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초등학교 이오덕 선생을 찾아가다(글/한경희-안동대 국문학과 강사)
1.
임동 대곡으로 길을 나선다. 임동은 이오덕 선생이 태어나신 곳은 아니지만 시골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담은 책으로 유명한 무대이다. 아마도 전국에서 사람들이 이곳으로 찾아오는 일이 종종 있는 모양이다. 겨울로 접어든 들과 산은 봄을 준비하는 긴 침묵에 들어갔다. 상록수 그 잎도 차츰 색이 바래지기 시작하는 걸 보면 완연한 겨울들녘임이 확실하다. 명성쉼터에 이르러 좌회전을 하니 휘휘 돌아드는 길이 나오는데 임하댐 담수의 물길과 그리 다르지 않지 싶다. 물길과 땅길이 같은 기울기로 기울어지고 굽어드는 것이 아닐까. 구불구불하게 막힘없이 아스팔트길이 깔려 있는 길조차 휴면기를 맞이한 듯하다. 더구나 하늘이 낮게 내려앉은 겨울날이라 사방천지가 묵상 중인가 보다.
임하댐이 차지하고 있는 물길은 깊고 넓은 물줄기를 유유히 보여준다. 대곡으로 향하는 길 왼쪽으로는 넓은 밭이 활짝 열려 있다. 골짜기를 넘어서 내리막길 즈음에 펼쳐진 널따란 밭을 보면 언제나 사람살이의 신비함이 감지된다. 위동이란 마을에 널린 듯 단정하게 정리된 농토를 지나서 좀더 가다보면 길가에서도 잘 보이는 폐교된 학교가 서 있다. 임동동부분교장인 이 학교에도 위동 마을 아이들이 꿈을 키웠던 곳일 거다. 지금은 폐교의 흔적만을 알려줄 뿐 아마도 공방으로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공방 간판이 멋지게 걸려 있는 것을 보면. 학교 입구에는 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 집에서 달려 나온 삽사리를 피하느라 도망치듯 벗어났다.
초행길이라면 동부분교를 대성초등학교로 오해할만하다. 인적도 없는 길을 유유히 돌아들다가 짠하고 만나는 학교이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다. 대곡2리에 들어오니 오래된 학교가 눈에 들어온다. 한때 임동동부 대곡분교에서 대성초등학교로 승격도 되었다는 학교가 이제는 담도 보이지 않을 만큼 스러져 있다. 대신에 정문도 없는 정문에는 장승이 서 있고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소나무들이 키를 맞춰 담처럼 학교 앞에 나란히 줄 서 있다. 운동장에는 여름 한철 무성했을 풀들이 가득하다. 결국 풀밭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눈도, 서리도 맞고 맑은 갈색 몸으로 기운 없이 풀 죽어 있다. 저들도 다시 여름을 기약하고 긴 휴식을 맞이하고 있는 모양이다.
학교 운동장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바로 오른쪽으로 키 낮은 안내입석이 서 있다. 졸업생 503명을 배출한 이 학교는 1946년에 개교를 해서 1997년에 폐교되었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지금은 마을 농민들이 이 학교를 매입하여 산야초도 만들고 메주도 쑤는 등, 농사 이외의 경제활동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농민회 일을 맡아보는 어떤 분은 대성초등을 졸업했다고 하시고, 이 마을에 시집와서 평생을 보낸 어르신 가운데 학교 이사를 하셨던 분도 있었다. 모두들 대성초등학교를 두고 한 마디씩 하시거나, 누군가의 말에 동조의 의사를 아낌없이 보내고 계셨다. 이오덕 선생에 대한 추억을 들려 달라고 하자, 이오덕 선생 부부가 사택에 계셨는데 당시 아이들을 위해 “너무 고생하셨다”는 말만 하신다.
학교의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사택, 숙직실, 학교 창고까지 갖춰 아담하였다. 당시 건물 그대로 증축을 하거나 페인트 칠을 하고 지붕을 좀 수리한 정도라고 하니, 그때는 마을에서 우뚝 솟고 빛나는 학교였을 것이다. 교실 4칸이 있는 건물은 마루바닥이 깔려 있고 오후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는 맑고 투명한 유리창으로 빛나고 있었다. 물론 유리창은 부서지거나 낡거나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안고 있었음에도 찬란하게 빛을 받아내고 있었다. 이 건물은 2층이었는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른쪽 건물 밖으로 내놓아 조형미가 돋보였다. 누군가 다녀갔던 모양인지 칠판에는 졸업생의 이름이 있었다.
건물 앞에 서 있는 향나무가 바로 학교의 역사 그대로를 다 보여주는 상징이 되어 서 있었다. 교사는 낡아서 빛도 바래고 페인트 칠도 벗겨지고 눈비와 바람에 때 국물이 자르르 흐르지만 향나무는 튼튼하게 우아하게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이 향나무는 대곡분교에서 대성초등학교로 번성했던 시절과 폐교를 하던 날까지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분명 마을 아이들이 우르르 학교로 다니던 시절을 상세하게 자신의 나이테에 저장해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향나무를 쳐다봐도 마을이 숲처럼 울창했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2.
<무너미마을 느티나무 아래서>라는 시집에는 선생의 평생이 얼마나 외롭고 팍팍했던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 여러 편 있다. 더구나 권정생 선생이 써둔 서문격의 “이오덕 할아버지의 노래”에는 아홉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외동아들로 자란 외로운 사연이 나온다. 또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나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평생을 혼자처럼 사셨다는 대목에는 참 씁쓸한 마음이 전해온다. 그래서 이 두 분은 더욱 돈독한 정을 나눴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 구체적인 그늘의 일상은 시 몇 편에서 확인해보기로 하자. 이 시집은 시 이야기가 더 어울릴 정도로 언어적 긴장과 가공은 최대한 피하고 있다. 이야기와 시가 완전히 다른 영역이 아니라 노래 역시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살아생전 선생과 대면한 적이 없으나 이야기 시를 통해 선생의 유년을 충분히 그려낼 수 있을 것 같다. 선생은 오월 화려하게 피는 목련꽃잎이 나무색을 띠며 땅으로 떨어지자, 그걸 주워 들고 그 꽃잎이 꼭 밥 푸는 주걱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목련꽃잎을 밥주걱으로 생각하다니. 우아한 꽃잎을 두고 밥 주걱이 생각나는 것은 단지 움푹 들어간 꽃잎 몸 때문일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곡진함은 감자를 먹으며라는 시에 잘 나온다. 권정생 선생도 마지막 숨을 넘기며 “어매”를 부르셨다고 하는데 우리 마음과 정신에서 절대 부정할 수 없는 고향이 바로 어머니이기 때문일까. 이오덕 선생이 네다섯 살 때 부엌에서 어머니가 밥을 풀 때면 언제나 맨 먼저 젓가락에 찐 감자를 끼워 주시던 것을 떠올리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그 유년의 추억이나 기억이란 것이 잘려진 사진처럼 완벽하지 못하고 엉성한 것인데, 감자를 먹었던 또렷한 기억과 그 감자에 묻어난 어머니의 손길을 아무리 어린 나이이지만 잊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 얼굴은 희미해서 떠오르지 않아도 감자 먹던 기억, 뜨거운 감자를 입 안에 넣고 김을 토하던 기억을 한다는 것이다.
좀더 커서는 꼴(나무)을 베러 친구들과 들로 산으로 나가서 자갈돌을 달구어 감자를 구워 먹던 시절이 있었다. 이미 이때는 어머니와는 사별을 했을 터이니 이오덕 선생에게 감자를 먹는 일은 어머니를 기억하는 일이자, 어머니를 잊지 않는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감자묻이 놀이”를 선생은 가장 재미있는 일로 기억하지만 아마도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땅을 파서 나무를 쟁이고 그 위에 밤자갈을 깔고 그 위에 나무로 덮어서 자갈돌을 벌겋게 달군 다음, 저고리를 벗어 들고 부치면 나무가 제대로 잘 타오르면서 돌이 달궈지게 된다. 이곳에 모래를 깔고 감자를 얹고 모래로 다시 덮어서 굽는 과정이 잘 소개되어 있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미리 파놓은 불구멍으로 물을 떠 넣으면 불과 물이 만나서 내는 엄청난 소리와 김까지 모락모락 났다고 하니, 풍경으로는 너무 아름다운 한때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감자가 익으면서 터지는 소리, 바짝 불에 단 돌에 물이 닿자 쏟아지는 소리는 감자놀이의 축포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더구나 선생에게 감자는 맛있는 간식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감자에 얽힌 추억을 떠올리는 진짜 의도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존재한다. 너무 일찍 헤어진 어머니를 도저히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소년은 감자를 통해 어머니와의 기억을 구성해내었을 것이다. 솥뚜껑을 열어 가장 먼저 아들에게 후후 불면서 찐 감자를 건넨 어머니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선생에게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오덕 선생은 청송 현서면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느라 혼자 영덕으로 옮겨가 살았던 모양이다. 영덕군청에서 발간한 영덕의 100년사에도 이오덕 선생이 다니던 농업학교 사진이 있다. 1930년대 사진에는 모든 학생들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산, 논, 밭으로 가서 노동을 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야외작업 사진이 많고 “생업보국”의 이름으로 가마니 짜는 사진도 보인다. 이 사진들 가운데 현재 영덕종고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사진이 있다. 선생이 다녔던 영덕읍 천전리의 영덕공립농업실수학교(1936)는 농업과 1학급 1년제로 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았고 1946년에 영덕공립초급중학교로 승격해서 현재 영덕중, 영덕종합고등학교로 계승되어 왔다. 이오덕 선생은 1943년에 이 학교를 졸업했으니 일제의 잔혹한 교육 아래 학창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이 시절을 회상하며 쓴 시가 명치절이라고 생각된다. 일본천황 탄생을 기념하는 일제의 4대 국가기념일 가운데 하나답게 행사를 거행했던 모양이다. 식장에서 학생들은 기미가요를 부르고 흰 장갑을 낀 조선인 담임교사는 교육칙어를 머리 위로 높이 올려 받들고 들어온다. 거기에 학생들은 90도 절을 하고 그대로 45도 구부려 교장선생의 교육칙어 낭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학교에서 강요된 일본식 교육제와 일본노래는 청년에게 어떤 역할을 했던 것인가.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할 친일파를 양산했을 이 교육제 아래 유년을 보냈던 선생은 “우리가 입은 어처구니 없는 상처”라고 썼다. 이오덕 선생은 정신대, 보국대, 지원병, 학병, 징병 등으로 끌려갔던 조선의 소년 소녀의 기막힌 상처를, 표시나지 않는 그늘의 깊이를 누구도 잘 알아볼 수 없다고 쓰고 있다.
문제는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일제가 가르쳤던 가치개념들은 분열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충효, 법률 중심의 사회질서는 개인이 사회와 맺는 관계에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국가의식을 중심에 두고 볼 때 말도 되지 않는 혼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망국민으로서 충성해야 할 국가란 언제나 흔들리는 중심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분열된 유년을 보낸 사람들이 겪는 아픔과 상처는 무슨 역사와 시대가 위로할 수 있겠는가. 도대체 충효의 덕목은 누구를 향해 어떤 가치 아래 의미를 가질 수 있었겠는가. 이 분열된 가치와 세계관을 역사는 또 어떻게 감당해낼 수 있었겠는가. 우리의 역사와 전통 가치를 세대단절을 통해 뿌리 뽑고자했던 일제의 의도가 확연하게 보인다.
교육칙어 내용의 골자는 도의(道義)국가를 실현하는 일본의 자랑스런 조상을 닮아 훌륭한 일본인이 되도록 마음속으로 염원한다는 것이다. 생각과 사상, 마음까지 일본화하자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우수한 소년, 소녀를 뽑아 보름씩 일본을 유람시켜 마음과 몸은 물론 역사의 뿌리까지 일본화 시키겠다는 철저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었다. 명치신궁 참배 여행을 했던 친구가 있었음을 추억하는 글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시대를 이오덕 선생도 학창시절이라는 인생의 마디로 지나왔다.
3.
우리 고향, 우리 고장 사람이라고 할 때 기준이 뭘까? 태어나도 생애를 다른 지역에서 보낸 사람도 있고 태어나지 않았으나 삶을 우리 땅에서 정착할 수도 있는 법이니 무엇을 기준으로 같은 고향을 운운할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고향은 개인 마음과 공간의 밀도나 깊이에 더 충실한 매우 내밀한 정서가 아닐까. 이것을 굳이 지역으로 나누고 동류의식으로 묶다보니 무리한 지역접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찾아간 작가, 이오덕을 두고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청송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는 이 고향과는 먼 충주 신니면 무너미마을에 뼈를 묻었다.
선생은 당시 영덕공립농업실수학교를 졸업하고 군청의 공무원이 되었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으므로 공무원의 역할이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독학으로 교원시험을 봐서 교사가 되었고 산골오지, 시골마을 학교에서 많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기르는 참 선생으로 사셨다. 그 삶의 내용이 만들어낸 아이들을 향한 글쓰기는 동심천사주의 경향을 벗어던지지 못한 당시 어린이문학계에 아주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것이다.
<일하는 아이들>의 무대인 임동 대성초등학교 아이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는 아이다운 솔직한 마음과 가난으로 힘겨운 시절 이야기를 잘 담아내고 있다. 이 아이들의 글에는 진지하고 솔직하게 자기 삶을 써낸 감동이 있다. 선생은 시라는 말은 너무 어려우니 참말로 고쳐 부르면 어떠냐고 한다.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시를 쓰자고 말할 때 시 라는 말은 진짜 난감한 점이 많다. 시는 참말의 덩어리이니 그리 부르는 것도 문제가 될 건 없는 일이다. 우리말을 쓰자는 선생의 생각까지 담긴 이야기임을 모르지 않는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