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산행의 동반자(글/피재현-나섬학교 교사)

산에 대한 단상
19세기 말 영국이 자기들 땅도 아닌, 티베트 인들이 ‘초모롱마’라고 부르던 산을 측량해 측량자의 이름을 붙여 에베레스트라고 부르면서부터, 한동안 정복의 대상이었던 산은 21세기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이제 인간은 자기들의 길을 문명의 극점에 있는 차에게 다 내주고 산돼지의 길, 토끼의 길을 빼앗아 산을 타고 있다. 이 일에 앙심을 품은 산돼지들이 자주 도심을 점거하고 1인 시위를 하는 소식을 우리는 간간이 뉴스에서 본다.
전문 산악인들에게 여전히 산은 정복의 대상이기도 하고 인간 심원에서 발동하는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유명한 산악인 조지 말로리는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는 말로 품격있는 산악인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이 말은, 해발 8,848미터에 이르는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사람이 한 말로는 어쩌면 지나치게 오만하다할 법도 한 말이다. 단지 거기 있어서 오르기에 에베레스트는 너무 거대한 산이지 않은가!


어릴 때 나는 그야말로 산이 거기 있어서 올랐다. 내가 사는 집 뒤로 봉우리 하나만 우뚝 솟은 산이 있었다. 그 산을 우리는 봉대미산이라고 불렀다. 어릴 때는 제법 숨을 헐떡이며 다녔는데 어른이 되어 다시 가 보니 해발 200미터가 되지 않아보였다. 그야말로 야산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우리는 사시장철 이 산에서 놀았다. 친구들과 총싸움과 칼싸움을 하고 짠대를 캐먹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버섯을 뜯으러 올랐다.
가을에는 도끼를 들고 꿀밤나무를 쾅쾅 때려가며 꿀밤을 주웠고, 뱀을 잡아 팔아서 과자를 사먹기도 했다. 이 산에도 예의 무덤이 있었고 거기에 따라 유치한 귀신 이야기가 있었다.
언젠가는 고려장 흔적을 찾아 토기를 캔 적도 있다. 무엇보다 내 기억에 남는 것은 이 산의 정상이다. 높지도 않은 정상이었지만 다른 산과 연이어 있지 않아서 정상에 서면 넓은 풍산들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가슴이 탁 트이는 산정의 맛을 나는 이때부터 알았던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한 산행
산행에 아이들을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지난 봄소풍을 우리는 대야산으로 갔었다. 아이들과 함께 산 정상에서 멋있게 ‘야호’를 하겠다고 생각하고 떠난 가슴 설레는 소풍이었지만 우리는 정확하게 말해서 대야산 용추폭포로 소풍을 간 꼴이 되고 말았다. 우리 아이들은 걷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대야산 정상은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겨울로 접어 든 지금, 아이들과 함께 산에 간다는 것은 그 때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게 중에는 마음을 많이 열고 이야기가 통하는 아이들도 생겼고 어쩌면 몸도 마음을 따라 움직여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다니는 안동경계걷기 이야기를 하고 동행을 권했다. 두 녀석이 가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산행 날 아침, 내가 전화를 하기도 전에 사오정이 먼저 전화가 왔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한 녀석, 번개머리는 집에 전화를 해서 깨웠다. 평일날도 일어나지 않을 놀토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산행 준비를 한다는 것은 이 아이들에게 좀처럼 있기 어려운 큰 행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두 놈이 함께 산을 탔다. 일행들도 젊은 피가 수혈되었다고 좋아했다. 아침 8시에 출발해 늦어도 9시부터는 산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산한 시간이 해가 빠진 6시였으니 이 날은 아마 두 녀석이 태어나서 가장 오래 걸은 날로 기록될 것이다. 그렇게 한 차례 산을 다녀오고 한 녀석은 완전히 손을 들었다. 뭔가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삼겹살을 걸었다. 산에 다녀오면 삽겹살을 배터지게 사주겠다고. 이상하게 요즘 아이들은 고기를 좋아한다. 고기가 귀한 시절도 아닌데 삼겹살에는 그야말로 환장을 한다. 그랬더니 지난번에 갔던 사오정이 다시 가겠다고 했고, 여학생 하나가 따라나섰다. 먼지는 순전히 삼겹살 때문에 앞 뒤 재지 않고 따라 나선 것이다.


사실 초행자들에게 하루 8시간 정도를 산을 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뒤쳐져서 ‘다리 아프다’ ‘목마르다’ 난리가 아니었고 나에게 숱한 원망을 쏟아 놓았지만 경계걷기 산행은 한 번 접어들면 돌아갈 수 없는 산행길이다. 목표지점까지 가야만 돌아올 차를 탈 수 있을 뿐 온 길을 되돌아간다고 해도 그것은 하산길이 아니었다.
주로 능선을 따라 난 경계를 걷는 우리의 산행은 큰 산 하나를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과는 달리 한 봉우리를 넘으면 또 다른 봉우리가 나타나고 그 봉우리를 넘어 바닥까지 내려가면 다시 앞에 놓인 산을 올라가야 하는 고된 행군이다.
비록 삼겹살에 낚이긴 했지만 나와 함께 한 두 번의 산행은 이 아이들에게 하나의 작은 기적이다. 스스로들 대견해서 입이 연신 벌어진다.
어제 산행을 함께 한 세 아이를 불러 삽겹살을 먹었다. 정말 엄청나게 먹었다. 한 달 용돈이 다 날아갔다. 그리고 그놈들은 나에게 보너스로 노래방값을 졸랐고 내가 집에 간 후, 무려 다섯 시간 동안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삼겹살을 먹을 자격이 있다. 그리고 다섯 시간 동안 목 놓아 노래를 부를 자격도 있다.


다음 산행을 기약하며....
간혹 인생은 산에 비유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느니 산 넘어 산이라느니 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비유일 텐데 산에 가 보면 정말 그렇다. 아이들이 한 번의 힘든 산행으로 인생을 생각하고 내 말에 수긍할 수는 없을 터이다. 그러나 돌아와서 자신들의 산행을 몇 배는 더 힘들게 과장해서 마치 영웅담처럼 하는 말을 보아서는 힘든 일을 겪어냈다는 뿌듯함은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나는 어릴 때 산과 들이 놀이터였다. 산에서 놀다가 지겨우면 들로 나가 무청을 뽑아 먹기도 하고 과수원에 남아 있는 까치밥을 따먹기도 하면서 무료한 날들을 보냈다.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 앞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콘크리트 실내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벗어나봐야 갈 데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언제쯤 산이 이 아이들에게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산이 들려주는 인생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눈앞에 펼쳐진 끝없는 능선을 가만히 응시할 수 있을까?
다음 산행 날짜가 다가온다. 이번에는 누가 따라 나설까? 억지로 권하지는 않을 테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아홉으로 늘었고, 그 중 한 녀석이라도 내 산행에 동행이 되어준다면 나는 그 아이를 위해서 맛있는 점심 도시락과 따뜻한 차를 준비할 것이다. 산행이 기다려진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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