쟝쩌민의 고향 쟝완(글/임세권-안동대 교수)
쟝쩌민(江澤民)의 고향으로 알려진 쟝완(江灣)은 휘저우의 옛 고을로서 명성이 높은 마을이었다. 쨩쩌민은 쟝쑤성의 양저우(楊州)에서 태어났으나 그의 할아버지대까지 쟝완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쟝완사람들은 그를 쟝완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쟝완의 주차장에서 바라본 마을은 지금까지 다녀본 휘저우의 다른 옛 마을에 비해 실망이 컸다. 횡하니 넓은 주차장에서 마을로 들어오면 화강석이 깔린 깨끗하게 치워진 넓은 한쪽으로 아직 페인트 칠 냄새가 날 것 같은 새로 지은 사당 건물, 그리고 새로 세워진 패방을 통해 보이는 홍등 걸린 중심 도로에 이르기까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방금 만들어진 듯한 관광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마을의 입구는 황산시와 우위엔 현성을 잇는 우황(무황,婺黃)공로의 도로변으로 마치 새로 조성된 시가지의 풍경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도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패방을 통과하면 이 마을의 메인스트리트라고 할 수 있는 깨끗하게 정돈된 상가인 푸싱루(復興路)길이 길게 뻗어 있고 그 양쪽으로는 가로등이 촘촘하게 서 있는데 등은 붉은 홍등이 셋씩 달려 있어서 중국문화에 익지 않은 한국 사람에게는 이곳이 홍등가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낯이 설다. 옛 마을이라는 것은 역시 들어서면서 예스러움이 풍겨야 하는 것인데 그 기대를 이 깔끔하게 정비된 넓은 도로가 무참하게 깨버리고 만 것이다. 길에서 얼마 가지 않아 왼쪽으로 쟝완 고촌락 유람입구라고 쓰인 안내판이 벽에 붙어 있었는데 밑에 조그맣게 검표처 즉 표 검사하는 곳이라고 쓰인 것을 보니 이 마을도 중간 중간 표를 검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귀찮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황산시에 처음 와서 시디와 청칸 마을을 갔을 때 마을 사람들이 표 사서 들어왔느냐고 물어볼 때의 짜증나던 때가 생각났다. 사실 표를 보자고 하는 곳은 없었으나 이러한 간판만으로도 관광객들에게는 부담이 가게 마련이다.
윈완(雲灣)에서 쟝완(江灣)으로
골목 안으로 들어가 보니 마을은 다른 마을에 비해 규모가 상당히 크게 보였다. 마을은 북쪽으로 허우롱산(後龍山)을 의지해서 남향으로 앉아 있었는데 앞으로는 리위엔허(梨園河)라는 하천이 동에서 서로 ‘S’자를 이루면서 흐른다. 역시 휘저우의 다른 이름난 마을처럼 산수가 잘 어우러져 풍수상으로도 완벽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강이 산계곡을 굽이쳐 마을을 감도는 형상을 보면 이곳이 쟝완 곧 ‘江’이란 글자와 ‘灣’이란 글자로 된 이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나 마을 이름이 만들어진 역사를 읽으면 그것은 강물과는 전혀 관계없음을 알 수 있다. 이 마을이 쟝져민의 고향으로 유명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성씨와 관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쟝완의 본래 이름은 윈완(雲灣)이었다. 이는 마을이 세 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계곡 사이에서 안개가 피어올라 일년 내내 구름이 산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당나라 이전에 마을에는 텅(등,滕) 예(엽,葉) 바오(포,鮑) 다이(대,戴) 청(정,程) 등의 성씨가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당나라 말기 재상을 지낸 샤오거우(소구,蕭遘)가 주췐쭝(朱全忠)이 황제를 죽이고 후량(後梁)을 세운 일에 연루되어 박해를 받는 일이 일어났고 그로인해 아들 샤오쩐(소정,蕭禎)이 휘저우 셔현(흡현,歙縣) 황둔(황돈,篁墩)으로 와서 은거하면서 성을 쟝(강,江)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 후 황둔으로 온 쟝씨를 샤오쟝(蕭江)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샤오쩐은 쟝쩐이 되었고 샤오쟝의 일세조가 되었다. 샤오쩐의 8대손 쟝디(강적,江敵)가 북송 원풍연간(1078~1085)에 윈완(雲灣)으로 옮겨왔고 이후 자손이 번창하여 이 지역의 거족이 되었다. 그 후 윈완은 쟝완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이다.
리위엔허라는 마을 앞의 강 이름은 강의 남쪽에 배나무 과수원이 있어서 불린 이름이다. 이 과수원 있는 지역이 쟝디가 처음 윈완으로 옮겨 왔을 때 자리를 잡았던 곳이라고 한다.
고쟝완 노쟝완 신쟝완
쟝완 마을은 허우롱산 밑에서 리위엔허 연안에까지 걸쳐 세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산 바로 아래의 지역을 고(古)쟝완, 리위엔허 북쪽에 강에 인접한 지역을 신(新)쟝완, 그리고 그 사이를 노(老)쟝완이라 부른다. 처음 입장권을 내고 들어가서 본 곳은 바로 신쟝완이었던 것이다. 고쟝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작은 하천을 건너면서 남관정(南關亭)이라는 건물이 나오고 길은 남관정 밑을 통과하도록 되어 있다. 정자 내부에는 양쪽으로 긴 의자가 설치되어 있어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하였다. 본래 고쟝완은 사방으로 방어용 담장을 성벽처럼 둘러친 마을로 사방에 마을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동쪽의 동화문(東和門)과 남쪽의 남관문 즉 남관정 둘만 남아 있다. 서쪽에는 서안문(西安門)이 있었고 북쪽에는 북약문(北鑰門)이 있었다고 한다. 즉 이 정자는 고쟝완과 노쟝완의 경계를 이루며 쟝완으로 들어가는 남쪽의 관문이다.
남관정은 화정(花亭)이라고도 한다는데 옛날 정자 양쪽으로 연못이 있어서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 연못이 있던 흔적은 볼 수 없다. 이 남관정 북쪽의 고쟝완이 송대에 샤오쟝(蕭江)이 처음 이주해 정착한 곳이다. 인구가 불어나고 상업이 번창하면서 남쪽으로 상업을 위한 거리가 조성되면서 쟝완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남관정을 통해서 고쟝완으로 들어가면 쟝완중심소학(江灣中心小學, 우리식으로 부른다면 쟝완초등학교에 해당)이 나온다. 이 학교는 쟝쩌민이 방문하였던 곳으로 지금도 학교 안에 커다란 쟝쩌민이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있는 모습의 그림이 운동장 한쪽에 세워져 있어서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지켜본다.
쟝완중심소학을 지나면서 고쟝완과 노쟝완의 여기저기를 발걸음 닿는 대로 편안하게 돌아보기로 했다. 좁은 골목 안에는 많은 고가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처음 안으로 들어가 본 집은 쟝완인가(江灣人家)라는 안내판이 붙은 집이었다. 안내판에 쟝(江)씨 성의 큰 상인이 이 집을 사서 증축하여 살았다는 전형적인 휘저우 민가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집은 유명한 인물의 집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집안에는 민속박물관처럼 휘저우 사람들이 농사를 짓거나 상업을 경영하면서 또는 가정생활에서 사용하던 여러 가지 생활용품들이 적재적소에 놓여 있었다. 대문을 들어가서 처음 만나는 청당에는 유례당(由禮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청당 앞 마당의 한쪽 판문에는 도롱이와 모자가, 그리고 2층으로 연결되는 판벽 아래에는 옥수수와 고추 등이 매달려 있었다. 앞의 청당에서 보는 분위기와는 좀 어울리지 않으나 휘저우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전시하듯 매달아 놓은 듯 했다.
집안의 여기저기에 보이는 목조들은 휘저우의 화려한 조각솜씨들에는 매우 뒤떨어지지만 집의 규모는 커서 휘저우인들의 살림살이를 이해하는 데는 매우 좋은 집이었다. 부엌에는 조리기구가 잘 정렬되어 걸려 있었고 부엌과 연결된 창고로 사용된 듯한 방들도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뒤쪽으로 연이어 붙은 방들은 벽에 바로 문을 내어 서로 통하게 하였는데 문들은 서로 수직으로 마주 낸 것이 아니라 비스듬한 사선상에 배치한 것이 매우 재미있었다. 이것은 대문을 삐뚤어지게 틀어서 달아 잡귀신을 막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인데 휘저우 사람들의 집짓기에 이와 같은 민속적인 의미들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쟝완 마을의 인물들
골목을 몇 번 휘돌아 광장을 막고 서 있는 큰 대문 앞에 섰다. 향현사(鄕賢祠)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니 사당건물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연못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넓은 작은 호수가 눈앞에 나타났다. 호수 가에는 회랑을 설치해 호수의 경치를 완상할 수 있게 하였으며 대문 건너편 쪽으로 나무들이 우거진 사이에 정자 또는 몇 개의 건물들이 호수와 아름답게 어울려 있고 입구에서부터 그 건물들을 거쳐 회랑을 통해 호숫가를 한 바퀴 돌아오도록 설계가 되어 있다. 이 호수와 정원은 쟝완 마을을 일으킨 훌륭한 선조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입구 가까운 곳에 여러 선조들의 석상이 세워져 있어서 관람객들이 이 마을이 배출한 훌륭한 인물들을 가까이 만날 수 있도록 하였다. 석상 중에는 근대 중국을 만드는데 큰 업적을 남긴 쟝치엔(강겸,江謙) 쟝스시(강석계,江石溪) 쟝즈위엔(강지원,江之源) 등 세 사람이 있다. 대 기업가인 쟝지엔(강건,江謇)은 쟝치엔을 중용한 것 뿐 아니라 쟝치엔이 추천한 쟝스시와 우위엔 사람 쟝즈위엔을 중용하여 그들 모두 20세기 초 중국이 근대화 하는데 기업인들로서 크게 기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중 쟝스시는 바로 후진타오 이전에 중국 국가주석을 지낸 쟝쩌민의 할아버지이다.
향현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휘파건축으로도 유명한 삼성당(三省堂)이 있는데 이 집은 위의 세 사람 중 중국 근대사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근대교육가 쟝치엔의 집이다. 쟝치엔은 1876년생으로 5세 때 책을 읽었다고 전해질만큼 어릴 때부터 총명했다고 한다. 그는 17세에 동자시(童子試)에 합격했고 그후 남경에서 장지엔(장건,張謇) 문하에 들어가서 공부했다. 1902년 장지엔이 고향에서 통저우(通州)사범학교를 설립했을 때 쟝치엔을 교장에 임명하여 14년 동안 맡겼다. 쟝지엔에게 통저우 사범학교를 위임받은 쟝치엔은 중국 현대고등교육의 개창자의 하나로 우뚝 섰으며 민국4년(1915)년 난징(남경,南京)고등사범이 설립되면서 그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난징고등사범은 오늘날의 난징대학의 전신이다. 쟝치엔이 교장이 된 것은 불과 39세의 젊은 나이였다.
쟝완 마을은 마을 규모가 큰 만큼 대규모의 고택들도 많다. 그 중 많은 상징과 이야기 거리를 지닌 집으로 쟝런칭(강인경,江仁慶) 고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집주인 쟝런칭은 청대말년에 출생했고 13세에 샹하이에 가서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상업을 하여 20년 고생 끝에 치부를 이룬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샹하이의 거상이 되어 금의환향한 후 부모의 은공에 보답하기 위해 이처럼 특별한 저택을 지었다고 한다.
이 외에 유명한 인물의 집으로는 청대의 저명한 경학가이며 교육가인 쟝용(강영,江永)의 집 선여당(善餘堂)과 항일투사 쟝이린(강일린,江一麟)의 돈륜당(敦倫堂)이 있다. 쟝용은 유학은 물론 中西曆算에 통달했고 음률성운에도 정통했다. 환파경학연구의 기풍을 조성했고 환파朴學(고증학)의 기초를 세웠다. 사고전서에 수록된 그의 저작만도 27部에 이른다. 교육가로서의 영향력도 뛰어나다. 그에게서 수학한 사람으로 다이쩐(戴震) 진방(金榜) 청야오티엔(程瑤田) 등이 있다. 쟝완을 종령육수(鐘靈毓秀(좋은 환경에서 많은 인재가 나온다는 뜻)의 땅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강영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해할만하다. 현재 선여당은 쟝용기념관, 돈륜당은 쟝이린기념관이란 현판이 붙어 있고 주변과 집 내부도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다. 이처럼 기념관으로 꾸며진 집은 다른 집에서처럼 물건을 판다던가 하여 집을 이모저모 살펴볼 수 없게 하는 일이 없어 편안하게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돈륜당에는 회색 등산모를 눌러쓴 나이든 남자 하나가 붓글씨를 쓰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아 돈을 받고 서예작품을 써주는 것으로 보였다. 이처럼 돈을 받고 글씨나 그림을 그려주는 것은 중국 관광지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데 대체로 중국의 권위 있는 미술공모전에서 수상을 했다던가 하는 그들의 경력을 내걸고 있는 점이 우리와는 다르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처럼 체면을 중시하는 곳에서는 자신의 경력을 배경으로 해서 이처럼 싼 돈을 받고 글씨나 그림을 판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만 중국에서는 글씨를 쓰는 사람이나 사가는 사람이나 너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듯 했다. 돈륜당의 이 사람은 나이가 일흔이나 된 청량위(정량옥,程良玉)이라고 하는데 화동사범대학을 나와 41년이나 당 선전업무에 종사했고 시서(詩書)에 국가로부터 많은 상을 받았으며 미국 일본 이태리 동남아 등에서 유명작가로 인정받은 것은 물론 런샤오양(任曉陽) 서화원의 원장을 역임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음을 책상 옆에 써붙인 자기 소개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고택에서 읽는 상징과 이야기들
이 집은 남향으로 앉았는데 대문은 서쪽으로 냈다는 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는 자기가 몸은 비록 샹하이에서 장사를 하지만 샹하이 서쪽의 고향 휘저우를 잊지 않고 산다는 뜻이라고 한다. 또한 첫 번째 건물이 주방으로 되어 있고 두 번째 건물이 식당 그리고 세 번째 건물이 정청으로 주인의 활동공간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주택들이 대문을 들어서면 가운데 집이 정청으로 되어 있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주방에는 일곱 가지 생활필수품을 두었는데 장작, 쌀, 기름, 소금, 간장, 식초, 차 등이다. 집의 첫째와 둘째 건물을 주방과 식당으로 만든 것은 식량이 생활의 근본이라는 의미를 나타낸 것이라 전한다.
정청이 있는 건물인 정옥(正屋)은 도로 쪽으로 면한 일층 외벽에는 13개의 대형 청석판이 붙어 있다. 쟝런칭은 열 세 살때 외지로 장삿길을 떠나 집을 경제적으로 책임져야하는 무거운 짐을 져야만 했다. 휘저우 사람들 속담에 “前世에 덕을 쌓지 못하면 휘저우에 태어나서 열서너 살에 외지로 길을 떠난다”는 말이 있다. 휘저우는 좁은 땅에 인구가 많아서 아이들도 열서너 살이 되면 고향을 떠나 장사를 배우고 사업을 해야만 했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이 집에 붙어 있는 열세개의 청석판은 쟝런칭이 그의 후손들에게 그가 어려서부터 열심히 일해서 집안을 일으킨 것처럼 열심히 살도록 말하고 있는 것이며 또한 이 골목을 지나며 청석판을 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와 같은 뜻을 전하는 것이라고 한다. 휘저우의 집은 다른 지역에서도 이처럼 집의 하단부를 청석판으로 붙여 견고하게 만든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집에 붙어있는 청석판 만 꼭 이런 비유적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아마도 열 세장이라는 숫자에 후인들이 의미를 붙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다른 마을들에서도 많이 보는 것이지만 중국인들의 상징 만들기와 이야기 꾸미는 능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휘저우 민가 건축의 외벽 하단에 이러한 대형의 청석판을 높게 붙이는 것은 이 지역 마을들이 하천을 끼고 있고 수구문화(水口文化)가 발달하여 홍수 피해가 많기 때문에 그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비교적 합리적인 설명이라고 생각된다.
이 집에서 또 그러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대문이다. 정청으로 들어가는 두 쪽의 대문은 대문을 닫아도 두 쪽의 문이 이가 맞지 않아 반드시 자물통을 걸어 잠궈야 한다. 이는 이 집에서 나가면 고관으로 출세한 후에야 돌아올 수 있고 고관이 되어 돌아오면 그때야 대문을 깎아서 맞게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맞물리지 못하는 두 쪽의 대문은 이 집에서 아직 고관으로 출세한 사람이 없다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이런 의미를 붙여 놓은 것은 자손들이 분발하여 성공하도록 격려하는 차원에서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쟝런칭이 상인이었기 때문에 장사꾼의 대문은 영원히 손님을 위해 열어두어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이 외에도 연못에 붉은 잉어를 키우는 것은 상인과 일반 백성은 물과 고기의 관계라는 의미가 있다거나 일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수가 스무 개인 것은 쟝런칭의 장삿길 이십년을 뜻한다거나 3층의 작은 창문이 안에서는 네모꼴이고 밖에서는 나뭇잎 모양을 하였는데 네모꼴은 올바르게 산다는 의미이고 나뭇잎 모양은 낙엽귀근(落葉歸根) 즉 낙엽은 결국 뿌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집 떠난 사람은 종국에는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의미가 있다는 등 이 집의 구조와 관련된 이야기는 끝이 없다. 참으로 중국인은 스토리텔링의 귀재들이다.
돌아오지 않는 아들들을 기다리는 일부육원의 빈터
마을에서 꼭 소개해야 할 곳이 있는데 그것은 쟝러칭 고택과 쟝이린 기념관 그리고 삼성당에 둘러싸인 일부육원(一府六院)이라고 부르는 이 마을 최고최대의 저택이다. 휘저우의 집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명대 건축 중에서 볼 수 있는 삼층 짜리 집이다. 그런데 일부육원 건물은 4층의 규모로서 가히 휘저우 최대의 집이라 할만 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집은 지금 볼 수 없게 되었다. 지은 지 400여년이 지나면서 이 특이한 옛집은 오랜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1980년대에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현재는 오직 대문이 있던 돌로 된 문틀이 있을 뿐이다. 휘저우의 집은 겉으로 보면 벽돌과 회를 발라 견고한 성채와 같지만 그 내부는 완전히 목조건물로 되어 있어서 오랜 세월이 지나고 돌보는 사람이 없으면 외부의 벽체는 그런대로 유지되지만 내부 목조건물은 썩어 무너지고 만다. 황산시내의 오랜 건물들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겉모습과는 달리 내부는 거의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있는 것은 그러한 구조적인 이유 때문이다.
일부육원을 처음 지은 것은 명나라 말기로서 건물의 면적이 넓고 건축 자체가 위풍이 있는 4층의 거대한 집이었다. 건물 안에는 큰 집 하나와 작은 집 6개가 있었다. 곧 건축의 내부는 모두 7개의 독립적 생활소구로 나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매 한 개의 소청 사이에는 작은 문으로 서로 통할 수 있었고 한 개의 생활구역에서 다른 생활구역으로 서로 통할 수 있었다. 이는 방대한 고대 다층건축군이며 큰 집이 작은 집을 포개서 덮고 있는 형상이다. 집 주인은 무엇 때문에 이러한 4층의 고루와 7개의 독립된 집을 한 개의 집으로 만들었는가? 또 “일부육원(一府六院)”이란 이름을 어떤 뜻인가?
이 집을 4층으로 지은 것은 이 마을로 들어온 쟝씨의 선조들이 4개 왕조를 거쳤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즉 당나라 말기에서 명나라에 이르는 4개 왕조를 거치면서 이 마을에 들어온 쟝씨들이 크게 번창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휘저우의 큰 저택들은 이처럼 상업으로 큰 돈을 번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을 빛내고 그럼으로써 스스로의 세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안동의 거대한 종가집들이 지어진 배경과도 통한다고 할 것이다. 집 주인은 여섯 아들을 두었다고 하는데 아들마다 저택 안에 있는 집을 하나씩 나누어 주어 함께 살았다. 그러나 여섯 아들은 장성한 후 모두 외지로 나가서 각자 창업한 후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 돌보는 이 없는 이 거대한 저택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지고 만 것이다. 이제 빈 터에 남은 작은 주춧돌과 문틀의 석재만이 옛 영화를 말해주고 있으니 일대의 영화가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여 그들의 영화를 천하에 자랑하려는 욕심과 허세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이 빈터에서 느낄 수 있다.
안동의 수많은 옛 집들이 하나하나 스러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또 어떻게 이 집들을 후세에 남길 수 있는지, 쟝완 마을의 일부육현처럼 빈 터로만 남아 우리 후세대들에게 이와 같은 허망함만을 주어야 하는지, 새삼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으나 아직도 마땅한 해답은 나오지 않는다.
마을을 나서기 전에 마을 입구에 있는 샤오쟝(蕭江) 종사(宗祠)를 둘러보았다. 이 사당은 마을 입구에 있어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사당부터 들어가는 것이 순서겠지만 처음에 사당으로 들어가지 않았던 것은 마을에 들어가는 관람객의 동선에서 왼쪽으로 비켜서 있어서 발길이 그쪽으로 돌아가지 않았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만 깨끗하게 새로 지어진 어마어마한 집이 관람객에게 그리 친근하게 굴지 않는 것이 주요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
대문 앞에는 화강암 석판을 깐 광장이 있고 돌사자 두 마리가 대문에서 광장 쪽으로 쑥 나와 사당을 지키고 있었다. 이 건물은 휘저우 지역으로 처음 이주해온 쟝씨 즉 샤오쟝(蕭江)의 대종사로서 사당 본채는 영사당(永思堂)이라고 한다. 처음 명대에 건립되었지만 화재로 불타버리고 청대에 중건되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중수되지 못하여 무너진 후 그 터에는 현재 쟝완의 진정부(鎭政府) 건물이 들어서 있다. 현재의 사당 건물은 옛 문헌과 노인들의 구전을 바탕으로 지은 것이라 하는데 휘저우 지역의 다른 대규모 사당과 비교해볼 때 지나치게 크게 지은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이러한 대형 사당건축의 재현은 사회주의 체제를 빗댈 것도 없이 급격히 변하는 현대 사회의 흐름 속에서 이와 같은 조상숭배를 위한 대규모 건축물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되새겨보게 한다. 과거 전통사회부터 끊이지 않고 조상숭배에 매달려 온 안동과 같은 보수적 지역에서도 이러한 사당이나 서원들이 새로 지어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불과 몇 십년 후면 관리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해당 문중 뿐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의 걱정거리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영사당 현판이 붙은 판벽에는 샤오쟝(蕭江) 일세조 쟝쩐(강정,江禎)의 초상이 걸려있었고 초상 앞에 나이든 부모와 중학생으로 보이는 딸과 함께 온 젊은 부부가족이 초상을 보고 있었다. 지금 중국에서 한 가정에 하나의 자녀만 두게 되어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나이어린 여중생이 이 위압적인 사당에 걸린 조상의 초상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