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온 길안면 구수리 새댁 쩐티댑(글/김필녀_시인)

들판마다 새하얗게 무더기로 피어있는 찔레꽃이 바쁜 농부들의 마음을 달래주는가 하면, 아파트 울타리마다 새빨갛게 핀 장미꽃 향기가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눈과 코끝을 자극하며 6월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어김없이 계절이 바뀌는 가운데 때맞추어 피고 지는 꽃들을 바라보노라면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모내기를 끝낸 논에는 언제 뿌리를 내렸는지 모가 실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때 이른 무더위와 가뭄 속에서도 감자꽃이 하얗게 피어 웃고 있다.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기다리는 계절이라면 여름은 성숙의 계절이다. 따가운 햇살과 비바람을 맞으며 살을 찌우고 있는 진녹색 산과 들을 마주하노라면 모자라는 것이 더 많은 나는 이 계절에 무엇으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가야 하는지 깊은 생각에 잠긴다.


시골길은 늘 정겹다. 이번호에는 베트남에서 멀리 안동으로 시집온 쩐티댑(24)씨를 취재하기 위해 길안으로 향했다. 사과로 유명한 길안으로 가는 도로 양옆에는 과수원이 즐비하다. 사과꽃이 진 자리 마다 방울방울 맺혀있던 열매 중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목이 다 잘려 나가고 선택받은 열매만이 튼실한 사과로 거듭나기 위해 보란 듯이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웃고 있다.


길안에서 청송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자 늦게 핀 찔레꽃이 하얗게 웃으며 어서 오라 손짓한다. 용계 은행나무가 있는 길로 접어들기 전, 정갈한 양옥 한 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길옆에 승용차를 주차시키고 마당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었는지 베트남 새댁 쩐티댑이 현관문을 열고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거실로 들어서자 깨끗하게 정리된 집안이 살림하는 안주인의 깔끔한 성격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게 했다. 시부모님과 남편은 과수원으로 일을 나가고 쩐티댑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부엌으로 들어가 커피를 내오며 이런저런 인사말을 나누는데 그녀의 우리말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5년차 베트남 새댁 쩐티댑
“언제 안동으로 시집오셨어요.”
“2006년에 결혼을 했으니 햇수로 5년째네요.”
쩐티댑은 2006년 안동으로 시집을 와서 지금 4살 된 아들 상호를 키우며 시부모님을 모시고 남편 탁성균(44)씨와 함께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집 앞에 낯선 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본 남편 탁성균 씨가 우리가 온 것을 알고서는 시부모님과 일을 잠시 놓고 거실로 들어섰다.
“먼 길을 찾아 내 집에 손님이 오셨는데 인사라도 하고 일을 해야 사람의 도리지요.”하며 쩐티댑의 시아버지 탁천식(72)씨가 깍듯하게 인사를 하셨다. 뒤이어 쩐티댑의 시어머니께서 부엌으로 들어가시며 냉동실에 떡이 있는데 쪄서 손님 접대를 하라며 며느리에게 언질을 한다.
“요즘이 농사철이라 집이 누추하이더. 우짜니껴 손님들이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이소.”하시며 깨끗한 집안을 두루 살피신다.
“며느님이 참 귀엽고 예쁘네요.”
“예. 뭐 하나 나무랄 데 없는 복덩어릴씨더.”하며 며느리 자랑과 함께 벽에 걸린 사진을 가리키며 손자가 네 살인데 놀이방에 가고 없다며 싱글벙글 웃음이 가득하다.


바쁜 농사철이라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을 것 같다며 다시 밭으로 나서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가서 잡지에 낼 사진을 먼저 찍었다. 요즘은 핵가족으로 살아가는 가정이 대부분인데 시부모님과 함께 3대가 함께 살고 있는 가정을 보니 참 정겨워 보였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서로 매무새를 고쳐주는 모습을 보며 쩐티댑이 정말 시집을 잘 왔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남편 탁성균 씨는 아내가 인터뷰를 하면서 혹시나 말이 서툴거나 실수를 하지 않을까 염려하면서 곁에 앉아 자상하게 거들어 주었다. 주 농사는 사과 과수원이고 논과 밭을 합하면 5천 평 정도의 대농이라 늘 바빠 아내와 함께 자주 놀러 가지 못해 내심 미안하다고 한다.




베트남 남부도시 껀터가 고향
쩐티댑의 고향은 호치민시에서 승용차로 5시간을 더 가야하는 남부도시 껀터라고 한다. 껀터는 베트남 남부지방에서 두 번째로 큰 수상도시이며 특히 미녀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래서인지 쩐티댑도 보통 인물이 아니다.
베트남에는 부모님이 다 살아계시고 2남 2녀 중 위로 오빠가 1명 있고 둘째라고 한다. 집안이 가난해서 중학교 1학년을 다니다 중퇴해서 농사를 짓고 있는 부모님을 도왔다고 한다. 베트남은 우리나라 60년대처럼 경제사정이 아직도 어려워 딸은 공부를 하고 싶어도 시키지 않고 아들 위주로 공부를 시킨다고 전했다. 쩐티댑도 위로 오빠와 아래 남동생 때문에 희생양이 되어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몇 년 동안 공장에도 다녔다고 한다. 그런 힘든 생활을 꾹 참아왔던 쩐티댑이어서일까? 안동으로 시집와서 가장 힘들었던 때를 묻자 날씨와 언어문제를 빼곤 특별히 힘들지 않았다고 야무지게 대답한다.
“겨울이 추워서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그리고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것은 언어문제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열심히 한국말을 배워서 많이 좋아졌어요. 그렇지만 아직도 말은 그럭저럭 하는데 책을 읽거나 쓰는 것이 많이 부족해요. 아들 상호가 앞으로 유치원을 가고 학교를 가면 숙제도 봐 줘야하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어요.”
그녀에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한국어는 남편한테 도움을 청하면 되고, 그 대신 쩐티댑 씨는 베트남어를 가르치면 상호는 2개 국어를 구사하는 똑똑한 어린이가 될 거예요.”조언해주니 환하게 웃는 모습이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안심하는 눈치다.


지금까지 이주여성들을 취재하면서 느끼는 공통점은 처음 몇 년 동안은 언어문제로 인해 가족들과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아 힘들었다는 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다문화가정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정부가 지자체에서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글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주여성들끼리 모임도 자주 주선해 요리도 가르치고 우리 문화를 체험시키면서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쩐티댑의 남편 탁성균 씨는 3남 1녀 중 둘째 아들이다. 원래는 엔지니어 출신인데 직업병을 얻어 기관지가 좋지 않아 고향에 와서 농사를 짓고 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으며 부모님과 함께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다. 부부는 2년 전 처가에 다녀왔다.
“2008년도에 다녀왔습니다. 농사일이 늘 바빠 자주 가지 못하지요.”
멀리 이국땅으로 시집온 쩐티댑을 성균 씨도 많이 측은해하고 아직 한창인 그녀에게 기회가 있으면 여러 가지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주고 싶단다.
“표현은 잘 안하지만 아마도 부모님과 가족, 그리고 베트남의 모든 것이 그리울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요. 그리고 가난해서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었는데 여건이 허락하면 공부를 더 시키고 싶어요.”
아내를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며 이야기는 이어졌다.
“말은 그런대로 하고 살지만 아직 책을 읽거나 쓰는 것이 힘들어 공부하는 것은 아마 몇 년 더 있어야 될 것 같아요. 급한 것은 운전면허증을 따는 일이지요.”
아들 상호가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안동시내로 나가야 하는데 그때는 시골도 왔다 갔다 해야 하고 학원도 태워주어야 하니 운전이 필수라고 말하는 성균 씨.




어엿한 직장인 쩐티댑, 보조교사로 취직
쩐티댑은 현재 길안여성농업인센터 놀이방에서 차량 보조교사로 일을 하고 있다. 농촌에서 가장 바쁜 농사철인 5월부터 9월까지 5개월 정도 근무하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일을 하게 되었다고 자랑을 했다. 올해 놀이방 원생은 19명인데 주로 두 살에서 다섯 살이며 오전 9시에서 6시까지 근무하며 근무조건도 만족스럽다고 한다. 무엇보다 쩐티댑이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도 큰 기쁨 중에 하나다. 원생 중에 다문화가정 자녀가 7명이 있고 쩐티댑이 아들 상호도 지켜볼 수 있고 해서 꽤 매력 있는 직장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최근 농촌은 급속한 초 고령화로 인해 인구감소, 저 출산 등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여성농업인과 농촌아동들은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육, 교육여건이 좋지 못한 실정이다. 이러한 농촌의 열악한 보육 ․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동시가 2005년부터 민간전문가에게 위탁 ․ 운영하고 있는 안동시립농촌보육정보센터는 여성농업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동시가 운영하고 있는 농촌보육정보센터는 길안 여성농업인센터와 예안, 임하 농촌보육정보센터로 농촌어린이의 취학 전 영유아 보육과 초등학생, 중학생에게는 방과 후 공부방을 운영해 바쁜 영농철에는 농촌어린이들에게 도시민에 버금가는 보육과 교육을 지원해 여성농업인은 자녀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고 한다.




담배만 끊어준다면 만점 남편
“남편 하나만 믿고 멀리 한국으로 시집을 왔는데 혹시 시부모님이나 부부간의 갈등은 없어요?”
“시부모님은 뭐든지 잘 대해 주시고 잘 모르는 것은 자상하게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 갈등이 없어요. 그리고 남편하고도 다른 갈등은 없어요. 그런데 기관지가 좋지 않은데 담배를 끊으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고 계속 피워 속상해요.”
이젠 ‘담배 좀 그만 피우라’는 잔소리도 제법 하는 쩐티댑. 베트남이 아주 먼 곳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서 그런지 평소에는 그렇게 그립지는 않다고 한다. 하지만 몸이 아플 때는 부모님과 가족이 그리울 때가 종종 있다고.
“베트남에서 시집온 친구들이 몇 있어요. 가까이 단양에 한 동네 친구가 시집와서 살고 있어 남편하고 자주 가는 편이예요.”


베트남 친구를 만나면 주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집안 얘기도 허물없이 하는지 물어보니 쩐티댑은 어린 나이답지 않게 꼭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서로의 프라이버시가 있어 그런지 나쁜 이야기보다는 좋은 이야기를 주로 나누지요. 서로 만나 좋은 얘기만 하기에도 시간이 짧은걸요. 그리고는 베트남 음식도 만들어 먹고 노래도 부르고 그래요.”
쩐티댑의 속 깊은 말에 왜 그녀가 동네에서 소문난 효부요, 새댁인지 짐작이 갔다. 문득 얼마 전에 있었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했는지 궁금해 물으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베트남어로 된 혼인신고서를 잃어버려서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불만이 많았어요. 베트남어로 된 혼인신고서는 부부가 같이 베트남에 가야 발급 받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한국어로 된 혼인신고서가 있으면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 줘야 하지 않겠어요.”한다. 혼인신고서 때문에 다시 베트남을 갈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게 또 바로 발급되는 것이 아니라 절차가 복잡해 여간 애먹이는 것이 아니란다. 애초에 같은 시기 결혼한 친구들이 혼인신고서를 받았을 때도 쩐티댑과 탁성균 씨는 받은 기억이 없는 터라 시어머니께 야단도 맞은 터, 그래도 어디에서 잃었는지조차 감을 못잡는다. 결혼5년차지만 아직 ‘한국사람’이 되지 못해 마음이 무척 아픈 쩐티댑이다. 시아버지는 그녀를 ‘미영’이라 부르며 개명할 것을 권했지만 베트남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이름이라 쩐티댑은 그냥 ‘쩐티댑’이고 싶고 한국식 예명이라면 ‘미영’이라 불려도 괜찮을 것 같다고 애교 섞인 말을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쩐티댑이 근무하는 길안여성농업인센터로 함께 갔다. 아들 상호를 만나기 위해 들렸지만 때마침 체험활동을 가고 놀이방은 텅 비어 있었다. 부엌에는 쩐티댑의 동갑내기 친구 흰티미탄 씨가 전을 굽고 있었다. 이렇게 일 할 수 있고 아이를 돌볼 수 있고 배려해주는 가족과 친구가 있어 쩐티댑은 지금 이 생활이 행복하다. 더 큰 바람이 있다면 베트남 가족 한국 가족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쩐티댑의 어릴 때 장래희망은 의상디자이너나 헤어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단다. 아직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젊은 나이니만큼 언젠가는 꿈을 이루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자신의 일도 가졌고 주말이면 농사일 거들고 살림도 야무지게 잘하는 쩐티댑이 길안면 구수리 탁성균 씨네 집에 들어온 복덩이임에 틀림이 없어보인다.


쩐티댑 씨가 남편과의 나이차도 슬기롭게 잘 극복해서 앞으로도 지금처럼 행복하게 잘 살기를 기도해 본다. 우리가 그간 만났던 외국인 새댁 그 누구보다 밝은 쩐티댑의 얼굴이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까지도 생각이 났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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