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댁의 여행스케치(글/권태경-경안택시)

중요무형문화재인 하회별신굿탈놀이가 하회마을에서 상설공연을 시작한지도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을 훌쩍 넘었다. 작년 한해는 150여 차례 공연의 기록도 세웠다. 매번 공연마다 관람석은 만원이다. 그동안의 공연으로 나를 알아보는 관객도 늘었고 10년차에 접어든 택시기사 생활을 하면서 단골 고객도 많이 생겼다.
그중에서도 유독 반가운 인사는 ‘탈춤 아저씨’ ‘문화재 아저씨’ ‘어! 할배!’ ‘털보’ ‘달마’ 등의 호칭으로 인사를 해올 때면 한없이 정겨울 따름이다. 그래서 하회에서의 공연은 내게 일상이자 행복이고 희망이 되어준다.


작년가을이었다. 공연을 마치고 빈 차로 풍산들을 지나 채화정을 지날 쯤 여자분께서 차를 세웠다.
“아저씨. 어디로 가세요.”
“예. 다 가요.”
그러자 여자분은 “다 가요가 뭐지요”하고 묻는다.
“어디든지 다 갈 수 있다는 말이지요.”
여자분은 크게 웃으며 차에 올랐다. 중년의 부인으로 서울댁이었다.
시내로 가면서 안동소주 공장의 음식박물관에 들렀다. 잘 차려진 음식상을 꼼꼼히 메모를 하면서 둘러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저녁때가 되자 서울댁이 식사를 같이 하자며 청하길래 간고등어 식당으로 안내를 했다.
고등어구이로 식사를 하는데 고등어를 손으로 뜯어 내 밥그릇에 얹어준다. 내가 부끄러워하자 대뜸 말하는 서울댁.
“아저씨! 옛날 생각이 나서 그래요. 그 옛날 장날 어머니께서 짚으로 묶은 자반고등어를 사오시면 군불 지피고 아궁이 속에 구워낸 고등어는 늘 아버지 밥상에 먼저 오르고 아버지는 애들 밥상으로 슬쩍 밀어주시면 맏누나라는 이유로 얼른 부엌으로 숭늉 푸러 나갔지요.”
생선 한 토막이 귀했던 시절, 어렵던 시절의 가족들 생각에 잠시 뭉클해진다. 부끄러움을 감추고 맛나게 식사를 마쳤다. 숙소를 고민하는 서울댁에게 안동에 왔으니 고택체험을 해보시라고 한옥에 모셨더니 너무 좋아하였다.


직접 군불을 지피면서 안주인과 대화를 나누는데 금세 친구가 되어 수다가 끝이 없다. 감자를 구워 나누기도 하고 마침 안방을 들여다보니 국수안반에 썰어놓기 전의 칼국수 반죽이 있어 그걸 손바닥만 하게 잘라 아궁이 불에 구우니 벙글벙글해지며 바삭한 게 맛있다며 동심으로 돌아간 얼굴로 기분이 최고라고 한다.
“기사 아저씨. 차비가 얼마지요?”
하루 대절료를 계산하고는 주인내외, 서울댁, 나는 의기투합하여 술상을 내와 안동소주를 한 병 비웠다. 한옥에서의 운치 있는 안동소주 맛이라니 기분 좋고 낙낙해진 우리들. 옛 정취에 흠뻑 취한 서울댁이 “내 말 좀 들어볼래요?” 하며 자서전을 들려준다.
강원도 산골에서 6남매 맏이로 초등학교를 겨우 마치고 가난한 살림에 입 하나 덜려고 서울에서 식모살이를 하며 같은 집에서 10년 동안 지내면서 철이 들고, 또 이성에 눈을 떠 옆집 채소가게 총각하고 눈이 맞아 결혼을 했단다. 길가, 노점, 행상으로 채소장사를 하며 10년 만에 내 점포를 마련하고 부지런함과 신용 하나로 또 다시 10년 만에 종업원 18명의 도매상으로 발전해서 사업가로 우뚝 섰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자식 둘은 탈 없이 자라 둘째 딸아이까지 시집보내고 둘 부부만 있으니 가게에서는 바쁘지만 집에 오면 말이 없어지고 허전해진 50대 중반의 부부라, 의논 끝에 서로의 취미를 존중하자며 1년에 10일은 자신을 위하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단다. 낚시를 좋아하는 남편과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는 3년이 지나면서 그렇게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게 되고 그로 인해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즐거움을 맛보게 되었다고.


서울댁의 여행방법은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경치가 좋으면 내려서 걷기도 하며 지치면 택시도 타고 산사에서 공양주도 도와주는 등 발 가는 대로 맘 가는대로 움직이다가 잠들기 전 남편에게 전화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고 한다. 오늘날까지 이렇게 건강할 수 있어 감사하고 이러한 삶의 여유가 있음에 또 감사한다고.
사업의 번창 또한 종업원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입사 5년이 되면 고등학생, 대학생자녀가 있는 종업원에게는 전 학년 학자금 혜택을 주어 모두가 가족처럼 지낸다고 한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 여유와 부를 얻었지만 주위를 돌아보며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알고 부부가 좋아하는 것이 달라도 싫어하는 것은 같아야 한다는 서울댁. 그 댁의 중년부부의 정이 부럽고 보기가 좋다. 나이가 들수록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노력하고 이해하려고 힘쓰면 안 될 것이 무엇 있겠는가. 지금도 어딘가를 발 가는대로 여행 다닐 서울댁의 멋진 여행 스케치를 우리들 또한 그려봄 직하지 않은가. <안동>




권태경
9년째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 현재 경안택시에 근무 중이며,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 별신굿 탈놀이 보존회 전수조교로 활동하고 있다. 매주 토,일요일 오후3시에 하회마을 공연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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