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안동의 상징을 찾아서 <고려시대 안동>(글/한경희-안동대학교 국문학과 강사)안동문화연구소가 펴낸 <고려시대 안동(예문서원, 2006)>은 고려시대 안동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해낸 책이다. 안동과 관련된 여러 저술에서 고려시대를 만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고려시대 자체를 조명해낸 책도 귀한데, 그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고려시대를 읽어낼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한 현실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현재와의 관계를 설정하고 밝혀내는 일에서 자료는 매우 중요한 가이드이자 구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자료부족으로 고려시대 전체를 조명해내는 일이 쉽지 않은 일로 남아 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안동문화연구소는 고려시대를 대상으로 안동의 전통성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을 시도한 것이다. 필자들이 놀라운 상상력으로 자료의 빈틈을 메우고 있는데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통도시로써 안동을 언급할 때, 그 중심에는 항상 퇴계라는 인물이 노정된다. 유교도시 안동이라는 위상에서 퇴계의 상징성은 매우 강력하고 절대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이런 강력한 상징이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는 일일까. 안동의 생활문화를 돌아보면 고려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는데, 그 실제 유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우리들에게 아주 익숙한 유물들인 제비원 미륵불, 태사묘, 봉정사, 고려시대의 탑과 불상, 하회탈, 차전놀이 등이 그것이다. 그 외, 안동의 고유한 문화나 유물로 이해되는 것들을 살펴본다면 고려시대 안동의 문화적 상징은 더욱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안동은 신라에 소속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이 책을 읽어보면 신라와 고구려의 접경지였음을 알 수 있다. 안동과 관련된 지명 역시 단순히 행정구역 개편에 따른 변화가 아니라, 삼국의 통일을 위한 전투과정에서 그 공과나 전투의 요충지로서 필요성에 따라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안동 지방의 군사시설>이란 글에는 그 구체적인 증거와 설득력 있는 해석이 소개되어 있다. 안동의 지명은 도호부의 위치가 변화될 때 여러 지명으로 바뀌었고, 도호부가 안동으로 돌아오면서 안동지명을 썼다고 한다.
그동안 동쪽의 편안한 지방으로 이해된 안동의 “安”(진무하다; 무력을 떨쳐 드러냄)자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이 “安”자를 진무하다로 읽게 되면 군사적으로 평정해서 편안한 동네가 된다는 것이다. 이 글의 필자가 밝혔듯이 안동이 군사적 요충지로써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동쪽의 군사거점 지역으로서 안동의 위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16개의 성곽이 안동지역에 있는데 이 글에 따르면 더 많은 산성이 발견될 것이라 추측하고 또 더러 발견된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 중에 학가산성의 경우 방어방향이 남쪽인데 이런 사실은 안동이 신라와 고구려의 접경 지역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증거가 된다. 또, 왕모산성의 경우 방어 방향이 서쪽인데, 이것은 왜구의 침략에 대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고려시대 행정체제 개편과 안동의 변화>와 관련된 주장을 볼 때, 안동은 후삼국 통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도 중앙 정계로 진출하지 않고 지역에 남았다. 고창전투로 불리는 이 전투의 승리는 후삼국 통일에 쐐기를 박는 역할을 하였다. 930년에 왕건을 도와 김선평, 권행, 장길 등이 후백제를 물리쳐 안동 주변 군현이 고려에 투항하게 된다. 당시의 행정구역 편제의 기본축은 군사력이었는데 김선평으로 대표되는 호족들은 지방에 그대로 남아서 후일 안동의 행정체제는 주가 되지 못하고 군으로 개편되었다고 본다. 고려 무신정권 아래 일어난 민란의 토벌작전에 참가한 공으로 안동의 행정구역은 도호부에서 대도호부로 승격한다. 김사미와 효심의 민란(1193년)의 진압에 안동이 가담하면서 도호부로 승격 (물론 정치적인 다른 변수가 있다.), 이비와 발좌의 난(1202년)에 참여하면서 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무신정권 아래 많은 민란은 당시 정국의 불안한 상황을 잘 반영한다. 더구나 홍건적의 난으로 안동까지 몽진(1361년)을 온 공민왕에 대한 후한 예우는 훗날 안동의 위상을 세우는 디딤돌이 된 것이다.
제비원 미륵불은 성주신앙의 본향으로 불리는 성주풀이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성주풀이를 할 때 무당이 부르는 노래의 첫 구절이다. ?어라하 만수 어라하 대신, 셩쥬 본향(本鄕)이 어데메인고, 경상도 안동 땅에 제비원이 본향이라….? 집을 지키고 모시는 신을 성주신이라고 하는데, 집안의 복과 화합이 담긴 노래이다. 사실상, 안동의 대표 이미지의 하나인 제비원의 유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것은 자료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인데, 이 책은 제비원 미륵불에 관한 멋진 상상력을 통해 제비원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우리에게 전승되는지를 안내한다. ?영가지?에 따르면 제비원 미륵불은 634년(당나라 정관8년)에 축조한 “연비원불사”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제비원의 석불이 어떤 세력의 주도 아래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고려가 후삼국 통일을 하는 역사적 전개과정과 연결시켜서 추측할 수 있다. 고려가 후백제를 물리치고 안동지역에서 우위를 확정하게 되는 때가 900년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200년의 오차범위가 생기는 것이다. 왕건은 후삼국 통일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군사력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 민중들의 민심을 수습하는 방법으로 사원, 사찰을 창건했다고 한다.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봉정사는 우리나라 최고 목조건물 극락전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에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후불벽화를 언급하고 있다. 후불벽화는 화엄경 영산회도로 추측하고 있으며, 천정의 범문자(梵文字)단청 등을 통해 필자는 “고려왕조는 중원을 압도한 북방민족 요, 금, 원의 거센 도전에 대응해 가는 과정에서 중국문화보다는 실크로드를 통해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는 중앙아시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주장한다. 당시, 세계의 주류 흐름에 안동의 봉정사 사찰이 함께 동참하고 있다고 해석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대단히 흥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김방경이란 인물의 위상과 의미는 고려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고려시대를 통틀어 중앙에 진출하여 원과의 관계에서 외교솜씨를 발휘하고, 고려 민중의 편에서 정치를 펴나간 인물 김방경은 고려사 열전에 매우 강직한 인품의 소유자로 소개되어 있다. 재지사족의 성장과정에서 놀라운 점은 귀족(양반)으로 인정받는 일이 매우 엄격한 심사과정을 통해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내외사족으로 허물이 없는 사람, 먼저 초안을 작성하여 모든 사람을 모아 통지하고, 모두 좋다하고 하면, 또 향선생에게 아뢰어 다시 허락을 받은 후, (향)안에 올린다.” 스스로 규율을 만들어 귀감이 되고자 했던 엄숙한 귀족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려라는 한 시대를 아주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는 여러 편의 글을 읽다보니, 부족한 사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상상력이 발휘되고 있었다. 역사적 자료라는 것 역시, 그 당대의 글쓰기였음을 감안한다면 모든 자료는 사관의 가치관과 해석의 종합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오늘날의 안동에 대해 누구나 인정하는 전통성은 과연 고려시대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을 것인가를 이 책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많은 상상력과 신기한 이야기를 보충해서 읽어 주시기 바란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