪽마루는 이 건물을 니은자를 옆으로 180도 회전시켜 놓은 것 같은 자세로 끼고 돈다.
쪽마루의 앞면 끝 선으로는 난간이 가설되어 있다. 이 난간은 독특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매력적인 물건이다. 나간의 제일 아래층을 이루는 것은 마루 끝 선을 이루는 두터운 횡목이다. 그 위로는 판재 하나가 세워져 있고, 그 위로는 각재 하나가 옆으로 가로질러져 있다. 이 3단 구조는 두께와 형태의 차이를 가지면서 난간 아fot부분을 구성하여 준다. 그 위로는 한 뼘 정도의 공간이 있고, 맨 위에는 원형의 손 안에 들어가기에는 좀 넘치는 듯한 굵기의 횡목이 가로지르고 있다. 난간이 끝나는 지점에서 이 원형 횡목은 열십자 모양으로 교차한다. 이제까지의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며 원형횡목의 전진이 끝나면, 한 뼘 정도로 잘라진 원형 횡목이 90도 각도를 갖추고 얽혀 드는 것이다. 원형 횡목은 난간을 구성하는 맨 윗단의 횡면 구조가 된다. 아랫단의 횡면구조와 윗단의 원형횡목 사이는 안족이 이어준다. 안족은 끝이 횡단되어 맨 아랫단의 아래쪽까지 1센치 정도는 나가 있고, 맨 아래 굵은 횡목에 가 닿는 부분도 매끈하게 수선으로 잘라져 있다. 이 부분의 앞쪽은 세 개의 볼록한 굴곡을 갖는 것으로 처리되었다. 뭉툭하게 끝이 맺히는 조금 큰 굴곡이 위 아래로 있고, 가운데에는 끝이 삼각형인 좀 작은 굴곡이 있다. 멀리서 보면 그것은 마치 코, 입, 턱의 모습인 것처럼 눈에 들어온다. 그 위편으로는 납작한 이마라고 할 수 있는 좀 넓은 부분이 거의 수선에 가까운 각도를 갖추고 있는데, 이 부분의 뒷면은 볼록하게 뒤쪽으로 튀어나오게 깎아져 난간 아래 횡면구조의 들고 나는 부분에 꽉 맞게 끼워져 있다.
난간 아랫부분의 3단구조 중 위의 각재와 중간의 판재, 끝의 굵은 각재 사이의 두께의 차이는 이 부분에 디귿자를 돌려 앉혀 놓은 것 같은 요철을 마련하여 주는데, 안족의 뒤쪽 머리는 이 요철부에 딱 들어맞도록 깎여져서 빈틈없이 끼워지는 것이다. 이 요철부위는 좀 가는 각재 횡목의 이마 끝에 맞게 잘려져서, 밖으로 니은자 모양으로 굽어 오른다. 앞 이마의 끝에서도, 뒷머리의 위에서도, 이 니은자는 같은 자세 같은 폭으로 약 5센치 정도 상승하고나서는 끝이 매끈하게 횡단된다. 그 횡판면 위에는 니운자를 이룬 목재의 좌우 횡단면의 폭과 같은 폭을 갖는 부재가 올려진다. 이 부재는 아랫부분을 위가 조금 넓은 사다리꼴 모양으로 깎아 올리고 위분에서는 폭이 양쪽으로 조금 넓어지면서 양쪽 옆 부분에 위 아래로 원형의 형상으로 말린 머리칼 모양을 둘씩 배치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말린 머리칼 모양의 두 돌기 사이로는 동전같은 두께로 돌출된 원형형상이 윗선에는 셋, 아랫선에는 넷 배치되어 있다. 그것은 때로는 아랫선에 다섯이 배치되기도 한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다듬어진 부제를 끼우고 그 위에 원형의 횡목을 올려서 난간을 마무리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을 빈틈없이 연결시켜 주는 것은 철제의 침이다. 난간의 원형횡목 위쪽에서 머리가 굵은 모양의 침이 깊숙하게 찔러져 원형 횡목 아래 올려놓은 부재를 관통하고 아래쪽 안족의 이마 정중앙까지 파고드는 것이다. 안족과 안족 사이의 판재 면에는 각 1개 씩의 안상이 마련되어 있다. 비교적 큰 모양의 안상이다. 제비와 양쪽 날개 모양을 위 아래로 덧붙여 놓은 형상이다. 난간의 안족이 연이어 서 있는 모습은 같은 얼굴의 단순화된 조상이 줄지어 선 것과도 같은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이와같은 난간구조는 상당히 공을 들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왼쪽 방의 앞면은 이런 난간을 갖추고 있지만 측면은 그냥 쪽마루 뿐이다. 왼쪽 방의 북쪽 벽에는 안으로 다락구조가 마련되어 있다. 이 벽면은 아래 2, 위 1 정도의 비례로 횡단되며, 아래 부분에는 이불이나 책 등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윗부분에는 벽장이 갖추어진다. 벽장은 흙벽으로 처리되어 있으며, 가운데에 두 쪽의 작은 문을 달아 양쪽으로 여닫게 하였다. 오른쪽 끝으로는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마루방이 마련되어 있다. 이 마루방의 마루면은 앞쪽이나 오른쪽에 붙은 쪽마루의 높이와 같으며, 왼쪽의 마루와 비교하면 40여센치 정도 높게 만들어져 있다. 마루방의 왼편으로는 정면 1칸, 측면 1칸 반 정도의 방이 마련되어 있다. 앞에 반 칸 정도의 앞마루가 가설되어 있는 방이다.
이 방 앞의 마루와 그 앞의 쪽마루 사이에는 양쪽 기둥 사이에 문틀이 사방으로 만들어져 있고 문은 달려있지 않은데, 이것은 수리중이기 때문일 것이고, 원래는 문틀 안에 4쪽의 문이 달려 있는 것일 터이다. 이 방과 왼쪽 끝 방 사이에는 정면 2칸, 측면 2칸 크기의 마루방이 있다. 이것이 대청마루일 것이고, 오른쪽 끝의 마루방은 누각마루 기능을 하는 것일 터이다. 이 두 마루는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는 천장 목구조를 갖추고 있다. 특히 대청마루에서 보는 천장 목구조의 결구는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횡목들은 하나같이 우람하며, 그것들은 좌로 우로 질서 있게 가로지르며 건물의 장중한 몸체를 형성한다. 이 횡목들을 위 아래로 짧게 연결시키는 기둥은 끝이 위쪽으로 벌어진 디귿자 모양의 부재를 교차 연결시켜서 마련하였다. 약 10센치 정도 두께의 사다리꼴 모양 판재를 가지고 윗부분에 홈을 마련하여 90도로 교차하게 해서 두뼘 정도의 높이를 갖는 기둥으로 쓰는 방식이다. 기둥과 횡목이 교차하는 목구조의 모든 부분에서 이와 같은 결구방식은 동일하게 쓰여진다. 그것은 마치 고구려 벽화무덤 속의 기둥 그림과도 흡사한 모습이다. 모든 서까래에 받쳐지는 힘들을 모아들이는 지붕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책상 모양의 천장구조도 여기서는 조금 특이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원형의 부재를 쓰기도 하는데, 이 원형 부재는 비슷한 형상으로 두 개의 횡목 사이를 떠받치는 부분에서도 쓰여진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