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사람 그리고 나눔. 청명회(淸明會)(글/백소애-편집기자).jpg)
다시(茶詩 )
茗 香 詩 韻 動 關 情
一 字 敲 詩 一 盞 傾
我 自 心 中 千 古 事
詞 林 彰 段 付 公 評
차 향기와 시의 운치는 마음을 움직이니
한 글자 다듬고서 차 한 잔 마시네
내 마음 속에 든 천고의 일들
시문에 드러내어 공평에 부쳐볼까
-자하 신위 紫霞 申緯 (1769~1847)
오랜 친구를 만나건 예를 갖춰야하는 사람을 만나건 우리가 습관처럼 하는 말이 있다. “차 한 잔 하실래요?”. 그렇기에 차는 함께 한다, 시간을 같이 보낸다, 크게는 인생을 얘기한다고도 볼 수 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우리 차(茶)문화에 대해서 일종의 문화적 허영이 있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흔히 다도(茶道) 하면 떠올랐던 생각이, 편하고 즐거워야할 차 마시는 시간이 외려 어렵고 고리타분할 거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을 만나고 돌아온 후 온전하게 차를 알고 다도를 갖추는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은, 마음을 풍요롭고 정갈하게 해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문화건 모르고 평가하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다. 내가 갖고 있던 편견 속 ‘허영’이 이런 것이라면 과연 그런 허영이야말로 누려볼만 할 것이다.
청명회(淸明會)http://isu.andong.net/는 올해로 창립된 지 꼭 1년이 된다. 동부동 법무사 골목에 위치한 이수다례문화원의 기초반 이상을 수료한 수강생들이 만든 모임이다. 청명회는 차 문화에 대한 기본예절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회원들의 모임인 것이다. 만나서 새로 나온 차나 계절에 맞는 차를 함께 마시기도 하고 특강을 듣기도 하고 날이 좋을 때면 야외에 나가서 차를 즐기며 소소한 일상이야기로 시간가는 줄도 모른다. 여느 동호회모임과 다를 바 없지만 타 동호회모임은 만나려고 차를 마신다면, 청명회 회원들은 차를 마시고자 만난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차 사랑이 유난한 이들이 차 문화를 접하고 난 후 달라진 점은 주변 사람들마저 차를 사랑하게 됐다는 거다. 청명회 김동남 회장(55)은 의성북부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아침 회의시간이면 직원들에게 꼭 우리차를 권하곤 한다. 습관처럼 커피를 마시던 직원들도 이제는 ‘교장선생님이 오늘은 또 무슨 차를 주실려나’하고 기대를 한다고. 한 잔의 차를 준비해서 내는 과정까지 서로의 일상적인 얘기라도 한마디 더 나누게 되는 점 등이 좋다고 한다. 처음엔 생경해하던 직원들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교무실 안 차 문화를 바꿔버린 김동남 회장의 차 사랑은, 앞으로 인연을 맺게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듯하다.
청명회의 정기모임은 한달에 한번이다. 이날은 정기모임인 아닌 ‘고급반’ 수강생들의 모임이 있었다. 기초반 - 중급반 - 고급반 - 사범반으로 나뉘어 강의가 진행되며 수료자들 중에는 2급예절사 자격증을 갖춘 사람도 여럿 된다고 한다. 각 과정은 사범반을 제외하고 6개월 정도로 진행되고 있다. 대학생부터 연세 지긋한 분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30여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며 물론 게 중에는 남자회원들도 있다. 웰빙에 대한 관심이 큰 만큼 다도모임에는 이제 남자회원들도 꽤 있다. 특히나, 간이식수술을 받은 남자회원 한분은 전통차를 꾸준히 마시면서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인스턴트 차를 딱 끊고 수술 후 잎차를 마시는 것으로 건강회복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
요즘은 햇국화차와 홍차가 좋은 계절이라며, 강의 전 빛깔 좋은 홍차가 나왔다. 붉으스름하게 우려낸 홍차빛깔에 알싸한 향내가 다원을 가득 채웠다. 총무 홍혜경씨(42)가 권하는 잔을 받아들고 한 모금 마시니 자극적인 커피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함께 나온 주전부리도 호두, 생강 등 몸에 이로운 것들이다. 모두 편히 앉아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며 마시고 있는 가운데,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다’는 말이 딱 어울리게 가만있질 못하며 한번 알은체를 해보았다. 홍차의 종류 중 ‘다즐링’ ‘아삼’ ‘얼그레이’가 있지 않느냐 언급하자 홍혜경 총무가 어떻게 그리 잘 아냐고 깜짝 놀란다. 만화 ‘홍차왕자’를 읽어보면 알게 된다며 웃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만화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이가 있었다.
검도복을 입은 건장한 청년이 차를 앞에 두고 다소곳이 앉아있다니, 그 모습이 사뭇 인상적이다. 해동검도 관장인 청강 회원. 검도관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예절, 다도교육을 병행해서 시키고 있다. 다도교육 이후 검도관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산만한 아이들이 집중력을 발휘하니 수강생 부모들의 반응도 좋다고 한다. 이러한 차 문화가 인성교육의 효과도 크다는 걸 말해준다. 이수다례문화원 조진영 원장 또한 가톨릭상지대 유아교육과에 출강 중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전통을 접목한 교육의 효과를 직접 확인한 뒤로는 더욱 열성적으로 임하고 있다.
회원들에게는 모두 다호가 있다. 호는 원래 누구나 부를 수 있게 만든 호칭이기에,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들이 모인 모임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도 그렇고 다호를 정해놓고 부르고 있다. 거기다 각자의 호 앞자리에는 청명회의 청(淸)자가 붙어있다. 김동남 회장의 호는 청현(淸玄), 홍혜경 총무의 호는 청어(淸魚)다. 호는 그 사람에게 부족한 기운이나 성격, 오행까지 고려해서 짓는다고 한다.
보통은 남자들도 다도모임을 갖나하고 생각하지만, 안동에서 차 문화 보급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수다례문화원의 이사장 차옹 선생의 말에 의하면 남자들로만 이루어진 차모임도 있다고 한다. 차옹 선생도 포함된 낙강명연(洛江茗宴), 말 그대로 차 잔치모임이다. 순수하게 차를 좋아해서 만나 차를 마시는 모임이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다원 한쪽에는 낙강명연 회원들의 명패가 나란히 붙어있다.
청명회는 꿇어앉아 두 손으로 받치면서, 그렇게나 엄숙한 분위기에서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늘 차를 가까이 하는 모임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웃고 떠들며 마시되, 차는 제대로 우려내어 마시는 것이다. 차를 마시는 과정은 제대로 배워내면서 차 문화를 대중화시키는 것이다. 차를 모르던 사람들도 차를 접하면서 그 묘한 매력에 이끌리게 된다. 다도도 다도지만 생활차로, 친구들과 함께 마시는 것처럼 시작하면 좋겠다는 의도가 있는 사람은 조진영 원장의 강의로 이루어지는 8주간의 무료강습도 한번 들어볼 것을 권한다.
홍혜경 총무는 마음의 울분을 가라앉혀주고 사회생활하면서 받은 스트레스 해소를 차 마시는 시간에 다 푼다고 한다. 우려내면 적어도 세잔이상 마시게 되는 차는 준비해서 내는 순간부터 정서적인 안정을 가져다준다. 커피를 마시면 가슴이 두근두근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전통차는 차 자체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게 되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고 한다. 어떠한 취미를 갖게 되면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되어 더욱더 심취하는 것처럼 청명회 회원들 모두가 이젠 스스로 차에 대해 알아가고 즐기는 맛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오랫동안 전통차를 가까이해서일까. 회원들 대부분 나이보다 젊어 보이고 맑은 피부를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표정에는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이 겨울, 가슴이 싸해지는 전통차 한잔을 가야금 연주를 주전부리 삼아 마시러 가는 건 어떨지. 이번 참에 일상에서 제대로 차 문화를 접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차, 사람 그리고 나눔을 목적으로 오늘도 따뜻한 찻물을 얹혀놓고 있을 회원들과의 만남이 아직도 우련하게 남아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