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암고택에서 부끄러움을 생각하다(글/권오철_안동시 남후면 무릉2리)

『안동』지에서는‘한국정신문화의 수도’에 관한 논의의 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과연 정신문화의 수도는 무엇을 의미하고 안동이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명칭에 알맞는 역할을 해오고 있는지, 또 안동이 진정한‘정신문화의 수도’라는 고유명사가 되려면 어떠한 숙제를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여기 토론의 장을 마련해 둡니다. 여러분들의 참여와 의견을 기다립니다. -편집자




치암 ‘부끄러울 恥’ ‘바위 岩’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글자. 하필 부끄러울 恥인가? ‘恥’야말로 동몽선습에 ‘천지지간만물지중(天地之間萬物之中)에 유인(惟人)이 최귀(最貴)니라.’에서 인간이 대자연의 3요소인 ‘天地仁’의 한 자락을 차지하는 이유이다. 그것은 삼강오륜을 알기 때문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이 ‘치’를 안다는 것이고, 부끄러움과 수줍음은 인간만이 가진 최고의 덕목이다. 왜 그런가? 인간은 ‘생년미만백(生年未滿百) 이나 상회천년우(常懷千年憂)’ 즉 백년도 못 살면서 천년을 걱정하는 모순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음(心)이 부끄러우면 귀(耳)가 붉어지고 이는 인간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중국에서 쓰는 ‘恥’는 ‘耳+止’자(글자 모양대로 라면 ‘귀를 닫고 제 멋대로’라는 뜻으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恥와 같은 글자이다.)를 주로 쓰니 이들이 ‘동북공정’이니 ‘중화문명공정’이니 ‘단대공정’이니 하면서 후안무치 더 나아가 파렴치해져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동물은 선험적으로 그 분수를 알고 있고 ‘치’를 몰라도 본능만으로도 충분히 자연의 일부로서 역할을 하나 인간만은 신과의 중간자라고 자처하여 이 ‘치’를 모르면 결국 천지인에서 天과地를 파괴하는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 왈 ‘아랫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하셨고, 맹자 왈 ‘사람은 부끄러움이 없어서는 안 되니 부끄러워하는 바가 없음을 부끄러워한다’ 하셨다.


‘치’가 그리 중요하니 제사상에는 ‘치’자 들어가는 어물(꽁치,칼치,날치)이 없는 것이다. ‘치’는 명예를 생명으로 하는 군자(선비)와 무사(사무라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으로, 이 ‘치’의 사상이 곧 제 진리의 근원이요 도리이다.


이 ‘치’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고 ‘치’를 당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인간이다. 치암고택의 첫 주인이신 치암 이만현 선생 또한 국치에 울분을 이기지 못하여 분사 한 것도 이런 연유이다. 당시 50명의 자진자 중 10여명이 안동인이다. 권성이라는 여성이 나라를 잃고 분사한 남편을 따라 목숨을 끊었다는 유서가 최근 발견되기도 했다. 안동은 그만큼 염치가 넘치는 고장이었다. 그 뒤 아전계급의 나부랭이들이 친일과 독재에 빌붙어 지조를 팔고 족친을 팔고 고향을 팔아 영달을 꽤하는 못된 풍토를 만들었다. 이제 우리 모두 안동이 원래의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진력을 다해야할 것이다.


‘岩’은 ‘바위처럼 굳은 맹세’란 말과 같이 불변의 자연을 뜻하는 것이고,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의미 할 것이다. 바위는 땅의 기운(陰)과 하늘의 정기(陽)’에 의해 굳어진 천지조화의 중요한 산물의 하나(金)’이다. 따라서 ‘恥岩’ 은 곧 천지인을 의미하고, 인간이 자연 속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더불어 살아 가야한다는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다.


퇴계의 학맥이 일본은 물론 중국에 끼친 영향은 너무나 크다. 공맹이래로 주자가 있다 하나 퇴계학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고, 장차 모든 유학은 퇴계 이전과 이후로 양분하여 나뉘어질 것이다. 일본의 근대화는 퇴계학에서부터 비롯되고 그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것도 결국 선비정신이며 ‘치’의 정신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설화 ‘忠臣藏(쥬신구라)’도 결국 ‘치’의 문제이다.


요즘 시쳇말로 ‘쪽(面) 팔리고는 못산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라져가는 지금 자연은 파괴되고 인성은 메말라 천지인이 공노공멸할 시대에 이른 것이다. ‘치’의 의미를 모르는 파렴치의 존재들이 득세하니 통탄할 일이다.


나는 그 구원의 장소가 바로 여기 이 ‘치암고택’이라고 감히 화두를 던진다. 집이란 원래 자리에 있어야 하고 주변이 그대로 있어야 그 존재 의미가 있으나 그나마 이렇게라도 남아 있으니 그 거죽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고, 넋을 부르는 근거라도 되니 다행이다. 요즘 그 본래의 의미는 무색하고 무지한 자들의 개발 논리에 의해 수많은 고택이 훼손되었다니 통분할 일이기는 하나 지나간 것은 모두 한 줄기 연기인 것이니 각설하고 ‘몸’이 없으면 ‘넋’이라도 찾으면 될 일이다.


들어서니 앞에 향산고택이 있다. 고택 정문에 문패는 이원봉(李源琫), 족보를 보니 치암의 4대손이고 현재 주인장의 부친이시라 아마 ‘모친’이 생존하시니 그리 한 바 같으나 이 문패도 곧 바뀔게 아닌가 한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그 물에 순응하는 게 자연의 철리이다.(상선약수上善若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도 역시 그런 것이고, 돈 과 자식은 뜻대로 안 된다는 것도 그런 뜻이리라. 어릴 적 억울하게 얻어맞고 코피를 쓱 닦으며 비장하게 내뱉는 눈물 젖은 한마디 ‘물은 물대로 간데이~’하는 말처럼 그런 것이다.


넓은 정원을 앞에 두고 ‘청풍헌(淸風軒)’이라는 자그만 현판에 조촐한 누각이 고졸스럽고 앙증맞다. ‘만세청풍’의 기상으로 ‘청풍명월’을 논하기로는 이만하면 그저 족하다고 본다.


주련의 글씨는 기억나지 않고 그저 그런 좋은 자연 이야기인 것 같고, 다만 벽에 붙은 글씨 몇 자는 먼저 ‘징념질욕(懲念窒慾)’이 먼저 눈에 들어오니 이는 분은 누르기를 옛 성인같이 하고, 욕심 막기를 물을 막듯이 하라는 것과 같이 유학의 근본인 ‘극기부례(克己復禮)’의 또 다른 표현이다.


다음은 ‘숙흥야매(夙興夜昧)’가 눈에 들어오니 ‘새벽에 일어나고 저녁에 잔다’는 평범한 말이나 이는 인간도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해야하는 생명체인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근본 생활 태도를 말한다. 또 옆에 ‘신독(愼獨)’ 두 글자는 가장 어려운 과제를 주고 있다. ‘혼자 있을 때 잘하라’는 뜻으로 유교의 수양방법에 있어 중요한 덕목이다. ‘안 볼 때 잘 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거짓이 없어야 한다는 거고 모든 종교나 도덕이 정직을 최고 덕목으로 하는 것은 ‘단순한 것이 가장 경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는 경세지민(經世濟民)으로 ‘이코노미’라는 밋밋한 말과는 분명 다른 고차원 적인 것이다. 거짓을 한 번 말하면 그걸 메우려고 고도의 복잡한 에너지의 낭비가 따른다는 것이다.


밖에 대문 옆 주련에 요지일월, 순지건곤(堯之日月, 舜之乾坤)은 태평성세라던 요순시대를 말하고 있으나 실제 순이 요를 지방으로 몰아내 가두고 자신이 임금이 되었다는 말이 있다.


이는 공자가 동이(九夷)의 고장 송나라 사람으로 은나라(고조선의 제후국)의 후예이면서 하화족의 나라 주나라 문공을 모범으로 삼은 것이 잘못 일 수 있다는 것처럼 새로운 관점으로 역사를 인식하려는 움직임과 같다고 본다. 조선이 문명국 고대 그리스라면 하화족의 주나라는 야만의 로마제국이라 보면 맞을 것이다. 그리스의 제우스가 로마의 주피터로 이름 바꿔서 ‘메이드인 로마’로 만들 듯이 중국과 조선의 관계도 그런 것이었다. ‘역사는 진리이기 이전에 인식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날 청년유도회 회장인 주인장 이동수 선생의 삼태극, 환인, 삼성, 만대루, 병산서원의 존덕사, 도산서원 상덕사의 태극문양에 대한 이해 등은 밤 늦도록 이어지고, 이로 인해 폐를 끼쳐드린 점은 송구하지만, 그날 그 자리의 모임은 두고두고 의미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청년’은 최소한 불혹은 넘기지 말아야 청년이라 하니, 이 ‘청년유도회’ 명칭 또한 지천명, 이순을 넘으면 천의 도를 깨우칠 때인데 ‘청년’이라니 유교의 이치에도 어긋남이 있어 보이나, 옛날과 비교하면 ‘학문에 대한 이해 정도’나 ‘생물학적 노령화’로 보면 이해가 가는 점도 있다.


어쨌든 이날 밤은 ‘1만년 민족사’에 있어 그 유구한 맥을 인식하는 소중한 자리였다. 대략 보자면 이 땅에 불교, 도교, 유교, 기독교, 사회주의, 자본주의가 유입되건 다 하느님을 숭상하는 ‘삼태극’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고, 민족 고유사상(현묘지도玄妙之道)의 영향 하에서 모두 세계적 최고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유교문화는 소위 중화를 주장하는 중국인들조차 한국, 거기서도 안동을 찾아야 그 진면목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실제 ‘석존대제(釋尊大祭)’의 절차를 몰라 그들이 연수를 받아간 적이 있다. 공자의 고향 곡부에 더러 가보지만 역시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관광 호객꾼들의 천국이라는 느낌 외에는 없었다. 더구나 안동은 이 모든 제사상(諸思想)의 핵심 인물을 배출 한 곳이기도 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안동’이라는 아이템이 우리의 의제를 달성하는 핵심적인 에너지로 등장하고 그 중심이 바로 안동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시점이 도래 할 것이다.


치암고택에서 제대로 하룻밤 머무를 날이 언젠가 올 것으로 믿으며, 이 선생의 접빈객의 수고에 대해 일행을 대신해서 감사의 뜻을 이 횡설수설로 갈음하고자 하며, 하시는 일과 가내에 오복이 가득하길 기원하며, 아울러 동녘으로 흐르는 물은 만 번을 굽어도 동녘으로 향하나니, 안동이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자칭 하는 바 이에 걸 맞는 증거와 이론과 실천 방향을 제공하는 밑거름이 이 치암고택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깨우치는 뜻 깊은 날로 기억하고자 한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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